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153화 (153/175)

153화

처음 한국의 공식적인 입장을 듣고, 일본에서의 반응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금에 비하면 말이다.

여론으로 시작한 불만은 점차, 현실로 드러났고, 곧 시위로 이어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뒀다간 큰 일 날것이란 걸 잘 알고 있어서일까?

일본의 총리는 그 어느 때 보다 현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일이 흘러간 거야?”

“아무래도, 총리님을 이용해,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게 아닌지…….”

“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 왜 하필 나냔 말이야!!”

“…….”

괘씸했다.

한국의 경제 수준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다고 하지만 일본의 총리인 자신을 겨냥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이건 경제 수준을 떠나서 국제적 관계를 생각하면 해서는 안 된 행동이란 말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머리에 총 맞은 것도 아니고, 어째서 이런 짓을 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현 사태를 말 해봐.”

“아시다시피, 섣불리 판단할 수 없습니다. 한쪽으로 쏠린 게 아니라…….”

“무슨 선택을 하든 욕먹는 건 똑같다는 거군.”

차라리 속 시원한 선택지를 줬으면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무슨 선택을 하더라도 국민들의 질타를 피해 갈 수 없었다.

만약, 자신이 나서서 사과하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만 되면 일본의 오랜 문제인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고, 평화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지지받을 수 있을 거다.

‘반대쪽에서 시위하겠지.’

이렇게 좋은 결과만 있다면 백 번이고 사과하겠다.

세상일이 그렇듯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도 존재했다.

자신이 사과한다면 극우성향을 띈 사람들이 한국 따위에게 허리를 숙였다고 시위할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사과하지 않을 수도 없는 게.

만약, 이대로 무시하면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할 수 없음과 동시에 또 다른 세력이 시위할 게 분명했으니까.

“젠장…. 이딴 선택지를 내밀다니…….”

“미래를 생각하시면 지금의 수모를 잠시 참고, 허리를 숙이시는 게 어떤지…….”

“… 자네 지금 제정신인가?”

“… 이러다가 총리님과 사이 나쁜 정치인들이 방사성으로 인한 피해를 조사해 여론몰이하면 분명 타격이 심할 겁니다.”

하….

미치겠다.

보좌관의 말대로 정치인들이 여론몰이하는 순간, 한 번 더 불타오를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건 반대도 마찬가지지 않은가.

“어찌 됐건, 국가 차원에서 보복할 건덕지가 없다는 건가?”

“맞습니다. 차라리, 대한민국 정부 독단적인 행동이면 모르겠지만, JH 그룹이 껴 있어서…….”

“도대체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언제부터 일본이 한국의 눈치를 본 거야!!”

“… 잠시일 겁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복수할 수 있을 겁니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본다면 사과하는 게 백번 맞았다.

알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사과하는 순간, 국제적 관계에서 일본이 한국 아래란 걸 증명하는 거니까.

“미국에 연락해봐.”

“… 그들이 도와주겠습니까?”

“그럼, 일본을 버리기라고 할 거야? 이건 한국 쪽에서 시비를 건 거나 마찬가지니까, 미국이 해결해 줄 수 있을 거야. 만약, 미국의 말도 안 들으면 그것 나름대로 괜찮지.”

“미국의 중재에도 통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고립되겠군요.”

“그거야.”

미국은 세계적인 경찰을 자처하는 나라.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도 중재하지 못한다면 국제적 위상이 떨어지게 될 거다.

그 상황이 싫은 미국이 한국을 압박할 거고, 만약 그걸 거절한다면 한국은 미국에 밉보이게 된다.

고작, 한국 때문에 미국의 힘을 빌려야 되는 게 못마땅 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기에 보좌관을 통해 미국으로 연락했다.

* * *

‘왜 전화 한 거지?’

이번 사태를 지켜보며 상황을 이끌어나가고 있을 때, 이전에 연이 이어졌단 샘 헤임 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무슨 일이죠?”

- 혹시 만날 수 있습니까?

“급한 건가요?”

- 여유롭진 않습니다.

“그럼, 최대한 빠르게 해서 만나는 걸로 하죠. 저는 시간 괜찮으니, 만날 수 있는 날짜와 장소 핸드폰으로 보내세요.”

날짜를 잡으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자, 얼마 지나지 않아 핸드폰으로 문자 한 통이 왔다.

문자에 있는 장소를 검색해보니 서울 외곽의 낚시터.

날짜는 당장 내일이었다.

‘일본 때문이겠지.’

미국 정보국에서 연락이 올 이유.

지금은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이번에 일본한테 공식적으로 요구한 사과.

그걸 보고, 중재하기 위해 연락한 것 같다.

그렇게 하루가 더 지나고 시간이 흘러, 약속 시간이 다가왔다.

장소에 도착하자, 기사님과 경호원에게는 밖에서 대기하란 말을 건넸고, 혼자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에는 실내 낚시터가 준비돼있고, 한 사람만이 낚시하고 있었다.

“오셨군요.”

“미국에서 만나자는데, 저 같은 일반인이 어떻게 거부하겠습니까.”

“… 일방적인 연락은 죄송하군요.”

급작스럽게 잡은 약속에 불만을 드러내자, 샘 헤임이 순수하게 사과를 건넸다.

“그나저나, 연락한 이유는 뭡니까?”

“회장님도 잘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 일본을 너무 궁지로 몰고 가는 게 아닌가 걱정이 돼서 만남을 요청했습니다.”

“잘못된 역사를 사과받고, 정정하고 싶다는 게 어째서 궁지로 몰고 가는 겁니까.”

“… 그런 이야기는 뒤로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일본도 입장이 있고…….”

샘 헤임의 얘기를 듣던 나는 이해는 하지만 짜증 나는 상황에 말이 강하게 나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제 잘못이란 겁니까?”

“… 그게 아니고, 다른 방법을…….”

“미국은 일본 편이란 겁니까? 저는 도저히 모르겠군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사과를 요구한다. 이게 그렇게 잘못된 건지 싶군요.”

“계속 말하다시피 방법이…….”

“이전에는 어땠죠? 한국이 처음으로 요구하던가요? 샘 헤임이 말하던 방법으로 사과를 요청했을 때, 일본이 어떠던가요. 설마, 모른다고 하진 않겠죠?”

이해는 가지만 짜증이 나는 이유.

샘 헤임이 말 한 방법을 한국은 충분히 해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무시로 일관하고, 들어먹지 않던 건 일본이었다.

그때는 방관하다 인제 와서 중재하려고 하니, 그게 짜증이 나는 거고.

“샘, 잘 들어요. JH 중공업과 올리아가 함께 만들고 있는 물질. 어쩌면 전 세계를 살리는 물질이에요.”

“…….”

“지금도 환경문제로 인해,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고, 다들 말만 앞서지 자국의 이익을 위해 환경 규제를 지키는 척만 하고 있어요. 저는 이 정도면 국제적인 사회에서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데요?”

“맞지만…….”

“그리고 저는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국 국적을 가진 사람입니다. 근데 미국이란 나라에 실망이 들 것 같군요.”

실망이라는 단어에 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사과가 그렇게 어렵다고 하던가요? 그래서 미국에 중재를 요청한 거고?”

“… 맞습니다.”

“그럼 사과받지 않겠습니다. 이번 일로 일본에게 악감정 가질 일도 없고요. 단, JH 중공업은 철저히 국익을 위해 움직이겠습니다.”

“… 화를 가라앉히죠. 지금 너무 흥분했습니다.”

내가 일본에 협박한 것도 아니다.

단지, 국익 그런 걸 제쳐두고, 자신들을 배려해서 수출해주라고 땡깡을 부리니 짜증이 나는 거다.

그에 맞는 조건도 내밀지 않고, 수출해달라고 압박해온다?

그건 깡패나 하는 짓이란 말이다.

“더 이상 미국에 실망을 느끼고 싶지 않군요. 잘 판단하고 연락해주시죠. 제 주장은 간단합니다. 사과하지 않아도 됩니다. 단, 땡깡 부리지 말라는 겁니다.”

“…….”

“지금 중국과 무역전쟁으로 인해 힘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나마, JH 그룹이 나서서 도와주었기에 비교적 괜찮다는 것도 잘 알고 있고요. 그 사이에 일본이 미국에 무슨 도움을 줬는지 궁금하군요.”

“… 죄송합니다. 상부와 이야기를 나눈 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솔직히 내 입장에선 억울할 만도 했었다.

분명, 미국에게 희토류를 양보함으로써 중국 시장을 포기하고, 도움을 줬는데도 노골적으로 일본 편을 드니 말이다.

약간이나마 경고성이 담긴 말을 샘에게 건넨 나는 가겠다는 제스쳐를 취하고, 밖으로 나갔다.

* * *

쾅!

“젠장, 아직도 답변이 없는 거야!!?”

“조, 조금만 기다려주십쇼. 곧 있으면 연락이 올 겁니다.”

“당장, 시위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어! 이 상황에서 어떻게 기다리란 말이야!!”

“많이 걸리진 않을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 측에서 오늘 JH 그룹 회장과 만남을 가진다 합니다.”

짜증이 난다.

총리가 된 지, 10년도 훨씬 지났지만, 이렇게 짜증 난 적은 처음인 것 같다.

하필이면 한국에서 그런 인재가 나와 자신을 곤란하게 만든단 말인가.

만약, 미국만 아니었으면 자위대를 이용해 협박하거나, 암살하면 편할 텐데….

그러기엔 아직까지 눈치가 보이는 건 사실이기에 분노를 머금고, 미국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될 것 같나.”

“한국이 미치지 않는 이상 미국의 중재를 듣지 않겠습니까.”

“확실한 거야? 그놈들이 정상이었다면 이번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 그래도 상식을 바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미국이 한국에서 갖고 있는 영향력이 있으니…….”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될지 묻고 있을 때.

보좌관의 핸드폰에 전화가 걸려 왔다.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확인한 보좌관이 전화를 받겠다는 몸짓을 건넸고, 미국의 연락이란 걸 확실한 나는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근데, 왜일까.

분명, 미국에서 긍정적인 답변을 보내왔다면 보좌관의 표정이 저리 어둡지 않을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생긴 건가……?’

계속해서 불안함이 느껴진다.

혹시나 미국이 중재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그래, 그 정도면 괜찮을 것 같다.

차라리, 미국은 손을 떼게 만들고, 자위대를 보내 암살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미국이랑 한국에서 압박해오겠지만, 차라리 지금 사과하는 것보다 그때 유감이라는 말을 건네며 시간을 뻐기면 될 것 같다.

그들도 언제까지 죽은 박제환 회장을 기릴 수도 없을 거고, 유럽 국가를 대비해 국가적으로 힘을 합쳐야 됐기에 어쩔 수 없이 눈 감고 지나갈 거다.

미국이 손을 떼면 어떻게 일을 처리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보좌관이 전화를 마친 게 보였다.

“그래, 뭐라고 하나. 표정을 보아하니 좋지 않더군.”

“…….”

“편히 말하게. 손을 뗀다고 하던가?”

“그게…….”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 좀 하게!!”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하는 보좌관에게 답답함이 느껴졌다.

“손을 떼는 건 맞지만, 허튼 생각을 하면 곧바로 한국 편에 서겠다고 합니다.”

“…….”

“사과하건, JH 중공업을 포기하건 하나를 고르라고…….”

쾅!!

“이런 빌어먹을 미국 같으니라고!! 이때까지 잘도 쳐 받아먹다가, 한국이 좀 잘 나가니까, 노선을 갈아타!? 이런 X신 같은!!”

“…….”

“하…. 당장 나가. 내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자신의 분노가 담긴 말을 듣고, 헐레벌떡 밖으로 향하는 보좌관.

차라리, 자신도 총리라는 자리를 내려놓고 도망가고 싶어졌다.

‘하……. 답도 없군.’

도저히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똥이냐, 설사냐…….

젠장……. 뭐를 고르던 더러운 꼴을 볼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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