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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 찍고 건설 재벌-24화 (24/230)

24. 광산 인수(4)

장말동은 음흉하게 웃었다.

“대양 중석과 대양 시멘트를 말하는 것이로구나?”

“맞습니다.”

태수는 속을 숨기지 않았고, 장말동은 재빨리 주판알을 튕겼다.

“어디 보자. 너도 알다시피 이게 꽤 건실한 알짜배기라, 2천만 원가지고는 택도 없을 텐데.”

“평소라면 그랬겠지요.”

태수는 씩 웃었다.

“하지만 잘 안 팔릴 텐데요? 다들 빌릴 돈이 없어서 주머니 사정이 궁하니까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장말동은 다시 음흉하게 웃었다.

“당장 처분이 급한 것도 아니라, 못 기다릴 이유가 무에 있으랴. 문제없음이야.”

“광산과 시멘트 공장이 멈추면 재가동할 때까지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네 덕분에 내 돈주머니가 든든하니, 걱정할 것 없음이야.”

“그럼 그러시던가요.”

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팔기 싫으시다면 어쩔 수 없죠. 그럼 차용증에 적힌 2천만 원이나 내어주시죠.”

장말동은 두 눈을 꿈뻑였다.

“대양 중석과 대양 시멘트 때문에 온 것이 아니더냐?”

“뭐, 겸사겸사 왔죠.”

“그럼 날 설득시킬 생각은 왜 안 하느냐?”

“일전에 무릎걸음으로 걸어와 구구절절하게 말을 늘어놓으라던 그거요? 다른 대기업들처럼 머리 조아리고?”

“······.”

쩝. 그렇게 되길 바라긴 했다만.

이놈 하는 짓을 보아하니 어림도 없구만.

뭐 하나 순순히 이쪽 생각처럼 움직여주질 않아, 에잉!

“좀 하면 어떠냐! 혹시 알겠느냐? 이 장말동이가 거기에 홀라당 넘어갈지.”

태수는 품속에서 꺼낸 차용증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돈 받으러 왔는데, 제가 그런 것까지 해야 합니까? 잘 아시면서.”

“······.”

하기야, 사채 회수하면서 무릎걸음으로 와서 구구절절 설득하진 않지.

또 말문이 턱 막히는 장말동이었다.

한복 입은 남자는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정말 제법이란 말이야. 장말동이를 아주 가지고 노는구나.’

장말동은 고개를 홱 돌렸다.

“이 장말동이가 모른 척 넘어가 주려고 했는데, 그것 참 아쉽구나!”

“일전에 말했던 그 은혜 때문입니까?”

“그래! 이 망할 놈아!”

태수는 피식 웃었다.

“주신다면 감사히 넙죽 받죠. 어떻게 해드릴까요? 무릎걸음? 구구절절? 조아리기?”

“됐다! 집어 치워라!”

장말동은 대양 중석과 대양 시멘트와 관련된 문서들을 좌탁에 탁 올려놨다.

태수가 온다기에 미리 금고에서 빼둔 것이다.

“가져가거라.”

태수는 좌탁 위에 올려진 문서를 보면서 잠시 묘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번처럼 실랑이로 정신을 쏙 빼놓은 다음에 헐값에 후려쳐 가져오려고 했었는데. 이건 뜻밖이로군.’

솔직히 대양 중석과 대양 시멘트는 워낙 알짜 기업이라, 고작 2천만 원으로 받아오기 어려운 협상이었다.

때문에 태수는 일부러 장말동이 힘이 제일 빠져 있는 시간까지 가늠해 한밤중에 찾아왔다.

열흘간 잔뜩 긴장하다가 사채 동결조치가 확정되어 맥이 탁 풀리는 순간을 노렸다.

‘이번엔 꽤 힘들 것을 각오하고 왔는데. 협박할 거리까지 준비했었고.’

헌데 장말동은 그걸 별다른 실랑이 없이 선뜻 내주는 게 아닌가.

딱 그 권리증들만 빼놓고 있었던 것을 보면, 진즉부터 내주기로 작정하고 있었던 거다.

‘그런 줄도 모르고 괜히 뻣뻣하게 굴었군.’

태수는 자세를 바로 하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호의에 감사합니다, 어르신.”

호의는 호의로.

태수의 고개는 한참이나 들리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한복 입은 남자는 미미하게 올라가는 입 꼬리를 애써 감췄다.

‘괜찮은 젊은이군. 정말 마음에 들어.’

한복 입은 남자는 장말동을 향해 몰래 고개를 끄덕였다.

장말동은 그걸 확인하고 부채를 촤악 폈다.

“됐다. 차용증이나 이리 내거라.”

태수는 장말동에게 차용증을 내밀었다.

“어르신, 종로의 최무룡은 이제 양지로 나오려고 할 겁니다.”

“최무룡이?”

“은행을 설립할 겁니다.”

“뭐라? 은행?”

차용증을 든 장말동은 동작을 멈추고 태수를 보았다.

태수는 확신하고 있었다.

“박정환 대통령이 왜 긴급명령까지 선포하며 사채를 동결시켰겠습니까?”

박정환 대통령이 8.3 사채 동결조치를 내건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기업의 부채를 줄여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

둘째, 지하 금융시장 대신 은행을 키우기 위해서.

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으니 더 이상 사채업을 계속하기는 어렵게 됐습니다. 최무룡은 돈 놀이를 그만두지 못할 겁니다. 그렇다면?"

장말동도 동의했다.

"그래, 돈 놀이를 계속 하려면 은행을 설립해야겠구나. 최무룡이가-. 흐음."

태수는 품속에 대양 석회와 대양 시멘트 권리증을 집어넣었다.

장말동은 은근히 물었다.

“애송아, 왜 이번 정보는 차용증을 안 받아냈느냐?”

“호의는 호의로 갚는 거 아니겠습니까?”

태수가 품속의 권리증을 탁탁 두들겼다.

‘호의를 호의로 갚았다? 이것 참 미워할 수 없는 또라이렷다?’

장말동은 크게 웃으며 손을 훠이훠이 내저었다.

“됐다, 썩 꺼져라!”

“감사합니다, 어르신. 앞으로 종종 뵙겠습니다.”

태수의 말에 장말동은 파르르 떨었다.

“종종? 일없다! 냉큼 꺼지지 않고 뭐하는 게야!”

장말동이 왕소금을 찾는다며 성질을 부려대기 시작했다.

태수는 피식 웃으면서 장말동의 방문을 나섰다.

‘전생에서 장말동은 8.3 사채 동결조치로 파산하고 말았다. 은행 설립은 불가능했지. 과연 이번 생에서 장말동은 어떤 선택을 할까?’

사채를 전부 회수하지 못했다지만, 대한민국 사채업자 중 최고는 누가 뭐래도 장말동이 아닌가!

현재 가지고 있는 자본금만 해도 최무룡보다 한 수 위일 터.

최무룡도 설립한 은행을 장말동이라고 설립하지 못할까.

‘청일 그룹과 끈끈하게 엮여 있는 최무룡의 초명 은행. 장말동은 최무룡을 어디까지 견제해 줄 수 있을까?’

태수는 그것이 궁금했다.

장말동에게 8.3 사채 동결조치란 정보를 판 이유도 크게 보면 청일 그룹 견제와 맞닿아 있었다.

청일 그룹이 재벌로 올라선 데에는 초명 은행의 힘이 아주 컸으니까.

“태수야!”

태수가 방을 나서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홀쭉이가 달려왔다.

“어떻게 됐어?”

“잘됐어.”

태수가 광산과 공장 권리증을 흔들어보였다.

홀쭉이는 입을 떡 벌렸다.

“진짜로? 2천만 원에 그걸 전부 가져왔어?”

“운이 좋았지.”

“말도 안 돼! 이거 아무리 못해도 두 배, 아니, 세 배 값은 치러야 하는 알짜배기라며?”

“호의를 받았거든.”

태수는 꽉 닫힌 장말동의 방문을 힐끔 봤다.

‘장말동은 듣던 것보다 신용이 좋군.’

일이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

‘고작 2천만 원으로 석회 광산과 시멘트 공장까지 줄줄이 딸려올 줄이야.’

누가 봐도 대박!

말도 안 되는 행운!

게다가 옆 동네 알짜배기 광산!

몰리브덴 재련 시설, 광부, 운반 및 중장비, 숙소 및 직원 시설까지 전부 한방에 끝!

‘몰리브덴 광산과 관련된 모든 문제는 해결됐다.’

앞으로는 몰리브덴 캘 일만 남았다!

떼돈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 * *

시멘트 공장 한쪽 구석에 주저앉아 있는 광산주.

그는 두 손으로 머리통을 감싸고 실의에 빠져 있었다.

‘이틀만 더 참았으면 광산과 공장을 안 빼앗겼어도 됐는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제야 이해가 된다.

아직 약속된 기한도 남았는데, 사채업자들이 어째서 쳐들어왔는지.

말 붙여볼 틈도 없이 막무가내로 도장부터 찍게 했는지.

‘이 새끼들, 차용증이 휴지 조각이 될 테니까 그리 서두른 거였어.’

광산주는 눈을 감았다.

며칠만 더 버텼으면 결과는 달라졌으리라 생각하니까 입맛이 썼다.

‘그때는 알았나. 당장 공장에 불 지른다는데, 광산 마을까지 죄다 불바다로 만들겠다는데. 그 협박에는 어쩔 수 없었지.’

미련은 남았지만, 후회는 없다.

결과적으로 그가 소중하게 여겼던 광산 마을과 시멘트 공장은 멀쩡하게 지켜 냈으니까.

단지 광산주, 본인만 모든 걸 잃어버렸을 뿐이다.

‘나만 이곳에서 떠나면 되겠군. 좋은 주인을 만나야 우리 직원들이 고생 안하고 자식 교육 시키는 건데. 그것까진 내가 어쩔 수가 없구나.’

광산주는 몸을 일으켜 엉덩이를 털었다.

시멘트 가루가 팡팡 흩날렸다.

저벅저벅.

훤칠하게 생긴 냉미남이 광산주 앞에 섰다.

태수의 당부로 이곳에 남은 한수였다.

“여기 계셨군요.”

광산주는 아직 부기와 멍이 안 빠져서 얼굴이 얼룩덜룩했다.

한수가 광산주에게 뭔가를 건넸다.

“이게 뭡니까?”

“계란입니다.”

“계란이요?”

“멍 빼는 데 좋다기에.”

“······.”

광산주는 냉랭한 얼굴을 하고 있는 냉미남과 손에 들린 계란을 번갈아 보았다.

무표정한 냉미남의 얼굴엔 감정이란 게 없어서 속을 알 수가 없다.

광산주는 습관처럼 사람 속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하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습관이란 게 참 무섭군. 멍 빼는 데 좋다고 계란을 구해온 청년의 속셈이 무엇인지 헤아릴 필요가 있나? 이미 망해버린 마당에.’

광산주는 계란을 받아 눈두덩이를 슬슬 문질렀다.

‘미련을 버리자. 암만 자책해봐야 이제 다 부질없다. 그 시간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나 고민해야지.’

이제 환갑이 다 되어가는 때, 생각보다 조금 이른 은퇴려니 생각하는 거다.

마음을 비우자, 그런대로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삶은 겁니까, 날 겁니까?”

“원하신다면 삶아드리죠. 반숙이 좋습니까, 완숙이 좋습니까?”

“······.”

아니, 이 청년은 어째 농담이 안 통하나.

진짜로 당장 계란을 삶아줄 것 같은 기세에 광산주는 손을 저었다.

“그냥 농담 한 번 한 겁니다. 멍 빼는데 반숙이면 어떻고, 완숙이면 어떻고, 날달걀이면 어떻습니까?”

그럼 왜 물어보신 거죠?

“예전에는 그게 정말 중요한 건 줄 알았으니까요. 반숙, 완숙, 날달걀. 그게 정체성인 줄 알았거든요. 쓰임에 딱 맞춰서 딱 그대로 존재해야 하는.”

“······.”

“내 쓰임은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소식이 들려오는 대로 짐 싸서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법이다.

‘내 일평생을 모조리 여기에 쏟아 부었다. 이렇게 떠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떠나야 한다.’

당장 갈 데도 없고, 가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예전 사장이 여기에 버티고 있으면 새로운 사장이 그걸 곱게 보겠나.

직원들에게 불똥이 튈까 두려워 떠나는 사장이었다.

'형이 광산주 못 떠나게 붙잡으라고 했는데. 이렇게 단단히 결심한 사람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모르겠다. 막막하다.'

한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광산주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형을 따라가고 싶었을 텐데, 남아서 이것저것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한 일이 없는 걸요.”

“여기저기 기웃대는 날건달이랑 동네 양아치들을 야무지게도 패신다면서요? 그놈들 혼쭐이 나서 다신 얼씬도 못 한다는 소리, 저도 들었습니다.”

사람들 다독이는 건 못해도 그런 건 할 수 있죠.

형이 굳이 날 이곳에 남겨둔 이유도 그것 때문이고요.

'형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차라리 협박이나 고문이라면 자신 있는데, 좋은 말로 살살 설득하는 건 도저히 못 하겠어.'

한수는 모른 척 시멘트 공장으로 눈을 돌렸다.

광산주 역시 따라서 눈을 돌렸다.

“여기 말입니다. 석회석 광산을 얻은 후 무려 12년이나 걸려서야 시멘트 공장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 시멘트 공장이 돌아가던 날, 직원들이랑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너무 기뻐서.”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 그 순간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생생하다.

“석회석 광산과 시멘트 공장 덕분에 잘 먹고, 잘 입고, 자식 교육까지 시켜서 장가보냈으니, 저한테는 이놈이 효자예요, 효자.”

“압니다. 광산과 공장을 잘 운영해 오셨더라고요.”

“예, 열심히 일했습니다. 이제 떠나보내야죠. 그저 좋은 주인을 만나길 바랄 뿐입니다.”

그때였다.

직원 한 명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사장님! 드디어 오셨습니다! 지난번에 왔었던 그 청년 말입니다!”

광산주와 한수가 동시에 돌아봤다.

태수가 시멘트 공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형, 갔던 일은 잘 됐어?”

“물론이지.”

광산주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태수는 광산주에게 다가와 말했다.

“광산과 공장, 한꺼번에 인수했습니다. 시설, 직원, 장비에 광부들까지 전부 함께 말이죠.”

“주인이 누구인지는 들었습니까?”

“접니다.”

“자, 자네라고?”

“네.”

광산주의 표정은 뭐라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묘했다.

놀람, 섭섭함, 고단함, 안타까움, 미련과 안도까지.

그 마음을 익히 알기에 태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속이 말이 아니었겠지. 어떻게 일군 일터인데.’

한수는 놀람과 호기심으로 눈을 빛냈다.

‘형이 여길 인수했다고? 고작 2천만 원으로?’

광산주는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구나. 그래도 우리 식구들 밥 그릇 챙겼으면 됐지. 그럼 나는 이만 짐을 싸러 가볼까?’

“다행입니다. 이제 한시름 놓겠어요.”

“어디 가세요?”

태수가 광산주의 손을 덥석 잡으며 웃었다.

“정든 직원들, 광산과 공장, 다 버리고 어디 가시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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