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152화 (152/175)

152화

대통령의 연락을 받은 나는 일의 경위를 확인하기 위해 직원들에게 정보를 요구했다.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 많은 건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떻게 된 일인지,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금, 일본은 자신들의 오랜 숙제인 방사성 폐기물을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

하지만, 희망이 현실로 이어지기까진 많은 난관이 남아있었다.

한국 입장에서 정치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은 일본에게 우선으로 수출하기보단 다른 나라에 먼저 수출할 건 안 봐도 뻔한 스토리였다.

일본 역시 그 사실을 짐작하고 있는지, 개발이 완료되기 전부터 연락해 온 거고.

‘그건 잘 알겠는데…….’

왜 하필 타이밍이 지금이냔 말이다.

어찌 됐든, 언젠가 해결해야 할 문제였기에 시간일 날 수 없다고 체념한 나는 대통령과 만남을 기다렸고, 그리 길지 않은 기다림으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참,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회장님.”

“… 그러게, 말입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또 만남을 가지게 되는군요.”

“하하, 이렇게라도 얼굴 보니까 반갑지 않습니까.”

전혀 안 반갑다.

마음 같아선 대충 해결하고 빨리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대통령의 얼굴이 나쁘지 않아 보였다.

정책을 돌리고 나서 사방으로 공격이 들어왔을 텐데, 어찌저찌 막았나 보다.

요즘 들어 지지율도 반등하고 있고, 나름대로 국정운영도 잘하고 있고…….

뭐, 이렇게 나라를 위해 힘 써주니 지금 만나는 거겠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 같습니다. 소식을 들어보니까, 회장님이 한가하다 하더라고요.”

“누가 그러덥니까.”

“회장님 비서실장이 그러던데요?”

“…….”

비서실장님이 일을 잘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마냥 그런 것도 아닌가 보다.

“일본에서 정확하게 뭐라 합니까.”

“당연하게도 공식적인 문서를 통해 ‘클리너’가 개발되면 자신들에게 가장 먼저 수출한다는 걸 작성해주랍니다.”

“맨입으로요?”

“이것저것 조건을 들먹이지만, 딱히 끌리는 조건이 아닙니다. 일본 쪽에서는 한국이 조건을 제안해 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왜 날 부른건 지 알겠다.

이전에는 아마 날 방패막이 삼았을 거다.

아무리 정부에 압박해봤자, JH 그룹에게 의사를 전달할 뿐, 강요할 수 없다고 말이다.

그러다가 일본이 방금과 같이 좋은 조건을 제시했을 거다.

그 순간을 기다리던 대통령은 이때다 싶어 연락한 거고.

확실히, 정치를 잘하는 사람 같았다.

자신이 힘든 건, 남 탓으로 넘기고.

가능한 건 확실히 해결해서 자신의 공으로 만든다.

다른 사람이 보면 약았다고 할 수 있지만, 정치인에게는 최고의 능력인 거다.

“대통령님은 어떻게 생각하시고 있습니까.”

“제 권한이 있겠습니까. 단지, 회장님의 의견을 따를 뿐이죠.”

“저희끼리는 속이는 거 없이 하죠. 누가 봐도 표정이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하, 티 났습니까? 아무래도 워낙 기회가 좋다 보니까…….”

대통령이 표정 관리 못 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지금 일본에서 온 제안.

정치인에게 있어 그 어떤 경우보다 좋은 기회였다.

‘내가 코로나를 대비하는 것과 같겠지.’

경제 부분에서 보면 JH 그룹이 코로나를 대비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과 지금 대통령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같았다.

만약, 일본에 요구하는 조건들이 정치적인 부분을 양보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금과 차원이 다를 정도로 오를 게 분명했다.

아직, 일본과 우리나라 사이에는 역사적인 앙금이 남아있었다.

역대 대통령 누구도 그 앙금을 풀지 못했었다.

그걸, 지금 대통령이 할 수 있다는 거다.

물론, 일본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만큼, 함부로 예상할 수 없지만, 좋은 기회임이 분명했다.

“이번 기회는 대통령님에게 정치적 영향력을 높여주겠습니다. 대신, JH 그룹이 진행하고 있는 리조트 사업 잡음이 생기지 않게, 신경 써 주시죠.”

“리조트 사업이라면 국내 관광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당연히 힘써야죠. 좀 더 주의 깊게 봐주라는 의미로 알겠습니다.”

“아마, 역사적 문제들을 일본의 총리가 공식적으로 사과한다면 효과 있을 겁니다.”

“… 물론 있을 것 같습니다만……. 과연 그 총리가 하려 하겠습니까?”

“해야만 될 겁니다. 안 하면 정치적 영향력이 줄어들게 될 거고, 그거 나름대로 이득이고요.”

지금 상황이 좋다고 한 이유.

이것과도 같았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보낸 제안을 우리는 공식적으로 대답하는 거다.

일본의 총리께서 과거에 남아있던 앙금에 대해 진실이 담긴 사과를 건네면, 우리도 일본이 요청한 대로 최우선으로 수출하겠다.

이걸 공식적으로 대답하는 순간, 총리는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를 택해야 된다.

사과해서 일본 국민들의 지지를 얻거나, 자존심을 지켜 일본 국민들의 비판을 받거나.

‘물론 정답은 없지.’

전자를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국민 중에 욕할 사람은 많을 거다.

왜 한국 따위에게 사과하냐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까지 생각해줄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저, 어떤 선택을 하든 그걸로 인해 정치적인 이득을 챙기면 되는 거다.

‘나중에는 일본도 챙겨야 된다.’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면 일본과의 앙금을 풀고 가야 됐다.

나중에 가서는 미국, 일본, 한국의 동맹 중요성이 거론되는 날이 다가온다.

그때를 생각하면 일본과 국제적 관계에서 우위를 다지는 건 중요한 문제였다.

“당할 때는 몰랐지만, 회장님과 아군으로 있으니 참 든든합니다.”

“대통령님에게는 한 번도 행동으로 보여준 적이 없습니다.”

“대신 무언의 압박을 주셨죠. 꼭 선택지를 내민 다음 회장님이 추천하는 선택지를 고르지 않으면 후에 문제가 발생할 건덕지가 남아있더군요.”

“저도 먹고살아야 되니까요.”

“…….”

내 말에 어이가 없다고 느꼈을까?

대통령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하면서 헛웃음을 지었다.

“어디 가서 그런 말 하면 욕먹습니다.”

“그래서 대통령님 앞에서 하지 않습니까.”

“… 저한테 욕먹을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하십니까?”

“하실 겁니까?”

“… 졌습니다.”

요즘 따라 생활이 여유로워져서일까?

왜 이렇게 농담하는 게 좋은지 모르겠다.

* * *

일본의 한 사무실.

“한국에게 보낸 제안의 답변은 아직이야?”

“…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후…….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 양보해야 되는 거야.”

“한국의 대통령도 큰 권한이 없어서 일 겁니다. 아무래도 결정권은 JH 그룹 회장에게 있다 보니…….”

남성은 부하에게 부정적인 답변을 듣고, 창문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웬만한 안건이었으면 한국에게 굽힐 일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어떤 손해를 보더라도 확언을 들어야 됐다.

일본의 오랜 문제인 방사성 폐기물.

이걸 정화할 수 있는 물질이 개발된다는 데, 어떻게 손 놓고 지켜만 본단 말인가.

‘압박할 것도 없다…….’

그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한 것.

한국을 압박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부터였다.

그렇게 압박할 수 있는 것들을 찾고 있을 때, 부하 직원에게서 부정적인 견해를 들을 수 있었다.

JH 중공업은 사기업.

그것도 증시에 풀리지 않은 기업이라고 한다.

더군다나, 한국 정부에서 압박할 수 있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일본이 할 수 있는 건, 경제적 압박밖에 없었다.

‘그것도 불가능하다.’

아무리 일본 전체가 나서서 압박한다고 해봤자, JH 그룹이 실질적으로 피해 보는 건 없었고, 다른 그룹들만 피해를 보게 된다.

JH 그룹에선 일본에 잘 보일 이유가 하등 없다는 거다.

더군다나 JH 배터리.

만약, JH 그룹과 척진다면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전기차 시장을 포기해야 됐다.

한 마디로 얻을 거에 비해 잃을 게 너무 많다는 얘기.

지금 할 수 있는 건 한국 대통령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

“JH 그룹이 제안할 만한 건 조사했나?”

“워낙 정보가 많지 않다 보니 확실치 않습니다.”

“그나마 조사한 거나 말 해봐.”

조사가 확실하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려면 가능성이라도 있는 항목들을 파악해야 됐다.

“일단, 관세 부분을 건드릴 수 있습니다. JH 배터리나 앞으로 수출할 JH 중공업. 그리고 JH 자동차까지. 관세를 인하해주라는 조건이 가장 기본적이면 가능성이 제일 높습니다.”

“그리고.”

“법적 규제를 풀어달라고 할 것 같습니다. 지금 JH 자동차가 일본으로 수출되면 경쟁력이 너무 높다고 판단되어, 이런저런 규제로 수출을 막아놓은 상태입니다.”

“차라리 그 정도 제안이면 흔쾌히 받을 수 있을 것 같군.”

이 정도 제안이면 웃으면서 받을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일본 입장에서 먼저 제안하고 싶어질 정도다.

‘제발, 정치적인 것들만 아니면 되는데…….’

이게 가장 무서웠다.

한국에서 역사를 거론하거나, 다케시마를 걸고넘어졌을 때.

그때는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됐다.

앞에 부하 직원이 말했던 부분들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말이다.

‘가능성이 낮다.’

어디까지나 JH 그룹은 사기업.

정치적인 부분을 건드릴 이유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부하 직원 입에서 나왔던 조건들이 JH 그룹에게는 더욱 도움 될 거다.

똑똑―

- 의원님, 저 기시다입니다!!

부하 직원과 대화하고 있을 때, 밖에서 또 다른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들어오라는 말을 건네자, 기시다가 문을 급하게 열며 안으로 들어왔다.

이상했다.

분명, 저렇게 당황할 만한 인재가 아닌데…….

뭔가 일이 터졌나 보다.

“무슨 일이야. 자네가 보고도 없이 바로 온 적이 없을 텐데.”

“그게……. 지금 한국에서 저희가 보냈던 문서를 공식적으로 답변했습니다.”

쾅!-

“그게 무슨 말이야!!”

“뉴스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한국에서 기자 회견을 통해 저희가 보낸 제안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그에 걸맞은 조건을 달았다고 합니다.”

“… 조건부 승낙이란 건가. 그 조건이란 게 뭔데 그래.”

“가장 큰 항목은 총리의 공식적인 사과입니다.”

“… 미쳤군…….”

미쳤다.

그 어떠한 말로도 지금 상황을 표현할 수 없었다.

제발, 정치적인 조건을 걸지 말아 달라고 기도했는데, 기도를 들어주긴커녕 제일 건드리면 안 될 부분을 건드렸다.

심지어, 공식적으로 말이다.

“일본의 반응은 어때.”

“둘로 나뉩니다. 한쪽은 일본이 잘못 한 게 맞으니 이참에 사과하고, 오랜 문제인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하자는 쪽과 감히 한국 따위가 사과를 원한다며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입니다.”

“… 뭐를 선택하든 골치 아프겠군.”

“아마, 이 상황을 원해서 공식적인 답변을 건넨 것 같습니다.”

“빌어먹을 한국…….”

지금 상황이 최악인 이유.

한국을 찢어발기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는 거다.

언제 이렇게 위치가 바뀐 지 모르겠지만, 지금 갑의 위치에 있는 건 한국이었다.

‘이 와중에 다행이란 생각이 들다니…….’

그리고 한국이 확실히 갑이라고 느낀 점.

이걸 해결하기보다는 자신이 아닌 총리가 총대를 멨다는 거에 감사함을 느낀다는 거다.

만약, 한국 측에서 자신을 걸고, 사과를 바랐다면 눈앞이 컴컴했을 것 같다.

물론, 총리의 분노를 받아야겠지만, 그거야 자신 혼자가 아닌 일본의 의원 전체가 분담해서 받아들일 수 있을 거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어떻게 할 수는 있고?”

“…….”

“괜히 나서다가 피 보지 말고, 우리는 총리의 반응을 기다린다.”

지금 자신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태도.

총리의 반응을 기다리는 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