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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재벌-148화 (148/175)

148화

이번에 이사 왔다는 말이 반가워서일까?

옆에 있던 여자가 과한 리액션을 하며 질문해왔다.

“안 그래도 이번에 이사 온 사람이 누군가 궁금했는데……. 반가워요. 저는 이해리라고 해요.”

“아, 네……. 반가워요.”

승아는 떨떠름한 마음으로 인사를 건네자, 해리라는 여자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해 온다.

“사실, 저쪽에 있는 여자가 한일 유통 사모님이거든요? 저희랑 친해지면 남편분이 사업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 그런가요?”

“떨떠름하신 거 잘 아는 데, 저 좀 도와줘요. 저도 남한테 이런 거 물어보기 싫은데, 어찌나 닦달하는지…….”

“편하게 말씀하세요.”

승아는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에 당황스러웠다.

옆에 있는 여자가 공격적으로 물어올 줄 알았는데, 자신도 난처하단 듯이 미안하단 말을 전했다.

“그……. 혹시 남편이 뭐 하시는 분인지 알 수 있을까요?”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에요…….”

“… 어디 대기업 임원인가요?”

“아니요. 중소기업 다니고 있어요.”

“중소기업 사장……?”

“아니요.”

모든 질문에 부정적인 말을 건네자, 당황하는 게 보인다.

자신의 상식선에서 이해가 가지 않나 보다.

사실, 이곳에 오게 된 상황이 상식과는 멀었긴 했다.

그 누가 알았겠는가.

꿈을 위해 아르바이트하던 자신의 딸이 전 세계적인 가수가 될 줄은.

그 사이에 서아의 남자 친구인 박제환 회장의 도움이 있었겠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의 딸이 노력했기에 가능한 성공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스읍……. 이상하다……. 그럼 집에 재산이 많나요?”

“아닐걸요?”

“… 이상하게 들으실 수 있는 데……. 혹시 이 아파트에 어떻게 오셨는지 알 수 있나요? 여기가 돈만 있다고 살 수 있는 아파트가 아니거든요…….”

“어쩌다 보니까 이사 오게 됐네요. 사실, 제 딸이 가수라 도움 좀 받았어요.”

계속해서 제대로 된 대답을 건네지 못하면 대화가 끝나지 않을 거라 생각한 승아는 대충 이사 올 수 있는 경위를 말했다.

그러자, 해리라는 여자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헐……. 이곳에 올 정도의 가수면 대국민 가수겠네요……. 대박…….”

“좀 유명하긴 해요.”

“누군지 물어봐도 돼요? 원래 이 정도로 깊게까진 안 물어보려 했는데, 좀 궁금하네.”

“죄송해요. 거기까진 말하기 좀 그렇네요.”

“하긴……. 좀 그렇겠죠?”

혹여나 서아가 자신의 딸이라는 걸 밝히면 피해라도 갈까 봐 승아는 미안하단 말을 건넸고, 자신도 너무 깊게 파고들었다고 생각한 건지 이해리도 미안하단 말과 함께 아까 있었던 여자 무리로 향했다.

힐끔―

‘하……. 집중이 안 되네…….’

도저히 집중이 안 된다.

괜히, 관심을 가졌다가 이상한 일에 휩쓸리기라도 할까 봐 무시하려고 하는데, 자신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여자들을 바라보니 신경 쓰인다.

집중되지 않은 운동에 힐끔거리며 그쪽을 바라보고 있을 때.

모임에 리더로 모이는 여자와 눈을 마주쳤고, 곧 미소를 지으며 승아 쪽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따님이 가수라고요?”

“아, 네.”

“혹시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요? 그쪽도 아시다시피 이 아파트가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잖아요. 아무래도 저희가 들어보고 판단을 내려야 될 것 같아요.”

“… 그게 무슨 말이죠?”

황당했다.

아니, 돈 주고 매매한 아파트를 자신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자격을 논한다고?

승아 입장에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화였다.

“사실, 그렇잖아요. 자식 키우는 처지에서 주변 환경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아시지 않으세요?”

“그래서……. 저희가 문제라도 된 자는 건가요?”

“그걸 모르는 거죠. 그니까, 들어보고 판단을 내리려고요.”

“이봐요!!”

참, 뻔뻔했다.

이런 상황은 드라마에서나 나올 줄 알았건만, 막상 실제로 겪으니 화가 났다.

“그쪽은 뭐 얼마나 잘난 사람이길래,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어머, 혹시 한일 유통이라고 알아요?”

“전혀요? 처음 들어보는데요?”

“참 나……. 이번에 동성 그룹하고 계약해서 뉴스에도 떴는데, 그것도 모른다고요? 완전 경제 상식이 없는 사람이네…….”

개념이 없어 보이는 여자에게서 반가운 회사가 들려왔다.

동성 그룹.

자신의 딸인 서아의 남자 친구 집안이었다.

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말할 수 없었다.

아직 결혼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딸의 남자 친구일 뿐인데 어떻게 말한단 말인가.

계속해서 짜증나는 상황에 자신의 딸이 서아란 걸 밝힐까 고민했지만, 역시 참기로 결정했다.

어디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가, 더러워서 피하는 거지.

앞에 여자와 말다툼을 하는 것보다 피하는 게 낫다고 판단을 내린 승아는 헬스장에서 나가기로 결정했다.

짐을 주섬주섬 챙기며 나갈 채비를 하자, 뒤에서 험담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중에는 자신을 발끈하게 만드는 말들도 있었다.

계속해서 비꼬는 여자에게 따질까도 생각했지만, 이미 짐을 챙겼기에 출입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는 안 와야지.’

헬스장의 기구들이 아쉬웠지만, 이런 상황이 여러 번 연출 될 것 같다고 느낀 승아는 다시는 안 오리라 다짐했다.

바로 그때.

출입문과 반대편에 있는 입구에서 누군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승아는 방금 들어온 여자를 어디서 봤던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고,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서아 남자 친구의 어머니인 걸 알 수 있었다.

아까, 저 여자가 말했던 그 동성 그룹의 가족 말이다.

“어머!! 사모님, 오셨어요? 마침 잘 오셨어요. 그렇지 않아도 저희가 재밌는 주제로 이야기 나누고 있었거든요.”

“재밌는 주제?”

“이번에 새로 이사 온 여자를 마주쳤거든요. 글쎄, 자기 딸이 가수인데, 그 돈으로 이곳에 이사 왔다는 거 있죠?”

“… 그래? 안 그래도 이번에 아들이 집에 와서 말 한 게 있었는데……. 내가 아는 사람인가?”

밖으로 나가려던 승아는 고민했다.

인사를 건네야 할지, 무시하고 나가야 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왠지 이야기의 주제가 자신인 것 같아, 좀 더 들어보기로 결정했다.

“어머! 박제환 회장님이 이곳에 오셨어요? 혹시……. 저희 애기 아빠랑 자리를 만들어주면 안 될까요? 꼭, 한번 뵙고 싶다고 하는데…….”

“그건 좀 그러네. 우리 아들이 워낙 바빠서. 이번에 겨우 시간 내서 왔는데, 괜히 불편하게 만들면 좀 그렇잖아.”

“… 그런가요? 어쩔 수 없죠. 워낙 바쁜 사람이니까.”

그냥 갈까 고민하던 승아.

하지만 그냥 넘어가기엔 억울한 마음이 들어 쉽사리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그런 자신이 이상하게 보였을까?

여자 무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제환이 어머니가 자신을 발견했다.

“어머!! 반가워요. 서아 어머니 되시죠? 안 그래도 오늘 제환이한테 들었어요. 이 아파트에 이사 오셨다면서요?”

“아, 네……. 괜히 서아 도움받는 것 같아 한사코 거절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에이, 서아 어머니면 충분하죠. 그렇지 않아도 인사드리려고 했는데. 앞으로 우리 자주 봬요. 어차피 저도 서아를 며느리로 생각하고 있고, 제환이도 결혼하고자 하는 것 같던데……. 설마, 반대하시는 건 아니시죠?”

“저희는 서아 의견을 따르기로 해서요.”

역시 진짜 대기업의 가족들은 격이 다른 것 같다.

아까, 대화를 걸었던 여자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의 품격이 느껴진다.

마치, 아무런 정보가 없다 하더라도 대화만으로 상류층이란 걸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시 제가 더 나이가 많던가요?”

“그런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럼 편하게 언니라고 불러요. 이제 같은 주민인데, 헬스도 같이 하고요.”

“… 불편하시지 않을까요?”

“설마요!! 혹시, 제가 이러는 게 불편할까요?”

혹시나 제환이 어머니가 오해라도 할까 봐, 급하게 손사래를 쳤다.

“그럴 리가요.”

“그럼 언니 동생으로 지내면 되겠네요. 나중에 결혼하면 정식으로 인사하는 걸로 하고요.”

“좋아요, 언니.”

“아 차, 이쪽을 소개시켜줘야겠네요. 같은 아파트 주민이니 계속해서 마주칠 거예요. 그 전에 안면이라도 트는 게 낫지 않겠어요?”

승아는 고민했다.

언니에게 아까 있었던 일을 말할까, 말까 하는 고민.

자신이 고민하고 있는 게 느껴지기라도 했는지,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여자들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도지히 못 버티겠는지, 아까 자신을 비웃던 여자가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인사해온다.

“아, 안녕하세요……. 아까는 실례했습니다.”

“뭐야. 먼저 인사 나눴던 거야?”

“그, 그게…….”

언니의 말에 당황하는 여자.

아까 언니 말대로 계속해서 마주쳐야 될 사람들이었기에 그냥 좋게 넘어가기로 결정한 승아는 한 번 살려주기로 했다.

“처음 이사 온 주민이라 그런지, 관심을 가져주더라고요.”

“그래? 앞으로 친하게 지내. 이쪽은 우리 그룹이랑 계약을 맺은 회사의 사모님이고, 이쪽은 우리 제환이 장모님이 될 사람이야.”

“반가워요. 앞으로 자주 뵙겠네요.”

“반, 반가워요.”

한일 유통의 사모님이란 사람과 인사를 나눈 승아는 아까 대화를 걸었던 이해리에게도 인사했다.

여기 있는 무리 중 그나마 가장 호감이 가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뒤에서 남들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얼핏 들어보니 감싸주는 게 느껴졌고,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까, 이름이 이해리라고 했던 것 같은데…….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저, 저요? 이제 막 앞자리가 4로 바뀌었네요.”

“그래요? 제가 언니인데, 편하게 불러도 될까요?”

“물론이죠!!”

“앞으로 같은 주민인데 친하게 지내요.”

“좋아요, 언니!!”

뭔가, 미래 시댁의 힘을 빌린 것 같아, 약간의 찝찝함이 있었지만, 여자들의 기 싸움에선 이 정도 뻔뻔함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는 언니의 표정을 바라보니 뿌듯해하는 듯한 느낌이 든 것 같아, 불편함을 지울 수 있었다.

“자, 그럼 슬슬 씻고, 카페 가는 거 어때? 다들 시간 괜찮아?”

대화를 나누던 여자들은 박제환 어머니의 말에 다들 참석한단 말은 건넸고, 헬스 하는 걸 멈춘 채 샤워하러 향했다.

* * *

“제환아, 너 서아랑 결혼할 거 아니니?”

“맞는데요? 무슨 일 있어요?”

오랜만에 어머니 집에 찾아와 쇼파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던 박제환.

어머니가 볼 일을 마치고 들어오시더니 뜬금없는 질문을 건넸다.

“그럼 처가댁에 신경 안 쓸래?”

“… 무슨 일 인데요?”

“우리 아파트에 한일 유통 위주로 만들어진 모임이 있는데, 오늘 서아네 어머니랑 마주친 모양이더라.”

“… 설마 서아 어머니에게 되지도 않는 기 싸움을 걸었던 건 아니겠죠?”

만약 그랬다면 조금 화날 것 같았다.

한일 유통이라면 이번에 동성 그룹과 계약 맺은 회사.

한 마디로, 우리 그룹의 도움을 받은 회사가 서아 어머니에게 기 싸움을 걸었단 거다.

내가 생각하는 일이 일어났다고 하면 서아네 가족을 볼 낯이 없었다.

“엄마가 도중에 발견해서 다행이지. 아니면 그 여자들이 승아를 잔뜩 씹었을 거야.”

“… 가만히 두고 있었어요?”

“어머, 내가 가만히 있었겠니? 걔들한테 정확히 가르쳐주고 왔지. 승아가 제환이 너한테 어떤 존재인지. 아마, 다음부터는 그룹의 리더가 돼 있을 걸?”

“아무래도 처가댁에도 신경 써야겠네요.”

“좀 그래라. 아무리 그래도 결혼할 거면 어느 정도 도움은 줘야지. 그게 서아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도 맞아. 결혼식에 온 사람들이 뭐라 하겠어.”

어머니 말을 듣던 나는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주변에 무신경했나 보다.

“오늘 서아도 쉰다고 하니까, 같이 백화점도 가고 주변 사모님 좀 만나서 확실히 인식시켜야겠어.”

“… 그럼 저는 장인어른을 만나 볼게요.”

“그래.”

어머니 말대로 어떻게든 도움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조금 이따가 장인어른을 뵙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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