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174화 (174/175)

174화. 은퇴

많은 사람이 모여 대화를 나누던 저번과 다르게, 이번은 둘이서 만남을 가졌다.

아무래도 공식적인 만남이 아니다 보니, 굳이 다 부를 이유가 없었던 것 같다.

“둘이서 만나니 뭔가 어색합니다. 제가 미국의 대통령과 독대할 줄이야.”

“…그런 사람이 뒤통수를 칩니까?”

“뒤통수라뇨. 처음부터 제 입장은 똑같았습니다. 세계 평화를 위해서 움직인다고.”

“…총을 쥐여주면서 세계 평화를 위해 행동하라 하면 누가 평화롭게 행동합니까. 당연히 그 무기를 쓸 거라고 생각하지.”

내가 어떤 의도로 말했듯, 미국으로선 방금의 비유가 맞았다.

나는 미국한테 총을 쥐여준 거다.

당연히, 미국은 그걸 이용해 다른 나라로부터 위에 서려고 했고.

그걸로 인해, 행복한 상상을 하고 있을 때.

뜬금없이 총을 쥐여준 사람이 자신의 적한테도 총을 쥐여준 거다.

그것도 당장은 같은 총이지만, 나중에는 기관총까지 쥐여줄 가능성을 남겨둔 채로 말이다.

미국으로선 억울할 만도 했었다.

‘어쩔 수 없지.’

퍼틴과 이야기할 때도 느꼈듯, 세상에 모두가 만족할 순 없었다.

아마, 이번 일로 만족할 수 있는 건, 그나마 한국과 나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원하는 바가 뭡니까.”

“늘 말해 왔듯, 선의의 경쟁입니다.”

“지금 하는 행동이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는 겁니까?”

“미국은 한 가지만 지켜주면 됩니다. 무력을 통해 영향력을 늘리는 것 보다 경제를 통해 늘려나가세요.”

미국이 경제적으로 러시아를 압박하면 관여할 생각이 없었다.

그건 현 사회의 당연한 수순이니까.

하지만 무력만큼은 안 됐다.

무력을 이용하는 순간, 전 세계는 쑥대밭이 될 테니까.

들어가는 리스크가 차원이 다르단 말이다.

“어이가 없군요. 저희가 일개 한 기업의 말을 들을 것 같습니까?”

“그럴 리가요.”

“그런데 왜…….”

“JH 그룹이 일개 기업이었다면 말이죠.”

“…….”

이런 말 하기 낯부끄럽지만, 지금 JH 그룹은 경제와도 같았다.

만약, JH 그룹과 척지는 존재가 있다면 미래가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 미국 대통령도 지금처럼 행동하는 거다.

일개 기업이었다면 대화하지 않고, 이렇게 얼굴을 마주할 수도 없었을 거다.

“딱, 한 가지만 물읍시다. 도대체 왜 이렇게 세계를 걱정하는 겁니까? 뭐, 성인군자라도 됩니까?”

“…설마요. 저도 욕심 많은 인간입니다.”

“근데 왜 이렇게 다른 나라까지 신경 쓰는 겁니까?”

“그냥……. 어차피 세계 최고인데, 주변이 시끄러운 것보다 조용한 게 좋잖아요.”

물론, 방금과 같은 이유도 일정 부분 있지만, 완전한 이유는 아니었다.

나 스스로의 양심일 수 있겠지만, 반지가 날 과거로 보내준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걸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들을 수 없으니 나 스스로 판단을 내렸다.

세계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돌려주라고, 과거로 보낸 게 아닌지 하고 말이다.

“너무 서운해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JH 바이오만큼은 미국과 손잡을 테니.”

“러시아가 가만히 지켜보겠습니까?”

“러시아도 미국과 같은 상황입니다. 이미, JH 바이오로 인해 보증을 선 상태입니다. 뭐……. 조금 화나긴 하겠지만, 그것마저 잃는 것 보단 가진 거나마 지키려고 할 겁니다.”

“…러시아 녀석들도 당했군요.”

미국의 대통령이 JH 바이오에 대한 소식을 듣고, 조금은 표정이 나아졌다.

그리고는 이전보다 편안해진 목소리로 말한다.

“이번에 JH 인베스트먼트가 투자한 회사 목록을 봤습니다.”

“괜찮던가요?”

“허……. 놀리는 겁니까? 어쩌면 한국이란 한 나라보다 JH 그룹의 가치가 더 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높게 평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쪽은 좋겠습니다. 이제 사업은 땅 짚고 헤엄치기와도 같으니까. 하지만 지금처럼 독점이 이어지면 불만은 쌓여나갈 겁니다.”

대통령 말이 맞았다.

언제나, 독점은 화를 부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 기업이 독점하는 걸 막아왔던 거고.

“걱정하지 마십쇼. 이제는 늘려나갈 생각이 없으니까.”

“그게 무슨 소립니까?”

“슬슬 은퇴 준비해야죠. 이번 일만 마무리 지으면 기업 일에는 손 떼려고 합니다.”

“…그쪽은 진짜 욕심이란 게 없습니까? 전 세계 경제를 두 손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데, 이걸 포기한단 말입니까?”

남들이 보기엔 안타까울 수 있었다.

당장, 10년도 안 된 시기에 성장한 JH 그룹만 봐도 알 수 있다.

앞으로 몇십 년간 그 성장세가 지속되면 유례없는 기업이 탄생하는 거다.

“별로 욕심이 없습니다.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요.”

“…….”

내 대답에 벙찐 미국의 대통령.

하지만 그에 대해 반박은 하지 못했다.

* * *

‘속은 후련하군…….’

다행히도 미국 대통령과 이야기를 잘 끝냈다.

덕분에 러시아와 미국은 한국의 보증으로 협정을 맺었고, 비밀리에 선의의 경쟁을 펼치기로 했다.

물론, 미국이 영향력을 넓혀나가지 않는 대신에 러시아도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포기한 상태다.

내가 세계 평화에 기여한 걸 그 누구도 알아주진 않았지만, 속이 후련했다.

그동안 나도 모르게 강박을 갖고 있었나 보다.

어떻게든 막아내야 한다는 그런 강박 말이다.

‘이제는 진짜 일을 끝냈네…….’

더 이상 JH 그룹을 이용해서 무언가 하고자 하는 목표가 사라졌다.

코로나도 잘 막고 있는 상태고, 모든 전쟁의 시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도 막은 상태다.

이 이후부터는 나도 모르는 미래가 펼쳐져 있다.

거기까진 준비하기엔 욕심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지금만 해도 만족스러운 상태고.’

JH 그룹은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었다.

더욱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고, 영향력을 올릴 수 있지만, 그래봤자 똑같이 1등 기업이란 말이다.

뭔가 목표를 이뤄서 그런지, 시원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더 이상 사업에 대한 욕심이 사라졌다.

이제는 진짜 작가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그래서 은퇴하겠단 얘기냐?”

“맞습니다. 더 이상 이룰 게 없거든요.”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허튼 소리하지 말라 할 텐데, 제환이 네가 하니 뭐라 할 수가 없구나…….”

“섭섭하세요?”

“예끼, 이놈아. 이 할아비를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는 게냐. 이 정도면 동성 그룹도 충분히 성장했고, JH 그룹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계속 성장해나가겠지. 여기서 무슨 욕심을 부린단 말이냐.”

뭔가, 인생의 한 부분을 마무리 지어서일까?

복잡한 마음이 들어 오랜만에 할아버지를 보러 왔다.

참, 전생 이 시기에는 할아버지가 많이 늙어 보였는데, 이번 생은 좋은 일이 가득해서인지, 정정하기만 했다.

“다른 사람들한텐 말했느냐?”

“이제 서서히 말해야죠.”

“이제는 글에 집중할 거고?”

“네. 「끝없는 전쟁」 2부도 다시 집필하려고요. 아직 풀어나갈 얘기가 많으니까요.”

물론, 곧바로 집필에 들어가겠단 얘기는 아니다.

그 전에 해결해야 될 일이 많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서아한테 프러포즈.

그동안 알게 모르게 걱정하고 있었을 거다.

연인 사이가 꽤나 지났음에도 아무런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정도 이뤄야지…….’

이번에는 행복한 가정도 이루고 싶었다.

조건이 아닌, 사랑으로 이룬 그런 가정 말이다.

그다음은 나와 서아를 닮은 자식들도 보고 싶었다.

“결혼은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

“슬슬 프러포즈해야죠.”

할아버지도 결혼에 대해 궁금했는지 물어왔다.

“이 할아비가 더 늙기 전에 증손주는 빨리 봐야겠구나.”

“욕심이세요. 다른 사람들은 손주로도 만족하는데.”

“허허. 원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걸 모르더냐?”

“그러게요. 솔직히 작가의 꿈이 없었다면 저 역시 만족하지 못하고 JH 그룹을 키웠을 것 같거든요.”

“만족이란 게 참 쉽지 않아. 자신이 원하던 걸 이루면 그 위를 바라보기 마련이지.”

만족스러운 삶이 도대체 뭘까?

오래전부터 고민해 왔던 문제다.

누군가는 10억만 있어도 만족스럽다고 말해 온다.

또 누군가는 돈 없이 행복한 가정만 있어도 만족스럽다는 사람이 존재했다.

만족은 그 사람의 공허함을 채울 때, 비로소 이뤄지는 것 같았다.

‘내 공허함이라…….’

내 공허함은 자신만의 삶이었던 것 같다.

저번 생은 동성 그룹을 이른 나이에 물려받아, 나 자신의 삶이란 게 전혀 없었다.

그렇다가 새로 산 인생.

기업도 내 뜻대로 움직였고, 내가 원하던 작가로서도 성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서아와 연인 사이까지

이 정도면 꽤나 만족스러운 인생인 것 같았다.

다른 누군가가 만족스러운 인생이라고 말해 준 게 아니라, 내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더욱 의미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승호랑 만나서 이야기는 하거라.”

“안 그래도 약속 잡은 상태에요. 먼저 장가간 선배한테 경험을 들어봐야죠.”

“…너무 승호 얘기는 듣지 말거라. 뭐든 자신의 판단이 중요한 거야. 알겠느냐?”

“그럼요.”

승호의 경험을 듣고 싶단 말에 할아버지가 당황하며 내 판단을 믿으라고 한다.

왜 이렇게 당황한 지 모르던 나는 다음 날 승호와 만남을 가지면서 대충은 짐작할 수 있었다.

“결혼한다고?”

“그래야지. 서아도 많이 기다려줬고.”

“…괜찮겠어? 백 번은 생각한 것 맞고? 결혼 안 말린 나를 나중에 용서할 수는 있고?”

“무슨 소리야?”

“…하긴, 결혼은 용기로 하는 거지.”

결혼한다는 나의 말에 승호가 이런저런 걱정을 해왔다.

이해가 안 갔다.

승호의 결혼 생활을 보면 나름 행복해 보이고, 열심히 사는 것처럼 보였는데, 막상 결혼은 반대한다니…….

“인마, 총각일 때 느끼는 거랑 유부남이 되고 느끼는 것은 달라.”

“괜찮아. 서아는 다르거든.”

“…나도 다를 줄 알았어.”

“아니, 진짜 달라.”

장담한다.

서아는 다르다고.

이때까지 나를 배려해준 것과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한 것.

그걸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결혼 생활과 다를 거라고.

“…다시 한번 말하는데, 안 말렸다고 뭐라 하기 없이다?”

“알겠다니까. 됐으니까 술이나 마셔.”

“진짜다? 그리고 결혼 날짜는 미리미리 말해라. 서아 씨 스케쥴도 조정해야 되니까.”

“당연하지.”

승호와 오랜만에 만나 술을 마시던 나는 결혼 생활을 생각하니 빨리 경험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하루에 세 시간만 만나도 행복한 우리가 하루종일 붙어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루종일도 아니다.

365일 얼굴을 보고, 같은 경험을 하며, 추억을 쌓으면 얼마나 행복하겠냔 말이다.

“자식. 표정 보니까 잔뜩 기대하고 있고만?”

“당연한 거 아니냐? 이제는 365일 같이 있을 수 있잖아.”

“풉……. 야, 기다려 봐.”

365일 같이 있을 수 있단 나의 말에 비웃는 승호.

이내, 주머니를 뒤적거려 핸드폰을 꺼내더니 나에게 내민다.

“야, 다시 말 해봐. 이거 녹음한 다음에 평생 들려주게.”

“뭐가 어렵다고……. 서아 씨랑 365일 같이 있을 수 있어서 행복할 것 같다. 됐냐?”

“오케이. 이 마음이 꼭 변치 않길 기도해본다.”

“고맙다.”

“고마워하라고 한 소리는 아니니까, 고마워하진 말고.”

승호의 응원을 받은 나 역시 기도했다.

이 마음이 평생이 지나도 변치 않기를 바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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