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175화 (175/175)

175화. 행복

승호와 얘기를 나누고 시간이 흘렀다.

서아한테 프러포즈하기 전.

JH 그룹을 정리해야 됐다.

일단, 표면적으로는 은퇴한 걸 알릴 시기가 아니었기에 비공식적으로 은퇴하기로 했다.

그래서 모인 JH 그룹 인사들.

“이야, 형님이 은퇴할 줄은 알았는디, 겁나게 빠르네요.”

“회장님이 없는 JH 그룹을 어떻게 이끌어나가야 할지…….”

“회장님 은퇴하면 자주 찾아가도 될까요?”

“최대한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사람들의 각각의 반응이 들려왔다.

비서실장님은 걱정의 말을.

JH 자동차 사장님과 형찬 씨는 자주 찾아가겠단 말을.

재성 씨는 그럴 줄 알았다며 호쾌한 웃음을.

나머지는 열심히 해보겠다는 말을 건넨다.

‘의외네…….’

솔직히 의외였다.

사람들이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은퇴한다고 하면 당황할 줄 알았다.

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 중 당황한 사람은 좀처럼 보기 힘들었고, 대부분이 그럴 줄 알았다는 분위기를 풍겼다.

“다들, 놀라진 않네요?”

“형님의 행동을 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으니까요. 그게 아니더라도 평생 그리 일하면서 단명하지 않을까 싶네요.”

“회장님이 워낙 바쁘게 움직여야죠. 그리고 티가 나기도 했고요. 뭔가 준비하는 사람 같았달까?”

“그 준비하던 건 끝났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회장님은 일 할 때보다 글 쓸 때가 가장 행복해 보이거든요.”

다들, 은퇴한다는 말에 서운할 법도 한데 잘했다며 칭찬의 말을 건네온다.

과거로 돌아와서 한 가지 더 잘했던 점.

주변 사람들을 잘 챙겼다는 거다.

전생의 마지막에 남아있는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지금인 JH 자동차 사장님이 된 이민호 비서실장님.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닌 것 같아 뿌듯해져 왔다.

“다들 힘들 때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오세요. 제 집은 언제나 열려있으니까요.”

“아따, 형님 말 함부로 혀네. 앞으로 그 집은 공동명의라고 생각합시다.”

“지칠 때마다 항상 들르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경영이 힘들 때마다 들러서 조언 좀 받을게요.”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이제는 작품을 쓸 때, 여유롭게 집필할 예정이다.

그러다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하면 소주 한 잔 기울이면서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고.

“그럼 다 같이 달려볼까요?”

“마지막인디, 오늘 죽을 때까지 가보자고요.”

“갑시다!!”

이곳에 모인 이들을 바라보며 달려보자는 말을 건네자, 다들 술잔을 높게 올리며 잔을 부딪쳤다.

* * *

‘내가 괜한 말을 했던 건가?’

서아의 프러포즈를 준비하면서 드는 생각.

저번 송별회 때, 괜히 집에 들르라는 말을 했나 자그마한 후회가 들었다.

설마, 이 정도로 자주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떻게 하루가 멀다 하고, 한 명이 오면 다른 한 명이 오고, 쉴새 없이 집을 들린단 말인가.

오죽하면 하루는 두 명이 동시에 와 같이 술을 먹고, 잠에 들었을 정도다.

이 정도면 간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잘 끝냈네.”

그런 악조건 속에 어렵사리 만든 프러포즈 도구.

오늘은 서아랑 만나서 프러포즈 할 생각이다.

가슴이 떨려온다.

요즘 들어 자주 보는 서아이지만, 프러포즈를 한다는 생각에 연애 초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그게 서아한테서도 느껴졌을까?

일을 끝마치고 만난 서아가 내 행동이 어색하게 느껴졌는지, 무슨 일 있냐고 물어왔다.

“뭐, 별일이 있는 건 아니고…….”

“근데 왜 이렇게 떨어요. 누가 보면 제가 겁주는 줄 알겠어요.”

서아의 말을 듣고, 손을 바라봤다.

확실히 티가 날 정도로 떨고 있었다.

“서아 씨가 좋아서 그런가 봐요.”

“…뭐예요.”

뜬금없는 말에 서아가 부끄러워하는 게 보인다.

그렇게 평상시와 비슷한 데이트를 한 우리는 마지막이나마 추억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곳 기억나요?”

“…당연하죠. 여기서 우리가 연인이 됐잖아요.”

“그때가 좋았는데…….”

“치……. 그럼 지금은 안 좋다는 거예요?”

서아가 장난삼아 삐진 척을 한다.

그 행동 하나하나가 나에게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단순히, 같이 있는 것만으로 만족이라는 감정이 느껴진다.

이런 게 행복인가 보다.

“오랜만에 오리배 탈까요?”

“좋아요. 예전 기억도 날 겸, 재밌을 것 같아요.”

오리배를 타자는 말에 신이 난 서아가 재빨리 올라탔고, 나 역시 그 옆에 앉아 강을 바라봤다.

“이거 한번 읽어 볼래요?”

“우와……. 새로운 작품이에요?”

그리고는 이때 동안 준비했던 책을 꺼내왔다.

내가 가장 행복감을 느끼고,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

글을 쓰는 거다.

그래서 프러포즈는 하나의 책을 만들어 진행하기로 했다.

그 덕분에 오래 걸린 거고.

나에게 책을 받아든 서아가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어 보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천진난만한 표정이 점차 진지하게 변해가더니, 한 글자 한 글자 머릿속에 간직하려는 듯 차분하게 읽는다.

시간이 좀 더 지나.

책은 마지막 장을 남겨두고 있었다.

스륵―

“…….”

“…….”

마지막 장을 넘기자 보석으로 치장된 반지가 보인다.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서아 씨 없이는 못 살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프러포즈를 하고 싶었고, 제가 가장 잘하는 게 무엇인가 생각해봤어요.”

“…….”

“역시, 글을 쓰는 게 가장 잘하는 것 같더라고요. 하루하루 서아 씨와 함께하는 삶을 생각하면서 한 글자 한 글자 최선을 다해서 적었어요.”

“제환 씨…….”

“갑작스럽다는 것도 알고, 멋이 없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가장 의미 있는 프러포즈를 하고 싶었죠.”

프러포즈란 단어에 심하게 흔들리는 서아의 눈동자가 보였다.

“저와 결혼해줄래요?”

“…….”

이전에 고백했던 장소와 같은 곳.

시간 역시 비슷했다.

하지만 서아의 반응만은 달랐다.

그 어느 때보다 환한 미소를 짓는 서아.

“좋아요. 우리 결혼해요.”

환한 미소만큼, 들려온 대답도 아름답게 그지없었다.

“평생 행복하게 해주겠습니다.”

“저도 이 사랑 변하지 않고 평생 이어갈게요.”

미래를 다짐한 우리는 서로를 바라봤고, 점차 우리의 얼굴은 가까워져 갔다.

* * *

‘행복하네…….’

요즘 들어 너무 행복해서 불안하기까지 했다.

이런 삶이 사라지기라도 할까 봐.

그만큼, 하루하루가 행복이란 감정으로 가득했다.

프러포즈를 한 후.

우리는 양가를 찾아가, 인사를 드렸고, 빠른 속도로 결혼까지 마칠 수 있었다.

서아와 나 둘 다 비공식적으로 진행하는 걸 원했고, 서로가 진짜 불러야겠다고 생각한 사람들만 불렀다.

그곳에서 나는 심장이 멎는 줄만 알았다.

평소에도 아름답다고 생각한 서아지만서도 그때 본 서아는 머릿속에 각인 될 정도로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일어났어요?”

“방금 일어났어. 아침 차려줄까?”

“…제가 해도 되는데.”

“아니야, 이런 건 백수가 해야지.”

지금은 작품도 집필하지 않거니와 아무런 일을 하지 않은 상태.

쉴 새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는 서아를 위해 요리 정도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다.

요리해서 나온 음식을 먹고, 서아의 밝은 표정을 보는 게 좋기도 하고 말이다.

“진짜, 못 하는 게 뭐에요? 요리도 잘해. 일도 잘해. 글도 잘 써. 잘생기기까지 해……. 나는 무슨 복이 있어서 오빠랑 결혼할 수 있었을까요?”

“전생에 인연이 이어진 거 아닐까?”

“정말 그런가 봐요. 그러지 않은 이상 이해가 안 가거든요.”

“맛있게 꼭꼭 씹어먹어.”

내 말을 들은 서아가 과장하며 입을 우물거리는 게 보인다.

“자, 됐어요? 자기는 아침밥 먹으라 해도 절대 안 먹으면서…….”

“서아는 안전해야 되니까 그렇지. 배 속에 있는 아이도 생각해야 되고.”

서아와 결혼을 하늘도 축복해줘서일까?

우리는 신혼여행을 떠나고 돌아온 즉시 알 수 있었다.

우리에게 아이가 생겼단 걸.

‘서아 닮았겠지?’

제발 서아를 닮았길 바라며 마지막까지 서아가 밥을 먹는 걸 바라본 나는 출근하는 걸 배웅해주고, 외출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진짜 내 인생만을 생각하기 위해, 전생의 연을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그렇게 외출할 준비를 마치고, 차를 끌고 서울 외곽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한 참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저깄네.’

공사장의 안쪽을 들어가자, 인부들을 관리감독하고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안전모 쓰고 하셔야 됩니다! 안전이 첫째인 거 모릅니까?”

이제는 중소기업 수준으로 떨어진 대현 건설의 사장 정민우였다.

한참을, 일하는 걸 지켜보고 있을 때.

정민우 또한 시선을 느꼈는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나를 발견하고는 못 볼 걸 봤다는 듯 눈이 흔들렸다.

당황하길 잠시.

평정심을 되찾은 정민우가 내 쪽으로 다가와 말을 건넨다.

“웬일이냐. 커피나 한잔하면서 말해라.”

“그래.”

정민우의 안내를 받아 한쪽에 설치된 컨테이너로 향했다.

그곳에는 작은 의자와 책상이 있었고, 자리에 앉자 믹스 커피를 만들어 온다.

“마셔라, 이것만큼 보약이 없다.”

“고맙다.”

정민우가 내어준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뭔가 해탈한 듯한 민우가 더 이상 참지 못했는지, 질문을 건네온다.

“도대체 왜 온 거냐? 이렇게 사는 걸 보고 비웃으려고?”

“설마.”

“뭐……. 비웃어도 상관없다. 대현 그룹이 무너지고 나니까 그동안 얼마나 잘 못 살았던 건지 깨달을 수 있었으니까.”

“원망스럽냐?”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민우에게 물었다.

이런 내가 원망스럽냐고.

“얀마, 당연히 원망스럽지. 근데 지금은 그 이상으로 과거의 내가 쪽팔린다.”

“많이 바뀌었네?”

“바뀌어야지. 그래야 살아남지. 걱정하지 마라. 네 눈에 띄지 않고 열심히 살아보려니까.”

“미안하단 말은 안 할게.”

“그럼 뭐 고맙다고 할 거냐?”

내 말을 듣고 정민우가 웃으며 농담을 건넨다.

피식―

“모르겠다. 앞으로는 네 앞길을 막진 않을게. 개인적인 바람이면 지금 마음가짐을 간직하면 좋겠다.”

“그럴 거다. 그동안 후회도 많이 하고, 깨달은 것도 많다. 막말로 예전이었다면 이렇게 웃으며 커피까지 내어주겠냐? 줘도 얼굴에 줬지.”

“하긴…….”

하긴, 예전이었다면 이렇게 웃으면서 대화도 못 할 거다.

참, 속이 말이 아닐 텐데도 원망의 눈빛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 슬슬 가련다.”

“참 나, 결국은 온 이유도 안 말하고 가네.”

“그냥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더라.”

“잘 봤으면 가라. 그리고 기다려. 다시 대기업으로 만들 테니까.”

“응원한다.”

응원한다는 말을 건넨 나는 집을 나오기 전 챙겨온 물건을 던졌다.

“이거 뭐냐?”

“행운을 가져다주는 거다.”

“이 반지가?”

“믿거나 말거나인데. 정 힘들면 반지를 쥐고, 소원을 빌어봐라. 그것도 아니면 죽기 전에 빌어보거나. 나도 언제 이뤄지는지 몰라.”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가 던진 반지를 받아든 민우가 이상한 눈빛으로 날 쳐다본다.

“믿거나 말거나니까, 알아서 처리해라.”

“…이건 대기업이 되면 그때 돌려줄게. 재밌네. 이런 반지도 받아보고.”

재밌다는 말을 건네며 자신의 검지에 반지를 끼는 정민우.

반지에 색깔을 이전처럼 동 색깔이 아닌, 찬란한 빛을 내는 황금 색깔로 바뀌어있었다.

“다음에 볼 때는 술이나 한잔하자. 건설 쪽에서 일하다 보니까, 소주라는 게 참 재밌더라고.”

“그래. 다음에 보면 술이나 하면서 이야기나 하자. 그리고 그 반지는 꼭 빼지 마라. 날 이렇게 만들어준 행운의 반지니까.”

“이야……. 이거 영광인데? 일단, 정 힘들 때 믿어볼게. 지금은 열심히 살아보련다.”

“그래.”

마지막으로 인사를 건넨 나는 민우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운에 기대는 것보다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말.

그저, 저 작은 반지가 세상을 좀 더 나아지게 만들어주길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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