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산 찍고 건설 재벌-7화 (7/230)

7. 몰라브덴 광산, 그리고 형제(3)

태수는 덤덤히 말했다.

“최단 기간에 가능한 많은 몰리브덴을 캔다. 비싼 값에 잘 판다. 이것이 목표다.”

한수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태수는 확신하고 있었다.

“아마 몰리브덴 광산은 오래 운영하지 못할 거야.”

“왜?”

“몰리브덴은 국가 전략 광물이라 관리도 엄격할 테고, 자칫 국가에 빼앗길 위험도 있거든.”

실제로 오춘식은 정부에 몰리브덴 광산을 빼앗겼다.

청일 그룹에 들어간 태수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명목상으론 국가 전략 광물이란 명분으로 빼앗았다.

오춘식의 몰리브덴 광산은 국영 기업인 대운 중석에 흡수됐다.

“따라서 광산으로 벌어들인 목돈을 이용, 다른 주력 산업을 개발할 계획이다. 바로 건설 사업. 우리는 강남에 아파트를 지을 거다.”

“강남을 개발한다고?”

“그래.”

“네가 이런 생각을?”

강한수의 눈초리가 미미하게 떨린다.

놀람, 당황, 의아함, 감탄, 탄복.

자세히 보지 않으면 여전히 티도 안 날 정도다.

태수가 씩 웃는다.

“어디 생각만이겠어?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전부 현실로 만들어 줄 테니까.”

형의 자신만만한 눈빛에 한수도 눈이 조금 커졌다.

“한수야, 우리 제대로 해 보자.”

태수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한수는 태수가 내민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한수야, 우리 부모님 더는 고생시키지 말자. 어머니 우시더라.”

“진심이냐?”

“고작 10만 원 때문에 벌어진 이런 촌극,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빌어먹을. 그렇게 말하면 반칙이지.”

한수는 자세를 고쳤다.

차가운 표정과 달리 눈빛은 용암보다 더 뜨겁게 끓어오른다.

‘찬바람 쌩쌩 부는 녀석이 이렇게 불타오르기도 하는구나.’

태수는 피식 웃었다.

한수도 그 손을 마주 잡았다.

“좋아, 지금 그 말 잊지 마. 부모님 걸고 한 다짐이야.”

“물론이지.”

오랜만이다.

형과 이렇게 악수한 것은.

내내 차가운 표정을 짓던 한수는 피식 웃고 말았다.

기분이 제법 괜찮다.

“거참, 뾰족하기는. 누가 송곳 아니랄까 봐.”

“그러니까 왜 날 계속 송곳이라고 부르는 거야?”

“쉿, 묻지 마. 알면 다쳐.”

“······.”

진짜야.

옛날엔 남산으로 끌려가는 거, 다들 무서워서 쉬쉬했다고.

“어쭈, 강한수. 너 어째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는 것 같은데?”

“착각이야.”

착각이 아닌 것 같은데?

부들부들.

어느새 두 형제는 웃으면서 이를 악물고 악수 비스무레한 팔씨름을 하고 있었다.

* * *

“할 일이 많아. 보다시피 조건은 최악이고.”

태수는 오래된 시설을 가리켰다.

이곳에 버려진 시설들은 전부 30년도 더 지난 것들이다.

“우리는 낙후된 시설, 열악한 환경, 넉넉지 않은 급여, 실적 없는 광산 개발에 젊은 광산주까지. 최악의 조건들을 두루 갖췄어.”

“그러니까 팔자. 팔면 속 편해져.”

“그래도 한 번 부딪쳐 봐야지. 몰리브덴이 나왔는데. 이 형님이 돈방석에 앉혀 준다니까. 형님 한 번 믿어 봐.”

“똥고집은.”

태수와 한수가 머리를 맞대고 광산 운영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다.

“한수야, 회사를 만들어겠다.”

“광물 수출 전문 무역 회사?”

“또 있어. 광부가 지낼 숙소 짓는다고 건설 업자에게 의뢰하려니 아까워.”

“그럼 만드는 김에 건설 회사도 같이 설립하던가.”

“좋다, 회사 설립에 관한 제반 사항은 내가 맡는다.”

광산과 건설.

두 가지를 한꺼번에 운영한다.

‘현재 우리의 주력 사업은 광산이지만 미래는 건설을 주력으로 삼을 생각이니까.’

청일 그룹을 재벌의 반열로 올라서게 한 대치동 청일 아파트!

그걸 먼저 지어서 팔 거다.

몰리브덴을 캐서 벌어들인 돈으로!

태수는 의욕을 불태웠다.

할 수 있다.

반드시 해낼 것이다.

“회사 이름은 태양으로 하자. 태양 상사, 태양 건설, 태양 광산.”

“무슨 뜻이라도 있어?”

“무당이 흙 만지는 사업을 하면 태양 같은 인물이 될 거래.”

“······.”

“이름 짓기 귀찮으니까 전부 태양으로 통일한다. 괜찮지?”

“······.”

한수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깟 이름이야 뭐가 중요하리.

‘한수야, 실은 네 아이의 태명이 태양이었다.’

한수의 아이는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한수 부부가 죽을 때 엄마 뱃속에서 같이 죽었으니까.

‘언제고 꼭 네 아이의 이름을 불러 주고 싶었다. 전생에서는 삼촌이 되어서 한 번도 제대로 불러 주지 못했거든.’

태수는 털어놓을 수 없는 이름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몰리브덴 제련 시설 문제, 광부들 모집과 급여 문제, 운반 설비부터 중장비까지.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니 순식간에 가닥이 잡혔다.

쿵짝이 잘도 맞는다.

뭐 하나 막힘이 없다.

이쯤 되자 신이 날 지경이다.

‘강태수랑 같이 일하는 게 신난다니.’

스스로 생각해 봐도 어처구니가 없다.

하지만 이성과 달리 가슴 깊이 꽉 들어차는 뿌듯한 충족감이 그걸 증명한다.

“한수야, 고생했다.”

“고작 1시간도 안 돼서 기본 계획을 거의 다 세웠다고? 말도 안 돼.”

말을 하면 할수록 놀랍다.

“너 설마 일부러 능력을 감추고 있었던 거야?”

“내가 그런 멍청한 짓을 왜 해?”

“아니면 내가 여태 몰라본 건가?”

“잘 아네. 여태 몰라보긴 몰라봤지. 이 형님 멋진 거 너만 몰라.”

“······.”

한수는 한숨을 쉬었다.

‘너무 노련해. 어떻게 일을 이렇게 쉽게 처리하는 거지? 마치 이 바닥에서 구르고 구른 베테랑처럼.’

그럴 리가 없다는 건 누구보다 한집에 사는 한수가 잘 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강태수가 이렇게 유능할 리가 없잖아.’

한수는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 말을 삼켰다.

대신 정색했다.

“제일 중요한 문제가 남았어. 이것만 해결하면 광산과 관련된 제반 사항은 모두 충족할 수 있어.”

“돈 문제지.”

“그래, 최소 2천만 원이 필요해.”

“으음.”

이게 모든 문제의 핵심이다.

2020년 대비 1/30 정도인 물가 수준을 감안해 봐도 꽤 큰 금액이다.

사업 자금이 없으면 이 모든 계획은 전부 무용지물이다.

“광산은 특히 초기 사업 자금이 무지막지하게 들어가니까.”

“돈 벌자고 하는 일인데 돈이 없어서 돈을 못 벌다니.”

“모든 일이 다 그렇지.”

광산을 보면서 형제는 잠시 침묵했다.

“한수야, 이번엔 너도 솔직하게 말해 봐라. 돈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생각이었어?”

“투자받을 생각이었지.”

“누구한테?”

“누구한테든. 할 수 있는 데까진 해 봐야지.”

돈 문제에서만큼은 약한 모습을 보이는 한수였다.

‘의외네. 저놈은 항상 자신만만할 줄 알았는데.’

태수는 그런 한수를 대견한 눈으로 바라봤다.

‘저 나이에 저 정도만 해 줘도 훌륭하지. 이제 보니까 우리 한수, 진짜 제법인데?’

태수가 그런 생각을 하는 줄도 모르고 한수는 한숨을 쉬었다.

결국 돈, 돈, 돈.

돈이 문제다.

한수는 한숨을 쉬었다.

“돈이 없으니 눈앞에 몰리브덴 광산이 있어도 캘 수가 없네.”

“한수야, 그 반대를 생각해. 돈 문제만 해결하면 몰리브덴 광산으로 떼돈을 번다는 거지.”

태수는 자신만만했다.

“강태수, 우리 처지에 은행에서 대출받는 건 불가능해. 지인 중에 돈 빌려줄 만한 사람도 없고.”

“그렇지.”

“담보로 잡힐 만한 부동산도 없어.”

“알지. 마침 또 집이 철거되기 직전이라.”

이 시대의 은행은 문턱이 턱없이 높아서 대출이 무척 어려웠다.

아니, 2020년이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재산 없고, 제대로 된 직장이 없는 처지로선 목돈을 빌리긴 힘들다.

은행은 포기하는 게 맞다.

태수는 가만히 품속에 있는 광산 권리증을 만지작거렸다.

한수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방법이 없어. 내 능력 밖이야. 그냥 광산을 팔자.”

짝.

태수는 박수를 쳤다.

“어쩔 수 없지. 그럼 돈 문제는 내가 맡는다. 끝.”

“뭐?”

“돈 문제, 내가 해결한다고. 그것만 해결하면 몰리브덴 광산 문제 끝이잖아. 안 그래?”

“지금 뭐라는 거야? 네가 돈 문제를 무슨 수로······.”

태수는 한수의 어깨에 손을 턱 올렸다.

“이 형님 한번 믿어 봐.”

“어어? 어째 헤드락을 건 것 같은데? 크흑!”

“착각이다.”

착각이 아닌 것 같은데?

진짜 숨이 막히고 있으니까!

이번에도 형제는 어깨동무를 가장한 헤드락 때문에 엎치락뒤치락했다.

* * *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에 오는 동안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한수는 속이 타들어 갔다.

‘천하태평이야. 이 와중에 코까지 골며 자다니.’

대체 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큰소리 떵떵 쳤을까.

그 계획을 모르니 더 불안하다.

마침내 서울에 도착하자 도저히 참을 수 없던 한수가 침묵을 깼다.

“진짜 어쩔 셈이야?”

“어쩌긴 뭘 어째? 돈 문제 해결해야지.”

“도박, 포주, 유괴, 납치, 살인, 강도, 사기, 위조. 이 중에서 어떤 거냐?”

“······.”

황당했다.

“왜 머리가 전부 범죄 쪽이야? 형님 믿는 게 그리도 어렵냐?”

“당장 돈 나올 구멍이 없잖아. 큰소리칠 일이 아닌데.”

“가자.”

“어딜 가?”

“돈 문제 해결하러.”

“지금? 당장?”

태수가 성큼성큼 앞서가자 강한수가 따라붙었다.

태수가 주변을 두리번댄다.

“택시!”

한수가 한숨을 쉬며 태수의 손을 붙잡았다.

“택시비 비싸. 버스 아직 다닌다.”

“···어, 그러지 뭐.”

잔소리는.

* * *

1970년대 명동은 서울에서도 손꼽히게 발달한 곳 중 하나였다.

단적인 예로, 서울 다른 지역과 다르게 높은 빌딩이 즐비하다.

도로 위엔 차들이 몰렸고, 거리를 따라 늘어선 가게엔 사람들이 붐볐다.

그런 땅값 비싼 명동에도 으리으리한 대저택이 존재했다.

성벽처럼 길게 쌓은 돌담이며 우뚝 솟은 철대문이며.

재력을 한껏 과시한 대저택이었다.

“대단한데? 듣던 것보다 훨씬 으리으리해.”

태수가 나직이 감탄했다.

한수는 대저택을 보자 희망이 생겼다.

“이 정도 대저택을 가진 자가 우리에게 투자해 줄까?”

“흠.”

“너, 이런 부자를 어쩌다 알게 된 거야?”

“글쎄, 실은 나도 듣기만 해서.”

현재 우리나라 최고 부자라는데, 보름 후 한순간에 쫄딱 망해 버려서.

덕분에 쟁쟁한 위명은 많이 들었지만 두 눈으로 본 적은 없다.

탕탕탕.

“계세요?”

태수가 크게 외쳤다.

잠시 후 누군가가 나왔다.

“뉘시오?”

“강태수라 합니다. 송진구를 찾아왔습니다.”

“송진구? 아, 잠시만 기다리시오.”

한수는 눈썹을 찡그렸다.

“송진구? 어디서 들었던 이름인데.”

“듣기만 했겠어? 만나기도 했지.”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는 얼굴이 있었다.

스스로를 명동 하이에나 송진구라 소개했던 인물이.

한수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명동 하이에나 송진구? 춘식이 삼촌 집에 있었던?”

“맞아.”

“사채업자를 찾아와서 뭐하겠다는 거야?”

“사채업자를 찾아왔으면 용건은 하나뿐이잖아. 돈.”

“뭐?”

“사채도 돈이다.”

한수는 경악했다.

“너 제정신이야? 사채 연이율이 자그마치 50%라고.”

“다른 방법 있어?”

태수가 씁쓸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 발로 사채업자 집에 올 줄은 몰랐는데. 어쩔 수 없지.”

한수는 다급하게 말했다.

“사채는 쓰지 말자. 내가 서울 전역을 뒤져 투자자를 물색할게. 서울에서 안 되면 전국을 뒤질게.”

“얼마나 걸릴까? 1년? 2년? 너무 늦어.”

태수는 한수의 어깨에 손을 턱 올렸다.

이번에도 자신만만하게 씩 웃었다.

“형만 믿어. 내가 무슨 개소리를 하든 넌 그냥 지켜보기나 해.”

“강태수!”

“내가 오늘 사채업자한테서 차용증 꼭 받아 내고 만다.”

“뭐?”

한수는 황당했다.

지금 들은 개소리가 제대로 된 개소리인지 의문이 갈 만큼.

‘이 또라이 새끼가 진짜.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반대로 말한 거 아냐?

돈 빌리러 온 사람이 사채업자한테 어떻게 차용증을 받아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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