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산 찍고 건설 재벌-5화 (5/230)

5. 몰리브덴 광산, 그리고 형제(1)

태수가 떠나고, 송진구는 턱을 슬슬 쓰다듬었다.

“짝귀야.”

“네, 형님.”

“아까 그놈 뒤 좀 캐 봐라.”

“그 고집불통 또라이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놈. 나가리란 걸 알면서도 기어이 그 광산을 고집했단 말이지.”

강태수,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놈이었다.

“그놈이 광산을 고른 이유가 궁금해졌어.”

“별거 있겠습니까? 고작 10만 원짜리 폐광산인데요.”

“광산으로 뭘 하는지 한 번 알아봐. 토 달지 말고.”

“예, 형님.”

송진구는 강태수와 짝귀가 떠난 쪽으로 눈을 돌렸다.

‘희한하게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은 놈이란 말이지.’

사채업자의 본능을 마구 자극하는 놈.

송진구는 강태수와 끈끈하게 얽힌 운명을 어렴풋이 느꼈다.

* * *

집에 가는 동안 세 남자 모두 아무 말이 없었다.

‘태수가 이렇게 박력 있는 녀석이었나.’

아버지는 새삼스럽게 큰아들을 다시 보았다.

‘등이 참 넓기도 했지.’

사채업자 앞에서 자신을 막아서던 든든한 등.

험악한 분위기에도 광산 권리증을 챙기던 야무진 등.

춘식이 앞에서는 칼같이 돌리던 단호한 등.

‘그러고 보니 뭔가 변한 것 같은데.’

어째서인지 태수가 평소보다 자세는 반듯하고, 자신감이 넘치고, 눈빛 또한 매섭다.

무엇보다 사채업자들과 대치해 조금도 밀리지 않았던 것.

평소 어수룩한 큰아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오늘따라 좀 의젓해 보이는데. 착각은 아니겠지?’

태수에게 묻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말도 많았지만 차마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따지고 보면 10만 원을 무턱대고 빌려준 자신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으니까.

집에 도착하자 어머니는 버선발로 반겼다.

“우리 태수 왔구나!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다. 어디 다친 데는 없고?”

“네. 그리고 차용증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싹 다 해결하고 왔습니다.

“역시 우리 큰아들이야! 해장국 끓여 놨다. 어서 앉아 먹으렴.”

태수는 잽싸게 앉은뱅이 철제 밥상 앞에 앉았다.

‘이게 얼마 만에 받아 보는 밥상이야? 집밥이라니. 기억도 안 난다.’

집밥을 마음 편히 먹어 본 적이 언제던가.

더구나 어머니가 직접 차려 주신 밥상이라니.

‘벌써 40년도 더 된 옛날 일이 되어 버릴 줄은, 그땐 몰랐지.’

부모님이 불과 몇 년 만에 그리 돌아가실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젊은 시절엔 엄마가 차려 준 밥보다 나가서 사 먹는 음식이 더 맛있었다.

80이 되고, 90이 되어도 엄마가 차려 주는 밥상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한수는 시장하지 않니?”

멀거니 서 있던 강한수가 헛기침한다.

“어머니, 여기 아버지도 오셨습니다.”

“누구시니? 관상을 보아하니 가족들은 길바닥에 나앉든 말든 나 몰라라 하면서, 친구 사정은 딱하다고 전 재산을 갖다 바치는 천하의 몹쓸 놈처럼 생기셨구나.”

“여, 여보······.”

어머니가 왕소금을 한 움큼 집었다가 멈칫한다.

소금값이 비싸서.

“에라이, 가난한 년은 소금도 마음대로 못 뿌려. 아이고, 내 팔자야.”

“여보······.”

“어머, 여보라뇨? 어따 대고 그런 몹쓸 말을 하신대요? 전 모르는 사람이라지 않나요, 흥.”

야멸차게 등 돌리는 어머니에게선 찬바람이 쌩쌩 분다.

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들들을 향해선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었다.

“태수야, 뜨끈할 때 한 술 뜨자. 제때 해장하지 않으면 몸이 축나는 법이야. 속은 쓰리지 않던? 머리는 안 아프고?”

“괜찮습니다.”

“어서 먹자. 아침도 안 먹은 애가 이 시간까지 굶으면 어쩌니.”

큰아들을 보는 어머니의 눈에선 꿀이 뚝뚝 떨어진다.

아들 수저 위에 깍두기까지 얹어 주신다.

태수는 멍하니 제 수저 위에 올린 깍두기를 보았다.

‘이런 날이 다시 올 줄이야.’

어머니가 수저 위에 반찬이라도 올려 주려 하실 때면 질색팔색을 하곤 했던 태수였다.

우적우적.

오늘은 어머니표 해장국 한 수저, 깍두기 한 알에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맛있습니다.”

“그래, 우리 태수 많이 먹어라.”

어머니는 자애롭게 웃으며 태수의 수저에 깍두기를 한 알 더 올려 주셨다.

이게 뭐라고 눈물이 날 만큼 행복했다.

“태수야, 갔던 일은 잘됐니?”

“네.”

“참, 어머니 이거.”

탁.

태수는 광산 권리증을 상 위에 올렸다.

아버지는 한숨을 푹 쉬었다.

채무 변제랍시고 가져온 광산 권리증 때문에 울부짖던 친구를 생각하자 마음이 영 무거웠던 탓이다.

“빌려준 10만 원 대신 이걸 가져왔습니다.”

“이게 뭐니? 혹시 땅문서, 뭐 이런 거니?”

글 모르는 어머니지만 문서 귀한 줄은 알고 눈을 반짝인다.

“광산 권리증입니다. 광산에 한 번 다녀오려고요.”

* * *

태수는 개운하게 씻고 나와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방에 이부자리를 깔고 누우니 천국이 따로 없다.

‘정말 과거로 왔구나. 모든 게 다 옛날 그대로야.’

침대가 아닌 방바닥 생활은 너무 오랜만이라 태수는 자꾸 웃음이 나왔다.

비좁은 판잣집 방도, 창호지를 바른 창문도, 오래된 펌프식 수전과 마당에 있는 작은 수돗가까지.

전부 꿈에서라도 한번 볼까 싶던 그리운 광경이었다.

‘그나저나 정말 광산에 몰리브덴이 있을까?’

오춘식이 몰리브덴 광산으로 떼돈을 벌어 광산 부자가 됐다는 건 알지만 이게 그 몰리브덴 광산인지까진 확신할 수 없다.

‘아냐, 내 능력을 믿자. 그 광산 권리증을 보자마자 돈 냄새가 진동했잖아.’

태수는 눈을 감았다.

‘자동차가 없는 게 아쉽다.’

1970년대 자동차는 부유층의 상징이었다.

80년대나 되어야 ‘마이카(My car)’ 열풍이 불어 중산층에 보급되기 시작한다.

‘몇 대 안 다니는 시외버스 시간에 맞추려니 불편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네. 내일은 새벽에 일어나야겠어.’

서울역 앞 동양 고속 터미널을 이용할 생각이다.

어쩌면 기차를 이용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면 할수록 길바닥에 버리는 시간이 아깝다.

‘KTX나 비행기를 타고 다니면 좋았을 텐데 아직 지하철도 개통하지 않을 시절이니 원.’

어쩔 수 없다.

당장 뚝딱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 이거 오랜만이네.”

전등 스위치를 찾다가 새삼스럽게 전등을 봤다.

전등 줄에 장난감 같은 스위치가 달려 있다.

‘맞아, 옛날엔 이랬어. 전등 줄에 스위치 달려 있고. LED 등 대신 형광등이나 백열전구 쓰고.’

방문이 열리면서 씻고 나온 한수가 들어왔다.

“벌써 자려고?”

“너도 일찍 자라. 내일 새벽에 출발할 거니까.”

한수가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너 오늘 왜 그런 거냐?”

“내가 뭘?”

“춘식이 삼촌.”

“그 새끼, 좀 더 잘근잘근 두들겨 팰 걸 그랬어. 어머니가 반병신 만들지 말랬지 반송장 만들지 말란 소린 안 했는데.”

한수가 나지막하게 웃는다.

“어디서 효자 행세야?”

“오늘부터 효자 노릇 좀 해 볼란다.”

“엄마한테 들었어. 10만 원이나 드렸다며? 10만 원은 어디서 난 거야?”

“틈틈이 모았지.”

“그럴 리가. 너 돈 모으는 꼴을 못 봤는데. 쌀집 월급도 생활비로 쓰라고 대충 던져두고 가잖아.”

“장가갈 밑천이랍시고 좀 모았다.”

한수는 의외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결혼할 생각이었어? 그런데 왜······.”

“10만 원을 왜 드렸냐고? 당장 우리 식구들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잖아. 급한 불부터 꺼야지.”

“그게 아니라-”

“됐어, 이미 끝난 일이야. 운명이었나 보지.”

태수는 피식 웃었다.

한수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잘 알아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태수가 꿈꿨던 결혼은 자연스레 파투났었다.

사채업자한테 쫓기는 마당에 결혼이 제대로 진행될 리 없었다.

태수는 30살이 넘어서 한청호 회장이 소개해 준 여자와 결혼했었다.

‘이번엔 내 스스로 인연을 끊었지만.’

후회는 없다.

과거로 돌아온 마당에 결혼부터 서둘러 하고 싶지도 않고.

한수가 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 왜 갑자기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굴어? 답지 않게.”

“왜? 형이 갑자기 멋있어 보이냐?”

“······.”

한수는 태수를 한참이나 물끄러미 보았다.

감이 유달리 예리한 놈이라 그런지 위화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안기부 송곳, 강한수.’

한수의 별명이었다.

송곳처럼 뾰족하고, 날카로운 감각 때문에.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안기부에서 가장 잘나가는 인재로 손꼽혔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못 뚫는 것 없이 전부 뚫는 수완 때문에.

목표한 상대는 앞뒤 가리지 않고 푹 찌른다는 독심(毒心) 때문에.

한수는 뾰족하고, 예리했다.

확실히 다루기가 쉽지 않은 놈이지만 송곳처럼 한 번 마음을 정하면 구부러지는 법이 없이 충성을 다했다.

‘역시 한때 모든 재벌이 원했던 칼잡이. 확실히 눈빛이 예리한데?’

한수는 말했다.

“평소랑 확실히 달라. 몽둥이질도 그렇고, 사채업자랑 맞서는 것도 그렇고.”

“내 성격, 그리 좋은 편은 아니라서.”

“망나니 성질이 어련할까만 뭐, 좋아.”

어째서인지 한수가 즐겁게 웃는다.

평소처럼 무표정하건만 아주 미세하게 다르다.

“···속 시원하더라.”

“뜬금없이 뭔 소리야?”

태수는 어리둥절했다.

한수는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벅벅 닦으며 말했다.

“오춘식 그 새끼, 네가 안 팼으면 내가 팼다.”

“아.”

“사채업자 앞에서 쫄지 않은 것도 뭐, 봐줄 만했어.”

“그놈들만 보면 나도 모르게 눈 돌아가서.”

5년 동안 밤낮으로 사채업자들에게 시달리면서 하나 배운 게 뭔지 아는가?

그 새끼들 앞에서 약한 모습 보이면 더 잔인하게 질척댄다는 거다.

그때 한수가 작게 중얼거렸다.

“아무튼······ 강태수답지 않아서 썩 괜찮았어.”

“음?”

“잠이나 자.”

딸깍.

한수가 전등을 껐다.

“켁! 강한수, 너 지금 나 일부러 밟았지?”

“착각이야.”

착각이 아닌 것 같은데?

지금 담뱃불 비벼 끄듯이 마구 즈려 밟고 있는데?

쿠당탕탕!

“야, 강태수, 너 지금 일부러 내 발 걸었지?”

“착각이다.”

착각이 아닌 것 같은데?

어둡지만 이 정도 파워는 분명 회오리차긴데?

어둠 속에서 엎치락 뒤치락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 *

1972년 7월 21일 오전 7시.

강원도 영월군 상동 폐광산.

“여기다.”

“초행길도 잘 뚫네. 역시 못 뚫는 게 없다는 송곳님이셔.”

“송곳? 뜬금없이 왜 날더러 송곳이래?”

“그런 게 있다.”

방치된 폐광산은 오래된 흉가 이상으로 을씨년스러웠다.

주변에 잡풀이 무성하고, 쓰다 버린 도구들이 나뒹군다.

광산 입구는 나무판자로 막혔다.

그리고 그 판자 가운데에는 시뻘건 페인트로 경고가 적혀 있었다.

-出入禁止(출입금지).

한수는 한숨을 쉬었다.

“이건 답 없어 보인다.”

광부의 표정도 썩 좋지 못했다.

한수가 근처 광산을 샅샅이 뒤져서 데려온 광부였다.

광물 탐색과 판별에 특출나 광맥 개발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일인자.

이 바닥에선 무척 유명한 자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입이 무겁다는 작자였다.

“이보시오, 이 정도로 오래 방치된 광산이라면 그만 포기하는 게 좋을 것 같소.”

“그 정도로 안 좋습니까?”

“오죽하면 쪽발이 새끼들도 버리고 간 광산이겠소. 돈이 될 곳이라면 그 독한 놈들이 이리 놔뒀을까.”

“뭐, 맞는 말씀입니다.”

전문가의 말은 보증 수표와 같다.

심지어 비전문가인 그들이 봐도 답이 안 나오는 폐물.

‘그러니까 15년이 넘도록 도박판에서 돌고 돌던 광산 권리증이겠지.’

한수가 태수를 돌아봤다.

“전문가 의견도 같잖아. 10만 원짜리 광산이야. 별 게 있다면 그리 헐값에 팔리지도 않았겠지.”

하지만 태수는 혼자 태평하게 콧노래를 흥얼댄다.

돈 냄새가 여기까지 나는구나, 룰루루.

“한수야, 우리 아직 들어가지도 않았다. 일단 확인부터 해 보고 말하자.”

태수는 광산 입구를 막고 있는 나무판자를 뜯어내기 시작했다.

“넌 그냥 포기할래? 난 들인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들어가 보련다.”

“···좋아.”

한수도 거들어 판자를 떼어 낸다.

“젊은 사람이 왜 이리 고집이 세? 한눈에 봐도 별거 없어 보이오만.”

“일당 선불로 치른 값은 하셔야죠?”

“끙.”

태수 말이 맞는지라 어쩔 수 없이 광부도 동참했다.

쿵.

입구가 드러나자 플래시를 비추며 광부가 앞장선다.

태수와 한수 역시 광부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곳곳에 광물을 캤던 흔적이 남아 있고, 바닥에는 선로가 깔려 있었다.

땅굴은 깊고도 깊었다.

“쪽발이 새끼들이 아주 탈탈 털어먹었소.”

일제 시대에 일본인들이 소유했다가 버려진 지 오랜 폐광산.

채굴 및 운반하는 비용에 비해 매장량이 작아서 버려진 거다.

이 정도는 각오하던 바였다.

“이것저것 싹 다 캐서 별로 남은 게 없는 것 같소.”

“폐광산이 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죠.”

“광산주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소만.”

“광산주가 못할 말도 아니잖습니까. 그게 사실인데.”

“허······.”

상관없다.

돈 냄새가 폴폴 나는 걸 보면 광산 안에 뭔가 있긴 있다.

“좀 더 깊이 들어가죠.”

“이쯤 하지 그러시오. 여기까지 왔는데도 별것 없잖소.”

“일당 선불이었습니다. 못 먹어도 고. 그대로 쭉 앞장서시죠.”

“허······.”

강한수도 이제는 안다.

저놈의 고집은 똥고집이 따로 없다.

사채업자도 못 꺾은 고집을 광부가 꺾을까.

“그냥 가시죠. 실랑이하느라 진 빼느니 끝까지 가서 확인시켜 주는 게 더 빠를 겁니다.”

“끙.”

광부는 어쩔 수 없이 더 깊은 곳으로 진입했다.

‘돈 냄새가 갈수록 짙어진다.’

정신이 몽롱할 정도로 좋은 냄새다.

돈 냄새가 솔솔 나는구나!

태수는 한쪽 벽 앞에 멈춰 서서 킁킁댔다.

“벽을 좀 파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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