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171화 (171/175)

171화. 위험한 초대

미국 군인들의 안내를 받고, 도착한 한 건물.

경비가 삼엄한 걸 보니, 은밀한 대화가 오가는 곳인 것 같다.

내가 하려는 대화도 극비였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고, 들어가니 여러 사람이 나를 반긴다.

미국의 대통령으로 시작해서, 이전에 한 번 봤었던 재무장관인 게일 안드리스.

그리고 국무장관, 상무장관 등등 장관들까지.

모두가 악수를 건네며 통성명을 나눴다.

몇 명과 인사를 나눴는지 모를 정도로 무수한 악수를 나눴을 때.

미국의 대통령이 대화로 넘어가려는 제스쳐를 취했고, 그걸 본 사람들 모두가 커다란 테이블에 앉아, 준비를 했다.

나 역시 마련된 자리에 앉아서 그들이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기 시작했다.

“일단, 박제환 회장님께서 어려운 발걸음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고, 곧이어 다른 사람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이 들려왔다.

“우리는 ‘클리너’가 끝끝내 개발될 거란 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빠른 시기에 개발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해합니다. 저 역시 지금과 같은 시기는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회장님이 생각하기에도 일렀나 보군요. 그래서 회장님께 묻고 싶습니다. ‘클리너’를 온전히 지켜낼 자신이 있는 지 말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저희 미국이 돕고 싶습니다.”

“지킬 자신이라…….”

지킬 자신은 있었다.

JH 그룹이 어디 동네 그룹도 아니고, 이제는 전 세계 사람들이 아는 당당한 글로벌 기업이다.

그런 우리가 아무리 대단한 발명품이라고 한들 지켜낼 자신이 없을까?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단, 다른 점에서는 나 또한 의문을 갖고 있었다.

나는 ‘클리너’를 러시아 압박용으로 사용하려 했다.

그렇게 되는 순간, 내가 상대해야 될 건 기업이 아니라, 한 국가가 된다.

어쩌면 러시아뿐만 아니라, 이해관계가 엮여 있는 다른 국가를 포함해서 말이다.

그걸 순전히 JH 그룹의 힘만으로 이겨낼 수 있을까?

지키는 건 모르겠지만, 이겨내는 건 힘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 대통령의 질문도 그와 같은 거고.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걱정으로 비롯된 말이지, 절대 우리가 어떻게 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내가 곧장 대답을 못 해서일까?

대통령이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 듯 뒷말을 덧붙여 왔다.

“아무래도 저희 의견을 좀 더 명확하게 말씀드려야 결정하는 데 쉬울 것 같군요.”

“좀 더 들으면 편안하게 결정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우선, 회장님이 두 가지 중 한 가지의 답변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회장님은 ‘클리너’의 이득 극대화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이득보다 명성 혹은 평화를 원하십니까.”

“제가 이득을 원한다면 평화를 헤칠 수 있단 말인가요?”

일부러 대통령을 곤란하게 하기 위해 알고 있는 사실을 한 번 더 물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저희 미국은 회장님의 뜻에 최대한 맞춰주겠다는 겁니다.”

“그로써 미국이 얻는 것은요?”

“발 빠른 대처와 그로 인한 영향력입니다. 일을 진행하는 걸 함께 해준다면 미국이 얻는 건 더욱 커지겠지요.”

“제가 얻는 건 혼자 할 때 보다 더 큰 영향력이고요.”

“정답입니다.”

예전에는 핵심 답을 내놓을 때면 사람들이 놀라는 모습을 많이 봐왔었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오히려 대답하지 않으면 이상한 시선을 바라봤고, 그에 대한 대답을 내놓으면 당연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내 이미자가 많이 바뀌었다는 거다.

어리숙한 사업가에서 천재적인 사업가로 말이다.

실제는 전생의 기억을 이용한 거지만, 사업함에 있어 후자가 더 좋은 평가이므로 굳이 정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자, 그럼 답을 줘야 되는데…….’

물음이 들어왔으니 답을 줘야 할 차례.

이곳에 오기 전까지 계속 생각해 왔던 답을 줘야겠다.

“이번만큼은 같이 손잡도록 하죠. 저는 평화를 원합니다.”

“… 손잡는단 말은 저희도 그사이에 낄 수 있겠단 거죠?”

“제가 미국한테 양보할 수 있는 건 JH 중공업 지분 10퍼센트입니다. ‘클리너’의 가치를 생각하면 얼마나 큰 양보를 한 건지 알 수 있을 겁니다.”

“… 10퍼센트라…….”

한 번에 10퍼센트란 결론이 나올지 몰랐을까?

10퍼센트란 말에 사람들이 놀란 게 보였다.

어떻게 보면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수많은 생각 끝에 나온 합리적인 지분이었다.

미국이 내 편이 되어 전 세계를 압박하며, 그렇다고 주인은 미국이 아닌 나라고 말 할 수 있는 지분.

딱 10퍼센트가 적당했다.

“저희가 생각한 선에 근접하는군요.”

“서로 생각이 맞았나 봅니다. 제가 제일 걱정하고 있는 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입니다.”

“‘클리너’라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겁니다.”

“단! 절대 ‘클리너’를 이용해 러시아를 압박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내가 미국에 줄 수 있는 건 영향력이었다.

대신, 그 영향력을 러시아 압박용으로 사용하지 말아야 된다.

안 그래도 커져가는 미국의 영향력 때문에 러시아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거기에서 미국이 더 이상의 확장을 멈추면 충분히 전쟁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니…….

‘클리너’를 미국의 영향력 확장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면 안 된단 말이다.

“무슨 걱정을 하는지 잘 압니다. 저희도 이번에는 욕심을 버리려고 합니다.”

“이 부분은 계약서에 명시돼야 할 겁니다.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군요.”

“물론입니다. 이렇게 힘을 합치게 된 것만으로 기쁠 뿐입니다.”

너무 미국이라고 좋게 생각해서는 안 됐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가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중국은 미국을 바라보는 시선과도 같았다.

한 국가가 선이 아닌, 관계에 따라 선과 악이 뒤바뀐단 말이다.

나 역시 맹목적으로 미국만 밀어줄 생각이 없었다.

만약, 미국이 약속을 어길시.

JH 바이오가 만들 백신을 들고, 러시아를 찾아갈 거다.

‘클리너’를 빼앗은 채 말이다.

어쩌면 이 방법도 전쟁을 막을 수 있는 하나의 선택일지도 모른다.

‘제발…….’

제발, 다른 선택을 하지 않게 미국에서 끝까지 도와줬으면 좋겠다.

* * *

러시아의 한 숲속.

그곳엔 두 남자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냥을 하기 위해 총을 들고 있는 남성에게 보고를 올리는 듯했다.

“각하, 아무래도 JH 그룹이 미국과 손잡은 것 같습니다.”

“…….”

탕―

보고를 들은 남성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찔거리며 발사된 총알은 목표물을 맞추지 못한 채, 빗나가고 말았다.

“확실한 정보야?”

“맞습니다. 방금, 미국 쪽에 심어둔 비밀 요원에 의하면 아마… 한 참 뜨거웠었던 ‘클리너’에 관한 내용으로 짐작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한국한테 못 해준 게 있나?”

“그건 아닙니다. 오히려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기업이 러시아에 많은 투자를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각하로 불리는 남성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째서, 한순간에 한국 기업들이 철수하는 걸까?

도대체 왜 그 많은 손해를 보면서까지 무리하게 척을 지려냔 말이다.

‘아직 전쟁에 대해 짐작하고 있을 리는 없고…….’

이건 말도 안 되는 가정이다.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것.

자신의 최측근조차 공유하지 않은 생각이었다.

이걸, 한참 떨어져 있는 국가인 한국이 알 리가 없지 않은가.

“그로 인한 여파는?”

“전반적인 산업이 겹치다 보니… 아무래도 대비를 해야 될 겁니다.”

“그때 보냈던 경고가 독이 된 건가?”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갑작스러운 행동을 취할 리가 없습니다.”

이전에 한국 대통령한테 보낸 경고.

그게 독이 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군…….”

“…….”

말은 재미있다고 하지만 실상은 하나도 재미없었다.

지금 상황은 최악 중의 최악이다.

만약, 코로나만 터지지 않았어도 차라리 지금 군대를 움직여 갑작스러운 전쟁을 치렀을 거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군인들도 힘겨워하고 있다.

마음대로 쉽사리 움직일 수 없단 말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에 ‘클리너’가 미국 쪽으로 넘어간다고 하니 머리가 아파져 왔다.

차라리, 코로나를 무시하고 전쟁을 일으켜 버릴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안 되겠어. JH 그룹 회장한테 연락해. 얼굴 한번 보자고 전해.”

“… 과연 그가 오겠습니까?”

“오게 만들어.”

“… 그는 미국의 대통령이 오라고 해도 움직이지 않을 인물입니다.”

“그럼 이번에 미국으로 향한 건?”

참…….

자신의 보좌하는 사람이 이렇게 머리가 안 굴러간다고 생각하니 미래가 암담하기만 했다.

지금 상황에서 누가 강압적으로 오라 한단 말인가.

그것도 일개 기업인이 아닌 무려 JH 그룹의 주인이다.

더군다나 문학을 사랑하는 러시아에서 큰 지지를 받는 작가이기도 하단 말이다.

“정중하게 모셔 와. 보증이 필요하면 해달란 거 다 해줘. 정 뭣하면 내 자식들까지 미국으로 보내놓더라도 말이야.”

“… 그렇게까지 하실 이유가 있습니까?”

“자네는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이 안 되나?”

“어려운 상황이긴 하지만… 일개 기업인에게 그 정도로 투자해야 될지는 잘…….”

답답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러시아와 미국의 격차는 멀어져만 가고 있다.

그 원인이 된 인물을 정중하게 초청하라는 건데, 일개 기업인이라고 한다.

이러니까 전쟁을 통해, 싹 갈아엎고 싶은 거다.

이런 머저리와 기득권을 말이다.

“생각할 줄 모르면 시키는 대로 행동이나 해. 자네한테 어려운 거 부탁했어? 해결책을 내오래? 해결은 내가 할 테니까, 시킨 거나 잘하라고!!”

“죄, 죄송합니다. 제가 감히 주제넘은 발언을 했습니다.”

“자네 목이 달려있을 때, 잘 생각해. 떨어지고 나서 생각해봤자 의미 없으니까.”

“네, 각하.”

명령을 들은 부하가 온몸을 떨며 고개를 숙였다.

이내 가보라는 말을 듣고, 천천히 물러서더니 각하라는 남자가 보이지 않자, 재빠르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남성은 한심하단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번에 JH 그룹 회장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면 차라리 전쟁을 일으키는 게 낫겠어…….’

만약,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전쟁을 일으키는 게 나을 거다.

그만큼, 미래가 답이 없으니까.

지금 JH 그룹은 미래 산업에 한 발씩 다 걸치고 있었다.

단순히 JH 중공업과 JH 배터리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JH 그룹의 진짜 무기는 JH 인베스트먼트다.’

JH 인베스트먼트가 투자한 기업들.

하나같이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며 미래 산업을 주도하는 기업들이다.

그런 기업들에 대주주가 JH 인베스트먼트란 말이다.

당장 JH 중공업과 JH 배터리만 해도 상대하기 벅찬데, JH 인베스트먼트가 투자한 기업들까지 합세하면 그야말로 미래를 포기해야 될 정도다.

그는 진짜로 전쟁하고 싶다는 말이 아니었다.

그만큼, 이번 대화를 통해 JH 그룹과의 관계가 돌아서지 못한다면 암울한 미래만이 남았다는 거다.

그걸 잘 알고 있는 그였기에 어떻게든 만나려고 하는 거고.

‘후…. 미국과는 척을 져도 JH 그룹만큼은 안 된다.’

이번 대화.

아무래도 러시아의 명운이 걸려 있는 것 같다.

미래 100년을 좌지우지할 명운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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