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산 찍고 건설 재벌-14화 (14/230)

14. 포항 철강 박태종(3)

겁에 질린 우시로다는 재빨리 외쳤다.

“박 사장, 이건 오해야!”

태수는 코웃음 쳤다.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반말을 하시네?”

“박 사장님, 이건 오해입니다!”

우시로다가 유창한 한국어로 존칭을 사용한다.

박태종은 기가 찼다.

“인제 보니 존댓말도 아주 잘하시오. 유감스럽게도 그걸 무려 3년 만에야 알게 됐군?”

“······.”

우시로다는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크게 외쳤다.

“박 사장님, 우리 오해 좀 풉시다!”

“중앙정보국에 잠깐 갔다 오는 건 어떻소? 바로 오해 가 풀릴 것이오. 내 장담하지.”

박태종의 말에 우시로다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절대 안 됩니다! 중앙정보국까지 갈 일이 뭐 있어요. 여기서 우리끼리 해결합시다. 함께 제철소를 짓는데 굳이 얼굴 붉힐 필요가······.”

“내가 왜?”

박태종은 아예 작심한 듯 차가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이참에 저 망종의 콧대를 제대로 꺾고 휘어잡을 생각인 것 같았다.

처음 겪는 박태종의 고압적인 태도.

우시로다는 눈앞이 캄캄했다.

잘못 걸렸다는 걸 직감했다.

‘망했다. 적당히 할 것을, 내 너무 나갔구나.’

자업자득이었다.

“박 사장님, 제발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전세가 역전됐다.

“이번만 넘어가 주십시오.”

“당신 대신 다른 기술 고문을 불러와도 될 것 같소만. 일본 정부에게 지연 배상금까지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소만.”

“저처럼 한국말을 유창하게 할 사람은 없습니다.”

“상관없소. 내가 일본말을 유창하게 할 줄 아 오.”

“······.”

박태종은 씩 웃었다.

그럴수록 우시로다는 똥줄이 타들어 갔다.

“다른 기술 고문이 온다고 칩시다. 만일 그도 나와 같이 일부러 비협조적으로 굴면 어찌할 겁니까?”

우시로다 스스로 내뱉는 자백에 박태종의 눈이 매서워진다.

“지금처럼 시일이 계속 지체되고, 공사는 지연되고, 가뜩이나 부족한 자금 사정을 뻔히 아는데, 일본 정부가 분명히 뒤에서······.”

“일본 정부가 뒤에서 공사 지연을 사주했다?”

에잇! 모르겠다! 나부터 살고 보자!

우시로다는 눈 딱 감고 크게 외쳤다.

“앞으로 나는 달라질 겁니다! 나는 정말 포항 철강을 짓는 데 영혼까지 갈아 넣을 수 있어요!”

“흐음.”

“절대 훼방 놓지 않겠습니다. 나 우시로다 타케시의 명예를 걸고 전력으로 협조하겠습니다! 나 이외에 적임자는 없을 것을 확신합니다!”

박태종은 그런 우시로다를 무심하게 내려다보았다.

‘이 재수 없는 일본산 망종이 제철소를 전심전력으로 짓겠다고 약속하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군. 무려 3년이나 이 자식 때문에 속을 끓여 왔는데.’

자잘한 문제로 트집 잡을 때마다 속수무책으로 당했었다.

제철소를 짓는 데 일본인 기술 고문이 꼭 필요하다는 점을 물고 늘어졌으니까.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속 시원하군.’

박태종은 조금 허탈해졌다.

‘개 목줄이라. 이걸 내 손에 쥐여 준 이 청년에게 고마워하지 않을 수가 없군.’

이 상황을 만들어 낸 태수를 보았다.

저 청년은 우시로다가 뒤에서 이런 짓을 하고 있다는 걸 어찌 알았을까?

박태종이라고 우시로다의 뒷조사를 안 해 봤을까.

우시로다의 명의, 계좌, 행적까지 전부 깨끗했다.

그러다 박태종은 피식 웃었다.

‘아무렴 어떤가. 우시로다가 제철소 건설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니 최고의 결과다. 이걸로 충분하지.’

박태종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박 사장님, 한 번만 살려 주십시오! 이대로라면 나와 가족들이 죽습니다!”

“하는 거 봐서 생각해 보겠소.”

“고, 고맙습니다. 박 사장님.”

됐다! 살았다!

우시로다는 반색했다.

몸을 돌려 이 자리에서 달아나려던 우시로다는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아니, 잠깐. 이게 다 저 건방진 놈 때문이렷다? 내 이대로는 못 간다.’

돌연 도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무척 억울한 표정으로 태수를 가리켰다.

“박 사장님, 그나저나 저 건방진 놈은 어쨌든 출입 허가 없이 보안 지역에 드나든 것 아닙니까?”

끝까지 태수를 물고 늘어지려는 심보였다.

박태종은 딱 잘라 대답했다.

“출입 허가 났소.”

“아니, 언제요?”

“방금.”

“······.”

우시로다는 이를 악물었다.

태수는 얄밉게도 어깨를 으쓱한다.

저 면상을 한 대 후려갈기고 싶은 우시로다였지만 이 상황에서 박태종이 저쪽 편을 드는 이상 방법이 없다.

“내가 여기 사장이고, 보안 책임자요. 불만 있소?”

“아, 아닙니다.”

우시로다는 풀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전 이만······.”

“이만 일본으로 튀려고?”

“아닙니다! 사고 현장을 확인한 후에 고효율로 공사를 재개할 방법! 그걸 찾으러 가 보는 겁니다!”

꽁지 빠지게 달아나는 우시로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포항 철강 직원들.

그동안 우시로다에게 얼마나 들들 볶였던지 속이 다 시원했다.

직원들은 몰래 박수를 보냈다.

태수에 대한 호감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박태종 역시 다르지 않았다.

‘3년간 골머리를 썩이던 문제가 한 방에 해결됐구나.’

그뿐만이 아니다.

‘목줄을 내 손에 쥐여 주고, 내 체면을 살려 줬고, 저 일본산 망종의 자발적인 협조를 이끌어 냈다. 결국 제철소의 완공 시일을 앞당기는 공을 세웠어.’

처음에는 간첩이라도 되는 것처럼 태수를 노려봤던 박태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태수를 향해 호감이 듬뿍 묻어나는 눈으로 본다.

“이보게, 방금 출입 허가도 났겠다, 사장실에 가서 차나 한잔 같이하지 않겠소?”

“좋죠.”

옆에서 죽은 듯이 있던 홀쭉이가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차 대신 술은 안 됩니까?”

“하하하하!”

박태종은 참지 못하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 * *

포항 철강 사장실.

박태종은 안전모를 벗어 책상 위에 놓았다.

박태종은 태수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포항 철강의 박태종이요.”

“강태수입니다.”

“받으시오.”

박태종이 태수에게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전 되돌려 드릴 명함이 아직 없습니다.”

“그거야 뭐, 말로 하면 되지. 무슨 회사의 어떤 직책이시오?”

“지금 관할청의 허가를 기다리는 상태입니다. 광산 및 광물 무역 전문 회사와 건설 회사를 운영해 볼 계획입니다. 이름은 태양 광물과 태양 건설이고요.”

박태종은 깜짝 놀랐다.

“두 가지를 한꺼번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광산이 주력이오, 건설이 주력이오?”

“현재로서는 아무래도 광산이 주가 될 겁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건설을 주력으로 끌고 갈 예정입니다.”

“젊은 사람이 꽤 바쁘게 사는군. 앉으시오.”

박태종의 권유에 태수와 홀쭉이는 소파에 앉았다.

“위스키도 괜찮소?”

“격하게 환영하죠!”

홀쭉이가 두 팔 벌려 환영했다.

박태종은 태수를 유심히 살펴본다.

“정말 그 일본산 망종의 사돈의 팔촌, 학연과 지연까지 죄다 조사했소? 일본 전역을 샅샅이 뒤져 가며?”

“설마요. 저 그렇게 한가한 사람 아닙니다.”

심드렁하게 말하는 태수.

박태종은 의아했다.

설렁설렁 조사해서는 그리 탈탈 털어 내지 못했을 텐데?

“그럼 어떻게 그놈의 구린 짓을 캐냈소? 제법 깨끗하게 숨긴 모양이던데.”

“구린내 나는 일은 애초에 깨끗하게 숨길 수가 없습니다.”

“내가 뒷조사를 안 해 봤겠소?”

“뭐, 그럼 대충 이쪽 뒷조사가 좀 더 구렸다고 칩시다.”

한수에게 미리 일러 포주와 건달, 건설 자재 납품업체와 인력소를 중심으로 구린 짓을 캐오라고 시켰다.

조사할 인물, 구체적 범위와 방향성을 특정하고 캐오라 시킨 일이라 가능했다.

청일 그룹 총괄 비서실장으로 있으면서 중요 인물과 관련된 전부를 꿰고 있었던 태수가 아닌가.

박태종의 정보 역시 달달 외다시피 한 태수다.

원래 저 일본인은 태수가 아니었더라도 조만간 박태종에게 걸려 같은 이유로 혼쭐이 난다.

박태종에게 약점이 잡힌 후 제철소 건설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덕분에 완공 시일을 예정보다 무려 한 달이나 앞당기게 됐다는 건 유명한 일화였다.

단지 태수는 그걸 조금 앞당겼을 뿐이었다.

박태종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 가기 위해서.

“대체 무슨 수를 쓴 거요?”

하지만 이 사실을 모르는 박태종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태수는 대충 얼버무렸다.

“이쪽 방면에 정통한 사람 있어 도움을 받았죠.”

“과연, 전문가의 솜씨였구려.”

“그럼요.”

박태종은 더는 물어볼 수 없어 입맛을 다셨다.

“그 전문가, 다음에 내게도 소개해 주시오. 국가를 위해 큰일을 할 인재요.”

“정확히 보셨습니다.”

“풉-!”

옆에서 위스키를 마시던 홀쭉이가 뿜었다.

‘아까는 뒷조사, 한수한테 시켰다면서?’

태수는 홀쭉이에게 찡긋 윙크한다.

짜증이 올라와 술이 확 깰 판이라 홀쭉이는 술을 좀 더 많이 들이부었다.

박태종은 우시로다를 떠올리며 흐뭇하게 웃었다.

“여하튼 최고의 선물이었소.”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군요.”

“이곳 종합 제철소는 국가와 국민의 염원이 담긴 곳이오. 그대 덕분에 제철소 건설 일정이 앞당겨질 것 같소. 내 그대의 공을 절대 잊지 않겠소.”

“좋습니다.”

태수는 씩 웃었다.

빈말로라도 괜찮다고 한마디 할 법한데, 절대로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그대는 김 과장의 생명도 구했지. 이거 갚아야 할 빚이 만만치 않군.”

박태종이 진지한 눈빛으로 물었다.

“내가 무엇으로 보답하면 되겠소?”

박태종이 미끼를 물었다!

그것도 덥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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