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자네, 혹시 그 소식 들었나?”
“…….”
오랜만에 만나 골프를 치는 이 회장에게 은근슬쩍 질문하는 박대호 회장.
질문을 들은 이 회장은 또 시작이네 라는 표정으로 박대호 회장을 쳐다봤다.
“글쎄, 이번에 GL 엔터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하더라고.”
“그런 것 같긴 하더군.”
“같긴 한 게 무슨 말인가. 자네 그룹인데 제대로 알고 있어야지.”
“…….”
“자네가 모르는 것 같아서 내가 설명 좀 해야겠네.”
어떻게 된 게 자신의 그룹 중에 제일 잘 나가는 GL 엔터의 소식을 모른단 말인가.
박대호 회장은 이참에 자신이 가르쳐줘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설명을 이어갔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알려질 작가가 새로운 작품을 들어간다고 하더군.”
“… 그런가?”
“근데 전 세계에서 날아오는 러브콜을 제쳐주고, 자신의 친구를 생각해서 양보하는 게 아니겠나.”
“그 친구가 믿음직스러웠나 보군.”
“…….”
이제 보니 이 양반 알고 있는데, 모른 척하나 보다.
그 모습이 괘씸하게 느껴진 박대호 회장은 잘 걸렸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럴 리가 있나. 그 친구가 하도 사정해서 어쩔 수 없이 허락할 거겠지. 사실 그 대작가는 사업도 잘해서 그런지, 푼돈에 연연하지 않은 이 시대의 쾌남일세.”
“…….”
“근데 나는 한 가지 걱정되네. 그 친구는 모르겠지만, 친구의 인척 중에 감사함을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 나름대로 좀 그렇지 않은가.”
“… 에휴, 이 양반아. 어째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유치해지는 게야. 좀 자네 나이 좀 생각함세.”
박 회장은 핀잔을 들었지만, 기분이 좋아졌다.
드디어, 이 회장이 실토했기 때문이다.
“혹시, 대답은 그게 전분가?”
“… 아유, 고맙다, 고마워!!! 아주 그냥 사람을 잡아 먹으려고 하네.”
“크흠…. 잘 생각해보게. 지금 GL 그룹에서 가장 가치가 작았던 GL 엔터가, 현재는 어떤가. 거의 GL 그룹을 먹여 살리고 있지 않나.”
“고맙게 생각하고 있네. 근데, 왜 그걸 자네가 생색내나. 박제환 회장이 생색내야지.”
“겸사겸사일세. 그리고 언제 내가 생색냈나. 그냥 그렇다 이거지.”
뻔뻔한 박대호 회장의 말에, 이 회장은 한 번 더 째려보고는 스윙할 자세를 잡았다.
박대호 회장이 한 번 자랑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는 걸 이 회장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대화를 끊어내기 위해 스윙 자세를 잡은 거고.
후웅―
픽―
“그거 보게. 마음을 곱게 써야 타점도 잘 맞지. 내면에 화가 쌓여있으니까, 그렇게 빗나가는 게야.”
“…….”
“그래서 말인데, 우리 제환이가 마음씨가 얼마나 곱냐면….”
이 회장은 직감했다.
박대호 회장의 자랑이 끝나지 않을 거라고.
차라리, 방금 스윙만 잘했어도 대화를 끊을 수 있을 거다.
하필이면 집중력이 흐트러진 바람에 타점이 빗나갔고, 공 역시 이상한 곳으로 흘러갔다.
사실, 박제환 회장의 도움이 큰 걸 알고 있었기에 오늘 하루만큼은 기분 좀 내는 걸 들어주기로 했다.
* * *
“왜 전화했냐.”
새로운 작품 집필에 들어가기 전.
갑작스레 승호의 전화가 걸려 왔다.
분명, 마지막 대화에서 한동안 연락 안 할 것처럼 말하더니, 그게 일주일도 안 갔다.
마침, 작품에 들어가기 전 이기도 하고, 이전에 전화를 안 받은 게 생각나서 이번에는 곧바로 전화 받았다.
- 일이 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아서 전화했다.
“뭔데, 그래.”
- 이번에 우리 회사가 단독으로 하려 했던 거 알지.
“그치?”
- 그거, 디즈니에서 투자하고 싶다 하더라.
디즈니란 말에 당황스럽긴 했지만, 차분하게 생각하니 나는 별 상관이 없어 보였다.
솔직히 누가 영화로 만들든 퀄리티가 중요했고, 승호가 잘 판단해서 투자받는다 하면 내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었다.
“어떻게 하려고.”
- 받기로 했어. 대신, 메인은 우리 회사고.
“그럼 괜찮은데? 너네 회사는 이참에 노하우 좀 뺏어오면 되겠네.”
- 그치? 그쪽도 그걸 알면서 투자한다 하더라고. 그리고 좀 길게 보면 협업을 꿈꾸는 것 같아.
마블이면 모르겠지만, 디즈니 정도면 괜찮은 것 같았다.
GL 엔터가 여러 번의 성공을 한다면 마블 정도는 넘을 수 있었다.
하지만 디즈니를 넘어설 수 있냐고 물으면 나는 힘들다고 말할 것 같다.
그만큼, 디즈니의 영향력은 전 세계적으로 퍼져있었고, 워낙 많은 투자를 해 왔었으니까.
“그래도 잘됐네. 솔직히 디즈니가 저작권 걸고 오면 조금 곤란했잖아.”
- 그것도 투자받은 이유 중에 하나야. 아무래도 기존에 마블과 계약했던 작품들의 등장인물을 다시 영화로 만들기 좀 그랬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일이 잘 풀린 것 같은데?”
-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것보단 홍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담하려고 전화한 거다.
홍보라…….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처음 작가로서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홍보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어쨌거나 완벽한 작품을 쓴다 해도 보는 사람이 없으면 반응이 없으니까.
지금은 그런 걱정 할 이유가 없었다.
어쨌든 작품을 시작하는 이상 자연스레 입소문이 날 거고, 볼 사람은 다 보게 될 테니까.
“그 부분은 너 알아서 해라. 그게 너네 역할이니까.”
- 우리야 좋지. 네가 원하는 방향이 있을까 봐 물어본 거였고.
“그랬으면 내가 회사를 차렸겠지.”
- 그래, 어쨌든 새로운 작품도 잘 부탁한다.
잘 부탁한다는 승호의 마지막 말로 전화를 끊은 나는 새로운 작품의 구상을 이어 나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존의 주인공들은 주연의 역할로 만족해야 됐다.
둘 중 하나를 주인공으로 삼기보단 새로운 주인공에게 도움을 주는 주연으로 활약시키기로 했다.
‘새로운 주인공은 공간이동 할 수 있는 사람으로 하는 거다.’
주인공은 원래 일반인에 불과한 사람으로 설정한다.
그러다가, 골목길에 부딪히는 데 고통을 느끼는 게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떨어지게 한다.
그곳에서 첫 번째 작품의 주인공을 만나고, 능력을 활용하는 법을 깨우치며 「절대 음감」 작품의 세계까지 들어가게 만든다.
‘나중에는 힘 조절에 실패해서 여행했던 세계가 합쳐지게 만든다.’
이렇게 만들면 영화로도 많은 분량을 채울 수 있고, 책으로서도 새로운 작품이란 인식을 심어줄 수 있었다.
구상이 어느 정도 끝났다고 여긴 나는 플롯을 짜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쌓여나가는 플롯.
그동안 계속 써왔던 소설들이 글 쓰는 실력을 늘려준 것 같다.
예전만 하더라도 플롯 짜는 데 한 세월이 걸렸던 거에 비해 지금은 빠른 속도로 쌓여갔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도 잘 됐으면 좋겠네.’
상업적인 걸 떠나서 사람들이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봐줬으면 좋겠다.
주인공의 감정선에 공감해주고, 내가 짜놓은 복선들을 추리하면서 결과를 예상하는 독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또 하나의 세계관이 만들어지면서 그걸 활용할 수 있을 테니.
우선 그걸 바라기 위해선 나부터 즐거워야 됐기에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 * *
“다들, 홍보는 어떻게 할지 생각해봤어?”
이제는 매일마다 모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된 GL 엔터.
승호는 모인 사람들에게 각자 생각들을 물었다.
“디즈니에서 투자받은 걸 빌미로 홍보하면 어떻겠습니까? 해외에서의 투자라는 항목은 대중들에게 충분히 어필될 수 있을 겁니다.”
“기각. 그건 작품이 아니라 우리 회사에 시선이 쏠리게 돼. 그것보단 작품에 시선이 모이도록 만든다.”
디즈니에 투자받았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시선이 분산되게 된다.
영화 출시를 홍보하는 시간이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어디까지나 외전 홍보에 들어가야 되는 시기.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시기가 적절치 않았다.
“박제환 회장님의 사인회를 여는 건 어떻습니까? 이때까지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보니…….”
“아니, 그건 죽어도 안 돼. 제환이도 하지 않을뿐더러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야.”
여러 의견이 오감에도 썩 괜찮은 방법이 없는 것 같다.
“혹시 입소문을 노리는 게 어떻습니까?”
“자세히 말해 봐.”
“각 플랫폼 배너에 디데이를 거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게 되겠죠.”
“제환이 작품에 디데이를 걸자는 건가?”
“맞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예측을 하면서 많은 대화가 오가게 될 거고. 그게 자연스러운 홍보가 될 것 같습니다.”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요즘은 억지로 하는 홍보보다 자연스러운 입소문이 더욱 먹히는 추세다.
영화도 마찬가지.
배급사에서 아무리 홍보해봤자, 영화가 별로라는 입소문이 퍼지면 영화는 그 즉시 추락세를 보이게 된다.
오히려 억지로 하는 홍보보다 앞에 임원이 말한 것처럼 자연스레 퍼지는 소문도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
‘제환이 작품이면 모두가 관심 가질 만하고.’
애매한 수준이면 모르겠지만, 제환이의 작품이면 조금의 변화도 관심으로 다가왔다.
오로지, 제환이기에 가능한 홍보 방법.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괜찮은 방법인 것 같았다.
지이잉―
“누구야, 회의를 하는 데 폰도 안 끄고.”
“그…. 죄송합니다. 혹시라도 박제환 작가님에 대한 소식을 놓치면 안 될까 봐,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하라 했는데……. 그게 지금 온 것 같습니다.”
“한 번 확인 해 봐.”
방금 온 연락이 제환이에 관한 소식인가 보다.
임원이 하는 말에 확인하라는 말을 건네자, 얼마 지나지 않아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불러온다.
“사장님!!”
“무슨 일인데, 그래.”
“그, 그게……. 아무래도 정보가 새어 나간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해당 임원에게서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 들려오자 놀란 나는 그 즉시 핸드폰을 꺼내 뉴스 기사를 확인했다.
그곳에는 추측성이 가득한 기사가 적혀있다.
“이게 뭐야. 도대체 한국도 아니고, 어떻게 중국에서 먼저 알게 된 거야?”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들도 정확히 무언갈 알고 쓴 기사가 아닌 것 같습니다.”
“추측성 기사를 한국에서 한 번 더 쓴 거군…….”
기사의 처음은 한국이 아니었다.
중국에서 한 번 화제가 된 기사를 한국이 끌고 온 것 같다.
중국에서는 GL 엔터가 바쁘게 움직이는 것과 제환이가 한동안 활동이 없었던 것.
그리고 제환이가 작업실로 드나드는 사진을 구해 무슨 일이 일어난단 걸 암시했다.
「절대 음감」 작품으로 인해 중국에서 절대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제환이기에 발생한 기사다.
“댓글들은 어때?”
“외람된 말씀이지만, 지금 상황을 이용하시는 건 어떤지…….”
“… 말해 봐.”
“어떻게 보면 지금 상황이 저희가 원하고자 하던 방향에 더 좋은 버전 같습니다. 저희가 침묵을 유지하면 자연스레 더 불타오를 거고, 더 이상 버티지 못할 때, 디데이를 거는 겁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성적인 생각을 못 했을 때.
찬물을 부은 듯한 대답이 들려왔다.
역시, 사람이 여러 명 모이면 언제나 좋은 해답이 나오게 된다.
“좋아, 다들 입조심하고, 앞서 말한 대로 최대한 버텨보자고.”
“네, 사장님.”
“그러다가, 사람들의 궁금증이 최고치에 달할 때, 어떠한 기자회견 없이 디데이를 건다.”
“… 사람들이 궁금증에 미치겠군요.”
아마, 그럴 거다.
어쩌면 GL 엔터 앞에서 시위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그게 관심이잖아.”
승호는 확신했다.
그 분노들은 곧 엄청난 홍보 효과를 가져올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