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 * *
“끄으윽!!”
우두둑―
하……. 시원하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어느덧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난 것 같다.
오랜만에 쓰는 글이라서일까?
하루에 평균 3편 이상은 쓸 수 있게 됐고, 한 달이 지난 지금은 두 작품 각각 2권 분량을 집필할 수 있었다.
역시, 글을 통해 풀 수 있는 스트레스가 따로 존재하나 보다.
일을 할 때는 몰랐지만,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스트레스가 쌓여있었다고.
간접적이나마, 글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었고,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감정이 느껴졌다.
“많이도 왔네.”
자리에서 일어나 핸드폰을 켜니 수많은 부재중 전화가 쌓여있는 게 보였다.
한 달 동안은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가는 것조차 아까울 정도로 글에 빠져있었고,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도중에 연락이 온 것은 서아를 제외하곤 될 수 있으면 피했다.
그래서인지, 핸드폰에는 100통이 가볍게 넘긴 부재중과 1,000통이 넘어있는 문자가 있었다.
“슬슬 외전은 끝난 것 같고…….”
한 달 동안 집필했던 분량.
새로운 작품이라기보단 순전히 준비에 불과했다.
처음에 생각한 대로 새로운 작품에 들어가기 전, 기존 작품에서 일종의 빌드업이 필요했고, 그 빌드업은 이번 한 달 동안 완료할 수 있었다.
이제는 이걸 어떻게 활용하냐가 문제.
‘그건 매니지에서 관리해야지.’
그 작은 고민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오랜만에 작가로서 돌아온 삶.
나는 오직 글에만 집중하고, 그 세계관에서 빠져나가고 싶지 않았다.
괜히 남을 배려한답시고, 사업적으로 도움을 줬다간 지금 머릿속에 존재하고 있는 세계관이 깨질 것 같았다.
약간의 흠집이 나는 것도 싫은 나는 이번 분량은 승호네한테 넘기기로 결정했다.
이제 매니지와 이야기하는 건 GL 엔터에서 담당해야 될 일.
그 안에서 어떻게 이뤄질지는 신경 외인 것 같다.
‘… 조금 무서운데?’
승호한테 전화할 생각으로 핸드폰을 들었는데 망설여진다.
100통이 넘는 부재중 전화 중 승호의 지분이 결코 적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 누구보다 많은 지분을 차지할 수 있었다.
분명, 전화를 걸면 그거에 대한 해답을 원할 것 같아 망설여졌다.
“그래……. 전화만이 정답은 아니다.”
내가 너무 일차원적으로 생각했나 보다.
소식을 알리는 데 전화가 전부는 아니었다.
세상이 발전하고 그에 맞춰 디지털 또한 발달했다.
생각을 고쳐먹은 나는 다시금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을 켰다.
그리고 정리한 원고를 압축한 다음 메일에 첨부했다.
두 작품의 외전이라는 내용과 함께 말이다.
‘이러면 문제없지.’
이러면 딱히 문제 될 것도 없을 것 같다.
승호의 잔소리도 듣지 않아도 되고, 그렇다고 전화가 걸려 온다 한들 못 봤다는 핑계로 피할 수 있다.
완벽한 해결책을 찾은 나는 그대로 메일 전송을 눌렀고, 새로운 작품을 집필하기 전, 서아를 만나러 향했다.
* * *
“후……. 요즘은 만나기가 쉽지 않네요.”
“서아 씨가 워낙 유명해야 말이죠.”
“… 저만 그런가요?”
서아 말대로 요즘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 한국에서 서아의 인기는 톱스타 그 이상이었다.
데뷔 앨범 이후로 나오는 앨범도 연달아 성공을 얻었고, 이제는 믿고 듣는 가수가 돼 있었다.
아무래도 연습생 시절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노력은 배신 안 한다는 말이 있던가?
서아의 경우를 보면 그 말이 정답 같았다.
“그나저나, 제환 씨는 참 대단하네요. 드라마도 성공하고, 영화도 성공하고…….”
“서아 씨는요. 내는 노래마다 1위던데요?”
“그래도 제환 씨에 비하면 부족하죠.”
의도치 않게 하는 얘기마다 서로 얼굴에 금칠을 해 준다.
그만큼, 요즘 우리의 결과물은 사람들에게 열광 받고 있었다.
두 번째 작품의 드라마화.
중간에 주연 인물의 스캔들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완성도로 동일 방송 대비 시청률 1위를 기록할 수 있었다.
그것도 압도적인 차이로 말이다.
그리고 「절대자는 휴식을 원한다」.
이거는 뭐 말할 것도 없다.
이 작품으로 파생된 사업 하나하나가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일본에서 제일 인기를 끌고 있는 해적 만화.
이제는 그 작품과 비교해서 밀리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사업적인 수입으로 따지면 더 높은 기록을 세웠다고 봐도 무방했다.
서아와 대화를 나누면서 과거를 돌아보니 그동안 얼마나 바쁘게 살아왔는지, 어떤 성공을 거두었는지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사업은 좀 괜찮아요? 일본에서 불매한다는 말이 있던데…….”
“어차피, 제가 하는 사업은 불매운동의 영향이 적습니다. 중간재 역할을 하다 보니 불매하려면 저희 그룹 피해뿐만 아니라 일본 기업도 피해를 보거든요.”
“그래서 한국이 경제적 우위를 얻었다고 하는 건가요?”
“뭐, 비슷하게 볼 수 있죠. 한국을 대표하는 JH 그룹과 삼송 그룹은 이전부터 해외 의존도를 극도로 낮췄거든요.”
만약, 해외 의존도를 낮추기 전에 불매운동을 벌였다면 정부에서 꽤나 난감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일본이 불매운동을 함으로써 끼칠 수 있는 피해보다 자신들이 얻는 손해가 월등히 컸다.
이런 문제 때문에 요즘 들어 한국이 일본에 비해 경제적 우위에 있다는 말이 많았고.
“근데 제환 씨 괜찮겠어요? 사장님이 벼르고 있던데요……?”
“승호가요? 괜찮습니다. 제가 방법을 찾아냈거든요.”
이제는 GL 엔터의 사장인 승호.
나를 찾고 있단 걸 알고 있었지만, 그게 서아에게서도 들려오니 살짝 겁이 났다.
이거 당분간은 제대로 피해 다녀야 될 것 같다.
“혹시, 승호가 무슨 말 했나요?”
“제환 씨 만날 때, 무조건 연락주라 하더라고요. 물론 연락은 안 했지만……. 그때 분위기를 보면 어떻게든 찾아낼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하……. 완전 스토커가 따로 없네요.”
“그러게, 연락 좀 받지 그랬어요.”
어쩔 수 없었다.
나라고 연락을 일부러 피한 게 아니다.
예술가는 의자에 오래 앉아있는 다고 작품이 나오는 게 아니었다.
온전히 집중되고, 분위기가 잡혔을 때.
그때 그 흐름의 힘으로 쭉 집필하는 거다.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사이에 다른 흐름이 들어오면 집중이 깨질 수도 있었다.
그게 무서워서 연락을 안 받았던 거고.
‘하……. 받을 걸 그랬나?’
물론, 그건 집필할 때의 감정.
외전을 마무리한 지금은 미치도록 후회가 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중간중간에 연락하는 건데.
지이잉―
“제환 씨 전화 오는데요?”
“… 별거 아닙니다.”
“…….”
나 역시 전화가 온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핸드폰을 열어 번호를 확인하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고.
‘이 정도면 집착인데…….’
메일을 보내고, 몇 시간가량이 지났을까?
이전에 온 연락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그 수가 늘었다.
무슨 용건이 있나 싶었던 나는 전화가 무섭다는 이유로 메일을 보냈고, 승호는 메일을 통해 좋게 말할 때 전화를 받으라고 했다.
하지만 어떻게 받을 수 있단 말인가.
당장은 좋게 말하지만, 전화를 받고 나면 안 좋게 말할 것이 분명한데.
“아무쪼록 완만한 관계 회복을 응원할게요.”
“고마워요……. 분명 승호도 이해해 줄 거예요.”
“그래도 조심하세요. 사장님이 언제 어디서 지켜보고 있을지 몰라요.”
그 부분은 괜찮았다.
지금 내 행동반경은 작업실 아니면 서아를 만나는 것.
서아를 만나는 날이 많은 것도 아니고, 대부분이 작업실에서 머문다는 거다.
승호가 작업실의 비밀번호를 아는 것도 아니고, 밖에서 벨 소리가 들려오면 없는 척 숨으면 됐다.
그러면 마주칠 일도 없고.
그래…….
나는 이때 서아의 말을 듣고, 모든 가능성을 조심했어야 됐다.
“이야……. 아주 즐겁지? 도대체 얼마나 즐겁길래, 작업실에 여섯 시간 동안 기다리게 만들냐?”
“… 승호야, 네가 여기 어쩐 일이냐.”
“하하, 어쩐 일이긴. 누가 메일 하나 딸랑 보내놓고 연락을 피해서 직접 찾아왔지.”
“비번은 어떻게 알고…….”
“비번? 네가 애용하는 네 자리 숫자는 진작에 파악했다.”
“…….”
사면초가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동, 서, 남, 북 어디서도 아군은 보이지 않고, 적군인 초나라만 있다는 사자성어.
지금 내 상황을 비유하면 사면초가를 말 할 수 있겠다.
도저히,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변명을 생각해봐도 모든 게 핑계로 여겨졌다.
생각해 보니까, 실제로 핑계였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어떻게 데이트는 잘하고 왔어?”
“… 그건 어떻게…….”
“서아 씨 매니저가 스케쥴 관리하는 거 모르냐?”
“…….”
내가 너무 자만했나 보다.
제일 기본적인 것부터 체크하지 않았다니.
어떠한 변명도 안 먹히고, 활로가 없을 때.
가장 유용한 방법이 있었다.
“미안하다.”
바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
역사적으로 살펴봤을 때, 이것만큼 상대방의 화를 달래는 효과적인 방법도 없었다.
“미안하다? 지금까지 연락 다 무시하고, 고작 미안하다?”
“…….”
승호의 분노를 너무 간단하게 봤나 보다.
사과를 전달했음에도 그다지 승호의 분노를 달래지 못했나 보다.
“후……. 이유나 들어보자. 도대체 한 달 동안 뭐 했고, 왜 연락을 씹었는지.”
“메일로 보냈는데…….”
“그니까, 왜 갑자기 외전을 쓰기로 했냐고.”
“새로운 작품 쓰기 전에 사람들의 몰입도를 올려놓으려고.”
새로운 작품이란 말에 승호 역시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역시 새로운 작품이 맞았구나. 외전들이 다 열린 결말로 끝나길래, 혹시나 하고 있었는데…….”
“어때? 재밌게 읽었어?”
“… 네 놈도 확실히 작가인가 보네. 작품 얘기가 나오니까 미안한 기색이 바로 사라지네?”
“… 그냥 궁금해서.”
나도 모르게 마인드 컨트롤을 실패했나 보다.
외전을 읽었다는 듯한 승호의 뉘앙스에 혹해서 질문을 해 버렸다.
“야, 너는 확실히 작가로서 일정 경지에 오른 것 같다.”
“…….”
“네가 연락을 한 달 동안 안 받고, 엄청나게 화나 있었거든?”
“… 응.”
“외전을 읽기 시작한 순간, 한 달 동안 연락 안 받은 거 다 제쳐두고, 그다음 내용을 얻고 싶더라.”
이건 작가로서 극찬받은 거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늘 그렇듯 새로운 도전을 할 때, 확신을 갖지 못한다.
아무리 자신이 재미있게 집필해도 시장의 반응은 차가운 경우도 많았다.
나 역시 이번 작품은 은연중에 보험을 들었다.
시장의 반응을 얻기보단 나 스스로 만족하면 된 거다.
그러니, 너무 성적에 연연하지 말자고 말이다.
하지만 승호 반응을 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번 작품도 사람들의 흥미를 이끌 게 분명했다.
“근데 있냐……. 그렇게 궁금해하고 있는데, 정작 메일을 보낸 사람은 깜깜무소식이더라고…?”
“… 그래? 그 사람 참 나쁘네…….”
“그치? 그래서 생각한 게, 얘를 가둬둘까도 고민했거든?”
“… 그건 좀 곤란하지 않을까? 그 사람의 사생활도 있고…….”
“글긴 하더라……. 그러니까……. 이번이 마지막이다.”
아무래도 마지막 목숨은 남았나 보다.
“걱정하지 마.”
“… 부탁한다.”
“진짜, 걱정하지 마라.”
근데 왜일까.
걱정하지 말라는 나의 말에 승호는 좀처럼 믿지 못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