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확신, 각오
시간이 흘러 무대로 입장할 때가 다가왔다.
설레는 마음 반, 걱정 마음 반으로 무대에 입장한 나는 그 전의 감정을 모두 잊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나를 발견한 사람들의 함성은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사이에 보이는 내 작품의 캐릭터들.
아마, 코스프레를 한 것 같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런 자리를 만든 게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정신을 차린 나는 곧바로 무대 중앙에 있는 마이크 쪽으로 다가갔고,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박제환 작가라고 합니다.”
또 한 번 사람들의 함성이 들려온다.
와아악!!
시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은 함성.
이번 행사에 사회자를 맡은 분이 난감함을 느꼈는지, 직접 나서서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사람들은 지금 열광하고 있었다.
신기했다.
아이돌이 아닌 작가가 이 정도의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게.
“역시 박제환 작가님의 인기가 보통이 아니네요. 여러분들이 조금만 침착해주셔야, 박제환 작가님에게 많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능청스러운 사회자의 진행에 사람들은 함성을 멈추고, 시선을 집중했다.
“자, 모든 행사에 앞서. 박제환 작가님께서 여러분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합니다. 같이 들어보시죠.”
원래는 형식상 감사의 인사를 전하려고 했다.
마음이 바뀌었다.
이건 형식상이 아닌 가슴으로 우러나오는…….
한 마디로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 그대로를 팬분들께 전해주고 싶었다.
“일단, 모든 말에 앞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에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하자, 또 한 번 함성이 들려왔고, 곧 함성은 멎었다.
“제가 이 자리에 올 수 있던 건, 다 팬들의 관심 덕분입니다. 만약, 아무도 읽어주지 않고, 자기만족으로 글을 썼다면 결코 이런 작품들도 머릿속에 존재할 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겁니다.”
한 치의 가식 없는 진실이었다.
만약, 과거로 돌아와 첫 번째 작품이 관심을 못 받았다면 어떻게 될까?
돈이야 많이 벌 수 있었을 것 같다.
단, 작가로서의 꿈은 그대로 포기해야 됐을 거다.
사람들 앞에 서서 그때의 기억을 떠오르니, 참 다행이란 생각과 함께 또 한 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제가 기업인으로 이윤을 가장 먼저가 아닌 상생과 이윤을 동시에 추구한 건, 그런 감사한 마음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물론, JH 그룹 또한 팬분들의 많은 도움이 있어 성공할 수 있던 거죠.”
또 한 번 감사를 전한 나는 작품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리고 「끝없는 전쟁」이 런칭되면서 사람들이 다투고 있단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저에게 등장인물의 비중을 높여달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 역시 등장인물이 어떤 행동을 할지, 무슨 일이 발생할지 전혀 모릅니다. 그러니, 모두가 한마음으로 등장인물을 응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작품 이야기 다음으로는 진심 어린 경고를 건네고 싶었다.
나를 응원해 준 팬분들이 좀 더 나은 세상에 살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솔직한 말로 나는 상관없었다.
어쨌거나, 대한민국이 어려워진들 재벌들에겐 큰 의미가 없었으니까.
그러나 서민들은 달랐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제일 큰 체감을 할 수 있는 게 서민들이었다.
그러니, 말 하고 싶다.
자신들의 미래는 직접 쟁취하라고.
“이 자리에 안 맞을 수 있지만, 여러분들에게 경고 같은 도움을 구하려고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성장하는 것 같지만, 장래가 밝지 않습니다. 은연중에 드러나고 있는 혐오감, 남녀 갈등, 세대 갈등 등등 갈등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끝없는 전쟁」에서 다룰 예정이니, 모두 소설이라고 넘기지 마시고, 한 번 주의 깊게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너무 뜬금없는 말이어서일까?
사회자만 당황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당황한 게 보인다.
이내, 누군가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박수를 건네왔고, 한두 명의 박수가 홀에 모여있는 전체 사람들의 박수로 바뀌어나갔다.
그 후로도 행사는 사회자의 진행에 맞춰 차근차근 진행됐고, 작가로서 처음으로 사람들을 마주해,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이제, 미국으로 떠날 거냐?”
“그래야지. 한국 일정은 끝났으니까.”
“요즘 시끄러운 것 같더라. 무슨 전쟁 얘기인 것 같던데. 아는 거 있냐?”
“… 있긴 하지. 걱정하지 마라. 내가 잘 해볼 테니까.”
“어떻게 된 게, 청와대랑 기업 총수들이 모여서 회의했단 것 보다, 제환이 네 한 마디가 더 안심되냐.”
한국에서 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떠나기 전.
승호가 배웅을 나와 있었다.
“그리고 이번 한국에서 일정. 뭔가 감동적이더라.”
“… 그냥 걱정돼서 하는 말이었다.”
“그런 걱정을 다른 사람은 안 하는 게 문제지. 당장 국민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볼 건데, 정작 그들보다 네가 더 걱정하니까…….”
“원래 사람들은 막상 닥치지 않으면 모르거든.”
나야 미래를 경험한 사람이니 심각성을 알고 있을 뿐.
나 역시 전생의 나였다면 지금처럼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을 거다.
“어쨌든 잘 다녀와라.”
“그래.”
“올 때 기념품 사 오고.”
“생각해 보고. 그럼 간다.”
이야기를 마친 나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넨 승호를 뒤로하고, 미국으로 향했다.
* * *
‘확실히 힘들긴 하군.’
해외를 돌아다니며 팬들을 만나는 것.
보람찬 일이긴 하지만 힘든 건 분명했다.
미국에 처음 발을 디딘 날.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나를 반기는 사람들.
사람들 대부분이 등장인물 코스프레를 하고는 내 이름을 외쳤다.
그게 반가워 손을 한 번 흔들어줬을 뿐인데, 공항이 떠나가라 함성이 들려왔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나와 어떻게든 접촉하고 싶어서 달려들기 시작했고.
자칫 잘 못 하다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여긴 경호원분이 재빨리 가드 라인을 만들어 안전한 장소로 안내해줬다.
이게 미국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그다음 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자주 일어났고, 여러 번 겪은 일이라 좀 더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만 남았군.’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중국.
중국에서도 행사를 마치고, 겨우 자유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중국을 방문하는 걸 뺄까 하는 고민도 있었다.
‘미국과 중국 사이가 상상 이상으로 안 좋다.’
지금은 수면 위로 드러나 있지 않지만, 이때부터 미국과 중국은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당연히, 요즘 세계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내가 미국 국적을 갖고 있으니, 중국에서는 위험을 감수하고도 처리할 만한 가능성이 있었다.
‘경호를 부탁했으니까.’
지금 나는 삼중으로 경호 받고 있다.
JH 그룹이 따로 고용한 경호원들.
그리고 미국에서 지원해준 경호원들.
나머지는 한국에서 지원해준 경호원.
이 정도면 나를 노리기 위해서는 최소 한나절은 전쟁할 각오를 해야 됐다.
물론, 그 정도면 전쟁을 일으키더라도 미국과 한국에서 어떻게든 나를 빼낼 거다.
그렇게 약속받았고 말이다.
안전이 보장된 내가 갈 곳은 한 군데밖에 없었다.
위험을 감수하고서도 중국에 온 이유.
조만간 우한에서 시작된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분위기를 살펴야 된다.’
모든 일을 진행하기에 앞서.
필요한 게 두 가지가 있었다.
과연 내가 과거로 돌아온 게 영향을 끼쳐 나비 효과를 일으켰는지에 대한 확인.
그리고 나비 효과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철저하게 진행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말이다.
‘어느 정도 확신이 들고 있고 말이지.’
중국의 행사가 끝내고.
관계자가 나의 행선지를 물었다.
나는 우한에 들러보고 싶다는 말을 꺼냈고, 그 후에 행동이 뭔가 시원찮았다.
되도록 다른 곳으로 안내하려 하고, 뭔가 숨기는 게 있다고 해야 되나?
그렇게 의심을 품고 도착한 우한.
의심이 확신으로 넘어가려 한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눈에 꼽을 정도이고, 알게 모르게 통제된 도시.
그리고 힐끔힐끔 불안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까지.
‘나비 효과가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이상함이 느껴지고, 그 이상함은 나에게 확신을 가져다줬다.
“이제 다른 곳으로 가는 건 어떻습니까, 작가님.”
“사람들이 많이 아파 보입니다.”
“아무래도 감기가 유행하고 있다 보니……. 매년 있는 일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가요? 제가 다가가서 위로의 말이라도 전하면 좋을 텐데…….”
“그러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다 작가님에게 감기가 옮길까 걱정입니다.”
이제는 더 살펴볼 이유가 없을 것 같다.
우한을 돌아다녀 본 결과.
나비 효과는 없다.
그로 인해 내가 해야 될 행동.
한국으로 넘어가, 그동안 준비해왔던 계획의 시작을 JH 그룹 사람들에게 알린다.
그리고…….
바이러스가 발병하면 정부와 협조를 통해, 외국인의 입국을 막는다.
동시에 이때까지 준비했던 마스크를 적절히 분배한다.
사람들은 바이러스의 심각성을 모르기에 마스크를 구매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대통령과 얘기를 나눈 후, 나온 결과.
세금을 이용해 마스크를 배부하는 거다.
물론, 처음에는 반발이 심할 거다.
늘상 있는 연례행사와도 같은 바이러스인데,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떠냐고.
비난은 잠시만 버티면 된다.
잠시의 괴로움은 곧 사람들의 감사함으로 바뀔 거고, 이는 곧 또다시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지금까지 투자했던 바이오산업을 통해, 누구보다 빠르게 백신을 만든다.’
다행인 건, 과거로 돌아오기 전 집필한 소설에서 코로나에 대한 내용도 담겨있었고, 이는 곧 백신을 만들어낸 사람에 대한 조사도 이었다는 거다.
덕분에 해당 연구진들은 전부 스카우트할 수 있었고, 막대한 투자가 들어간 만큼, 머지않은 시기에 백신을 얻을 수 있을 거다.
‘백신은 ’클리너’와 함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때, 영향력을 가져다준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이어지는 중국과 대만의 전쟁.
그 영향력으로 또 한 번 이어지는 중국과 미국의 전쟁까지.
그것들을 모두 막아낼 방법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때, 본보기를 보여야 된다는 거다.
전쟁을 일으킨 나라가 어떠한 최후를 맞이하였는지 말이다.
그에 대한 준비를 이때까지 해와서인지,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러시아의 가장 큰 무기는 천연자원과 에너지.
‘클리너’를 개발하는 순간, 가장 강력한 무기를 무력화할 수 있었다.
무력화하는 동시에 무기가 될 수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경제적 제재까지.’
나와 협업하고 있는 티슬라, 그리고 JH 배터리와 협업한 여러 기업.
이 모든 기업을 설득한다면 러시아도 쉽사리 버티지 못할 거다.
‘군사적 지원도 순식간에 이뤄져야 된다.’
코로나로 세상이 시끄러울 때.
그때 움직일 생각이다.
우크라이나에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게 아닌 폴란드를 통해 지원하는 과정.
지금부터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전쟁의 억제력을 가져와 줄 거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의심하지 말고, 만반의 준비를 해야 됐다.
그래야만 세상이 올바른 길로 향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