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산 찍고 건설 재벌-10화 (10/230)

10. 사채업자에게 차용증을 받아내는 자(3)

잔뜩 굳은 표정의 한수가 다가왔다.

“괜찮아? 어떻게 된 거야? 안에서 무슨 일- 아니다. 멀쩡하면 됐어.”

그래도 형이라고 걱정은 되었던 모양이다.

태수는 동생의 어깨를 두드렸다.

“집에 가자. 통금 시간 늦겠다.”

“그 정보란 건······.”

“쉿, 알면 다친다. 얼른 와, 송곳.”

“······.”

태수가 먼저 성큼성큼 걸어 대문을 나선다.

한수도 뒤따라 몸을 돌렸다.

“어이, 또라이.”

돌담에 기대고 있던 송진구가 눈을 부라렸다.

“감히 내 이름을 팔아서 여기까지 찾아와?”

“그러게. 그냥 장말동 이름을 대고 찾아올 걸 그랬나?”

으득.

“또라이, 너 오늘 운 좋은 줄 알아라. 다시 만나면 넌 내 손에 뒈진다.”

“어르신이 손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을 텐데?”

송진구가 눈에 띄게 움찔한다.

“너 이 건방진 새끼, 밤길 조심해라.”

“앞으로 엄청 바빠질 텐데. 그럼 수고.”

태수는 송진구를 지나쳐 밖으로 나왔다.

얼마나 걸었을까.

정보를 팔았다는데 돈 가방은커녕 돈 봉투조차 없다.

한수는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역시 다른 투자자를 찾아야겠지? 누굴 찾아가지?”

“무슨 투자자를 또 찾아? 2천만 원으로는 모자라?”

“땡전 한 푼 못 빌렸잖아.”

“하긴, 내가 땡전 한 푼 ‘안’ 빌리긴 했지.”

태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한수는 기가 찼다.

“그걸 지금 자랑이라고······.”

“자, 약속한 대로 돈 문제 해결했다.”

팔랑.

한수의 눈앞에 차용증이 나타났다.

-금액 이천만 원.

-채권자 강태수.

-채무자 장말동

한수는 태수의 손에서 차용증을 낚아채어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다.

읽어 내려갈 때마다 눈은 점점 더 커진다.

그래도 못 믿겠다.

“진짜로 사채업자한테 차용증을 받아 냈어?”

“형만 믿으라니까.”

“그것도 무려 2천만 원이나?”

“어때? 이제 광산 문제는 전부 해결이지? 이제 떼돈 벌 일만 남았다.”

한수는 차용증에서 눈을 떼질 못했다.

무려 2천만 원짜리 차용증이다.

심지어 채무자는 대한민국 사채업의 큰손, 장말동이다.

장말동 이름 석 자 옆에 붉은 도장까지 꾹 찍혀 있는 게 무척 비현실적이었다.

눈 비비고 다시 봐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기가 찬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일이 벌어졌어.”

“한수야, 남을 굳이 이해할 필요는 없다. 결과만 봐라. 그거면 충분해.”

“결과? 이 차용증?”

한수는 허탈하게 웃었다.

“진짜로 사채업자한테서 차용증을 받아 내다니, 너도 참.”

“갑자기 형이 멋있어 보이지?”

“너도 참 또라이다 싶다.”

“형님한테 또라이가 뭐냐? 약속은 지켜라. 형님, 그리고 존댓말.”

“윽!”

태수가 얄밉게도 씩 웃는다.

“한수야, 두고 봐라. 이번엔 사채업자에게 차용증 들이밀고 수금하는 모습도 보게 될 테니까.”

안 그래도 오춘식에게 차용증 들이밀고 광산 권리증을 가져오는 태수의 모습을 본 후였다.

자연스레 장말동에게 수금하는 제 형의 모습을 상상하고만 한수.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한수는 곧 표정을 굳혔다.

“조심해. 사채업자에게 수금하려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야산에 묻힐 수도 있으니까.”

“형님, 존댓말.”

“네가, 아니, 형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사채업자는 훨씬 지독해-요. 집요하고-요.”

“푸흡-! 말, 말투가 왜 이래?”

한수의 요상한 존댓말에 태수가 뿜었다.

한수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래도 몸을 홱 돌리고서 예의 그 도도한 목소리로 끝까지 할 말은 다 하는 놈이다.

“강태- 아니, 형님, 너 그러다 진짜 죽어-요.”

“그것도 두고 보면 알 일이고.”

진짜로 열흘 후면 사채업계가 발칵 뒤집힐 테니까.

“하- 강- 형님, 좀 적당히 하자-요.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다 긴장돼-요.”

“푸하하! 그 존댓말 좀 어떻게 안 되냐?”

“노, 노력 중이다-요.”

사나이 체면 다 구겼다.

한수의 표정도 체면만큼이나 구겨졌다.

“됐다. 다 잘될 테니까 넌 존댓말이나 걱정해라.”

“젠장.”

킬킬킬.

태수의 웃음소리에 한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진짜 내기에서 이겨 버리다니. 세상에 사채업자에게 차용증을 받아 내는 또라이 새끼가 어디 있어? 게다가 수금까지 한다고? 대단하다. 나로서는 상상 불가다, 정말.’

해결사 노릇 한다고 많은 사람을 봤었지만 그중에서도 태수는 단연 최고다.

‘잠깐, 대단해? 상상 불가? 단연 최고? 내가 본 사람 중에서 강태수가 최고라고?’

한수는 스스로 한 생각에 둔기를 맞은 것처럼 머리가 멍했다.

저만치 성큼성큼 가고 있는 태수의 등이 거대해 보였다.

자신만만한 표정, 쫙 펴진 어깨, 단단한 눈빛.

게다가 상식 밖의 일을 과감하게 해치워 버리는 추진력과 배짱.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형의 본모습을 몰랐다고? 아니, 내가 보려고 하지 않았던 거겠지. 바보처럼.’

자존심 강하고, 능력이 뛰어난 한수로서는 충격이었다.

‘그럼 형은 왜 망나니처럼 굴었지?’

만일 자신이 형이었다면?

동생이 버릇없이 구는 걸 두고 볼 수 있었을까?

‘설마 나 때문에? 아직도 그 옛날 일을 마음에 두고서?’

한수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형님.”

“어?”

태수가 뒤돌아본다.

한수는 주먹을 꽉 쥐고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절 시장에 버리고 갔던 날, 그날 이후 형은 망나니처럼 굴었습니다. 사람이 완전히 변해 버린 것처럼.”

7살 때 일이었다.

그때 한수는 열흘 가까이 밖을 떠돌았다.

운 좋게 다시 찾았을 땐 마음을 꽉 닫아 버리고, 제 형을 원수 보듯 했었다.

가족 모두에게 가장 아픈 기억이었다.

태수도 표정을 굳혔다.

“미안해. 일부러 그랬던 건 아니었어. 돈 냄새에 홀려서 그것만 쫓아갔었지. 네 손을 놓친 줄도 몰랐었어.”

“아뇨, 그건 이제 상관없습니다. 전 형님이 일부러 망나니처럼 군 이유가 궁금합니다.”

돈 냄새에 홀려 동생을 잃어버렸다.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동생.

그건 어린 태수에게 너무도 큰 충격이었다.

‘어릴 때는 돈 냄새가 나면 참지 못했지. 그것 때문에 자주 문제가 벌어졌었고. 하지만 아무도 믿어 주지 않았어.’

누구도 돈 냄새를 맡지 못하고, 태수를 거짓말쟁이 취급했었다.

결국 태수는 스스로 자신이 미쳤다고 결론 냈다.

모든 일의 원흉은 바로 돈 냄새.

태수는 이후 일부러 돈 냄새 맡는 능력을 봉인하다시피 했었다.

그렇게 망나니처럼 되는대로 막살았다.

도박 같은 시시한 일에나 장난삼아 능력을 쓰면서.

한청호가 태수의 재능을 알아보고, 제대로 키워 주기 전까지.

“한수야, 난 돈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또 그 소립니까? 어릴 때 입버릇처럼 자주 하던 말이었죠. 꽤 오랫동안 그런 말은 안 하더니. 또-”

“그런데 자꾸 그 돈 냄새에 홀려서 정신줄을 놓게 되더라고. 물론 다른 사람들은 못 믿을 말이지. 뭐? 돈 되는 일에서 냄새가 난다고? 내가 들어도 웃긴 소리긴 하다.”

“······.”

“난 내가 미친 줄 알았다. 그래서 이 능력을 오랫동안 외면하고 살았지. 망나니처럼, 되는대로.”

한수도 기억났다.

어린 시절, 태수는 돈 냄새가 난다고 말했지만 누구도 믿어 주지 않았다.

결국 태수는 어느 날부터 그런 말을 꺼내지 않게 되었다.

“돈 냄새가 난다는 건 어떤 겁니까?”

처음이었다.

한수가 태수의 능력을 진지하게 생각해 준 건.

전생에서도 한수는 끝까지 태수의 능력을 믿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형을 인정하지도 않았고.

태수는 얼떨떨한 한편 조금 기쁘기도 했다.

“음, 특별한 느낌이지. 무당이 앞날을 예지하는 것과 비슷해. 돈이 되는 일에 돈 냄새가 나니까.”

“그것참, 어처구니가 없는 능력이군요.”

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형님의 본래 모습이십니까?”

“그래.”

“왜 갑자기 마음을 바꾸신 겁니까?”

“우리 식구, 행복하게 살자고.”

한수는 광산에서 태수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부모님 더는 고생시키지 말자. 어머니 우시더라.

-고작 10만 원 때문에 벌어진 촌극,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형님만 믿어.

의문이 풀렸다.

한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인정해야겠네. 아니, 인정할 수밖에 없군.’

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겠습니다.”

한수는 성큼성큼 걸어 저만치 가 버린다.

한수의 귓바퀴가 새빨갰다.

태수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존댓말 하랬다고 진짜 다나까까지 붙이다니. 으, 닭살이네. 도저히 못 들어 주겠다.”

태수는 한수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냥 형으로 끝내자. 편하게, 다른 형제들처럼.”

“내기까지 했잖습니까.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똥폼 잡긴. 존댓말 취소다!”

한수도 피식 웃었다.

“나한테 존댓말 들을 기회 흔치 않은데, 앞으로 후회해도 난 몰라.”

“형 소리는 꼭 붙여라.”

“알았어, 형. 얼른 가자. 버스 끊길라.”

한수가 먼저 달려간다.

이번엔 귓바퀴뿐만 아니라 목덜미까지 빨갰다.

동생의 뒤를 따라가며 크게 외쳤다.

“같이 가자, 한수야!”

태수보고 느리다며 자신과 같이 뛰려면 뜀박질 연습을 하라던 한수였다.

그런 한수가 걷는 속도를 늦췄다.

형과 함께 걷기 위해서.

“어? 갑자기 전력질주하기 있냐?”

“착각이야.”

착각이 아닌 것 같은데?

지금 너 거의 우사인 볼트급으로 달리고 있잖아!

파바바바밧.

더 멀리 뛰기 위한 일보 후퇴였다.

* * *

태수와 한수가 돌아간 후 장말동은 비상령을 선포했다.

“다들 흩어져서 사채 전부 회수해 와!”

“예!”

“기간은 열흘! 예외는 없다! 재벌이고 나발이고, 정치권까지 싹 다 털어 와!”

“예!”

“흩어져!”

“예!”

명동 사채업자들이 총동원된 사채 회수 작전이 개시되었다.

대한민국 전역이 발칵 뒤집힐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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