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핵폭탄
‘뭔가 있긴 한 것 같은데…….’
비서의 말을 듣고, 개인적으로 좀 더 알아본 대통령은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난단 걸 알 수 있었다.
여러 차례 계속해서 나토 확장에 대한 불만을 표현해낸 러시아 대통령,
2014년에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크림반도를 점령한 사건.
이 모든 걸 종합해봤을 때, 비정상적인 흐름이라고 느껴졌다.
‘가능성이 올라갔다.’
대통령이 마음속으로 정해뒀던 가능성.
이번 일로 인해, 한층 더 올라갔단 걸 알 수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 전쟁으로 이어진다는 건 비약적인 상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쟁이 현실에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안일하게 생각하면 안 됐다.
“대통령님, 미국 대통령이 전화 연결이 가능하냐고 묻습니다.”
“지금 연결하도록 하지.”
혹시나 싶어 이전에 보냈던 전화 요청.
비공식적인 루트라 그런지, 생각보다 빠르게 통화를 할 수 있나 보다.
대통령이 전화를 들고는 비서에게 나가라는 표현을 하자, 홀로 남겨진 대통령이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지나고.
상대방이 전화 받았단 걸 알 수 있었다.
- 오랜만에 통화하는군요. 전화 연결을 하고 싶다던데 무슨 일 때문에 그런 거죠?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미국 대통령의 목소리.
확실히 예전보다는 존중해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다 박제환 회장 덕분이다.
이전에만 하더라도 말투가 과격한 사람이었는데, 박제환 회장이 ‘클리너’ 개발을 진행하면서 많은 게 바뀌었다.
“국제 정세가 꺼림칙하게 느껴져서 의견을 교환하고자 연락했습니다.”
- 국제 정세라……. 어떤 걸 말씀하는 거요. 중국? 일본? 그들은 한국과의 관계가 크게 나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입니다.”
- …….
역시 뭔가 있었다.
평상시였다면 곧바로 안심하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건만, 지금은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이게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전쟁이 발발할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단 것.
-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요.
“러시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2014년의 크림반도도 그렇고, 강도가 높아지는 군사훈련까지. 마치, 진짜 전쟁을 준비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군요.”
- 그거야, 어느 나라든 군사훈련을 진행할 텐데요? 당장 한국만 해도 강도 높은 군사훈련을 진행하지 않소.
“박제환 회장이 그러더군요. 멀지 않은 시기에 전쟁이 발발할 것 같다고.”
박제환 회장의 이름을 꺼내자, 핸드폰 너머로 침음이 들려왔다.
- 끄응……. 사실, 우리 미국도 두 나라를 주의 깊게 보고 있소.
“그 말은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까?”
- 50퍼센트. 정확히 반반이요. 사실상, 전쟁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고 있지만, 그쪽 말대로 요즘 러시아 움직임이 심상치 않소. 정보원들도 꾸준히 경고를 보내오고 말이요.
“… 간단히 넘길 사안이 아니군요”
미국이 50퍼센트로 보고 있다는 건, 작은 명분 하나로 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는 거다.
러시아는 그 작은 명분을 만들 수 있는 나라이고 말이다.
- 우리도 좀 더 확실해지면 주변국에 경고할 거요. 물론, 믿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 하긴, 저도 박제환 회장의 말이 아니었다면 그 누가 말해도 비웃었을 것 같습니다.”
- 그걸 예상하였소. 우리 미국은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거고,
“나중에 좀 더 증거가 보인다면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미국도 어느 정도 확신을 갖고 있단 걸 확인한 대통령은 추가적인 사안이 있으면 연락해주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일어난다 생각하고 대응한다.’
전화를 끊고 나니까, 알 수 있었다.
지금부터 전쟁이 일어날 걸 기정사실로 정해두고 대응해야 되겠다고.
결정을 내린 대통령은 비서를 불렀고, 대기업 총수들을 한 자리에 모을 수 있도록 지시를 내렸다.
* * *
한편.
한국은 대통령의 불안과 다르게, 축제와도 같은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하루하루가 재밌다고 느꼈다.
디데이가 줄어들수록 벗겨지는 그림.
그것을 유추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 아니, 저거 비행기 앞모양이라니까? 잘 보셈. 내가 비교 파일 가져옴.
- 에효……. 저게 어떻게 비행기냐. 그리고 GL 엔터랑 비행기랑 무슨 상관인데. 뭔 공항이라도 만든다는 거냐?
- 딱 보면 모름? 「끝없는 전쟁」을 해외 판권에 판다 이런 이야기 아님?
- 그게 디데이까지 걸어 놓을 거냐? 머리가 달려있으면 생각이라는 걸 하자.
물론 축제라고 해서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그에 따라 다투는 사람도 여럿 있었고, 그걸 방관하면서 조소를 짓는 사람도 많았다.
“사장님, 홈페이지 트래픽이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언제나 분란은 관심을 가져오니까.”
“그나저나, 대통령님은 어째서 회장님들을 호출한 걸까요?”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무슨 일이 있긴 한 것 같은데.”
승호는 이번에 할아버지가 호출된 걸 보고 의아함을 느꼈다.
공식적인 자리도 아니고, 비공식적인 자리다.
즉, 그곳에 초청받았다는 건, 무언가 국민들이 몰라야 할 이야기들이 오간다는 거다.
‘이번에 GL 그룹의 재계 순위가 올라가지 못했다면 큰일이 날 뻔했군.’
보통 저 자리에 나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막대한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재벌들에게 정보의 선점은 막대한 돈을 가져다줬다.
그런 정보를 남들보다 미리 알 수 있고, 그걸로 인해 다른 회장들과 의논하는 자리가 이번 초청 자리다.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는 거다.
무슨 일이 생겼다고.
‘그게 뭐냐는 거지…….’
제환이라면 알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굳이 질문까지 하면서 방해하지 않았다.
이미, 자신의 할아버지가 참석한 마당에 굳이 초청장이 왔음에도 참석하지 않은 제환이에게 질문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일단, 정부에서는 미국을 제일 처음으로 해서 우크라이나를 마지막으로 한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특히 우크라이나 같은 경우는 박제환 작가님의 개인적인 부탁 같았습니다.”
“스읍……. 걔가 그냥 부탁할 얘가 아닌데……. 뭔가 있는 건가?”
“나중에 회장님한테 물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저희도 변화가 있다면 발맞춰서 준비해야 하니…….”
“그 부분은 내가 나중에 묻도록 할게.”
지금 당장은 고민해 봤자 달라지는 게 없었다.
그저, 제환이가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뿐.
그게 GL 엔터의 역할이었다.
그 이상은 GL 그룹에서 맡으면 되는 거다.
괜히 깊게 파고들었다가 신경만 쓰일 것 같은 승호는 제환이 케어에 집중하기로 했다.
* * *
“이 회장을 이런 곳에서 보니 반갑구만.”
“어제도 만나서 골프 친 사람이 누가 보면 오랜만에 만난 줄 알겠어.”
“장소가 신기하니 그렇지 않나. 나 역시 청와대에 처음 초대될 때는 얼떨떨했는데, 제환이 덕분에 여러 번 초대되다 보니 조금은 익숙하구만. 그렇지 않나, 이 회장?”
“허……. 자네는 어째 그렇게 한결같은가. 사람이 좀 변화도 줌세.”
“변하면 죽는다는 말이 있지 않나. 이렇게 행복한 삶을 조금이라도 연장해야 되지 않겠나.”
박대호 회장은 자신의 친우를 청와대에서 만나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이 회장은 복 받은 거다.
자신은 처음 초대됐을 때, 어리바리 하느라 정신이 없었지 않은가.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이불을 친다.
“그나저나 왜 불렀다고 하는가. 자네는 뭐 들은 거 없어?”
“나야 모르지. 제환이 자식한테도 물어보려고 했는데, 작품에 집중한다고 연락을 받지 않더군.”
“급하게 부른 거 보면 뭐가 있는데 말이지…….”
“뭔가 있긴 할 걸세. 가장 바쁜 기업인들을 한 자리에 모았는데, 별거 아니면 그게 문제일세.”
박대호 회장도 이곳에 오기까지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 초청된 이들은 재계 순위 10위 안에 있는 기업들의 수장들.
이렇게 단기간에 모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
당장, 자신만 하더라도 다급한 청와대의 초청에 일정을 취소시키고 온 게 아닌가.
자신만 그런 게 아닐 거다.
한 기업의 수장들은 한 달 동안 스케쥴이 꽉 차 있는 게 대부분이니 말이다.
“반갑습니다, 어르신들.”
“오, 자네 왔는가? 아주 신수가 훤해.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좋은 일이라고 할 게 뭐 있습니까. 단지, JH 그룹의 도움을 받아서 그런지, 기업 운영이 한결 편해진 게 이유일 것 같습니다.”
“그래? 역시 삼송 그룹은 뭐가 달라도 확실히 다르군, 누구는 도움받은 걸 그렇게 인정하지 않는데.”
“그렇습니까? 저는 인정하지 않기엔 워낙 받은 도움이 크거든요.”
“허허, 그런 말 말게. 방금 말의 주인공은 자네보다 훨씬 많은 도움을 받았거든.”
박대호 회장은 자신의 손자 도움으로 삼송 그룹을 차지한 이정후 회장을 만나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동시에 이야기가 잘 통한 것 같아 기분도 좋아졌다.
“자네는 우리가 왜 모인 줄 알고 있는가?”
“죄송합니다. 정보가 부족해 거기까지 모르겠더군요. 혹시, 회장님이 알고 계시면 정보를 공유받을 수 있겠습니까?”
“허허, 걱정하지 말게. 나도 모르니까.”
“그렇군요. 안 그래도 다른 회장님들을 다 만나보면서 물어봤는데,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정후 회장의 얘기를 들으니, 더욱더 궁금해졌다.
어떤 정보길래 국정원에 버금간다는 삼송 그룹의 눈을 피해 갈 수 있는 건가.
계속되는 대화에도 풀리지 않은 의문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을 때.
드디어 이 의문을 풀어줄 주인공이 나타났다.
“다들 바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워낙 사안이 사안인지라, 일정을 맞추기 힘들었던 점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회장들끼리 모여 이야기하고 있을 때.
한쪽에서 대통령이 나타나더니 고개를 숙이며 사과의 말을 건넨다.
예전에야 몰랐지만, 지금 보니 사람이 변한 것 같다.
그전에는 말투에서 어느 정도 권위적인 게 느껴졌었다.
하기야, 대통령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임자를 만나서일까?
제환이를 만나고 나서는 묘하게 사람이 바뀐 것 같았다.
권위적인 게 사라지고, 한 가지 목표를 위해 도전하는 사람 같달까?
오랜 기업 생활하는 동안 저런 사람을 많이 봐 왔다
그 사람들의 미래는 공통점이 있었다.
도중에 지쳐 쓰러지거나, 무언갈 변화시키거나.
될 수 있으면 이번 대통령은 후자 쪽이길 바랐다.
‘하여튼 손자가 여러 사람 살리는구먼.’
어쨌거나 대통령이 긍정적으로 변한 건, 제환이 덕분.
이렇게 생각하니 제환이는 대한민국의 수호신이 아닌가 싶었다.
“다들 궁금한 마음이 클 겁니다. 어째서, 바쁜 사람들을 이렇게 급조된 시간에 약속을 잡은 건지. 간단합니다.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사안이라는 대통령의 말에 주변 회장들이 웅성거린다.
보통, 대통령은 웬만한 일 가지고는 저 정도로 걱정이 가득한 뉘앙스를 풍기지 않았다.
미, 중 무역 전쟁 때만 하더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단 말이다.
그런 대통령이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중요한 사안이라고 말하니 모두 걱정이 되나 보다.
“최근에 미국과 이야기를 나누고, 여러 가지 정보를 조사해 본 결과. 저희는 한 가지 가능성을 알 수 있었습니다.”
본론이 나오기 전.
대통령의 머뭇거림이 느껴졌다.
그와 함께 각 기업 회장들도 말하던 걸 멈추고, 시선을 집중했다.
“어쩌면 이른 시일 내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
핵폭탄이 떨어졌다.
뭔가 심각한 일이란 걸 알았지만, 생각했던 일들을 싸그리 박살 낸 그런 핵폭탄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