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 * *
미국에서 들려온 소식이 기사로 퍼져나가고, 이틀 뒤.
대통령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쪽에서도 JH 그룹에게 무엇을 줘야 될지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오랜 회의 끝에 나온 결론 JH 그룹에게 세금 감면 혜택을 준다고 한다.
예전이었다면 정당한 교환임에도 불구하고, 태클을 걸어올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 일이 있어서일까?
기업인이든 정치인이든 이번 일로 태클을 걸어 온 곳이 없었다.
‘하기야……. 태클을 걸어오던 정치인들이 어떻게 됐는지 봤으니까…….’
JH 그룹이 나서지도 않았다.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여 우리 그룹을 욕해오던 정치인들을 비판하기 시작했고, 곧 정치적 생명을 완전히 끝내 버렸다.
여기서 기업들이 나설 이유도 없었다.
이제 그들도 알 것이다.
JH 그룹 눈 밖에 나는 게 얼마나 위험한 건지.
그렇게 세금 감면과 함께 여러 가지 혜택을 받았고, 관련 혜택을 이용해 JH 그룹을 어떻게 더 성장시킬지 고민하다 보니 시간을 빠르게 흘러갔다.
흘러가는 시간 사이에 예상대로 미, 중 무역전쟁이 시작됐다.
대한민국은 우리 그룹의 말을 듣고, 미리 대비해와서일까?
생각만큼, 큰 영향을 받지 않았고, 비교적 조용하게 지나갈 수 있었다.
‘물론 한국만 조용했던 거지만.’
그 사이에 우리 그룹은 또 한 번의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다.
이번 일로 인해, 여의도를 넘어 월가의 시선이 모이기 시작했고, 한국에서 JH 그룹이 갖고 있던 이미지가 전 세계적으로 유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일론이 뭐라고 하던가요.”
“또 한 번 성장을 축하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만간 기업 시총 5위를 차지할 것 같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생각보다 빠른 성장 속도 군요.”
“저희 JH 자동차와 JH 배터리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저희가 상장을 안 하다 보니, 그로 인해 티슬라가 부가적인 이득을 얻는 거죠.”
뭐가 됐든 티슬라가 과거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한 건 맞았다.
그게 우리 덕분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더군다나 티슬라의 성장은 우리 그룹의 이득과도 같았다.
이전에 거래를 하면서 맞바꾸었던 지분 교환.
그걸 생각하면 우리 그룹의 자산이 올라간 거나 마찬가지라는 거다.
“이렇게 보니까, JH 그룹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상장하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로 성장하다니…….”
“다른 분들이 힘 써준 덕분이죠.”
“JH 그룹이 상장한다면 회장님의 개인 자산은 전 세계 10위 안에 드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이제는 부정할 수 없다.
명실상부하게 한국에서는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었다.
상장하지 않고, 배당금만 받은 상태로 말이다.
이 모든 걸 불법이 아닌 합법적인 선에서 이뤄냈다고 하니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을 거다.
미래지식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내 노력을 깎아내릴 순 없었다.
“그리고 「절대자는 휴식을 원한다」의 흥행몰이를 생각하면…….”
“운이 좋은 것 같습니다. 사업도 순항하고 있고, 작품도 대박이 났으니까요.”
“한국에서만 1,300만 관객입니다……. 더군다나 해외에서 더 인기 있단 걸 생각하면……. 이건 뭐 말하면서도 믿기지가 않군요.”
“마블 쪽에서도 힘 써줬으니, 고마울 따름이죠.”
이번에 상영한 「절대자는 휴식을 원한다」 작품.
마블에서 힘 써준 덕분일까?
역대 성적들을 갈아치우며 흥행몰이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1,300만 관객이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말이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번 작품도 시즌 5까지 예약돼 있었고, 따로 「절대음감」 작품도 촬영에 들어갔다.
이 두 작품의 수입만 생각하더라도 한국 내 개인 자산 10위 안에 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서아도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고…….’
「절대음감」 작품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애니메이션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일본에서 제일 인기 있는 애니메이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하니, 얼마나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서 OST를 서아가 맡아서 불렀고, 국민가수로 있던 서아는 또 한 번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요즘 하루하루가 만족스러울 정도로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바이오산업은 준비가 잘 되고 있나요?”
“회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많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원숭이, 박쥐, 거북이 등등 동물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바이러스를 안전한 환경에서 조사하고 있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위생에 더욱 신경 쓰도록 하세요. 돈이 얼마나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예, 회장님. 마스크도 공장 인수를 한 다음 24시간 돌리고 있습니다.”
“만족스럽군요. 비서실장님을 믿고 당분간 휴식 좀 취해도 되겠어요.”
완전한 휴식을 말하는 게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고생했지만, 나 역시도 눈, 코 뜰새 없이 바쁜 일상을 보냈다.
미, 중 무역전쟁을 대비하면서 해외로 출장이 잦았고, JH 중공업으로도 여기저기서 연락받고, 상대해야만 됐다.
지금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상태.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정도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그동안 서아도 바빴기에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적었단 말이다.
“최선을 다해서 회장님의 빈자리를 메꾸도록 하겠습니다.”
“비서실장님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겁니다.”
비서실장님에게 급한 일이 있으면 불러주라는 말을 건네고는 그룹에서 나와 집으로 향했다.
그동안 바쁜 일상 덕에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과 지인들을 만나야겠다.
일단, 가족들.
그다음은 승호를 비롯한 친구들을 말이다.
* * *
“운동 가려고?”
“그래야죠. 집에만 있으려니까, 뻐근하네요.”
“또, 밖에서 조깅하려 그러지?”
“그러지 않을까요?”
집에만 있기 뻐근해서 운동 나갈 준비하는 승아.
그런 그녀를 보고, 김승제가 뭔가 말할 게 있다는 듯 말을 걸어왔다.
“이왕 좋은 아파트 온 거, 아파트 전용 헬스장 이용하지, 그래.”
“… 좀 그래서요. 저희 힘으로 이곳에 온 것도 아니고, 서아가 해준 건데 뭔가 좀 그러네요…….”
“받기 전이야 모르겠지만, 도움을 받은 이상 불편한 마음을 가져선 안 돼. 그럴 거면 차라리 안 받는 게 나았지.”
“그런가요……?”
“집이 된 이상 제일 중요한 건 마음이 편해야지.”
사실 승아도 아파트 전용 헬스장을 이용하고 싶었다.
하지만 미지로 인한 두려움 때문에 용기 내질 못했다.
이런 고급 아파트 시설에는 주민들이 모여 하나의 소모임을 만든다고 들었다.
그 사이에는 각자 남편의 직업에 따라 지위가 나뉜다고 하고.
지금, 이사 온 아파트도 몇몇 소모임이 있고, 서로 남편끼리 잘 알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조심스러웠다.
혹시나 우리의 능력이 아닌, 딸의 능력 덕분에 왔다고 뒤에서 흠잡을까 봐.
자신에 흠이면 모르겠지만, 그 시선들이 서아에게도 향할까 봐 그게 걱정됐던 거다.
“그럼, 오늘 한 번 가볼까요?”
“부담스러우면 굳이 안 가도 되는데, 나는 좀 이용했으면 좋겠네. 어쨌거나 딸의 능력으로 온 거잖아. 만약, 서아 남자 친구가 도와줬다면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니고.”
“혹시 모르잖아요. 딸이 남자 친구 잘 만나서 호강한다 할 수도 있고.”
“그렇다고 평생 떳떳하지 못할 거야? 그리고 우리가 떳떳하면 되지, 그 사람들이 뭐라고 할 거야.”
승아는 남편의 말도 맞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떳떳하면 되는 건데, 굳이 남 시선을 신경 써야 되나 싶었고.
남편의 말에 용기를 얻은 승아는 오늘 처음으로 헬스장을 이용하기로 마음먹고, 옷을 갈아입고는 헬스장으로 향했다.
‘별거 없네…….’
오기 전부터 겁 먹었던 것과 다르게 별거 없는 것 같았다.
이곳에 처음 온 자신에게 약간의 궁금증이 담긴 시선만 느껴질 뿐, 그 이상의 시선은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이라도 동네 헬스장에 처음 온 사람이라면 호기심이 느껴질 거라고 생각한 승아는 운동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후후…….”
확실히 고급 아파트라 그런지, 헬스장에 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하나하나 이용해보면서 운동하는 게 재밌게 느껴졌다.
이번에는 어떤 기구를 사용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입구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언니. 이번에 남편이 거래처 하나 뚫었다면서요? 요즘 소문이 자자해요.”
“호호, 내가 잘한 거겠어? 그이가 능력이 있다 보니까, 그런 거지.”
“언니는 참 좋겠어요. 하긴……. 이런 외모를 가졌으니까, 한 회장님도 만날 수 있던 거겠죠?”
“얘는 참……. 말이라도 고맙네.”
승아는 소문으로 듣던 소모임인가 하고 흥미가 생겨 운동하는 척하며 귀를 기울였다.
“그나저나, 이번에 이사 온 세대가 조금 있는 것 같던데, 뭐 하는 사람들인지 알아?”
“스읍……. 제가 알기론 두 세대 정도가 GL 그룹 임원이고, 나머지는 투자자들로 알고 있어요. 한 세 세대 정도는 정보가 없고요.”
“… 정보가 없을 수가 있어?”
“그러게요……. 이쪽 바닥에서 정보가 없을 정도면 두 가진데…….”
“우리가 정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상류층이거나……. 로또 같은 거 당첨돼서 돈이 많아지거나 딴따라로 돈 좀 번 졸부이거나겠지…….”
승아는 딴따라라는 말에 기분이 상했지만, 이내 관심 끊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운동에 집중했다.
‘참 나……. 딴따라? 그럼 지들은 얼마나 잘 났길래.’
분명, 관심을 끄고, 운동에 집중하려고 했지만, 그게 잘 안되는 것 같았다.
계속해서 딴따라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참, 어이가 없었다.
자기들은 부모를 잘 만나거나, 남편을 잘 만난 주제에 노력으로 성공한 사람을 딴따라라 표현하다니.
직접 나서서 따지고 싶었지만, 그러다가 혹여나 서아에게 피해라도 갈까, 관심을 끄고 운동했다.
‘후……. 좀 쉬자…….’
한 참, 운동하다가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한 승아는 아까 들어왔던 여자들과 최대한 먼 쪽에 자리 잡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저 여자들만 아니었다면 헬스장에서 좋은 기억들만 가지고 갈 텐데, 앞으로는 시간을 새벽으로 조정하거나 늦으면 조깅을 해야겠다.
무작정 헬스장을 기피하기엔 이곳에 있는 많은 기구들이 승아의 마음을 빼앗아 버렸다.
‘뭐지…….’
다음엔 어떤 기구를 이용할까 고민하고 있는 승아.
그런 승아에게 한 명의 여성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누군가하고 호기심이 든 승아는 곁눈질을 통해 얼굴을 확인했고, 표정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 쪽으로 다가온 여자는 아까 이야기를 나누던 무리 중의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최대한 자신을 지나치길 바라는 마음으로 땅을 바라보고 있을 때.
어느새, 기척이 지근까지 다가왔고, 옆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안녕하세요. 처음 보는 얼굴 같은데, 반가워요.”
승아는 불길한 예감은 꼭 피해 가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고민했다.
이대로 무시를 해야 되나, 인사를 건네야 하나 하고 말이다.
고민 끝에 나온 결론.
무시했다가는 뒤에서 무슨 말을 할지 몰랐기에 최대한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이사 와서 초면일 거예요.”
“어머!! 진짜요!!?”
이번에 이사 왔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재차 확인하는 여자.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괜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제발 정상적인 인간이어라.’
승아는 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앞에 있는 여자가 정상적인 여자이길 바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