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기정사실
충격과도 같은 대통령의 발언이 끝나고.
그 여파가 보통이 아닌 듯, 이곳에 모인 모두가 침묵을 고수했다.
누구 하나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는 거다.
그렇게 몇 분의 정적이 흐르고, 한 둘씩 정신을 차리더니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여기저기서 질문이 들려온다.
“방금 발언을 책임질 수 있는 겁니까?”
“어떠한 근거에서 나온 발언입니까?”
“요즘 같은 시대에 전쟁이 가당키나 하는 말입니까?”
“추가적인 설명 좀 해주시죠. 방금 했던 전쟁이란 단어. 자그마한 단서로 쉽사리 입에 올릴 만한 단어가 아닙니다.”
모두가 증거를 가져오라며 항변하고 있을 때.
박대호 회장만큼은 그렇지 못했다.
대통령이 말 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을 듣고, 가장 먼저 생각난 건 이때까지 봐왔단 제환이의 행동이었다.
만약,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발발하면 어떻게 될까?
자연스럽게 원전에 대한 중요성은 올라가게 된다.
그리고 GL 그룹을 통해 전해 들었던 우크라이나의 마지막 방문.
또 한 중국을 멀리하고, 미국을 가까이하는 행동까지.
모든 행동을 방금 대통령 발언의 힘이 실려지는 정황을 알 수 있었다.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많지 않습니다. 그만큼 전쟁이라는 대참사를 예상하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여러 회장의 질문에 침묵을 고수하던 대통령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저희가 조사한 정황 따위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미국 대통령 역시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 박제환 회장도 마찬가지로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 이 두 사안을 가지고,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대통령의 입에서 박제환 회장이라는 말이 나오자, 이곳에 모인 회장들의 시선이 박대호 회장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박대호 회장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지만, 대통령 입에서 직접적으로 거론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 뒤에도 추가적인 대통령의 설명이 있었고, 간단한 식사를 끝으로 청와대에서의 만남은 끝이 날 수 있었다.
충격을 받은 회장들은 박대호 회장에게 다가가 아는 바가 있냐 물었고, 그에 대한 답을 줄 수 없었던 그는 부정의 말을 건넸다.
다른 회장들도 박대호 회장이 아는 게 없다고 판단 했는지, 각자의 길로 돌아갔고, 남은 건 이 회장과 삼송 그룹의 회장밖에 없었다.
“자네는 방금 얘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박대호 회장은 문득 궁금했다.
삼송 그룹의 회장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말이다.
제환이가 말하길, 앞에 있는 삼송 그룹 회장은 부족한 장남이란 이미지 뒤에 숨어있는 천재라고 했다.
그래서 궁금한 거다.
제환이가 천재라고 판단한 그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지.
“사실, 저도 조금씩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 전쟁을 말인가?”
“맞습니다. 저는 시기가 문제일 뿐, 언젠가 터질 전쟁이라 여기고 있었죠.”
“…….”
“단지, 시기를 좀 더 뒤로 보고 있었는데, 대통령의 반응을 보니 머지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 5년 이내에 전쟁이 발발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죠.”
천재란 것들은 일반인과 생각이 다른 건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무리 제환이를 인정하고, 믿고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전쟁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설마라는 생각이 먼저였다.
지금은 21세기.
전 세계가 폭력을 반대하고, 모두가 힘을 합치기 위해 노력하는 데 무슨 전쟁이란 말인가.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그 순간부터 러시아는 서방 국가에 경제 제재를 심하게 받게 될 거다.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전쟁을 일으킬 이유가 없단 말이다.
‘경고까진 인정이다.’
그래…….
경고까진 인정할 수 있다.
미국이 더 이상 나토 회원국을 늘리지 않겠다고 약속한 거와 다르게, 계속해서 우방국을 늘려가고 있으니 위험을 느낄 만도 했고.
그래서 경고까지 인정하는 거다.
“회장님의 표정을 보니 믿지 못하는 것 같군요.”
“솔직히 말해서 21세기에 전쟁이 가당키나 하는 말인가?”
“미, 중 무역 전쟁 때 어땠습니까? 사람들은 미국이 손해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무역 전쟁을 할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죠.”
“…….”
“결과가 어떻습니까? 박제환 회장의 예상대로 미, 중 무역 전쟁은 일어났고, 그로 인해 한국의 기업들도 피해를 보게 됐습니다. 아 차, 삼송 그룹과 JH 그룹은 빼야겠군요. 저희는 미리 대비했으니까요.”
그랬다.
모두가 무역 전쟁을 의심할 때.
두 그룹만이 무역 전쟁을 기정사실하고 움직였었다.
그게 삼송 그룹과 JH 그룹.
물론 동성 그룹도 어느 정도 대응은 했지만, 딱 피해를 보지 않을 정도로만 했었다.
그때도 제환이의 능력을 인정했지만, 현실적 가능성이란 이유로 마음이 머뭇거렸었다.
어떻게 보면 그때와도 같은 상황인가 보다.
“그래서 자네는 어떻게 할 겐가?”
“지금 러시아에 투자하고 있는 것들은 전부 철수할 생각입니다.”
“그쪽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그게 무서워서 계속 진행했다간 손해만 더 커질 뿐이죠. 당장의 손해가 있겠지만, 나중에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을 겁니다.”
방금 대답으로 알겠다.
삼송 그룹 회장은 진지하게 러시아 전쟁을 대비할 거라고.
JH 그룹 이전에 한국을 대표하던 그룹이 삼송 그룹이다.
그런 그룹이 러시아에 투자한 규모는 결코 작지 않았다.
‘그걸 철수하다니…….’
이 정도면 기정사실로 생각하고, 대비할 거란 걸 알 수 있었다.
“또 한 파이프라인을 늘려야 됩니다. 원자재를 한 나라에 의존하는 건 요즘 시대에 위험한 짓이거든요.”
“그걸로 인해 경제적 손실이 꽤 클 텐데도 말인가?”
“너무 한 나라에 과 투자를 하니, 그 나라가 기어오르더군요. 이때까지 투자한 게 있는데, 너희가 진짜 철수할 수 있어? 라고 묻는 듯 제멋대로 행동합니다.”
“…….”
“그런 스트레스를 받고, 나중의 위험을 떠안을 바에는 여러 나라에 파이프라인을 꽂는 게 나은 것 같더군요.”
일리가 있다.
동성 그룹도 겪고 있는 문제였다.
이전에 베트남 쪽에 너무 많은 투자를 하다 보니, 그쪽 인부가 파업해도 손쓸 방법이 없었다.
베트남 정부가 나서준다면 모르겠지만, 이미 잡은 물고기라고 생각했는지, 생각보다 일 처리가 지진 부진했다.
그런 모든 걸 생각해 봤을 때.
차라리 여러 국가에 나눠서 투자하는 게 훨씬 이득 같았다.
“이제는 무언 갈 믿고 진행하는 게 아닌, 모든 걸 의심한 채로 진행해야겠군.”
“요즘 시대가 그렇습니다. 눈 깜짝하면 세상이 바뀌어있더군요. 그 흐름에 맞추기 위해선 보고 따라가는 게 아닌, 미리 한 발자국 앞서 나가야 겨우 맞출 수 있습니다.”
“확실히, 제환이 말이 만군. 자네 세상을 속이고 있었어.”
“어쩔 수 없더군요. 세상은 잘난 사람을 동경하지 않습니다. 시기 질투만이 가득할 뿐. 더군다나 SNS가 발달 된 현시대면 더더욱 말이죠.”
“…….”
삼송 그룹 회장이 뱉는 말 모든 게 공감이 갔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후회하고 있는 것들이 앞선 대화에 담겨있었다.
“아 차, 시간이 늦었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잘 가게.”
이정후 회장은 다음 약속이 있는지, 시계를 확인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걸 바라보던 박대호 회장은 남아있는 GL 그룹 회장과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눴고, 그 둘은 자신들도 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단 걸 깨달을 수 있었다.
* * *
시간이 흘러 GL 엔터에 적혀있는 숫자가 0을 가리켰다.
그에 따라 벗겨진 네모에 해외 티켓을 들고 있는 박제환 작가가 드러났고, 곧 사람들은 드디어 실물을 영접할 수 있다며 격렬한 반응을 보냈다.
물론, 모두가 좋아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 어째서, 중국이 마지막도 아니고, 그 앞이지? 알려주실 수 있는 분? 우리가 「절대음감」을 사랑하는 마음이 결코 뒤지지 않을 텐데?
- 중국에서 독고 준경의 입지는 그 어느 나라보다 앞서 있다. 어째서 박제환 작가는 미국부터 가는 건가.
- 이게 다 정부가 외교를 못 했기 때문이다. 외교부는 책임을 지고, 어떻게든 방안을 모색해라.
- 아쉽다. 이 축제에서 우리는 후순위에 밀렸다는 게. 그렇다고 해도 박제환 작가를 미워할 수는 없다. 그러니, 정부가 책임지고 사죄하길.
중국 사람들은 일정표를 확인하고, 실망을 금치 못했다.
그 누구보다 독고 준경을 사랑하던 게 중국이다.
그럼에도 후순위에 밀려있다니 얼마나 불합리한 일이란 말인가.
원래라면 이 분노는 박제환 작가에게 향해야 됐지만, 차마 그들은 그렇지 못했다.
박제환 작가는 독고 준경의 창조주.
어떻게 그를 미워할 수 있단 말인가.
목적지가 없던 분노는 방황하다, 정부로 향했다.
정부 역시 한국 외교부에게 불만을 드러냈지만, 들어오는 대답은 하나였다.
GL 엔터에서 정한 것.
자신들의 관할이 아니다는 말뿐.
그렇다고 GL 엔터에 보복할 수 없었기에 중국은 눈물을 머금고, 인민들의 분노를 달래야 됐다.
* * *
‘겨우 끝마칠 수 있었네…….’
다행히도 원하는 시간에 시즌 1을 끝마칠 수 있었다.
워낙, 담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만큼, 중간에 거르는 과정도 많았고, 뒤늦게 확인하니 거슬리는 부분도 있어 수정하느라 시간이 꽤나 오래 걸렸다.
그래도 다행인 건, 제때 마감할 수 있다는 거다.
‘한국이 먼저라 했나?’
이제는 대외활동을 해야 될 때다.
원래라면 느긋하게 할 예정이었지만, 집필을 마치고, 들려오는 소식에 어쩔 수 없이 급하게 움직여야 됐다.
집필에 들어가기 전.
대한민국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응해야 된다 생각했고, 경고의 의미를 전했는데, 어떻게 조사해서 심각성을 느꼈는지, 한국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만히 팬들과의 시간을 즐길 수는 없었기에 바쁘게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내일이네…….’
그래서일까?
일정은 촉박하게 잡혔고, 한국의 팬들과 직접 만나는 날이 내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일반 서점에서 팬 사인회를 열려고 했지만, 모두가 불가능이란 의견을 내왔다.
나 역시, 생각해 보니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 줄 알 수 있었다.
나랑 만나기 위해 예약을 신청한 한국인.
수십 만 명이 만남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도 줄이고 줄여서 겨우 이 인원인 거다.
만약, 한계 없이 받았다면 백만 단위를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결정한 것.
사인회는 무리였기에 강연 비슷한 느낌으로 팬과 만나기로 결정했다.
‘처음이네…….’
처음이다.
작가로서 팬들과 직접 만난다는 게.
그로 인해 설렘도 느껴지면서 두려움 역시 같이 느껴졌다.
내가 신도 아니고 어떻게 모든 사람이 좋아한단 말인가.
당연히 안티 팬도 있을 거고, 그 사람들에게 비난받을까 살짝은 무서웠었다.
그래도 확실한 건 한 가지 있었다.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일이 기대된다는 것.
역시, 기대되는 날은 금방 와서일까?
눈 깜짝할 새에 당일이 다가왔고, 팬과의 만남 시간이 불과 십 분 남짓하게 남았다.
“야, 떨지 마라. 다들 너 좋아서 온 사람들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후……. 막상 앞에 서려니까 무섭네.”
“내가 살짝 보고 왔거든? 너도 나가서 네 팬을 보면 감동할 거다.”
“… 안 그래도 온 사람들이 예상 이상이라서 감동 중이다.”
승호가 감동할 거라는 말을 건네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머릿속에 그 어떠한 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나도 처음 겪는 일이라 그런지, 그 어느 때보다 긴장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