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157화 (157/175)

157화

“그래서……. 새 작품을 쓰는 거랑 열린 결말로 끝내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확실히 마지막의 끝맺음을 잘했나 보다.

외전을 본 사람들이 깊은 여운과 함께 아쉬움을 느끼도록 의도했는데, 승호의 질문을 들으니 의도가 통한 것 같다.

“두 작품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새로운 작품에 모두 출현시킬 거야. 새로운 주인공이랑 함께 말이지.”

“… 뭐, 유니버스 그런 거냐?”

“비슷하지? 재밌을 것 같지 않냐? 「절대자는 휴식을 원한다」 작품이랑 「절대 음감」 작품의 주인공을 두고 비교하는 사람 많았잖아.”

“그치?”

“응원하는 주인공들이 새로운 세계에서 어떤 사건을 헤쳐 나갈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데?”

세 번째 작품을 집필하면서 독자들 사이에서도 다툼이 있었다.

다툼의 주제는 어떤 주인공이 더 매력 있냐였다.

확실히 각각의 매력이 달랐는지, 그걸 두고 다투는 사람도 많았고, 결국에는 각각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서로의 주인공을 놀려대기까지 했다.

“야, 한 가지는 확실히 해야 될 거다.”

“… 뭔데?”

“「절대 음감」 주인공이 메인 맞지? 그거 아니면 나 진짜 못 참는다?”

“그건 집필해봐야 알지.”

“이 씨.”

글을 쓰는 나도 누가 메인이 될지 모른다.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의도하던 방향과는 다르게 이야기가 펼쳐졌다.

그래서인지, 섣부르게 누가 메인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어쨌든 새로운 작품을 영화로 만들면 대박이겠네……. 그럼 GL 엔터도 마블처럼 되는 건가?”

“… 응?”

“뭐냐, 그 반응은? 설마, 이걸 다른 곳에 넘기려고? 나를 이렇게 고생시켰으면서?”

“그거야, 좀 더 글을 써보고, 더 좋은 조건을…….”

“야! 너한테 만족스러운 조건을 내걸 회사가 어디 있냐? 그냥 친구한테 부스러기 하나 준다고 생각해라. 마블이랑 비교해서 안 부끄럽게 할 테니까.”

사실, 승호 주장대로 그 어떤 제작사가 가져가더라도 수익은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가장 중요시하는 건 작품의 퀄리티.

GL 엔터가 퀄리티면에서 자신한다면 한 번 맡겨봐도 될 것 같다.

‘내가 더 투자하면 되는 거고.’

영화에서 퀄리티를 담당하는 건 자금이다.

만약, GL 엔터가 자금이 부족하다 하면 내가 보태면 되는 거다.

그로써 나온 영화가 투자한 금액의 배를 가져올 걸 잘 알고 있었다.

“웬만하면 너한테 맡기는 걸로 할게.”

“진짜냐!?”

내 입에서 긍정적인 말이 나오자, 승호가 몸을 가까이하며 놀란 듯 되물었다.

“단, 퀄리티는 내가 원하는 거 이상은 뽑아야 돼.”

“…….”

“그 정도 각오 없으면 마블한테 맡기고.”

“무슨 일이 있어도 만족스러울 만한 퀄리티 뽑는다. 우리 GL 엔터도 한국 먹었으니까, 전 세계에 이름 알려야지.”

뭐…….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나의 경고에도 자신있어하는 승호를 보니 믿어주고 싶었다.

확실히 이때까지 결과물을 봤을 때, GL 엔터는 만족을 가져왔기도 하고 말이다.

“새 작품은 언제 집필 들어가려고?”

“구상 끝나면 바로 들어가야지.”

“그동안 내부 회의 들어가야겠네. 야, 집필하는 동안 연락은 안 받아도, 집필 끝나면 연락 좀 줘라.”

“… 노력해볼게.”

확실한 대답이 아니라, 노력해본다는 말 때문인지, 승호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째려본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더니 그때는 다시 찾아온다는 말을 건넸다.

“아무래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다. 나 회사로 돌아갈 테니까, 잘 있어라. 밥 잘 챙겨 먹고.”

“그래. 그리고 서아 스케쥴 좀 줄여줘라. 애인인데 이렇게 만나기 힘들어서 되겠냐?”

“… 그거 네가 할 소리냐? 서아 씨보다 네가 바쁘니까, 몸 관리나 잘해라. 원하면 우리 회사로 찾아오든가.”

“그래, 잘 가라.”

할 일이 많아서인지, 급하게 나가는 승호를 배웅한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생각했다.

새로 시작하는 작품.

어떤 세계관을 가져와야 재밌게 연출할 수 있을 지 말이다.

* * *

‘아무리 생각해도 미쳤는데?’

박제환을 만났다가, 회사로 복귀하고 있는 승호.

그는 그 어느 때보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하도 연락이 안 되는 친구에, 이 자식이 뭐 하고 사나 궁금해하고 있을 때.

자신의 이메일에 한 통의 메일이 와 있었다.

발신인을 확인하니 자신의 친구인 박제환.

서둘러서 메일을 열고, 안에 있는 파일 역시 열어 본 승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한 참 바쁜 줄 알았던 친구에게서 원고가 날아왔지 않은가.

급한 마음으로 원고를 읽어본 승호는 한 번 더 가슴이 뛰었다.

그동안 잊고 있던 주인공들이 다시금 가슴에 자리 잡는다.

동시에 다음 내용이 없는 건가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아쉬움을 담고, 친구의 작업실에 찾아간 승호는 뜻밖의 말을 들었다.

‘열린 결말은 사실, 다음 작품을 위한 빌드업이었다.’

순간, 화가 났단 걸 잊은 채, 환호를 지를 뻔했다.

안 그래도 열린 결말에 깊은 여운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아직 이야기가 끝난 게 아니라고 하니, 어찌 침착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기쁨은 곧 사업적인 생각으로 이어졌다.

소설에 관심이 없던 자신만 해도 이 정도의 기쁨을 느끼고 있다.

과연 제환이가 글을 쓰기 전부터 소설을 즐겨보던 사람들을 어떤 감정을 느낄까?

감히, 짐작도 못 할 것 같다.

이 엄청난 소식을 회사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승호는 빠른 속도로 복귀했다.

“오셨습니까, 사장님?”

회사에 도착하자, 승호를 기다리고 있던 비서실장이 반겼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임원들 30분 내로 모여서 회의 준비 좀 해줘.”

“네, 알겠습니다.”

지금은 이 기쁨의 영광을 나눠야 될 때다.

동시에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서 조금이라도 더 이득이 되는 방안을 찾아야 됐다.

‘이 정도면 되겠어.’

사장실에 올라간 승호는 제환이가 보냈던 파일들을 모아 각 임원진의 메일로 보냈다.

그리고는 시간에 맞춰 회의장으로 향했고, 그곳에 모여있는 임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 바쁘니까 절차는 생략하도록 하고 회의를 진행하지.”

“네, 사장님.”

“내가 어디에 다녀왔는지 아는 사람?”

당연히 알 리가 없다.

어떻게 주인 없는 집에 미리 알아놓은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갔단 걸 알릴 수 있겠나.

“박제환 작가 만나고 오는 길이다.”

오랜만에 들려오는 희소식이었을까?

박제환이라는 세 글자에 이곳에 모인 모두가 함박웃음을 짓는다.

하기야, 제환이는 GL 엔터의 구세주와도 같았다.

만년, 1등을 쫓고 있는 2등에서 곧바로 1등을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압도적인 격차까지 벌려줬다.

그 혜택으로 인해, 이번에 임원이 된 사람이 여럿 있었다.

“다들 회의 끝나고 메일 확인 해 봐. 이번에 박제환 작가가 「절대자는 휴식을 원한다」 작품이랑 「절대 음감」 작품을 각각 외전 두 권씩 집필했더라고.”

웅성웅성―

“이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지? 다시 일 해야 될 때란 거야.”

분명 바쁘게 움직여야 된다는 소식을 전했음에도 모두의 얼굴이 밝기만 했다.

당연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만큼, 그 뒤의 보상도 확실하니까.

저번에 ‘절대음감’을 런칭했을 때, 아마도 성과금이 1,000퍼센트 나갈 걸로 기억한다.

아니, 제환이랑 엮인 일을 할 때마다, 무지막지한 보상이 뒤따랐다.

그러니 이들이 웃고 있는 것도 이해 갔다.

“이게 끝이 아니야. 박제환 작가가 새로운 작품을 쓴다고 하더라고.”

소란스러웠던 회의장에 핵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시끄러워졌다.

기존에 있던 작품에 외전을 쓴 것과 새로운 작품 집필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작품은 외전을 집필한 작품들의 등장인물이 합쳐져서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 거야.”

승호의 이야기가 이어질 때마다 회의장에 모인 사람들은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이건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얼마나 중장기의 프로젝트인지.

단기로 끝나는 이벤트가 아니란 말이다.

“영화 사업도 우리가 직접 진행하기로 했어. 아마, 마블의 히어로물 유니버스처럼 진행될 거야.”

이번 사업이 단기로 끝나는 게 아닌 이유.

영화로 풀어낼 수 있는 요소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제환이가 집필하는 새로운 작품의 1권에 영화 하나가 파생될 수 있었다.

제환이가 1권을 집필하는 시간은 평균 일주일에서 살짝 더 걸리는 정도.

한 마디로 약 일주일에 한 번씩 영화 시리즈 원작이 만들어지는 거다.

“다들 좋아하긴 일러. 이번 사업을 얻어내면서 제환이한테 약속했던 게 만족스러울 만한 퀄리티야. 최소 마블이 만들어낸 영화보다 퀄리티 면에서 앞서야 돼.”

조건부 승낙이라는 승호의 말에 몇몇 임원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변했지만, 대다수가 걱정보다는 의욕을 불태웠다.

“이번 사업 성공적으로 끝내는 순간, 다들 각오해. 이전의 성과금보다 훨씬 두둑히 챙겨줄 테니까.”

채찍질에 이은 당근을 제시하자, 임원들이 소리를 지르며 환호한다.

승호는 이 분위기가 쭉 지속되길 바랐다.

영화가 나오고, 사업이 진행되는 그 순간에도 말이다.

“회의가 끝나면 감독부터 알아봐. 할리우드에서 활약하고 있는 거장들도 제안을 거절하지 않을 거야. 예산도 GL 그룹에서 투자받는 한이 있더라도 끌어올 테니까, 돈 걱정은 하지 말고.”

말은 어떻게든 예산을 끌어온다 했지만, 이곳에 모인 모든 이가 알 수 있을 거다.

투자를 제안하는 게 아니라, 많고 받은 투자 중에 가려서 받아야 된다고.

이 사업은 수익이 보장된 사업과도 같았다.

당연히,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투자하려 달려들 거고, 손익분기점을 높게 잡는 한이 있더라고 최대한의 퀄리티를 보장해야 됐다.

“자, 다들 바쁘게 움직여 보자고. 이번에 일이 끝나면 마블이랑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거야.”

물론, 이번 한 번으로 마블의 위치를 따라잡기엔 쉽지 않았다.

그래도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릴 수 있는 기회인 건 분명했다.

그렇게 회의를 끝내고,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며 준비하고 있을 때.

승호는 뜻밖의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누구라고요?”

- 섭섭하게 왜 그러십니까. 저 라이언 감독입니다.

“어쩐 일로…….”

- 끝까지 모른 척할 겁니까?

승호는 전화를 받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전화를 걸어 온 사람은 이전에 함께 작업했던 라이언 감독이지 않은가.

사실 라이언 감독의 섭외를 고민하긴 했었다.

하지만 쉽사리 제안을 건넬 수 없었다.

어찌 됐건, 이번 작품은 마블이 가져갈 수 있는 상황에서 GL 엔터가 욕심을 부려 가로챈 거나 마찬가지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감독을 맡아 줄 수 있냐는 제안까지 한단 말인가.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연락을 피하려고 했는데…….

뜬금없이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온 게 아닌가.

“그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 아니, 들을 것도 없소. 저도 이번 프로젝트에 끼워주지 않으면 회장님과 합작해서 서운함을 표출하도록 하겠소.

…….

오히려 라이언 감독이 합류하면 GL 엔터에는 호재였다.

뭔가, 산삼을 발견하고, 캐내기엔 작아 묵히려고 할 때.

산삼이 자기 혼자 자라 자신 앞에 나타난 것과 같은 상황인 것 같았다.

“… 자세한 내용은 만나서 이야기할까요?”

-내일 입국하도록 하죠. 부디, 긍정적인 대답을 했으면 좋겠군요.

“…….”

이 아저씨…….

생각보다 훨씬 적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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