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잠자는 사자의 콧털을 건드리다
* * *
코로나가 전 세계로 퍼지고,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전 세계는 코로나의 무서움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코로나로 목숨을 잃었고, 누군가는 코로나로 인해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코로나의 피해를 받지 않은 나라.
오직, 한국밖에 없었다.
‘다행인가?’
한국은 처음부터 철저한 방역 덕분에, 그 후에도 코로나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고, 입국하는 사람 중에 혹여나 바이러스를 갖고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입국 심사에서 다 구별해 낼 수 있었다.
외신은 어째서 한국만이 안전할 수 있는 가로 연신 떠들어 댔고, 그럴수록 대통령의 지지율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
동시에 외신이 말하는 것.
어떻게 JH 그룹이 갖고 있는 마스크를 확보해야 된다는 거다.
원체 많은 마스크를 만들어서인지, 전 세계의 보유량보다 JH 그룹이 더 많았고, 각국에서는 마스크 수출을 해 달라며 외교를 펼치고 있었다.
“뭐라고 합니까?”
“아무래도 미국을 필두로 차례대로 수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득은 챙기셨죠?”
“물론입니다. 해외에서 각 제조업에 필요한 원자재를 제일 먼저 받을 수 있도록 계약했습니다.”
최근 들어 대통령과 너무 자주 연락한 덕분에 우리는 만남을 줄여야 했고, 나 대신에 비서실장님이 대통령을 만나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가져온 대답.
충분히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부족한 반도체.
그리고 각종 원자재까지.
그걸 계약상으로 보장받았다고 하니, JH 그룹은 코로나로 모든 기업이 힘들어할 때, 치고 나갈 수 있게 됐다.
“정부는 뭐라고 하덥니까?”
“뭐라고 할 게 있습니까? 그냥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며 다른 혜택을 들고 왔습니다.”
“어떤 걸 내밀었죠?”
“마스크 수출하는 데에 있어 관세를 메기지 않겠답니다.”
“흠…. 꽤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겠군요.”
“뭐…. 그룹 전체적으로 보면 미비하지만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챙긴 무형적 가치가 작지 않았다.
만약, 우리 그룹에 상장된 회사가 있었다면 연일 상한가 치지 않았을까 싶어질 정도다.
그만큼, 우리 그룹이 이뤄내고 있는 이득도 작지 않고 말이다.
“러시아 분위기는 어떻죠?”
“물론 좋지 않습니다. 코로나로 힘든 와중에 한국 기업이 철수한다고 하니, 아주 이를 갈고 있더군요.”
“더욱더 대비해야겠군요.”
“그래야 될 것 같습니다.”
러시아의 반응을 보니 살짝 겁이 났다.
혹여나, 전생보다 빠르게 철수하는 한국 기업 때문에 나비 효과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아직까지는 전쟁을 멈출 정도의 영향력이 없는 JH 그룹.
그런 만큼, 최대한 러시아한테서 시선을 떼면 안 됐다.
“계속해서 시선을 집중하라고 하세요. 러시아는 지금 무슨 짓을 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안 그래도 지시를 내린 상태입니다. 조그마한 변화가 있더라도 보고 하도록 말이죠.”
“잘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조금만 더 고생하죠. 이번 일만 마무리 지으면 당분간 편히 쉴 수 있을 겁니다.”
“… 꿈만 같은 일이네요.”
그동안 하염없이 달려와서일까?
쉴 수 있다는 말에 비서실장님이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좀 더 지켜보다가, 특이사항이 생기면 보고해주시죠.”
“네, 알겠습니다.”
알겠다는 말과 함께 밖으로 향하는 비서실장님.
이번 일이 끝나면 그에 걸맞은 보상을 해줘야겠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포상을 내리기엔 더욱 많은 고생을 해왔지 않은가.
만약 차별 없이 똑같은 포상을 내리면, 그게 차별임이 틀림없었다.
* * *
전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나 살펴보고 있을 때.
평소와는 다른 보고를 받게 됐다.
“회장님, 저번에 지시하신 자가 키트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생각보다 빠르군요.”
“워낙, 가이드라인을 잘 잡아주신 덕분에 빨랐다고 합니다.”
이전에 JH 바이오에 지시 내린 자가 키트.
그게 벌써 만들어졌나 보다.
아직 코로나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지, 두 달밖에 지나지 않은 거 보면 꽤나 빠른 속도였다.
“정확도는요?”
“90퍼센트까지 끌어올렸습니다. 확진된 사람은 100퍼센트 양성이 나오고, 확진되지 않았는데도 확진으로 뜬 사람은 다른 지병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오차율을 극히 낮지만 말입니다.”
“100퍼센트는 불가능한 거나 다름없으니, 최선의 결과물이겠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애초에 자가 키트로 100퍼센트를 바라지 않았다.
80퍼센트를 기대한 거에 비해 90퍼센트를 이룬 것만 해도 더 나은 결과물이었다.
“JH 바이오에 1,000퍼센트 성과금 내리고, 남은 백신 연구도 최선을 다해주라고 하세요.”
“직원들이 더욱 힘내겠군요. 요즘 고생하는 거 보면 확실히 받을 만한 사람입니다.”
비서실장님도 성과금을 내린 게 옳다고 생각했는지, 공감의 말을 건넸다.
“해당 정보를 정부에 넘겨주도록 하세요. 특허 등록은 당연히 마쳤겠죠?”
“물론입니다. 그럼, 진행하다가 추가사항 보고드리겠습니다.”
자가 키트가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 어느 국가 할 것 없이 그대로 카피할 수 있을 거다.
애초에 원리가 어려운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래서 특허를 등록하는데, 심혈을 기울였고, 안전히 완료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러한 소식을 정부도 알게 됐고, 곧 정부는 국민들에게 자가 키트에 대한 정보를 알릴 수 있었다.
한국은 코로나 청정국가여서일까?
내가 생각하던 것처럼 뜨거운 반응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가 키트가 쓸모없는 게 아니었다.
한국에 없던 반응.
해외에서는 한국의 빈자리를 채워주듯 격렬한 반응이 뒤따르고 있다.
- 도대체 JH 그룹은 뭐 하는 기업이지? 미국의 음모론은 사실인 건가?
- 생각 좀 하고 말해라. 그러다가 JH 그룹이 자가 키트랑 마스크 수출 안 하면 어쩌려고 그러냐?
- 나라 망신이다. JH 그룹은 미국과 같이 계속해서 경고했다. 그걸 무시한 건 우리고. 그런 우리에게 구호 물품을 수출해주는 데 그런 말이 가당키나 하냐?
- 확실한 건, JH 그룹에 외계인이 있다는 거다. 지금까지 성과가 말이 안 되잖아.
오죽하며 해외에서 음모론이 나돌았다.
사실은 JH 그룹이 코로나를 퍼뜨린 게 아니냐고 말이다.
하지만 이때까지 경고했던 게 있어서 반대의견에 파묻혔고, 음모는 곧 찬양으로 바뀌어나갔다.
- 미국이 가장 먼저 필요하다. 압도적으로 넓은 땅. 그에 뒤받치는 인구. 그리고 경제력까지. 자가 키트를 가장 먼저 수출해야 될 나라는 미국이다.
- 무슨 소리냐. 중국의 인구를 생각해라.
- 인구하면 인도도 만만치 않은데?
- 인도는 자가 키트를 소비할 수 있는 경제가 되지 않는다.
종국에는 서로가 다투면서 자신의 국가 먼저 수출해달라는 말을 한다.
‘의미 없는 다툼이지만.’
물론, 별 의미 있는 다툼은 아니었다.
JH 바이오는 곧바로 자가 키트의 원리를 공개했고, 다른 국가에서도 뒤따라 자가 키트를 찍어내기 시작했다.
다른 국가가 자체적으로 물량이 나오기 전까지 수량만 감당하면 됐고, 그 정도 양은 충분했기에 순서 상관없이 전 세계적으로 자가 키트를 수출할 수 있었다.
- 어떻게 된 게 정부보다 국위선양을 더 하냐?
- 사실, 경고도 JH 그룹이 먼저 정부한테 알렸고, 그 뒤에 대통령이 움직인 거임.
- 그렇다고 해도 대통령을 폄하해선 안 되지. 그 말 듣고 강하게 움직일 수 있는 정치인이 몇이나 될까?
- 당장 미국을 봐라. 정부에서 국민들의 자유를 보장하다 이 꼴 났잖아.
결국, 돌고 돌아 반응이 없던 한국에서 다시금 JH 그룹을 찬양했다.
* * *
“이거 참 골치 아프군….”
보좌관의 보고를 받고 있는 정세환 대통령.
그는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분명, 코로나가 시작되고 힘들어하는 다른 나라와 다르게, 한국은 잘 헤쳐 나갔고.
그에 따라 자신의 지지율도 고공행진을 하고 있었다.
코로나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할 때도 마찬가지다.
연속으로 JH 그룹이 성과를 내주었고, 그건 곧 한국의 성과와도 같았다.
그래…….
모든 게 완벽히 잘 흘러가고 있었단 말이다.
“이 자식들은 왜 또 발작인 거야?”
“아무래도 ‘클리너’가 거의 개발됐다는 소식을 듣고,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 경쟁 시대에 그런 걸 딴지 거는 게 맞는 거야?”
“지금 러시아의 상태가 이상하긴 합니다. 더군다나 한국 기업들도 빠지고 있는 마당에 박제환 회장님이 자신들만 뺐다고 불만이 강한 상태라…….”
하루하루 행복을 느끼고 있을 때.
뜬금없이 러시아 외교관에게서 말도 안 되는 요청을 받았다.
글쎄 ‘클리너’ 개발을 3년 뒤로 미루고, 그것도 모자라 상용화를 5년 뒤로 미뤄주라고 한다.
이게 무슨 개똥 같은 소린가.
말이야 좋았다.
‘클리너’가 시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자신들의 입지가 심히 흔들린다고 한다.
막지는 않을 테니, 대비할 때까지만이라도 시간을 달라한다.
언제부터 기업들이 그런 걸 신경 쓰고 개발했단 말인가.
아니, 경쟁사회에서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냔 말이다.
“골치가 아프군……. 그걸 박제환 회장한테 말해서 받아들일 확률은?”
“확신합니다. 0퍼센트입니다.”
“자네도 그렇게 생각했나?”
“이때까지 박제환 회장님의 행동을 따라보면 무조건입니다. 오히려 개발에 박차를 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골치 아팠다.
차라리, 박제환 회장한테 직접 말하든가 왜 자신에게 말하냐 이 말이다.
지들도 말할 용기가 없는 주제에 이 정도면 책임전가이지 않은가.
하지만 대통령은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했다.
러시아에 엿 먹일 수 있고, 자신은 빠질 수 있는 기회.
이걸 그대로 박제환 회장에게 전달하면 알아서 해결해주지 않는가.
‘국제적 관계도 신경 쓸 이유가 없다.’
더군다나 날이 갈수록 확실해지는 러시아의 이상 조짐.
한국 기업이 철수하면서 뭔가 바쁘게 움직이는 걸 포착했고, 곧 전쟁을 준비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일반인들이나 다른 국가는 눈치채지 못할 거다.
아니, 눈치채더라도 설마 하는 생각이 클 테고.
‘설마라고 하기엔 코로나도 이겨냈다.’
한국도 설마 하고 넘어가기엔 이때까지 박제환 회장의 예측이 틀린 적이 없었다.
그 말인즉슨, 이번에도 전쟁일 발발할 거란 얘기다.
이런 마당에 러시아와 국제적 관계를 고려할 여유가 없다고 여긴 대통령은 곧바로 핸드폰을 들어 박제환 회장한테 전화 걸었다.
- 웬일로 직접 전화하신 겁니까. 최대한 접촉을 피하자고 한 것 같은데…….
“저도 그러고 싶은데, 혼자서 해결하지 못 할 일이 생겼습니다.”
- 대통령님이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라……. 일단 들어보기라도 하죠.
“이번에 러시아 외교관에게서 말도 안 되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최대한 러시아를 나쁜 위치로 만들며 관련 요청사항을 전하자, 핸드폰 너머로 침묵이 느껴졌다.
사실, 거짓말 한 건 단 하나도 없었다.
단지, 살짝의 과장을 보태서 말한 것뿐.
이어지는 침묵에 대통령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번 일, 박제환 회장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라고.
- 재밌군요. 그렇지 않아도 이틀 전에 JH 중공업으로부터 재밌는 소식을 들었는데 말이죠.
“그 말은…….”
- 러시아 압박을 좀 더 앞당겨야겠군요. 조금의 시간을 주려 했더니, 먼저 선제공격하네요. 이걸 맞고만 있을 순 없죠.
“… 암, 그렇고 말고요.”
됐다.
박제환 회장이 말한 재밌는 소식.
아무래도 ‘클리너’의 개발이 마무리됐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