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산 찍고 건설 재벌-13화 (13/230)

13. 포항 철강 박태종(2)

박태종은 태수를 노려보았다.

“거래 제안? 선약을 잡았단 소리는 못 들었소만. 정식으로 출입 허가는 밟은 거요?”

“애석하게도 지금은 상황이 여의치 않으실 테니 용무 마치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박태종은 고개를 저었다.

“거래에 관해서는 달리 생각하지 않겠소. 그냥 돌아가시오.”

빡빡하기는.

태수는 품속에서 종이 뭉치를 꺼냈다.

그리고 맨 뒷장 뒷면에 <태양 광산 강태수>라고 적는다.

태수는 종이 뭉치를 박태종의 손에 쥐여 주었다.

“이게 뭐요?”

“선물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개 목줄이라고나 할까요?”

종이로 된 개 목줄이 있을 리가.

박태종은 눈썹을 구겼다.

“뇌물인가?”

“지금 제가 청탁할 일이 있겠습니까? 아직 고로(高爐)도 다 지어지지 않은 판에.”

태수는 공사 중인 제철소를 가리켰다.

박태종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런 태수를 보았다.

“듣자 하니 일본산 망종이 골치를 썩인다기에.”

“으음.”

“직접 휘두르기 귀찮으시면 중앙정보국에 전해 주면 될 겁니다. 그럼 이만.”

태수는 인사하고 등을 돌렸다.

마침 씩씩대며 이쪽으로 향하는 일본인과 딱 마주쳤다.

그는 태수와 홀쭉이를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눈을 가늘게 뜬다.

“하! 아주 가관이 따로 없네! 여기가 어디라고 잡상인이 들락거려! 박 사장, 현장을 이따위로 관리할 거야?”

일본 억양이 강한, 그럼에도 무척 유창한 한국말.

아니, 반말이었다.

“이봐, 거기 잡상인. 가긴 어딜 가? 거기 서 있어! 이건 중요한 외교상의 문제니까.”

일본인이 태수를 억지로 잡아 세웠다.

“외교상 문제?”

“당연하지! 보아하니 허가도 받지 않고 이곳에 들어온 모양인데, 내가 직접 일본 기술 유출의 위험성을 인지했으니까 당연히 한국 정부에 똑똑히 따져야 하지 않겠어?”

태수가 돌아보자 박태종은 난감한 얼굴이었다.

안 그래도 트집을 못 잡아서 안달인 사람인데, 마침 꼬투리 제대로 잡힌 거다.

현장 사고도 그렇고, 보안을 뚫고 들어온 이자도 그렇고.

“잡상인, 너는 거기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어!”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박 사장과 얘기하는 도중에 도망가기라도 하면 여기 박 사장이 그 책임을 전부 져야 할 테니까!”

홀쭉이가 불안한 눈으로 태수에게 눈짓한다.

‘좆된 것 같은데, 냅다 튈까?’

태수는 고개를 저었다.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듯 자신만만한 얼굴이었다.

“박 사장, 대체 인부들 관리를 어떻게 했기에 현장에서 이렇게 큰 사고가 나는 거야? 이제 완공 기한이 1년도 채 남지 않았단 사실을 잊었어?”

일본 정부는 박태종에게 기술 전수를 약속했다.

그에 따라 ‘신일본 철강’이란 일본 거대 철강 산업체에서 제철소 건설 기술 고문을 파견해 주었다.

이 일본인이 바로 파견된 기술 고문, 우시로다 타케시[後田武至].

“일을 하다 보면 사고가 날 수도 있소. 다행히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소.”

“박 사장, 기껏 다 지어 놓은 공장이 폭삭 무너지게 생겼는데 순조롭다? 웃기고 있네! 난 당신 같은 안전불감증 작자와는 일 못해! 일본으로 돌아가겠어!”

우시로다는 간만에 제대로 잡은 큰 꼬투리를 이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 나라 대단한 권력자의 최측근, 그가 박태종이다.

박태종의 바람은 단 하나다.

바로 제철소를 최고로 지어내는 것.

이미 선진국은 모두 제철소 기술 전수를 거절했다.

일본만 제외하고.

그러니 박태종은 다른 선택지가 없다.

제철소를 짓기 위해선 울며 겨자 먹기로 우시로다의 말을 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내가 언제 이런 권력자를 마음껏 훈계할 수 있겠어, 흐흐흐.’

치명적인 약점을 틀어잡은 이상 우시로다는 무서울 게 없었다.

이것저것 트집 잡아 박태종을 사사건건 갈구는 게 너무나 즐거웠다.

‘제철소를 두고 일본과 한국, 두 국가 간의 합의가 있었으니 박 사장은 꼼짝 못해. 매달린 샌드백은 마음껏 두들기면 되는 거야. 흐흐흐.’

우시로다는 지금 상황이 마음에 쏙 들었다.

“오늘 사고만 봐도 그래! 일본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허술함이야. 당신, 근본부터 글러 먹었어!”

“근본이 글러 먹은 건 너겠지. 아주 가관이구만?”

“뭐?”

태수의 말에 우시로다가 고개를 홱 돌렸다.

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보니 당신이었군. 일본산 망종.”

“넌 뭐야?”

“잡상인. 당신이 아까 날 그렇게 불렀잖아?”

“······.”

우시로다는 태수를 노려보았다.

“너, 내가 누군지 알고서 건방지게 입을 놀리는 거야?”

“내가 그것까지 알아야 하나?”

태수는 귀를 휘적휘적 팠다.

우시로다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잘 들어라. 내가 바로 신일본 철강의 기술 고문이자 대일본 정부에서 한국에 친히 파견한-”

“잘 알고 계셨군. 그렇다면 똑바로 처신하셨어야지. 누가 남의 나라 와서 개 같이 굴래?”

태수의 박력에 우시로다는 움찔했다.

태수는 박태종에게 눈짓했다.

들고 있는 종이 뭉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박태종은 그제야 제 손에 들린 두툼한 종이 뭉치를 자세히 봤다.

-선물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개 목줄이라고 나 할까요?

-듣자 하니 일본산 망종이 골치를 썩인다기에.

-직접 휘두르기 귀찮으시면 중앙정보국에 전해 주면 될 겁니다.

“그게 뭐야? 나도 좀 봐야겠어.”

우시로다가 박태종에게 손을 내밀었다.

태수가 건넨 종이 뭉치를 내놓으라는 뜻이었다.

“박 사장, 뭐해? 이 건방진 놈을 썩 쫓지 않고. 아니다, 일본 기술을 외부로 유출하려 했으니-”

“이봐, 일본인. 당신이 지금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제철소에 매여 있는 것은 당신 역시 마찬가지야.”

종이 뭉치를 보던 박태종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태수는 종이 뭉치와 제 목을 번갈아 가리켰다.

‘매여 있어? 목줄? 개 목줄?’

박태종은 뭔가를 깨달은 듯한 모습이었다.

‘이제야 눈치채셨군. 개 목줄은 주인이 직접 잡아당겨야 하는 법이지.’

태수는 씩 웃었다.

직접 이 일본인을 짓뭉갤 수 있지만 굳이 박태종에게 양보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당신이 일본에 돌아가면? 또 다른 기술 고문을 파견하겠지. 일본 정부가 약속한 일인데.”

“뭐라고?”

“기술 고문이 일본에 당신 한 사람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우시로다는 화가 단단히 났다.

“좋아! 내가 이대로 일본으로 돌아가면 일본 정부가 다시 기술 고문을 파견할지 두고 보자! 이번 일도 간신히 성사된 것을! 내가 당장 짐 싸고 만다!”

우시로다는 그러면서 박태종을 힐끔 봤다.

‘이쯤 했으면 박태종이 나설 때가 되었는데.’

어째서인지 박태종은 종이 뭉치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박 사장! 이 건방진 놈을 앞세워 나를 핍박하는 거야? 한국 정부에 정식으로 항의하겠어. 물론 일본 기술 외부 유출 건도 함께!”

박태종이 편을 들어주지 않자 우시로다는 더 이를 갈았다.

“좋아, 박 사장. 어디 나 없이 제철소를 완공할 수 있나 두고 보자!”

그때였다.

박태종이 종이 뭉치를 꺼내 띄엄띄엄 읽기 시작했다.

“자재를 납품받는 대가로 뒷돈을 받아 챙겼고, 인력소를 협박해 커미션을 받아먹고.”

“뭐? 가,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일본 정부를 사칭해서 취업 알선 브로커 짓에, 허! 밀항과 밀수에도 손을 댔소?”

“나, 난 모르는 일이야.”

“당신 친척에 지인까지 전부 들러붙어서 야무지게도 빨아먹었군. 돈세탁에 특별히 공을 들이셨구려.”

“박 사장,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우시로다의 안색이 갑자기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박태종의 눈썹도 꿈틀댔다.

우시로다를 노려보는 박태종의 눈빛이 칼날처럼 매서웠다.

박태종이 참지 못하고 종이 뭉치를 우시로다의 얼굴에 집어 던졌다.

맞고 튕긴 종이 뭉치가 사방으로 펄럭펄럭 흩날렸다.

툭.

우시로다는 구두 위에 내려앉은 종이를 한 장 주워 읽었다.

그가 숨기고 싶었던 일들이 줄줄이 적혀 있었다.

그런 종이가 대체 몇 장인지.

‘이, 이걸 어떻게! 분명히 뒤탈 없이 깨끗하게 숨기고 감췄는데?’

우시로다의 눈이 마구 떨렸다.

“당신 명의만 깨끗하면 빠져나갈 수 있을 줄 알았소? 당신의 사돈에 팔촌, 지인에 학연까지 전부 뒤졌다는군.”

“도, 도대체 누가!”

“시끄럽소! 난 이것을 중앙정보국에 넘길 거요.”

“주, 중앙정보국? 하지만 난 일본 정부를 대표해-”

“외교적인 문제도 알아서 잘 처리하겠지.”

“박 사장!”

이제껏 하는 공사마다 트집 잡으며 훈수질에 갑질에, 끝없이 사람들을 무시하고 괴롭히며 공사를 지연시켰던 우시로다다.

그런 우시로다의 약점이 박태종에게 넘어갔다.

‘박태종을 짓밟는 데 재미 붙여서 잊고 있었어! 박태종은 대단한 권력자다. 우리 일본 정부와 끈이 상당한. 이 사실이 일본에 알려지면?’

일본에 남은 가족들이 성치 못할 거다.

아울러 자신마저도.

우시로다의 등허리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일본 정부가 알아서는 안 된다. 제철소 일이 끝난 뒤라면 몰라도 지금은 안 돼.’

제철소 일이 끝난 후라면 개인 범죄로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제철소를 짓기 위해 파견된 자가, 범죄를 일으켜 국가 간에 협의된 제철소 공사가 지연되었다는 이유로, 그 책임을 일본 정부에 묻는다면?

‘일본의 체면을 구겼다며 보복당할 거야. 내 인생은 끝이야.’

겁에 질린 우시로다가 손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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