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 * *
서울의 한 술집.
두 명의 남성이 고기를 먹으며 소주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유……. 경제가 어떻게 되려고 그러냐…….”
“좀 더 지켜봐야 되는 거 아니냐? 그래도 JH 그룹인데.”
“얌마, 정신 차려. 미국 재무장관이 한국에 방문하고, 아무 말도 없이 미국으로 갔어, 이게 뭔 뜻인지 모르냐? 대통령 지지율 올리려고 구라 핑 쳤다는 거 아니야.”
“… JH 그룹이 뭘 얻으려고?”
“나야 모르지. 대통령이랑 JH 그룹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거나 했겠지.”
짠―
꿀꺽―
“크으……. 쓰다 써. 서민은 돈 벌어서 세금 갖다 바치면 그걸로 지들끼리 다 해 먹는데 무슨 의욕을 갖고 일을 하냐.”
“그래도 좀 기다려 보자. 솔직히 JH 그룹 때문에 국제 사회에서 발언권이 높아지긴 했잖아.”
“내 말이 그 말이야. 이대로만 해도 반은 가는데, 왜 무리수를 써서 망신당하냐는 거지.”
“후……. 답답하네.”
두 사람은 요즘 화제인 JH 그룹과 대통령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친구의 비판을 듣던 그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때까지, 박제환 작가가 주도한 일이라고 하면 내용을 모르더라도 무작정 믿던 팬 중의 한 명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만큼은 무작정 믿어주질 못하겠다.
당장, 결과를 봐라.
친구 말대로 재무장관이 한국에 방문했다면 뭐라도 피드백이 있어야 됐다.
그런 기대와 다르게 돌아온 반응은 침묵.
만약, 박제환 회장이 발표했던 물질이 가능성이 있다면 이런 반응이 나올 리가 없었다.
그래도 그는 한 번만 더 믿어보고 싶었다.
무작정 비판하기엔 이때까지 박제환 회장이 보여준 게 적지 않았다.
“야, 그래도 한 번만 믿어보자. 박제환 회장이다.”
“믿어서 어찌 됐는데? 지금 대부분 정치인이 그 둘을 욕하고 있어.”
“그 사람들은 대현 그룹하고 친했던 정치인들이잖아.”
“그래서 결과가 어찌 됐냐 이거지. 네 말대로 JH 그룹이 무언가 준비한 게 있다면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JH 그룹은 믿어주도록 하마.”
참……. 이럴 때면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친구를 설득하기 위해선 증거가 필요한데, 실제로 설득할 증거가 없지 않은가.
답답함에 뭐라도 달라진 게 없나 핸드폰을 들고 있을 때.
그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뭐라 했냐?”
“뭐가.”
“방금 뭐라 했냐고.”
“방금? JH 그룹이 준비한 게 있으면 무슨 일이든 믿어주겠다고?”
친구에게 재차 확인한 그는 핸드폰을 내밀어 보여줬다.
“이걸 왜……. 뭐냐…?”
“네 눈으로 확인하고, 직접 읽어 봐.”
“한국과 군사적 협력을 맺으며 적극적 구애를 보내는 미국…? 이게 무슨 국뽕 유튜버 같은 제목이야?”
“출처도 확인해야지.”
처음에는 자신도 눈을 의심했다.
친구 말대로 국뽕 유튜버가 쓸 법만 한 타이틀이 걸려있었다.
하지만 출처를 확인해보니 메이저 신문사.
한 마디로 진짜라는 얘기다.
“잠, 잠시만 내용은 뭔데.”
“사드 전액 면제, 미국 주요 회사들 한국에 투자, 군사적 협력의 수위를 높임, 관세 인하. 대충 살펴봐도 한국이 엄청난 혜택을 받고 있는데?”
“… 아니, 얘들 호구야? 왜 이래, 갑자기?”
“그만큼, 박제환 회장이 발표한 기술의 중요성을 알겠다는 거지.”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과연 이걸 보고도 친구가 부정할 수 있을지.
만약, 지금도 부정한다면 어떤 증거를 내밀어도 자신의 주관을 굽히지 않을 친구라는 거다.
“야……. 나 오늘부터 묻고 따지지도 않고, 박제환 회장만을 믿는다. 이거 미쳤는데?”
“이 정도면 정경유착이 아니라 나라 살리기 아니냐?”
“당연하지!! 와……. 잠만 기다려봐. 아까 개처럼 짖던 정치인 이름부터 확인하자.”
“이번 대통령은 무슨 일이 있어도 믿어준다. 대통령을 믿는 게 아니라 박제환 회장을 믿어서라도 지지한다.”
지금 술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응.
비단, 이곳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반응이 아니었다.
전국적으로 똑같은 상황이 일어나고 있었다.
* * *
“도대체 미국을 어떻게 구워삶은 게냐.”
“제가 한 게 뭐 있겠습니까? JH 중공업을 좋게 본 것 같습니다.”
“… 참, 손자긴 하지만 상상 이상의 일을 이뤄놓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걸 보면 현실감이 안 느껴지는구나.”
“앞으로 할 게 더욱 많으니까요.”
오랜만에 만난 할아버지.
이번에 미국에서 들려온 소식을 듣고, 집에 찾아오라는 말을 건네셨다.
할아버지가 저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도 이해가 갔다.
원전 산업에 대한 가능성을 잘 알고 있는 내가 보기에도 미국이 과감한 투자를 한 것처럼 보이니까.
“역대 대통령들이 하지 못 한 일을 순전히 제환이 네가 한 게야.”
“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할 생각도 없었겠죠.”
“에잉, 쯧쯧. 이러니까 천재들이 미움을 받는 게야. 그 사람들이 왜 생각조차 안 했겠어. 불가능한 걸 아니까, 생각조차 못 한게야.”
“… 이번에는 올리아라는 연구원의 도움이 컸습니다.”
“그 사람들이 JH 그룹에 붙어 있는 이유를 생각해 봐.”
“…….”
할아버지의 금칠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사실, 나도 인지하고 있다.
내가 한 일들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그걸 할아버지에게 직접 들으니 부끄럽게 느껴져, 겸손을 부린 거다.
“그래서 미, 중 무역전쟁은 아직도 터질 거라고 생각하느냐?”
“맞습니다. 어쩔 수 없는 흐름이에요. 아무런 제재 없이 시간이 흐른다면 미국은 중국에게 패권을 양보해야 되거든요.”
“중국을 높게 평가하는구나.”
“그만큼 그들이 이뤄온 성장은 무시할 만한 게 아니니까요.”
인정할 건 인정하고 가야 됐다.
아무리 사람들이 중국을 싫어하고, 중국이란 나라가 성장하는 방법이 잘 못 됐다고 하지만, 결론적으로 짧은 시간에 세계 패권을 다툴 정도로 성장했다.
방법이 도덕적으로 잘 못 됐다고 해도, 결론적으론 성공했다는 얘기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단, 모든 게 피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미, 중 무역전쟁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지만, 한, 일 무역전쟁은 피할 수 있었다.
지금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영향력.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더군다나 방사성 폐기물을 정화할 수 있는 물질은 일본에서 꼭 필요한 기술이었다.
어떻게든 JH 그룹에게 잘 보여야 된다는 얘기다.
“요즘 들어 제환이 너의 방향성을 잘 모르겠구나. 예전에는 작가로서 성공하고 싶은 게 보였는데, 또 최근 들어 보면 한국을 강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 같아.”
“…….”
“이 할아비한테 너의 인생 목표이자 도착점을 들려줄 수 있겠느냐?”
국제 정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할아버지가 뜬금없는 주제를 꺼낸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할아버지로선 충분히 궁금할 수 있을 것 같아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할아버지 말대로 처음에는 작가로서 성공하고 싶었다.
작가로서 큰 성공을 거두어 가족들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하지만 가족들에게 인정받고 나서 새로운 욕심이 생겼다.
할아버지의 평생 욕심인 동성 그룹의 재계 순위 한 자릿수를 이뤄주고 싶다고.
그때부터는 사업적으로도 욕심이 생겼고, 미래지식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결국 할아버지의 꿈을 이뤄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JH 그룹이 생각 이상으로 성장했다.
그다음에 이룬 목표.
어쩌면 과거로 돌아오고 나서 가장 큰 목표로 삼은 대현 그룹의 몰락이다.
아직 대현 그룹의 명맥이 남아있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명맥만 남아있었다.
과거, 그 시절의 대현 그룹은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다음은…….’
그다음은 나라를 강하게 만들고 싶어졌다.
어쩌면 전생의 동성 그룹을 한국이란 나라에 투영했나 보다.
외세에 휩쓸려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한국을 보고 안타깝단 생각이 들었고, 도울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외세에 흔들리지 않는 강국으로 만들고 싶어졌다.
할아버지의 질문에 답을 찾다 보니, 다시 한번 내 행동을 뒤 돌아 볼 수 있었고, 최종적인 목표를 되새길 수 있었다.
“생각이 많나 보구나. 할아비가 이 질문을 한 이유는 걱정이 돼서야.”
“…….”
“누군가는 제환이 네가 하는 일을 한 가지만 하더라도 평생이 걸린다. 지금 네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평생을 바쳐도 이루지 못 할 수가 있어.”
“…….”
“할아비는 걱정이 된 게야. 제환이 네가 이뤄낸 업적은 누구 하나 부정할 거 없이 최고라 말 할 수 있지. 어쩌면 역사에 기록될 정도로 말이야. 그럼에도 네가 만족하지 못 할까 봐 무섭구나. 남들이 인정한다 한들 자신이 인정하지 않으면 그것만큼 불만족스러운 게 어딨겠니.”
할아버지가 어째서 그런 질문을 한 건지 이해 갔다.
할아버지는 걱정하는 거다.
내 목표는 한국을 강대국으로 만들고, 작가로서 대성공을 얻는 거다.
방금 말한 것처럼 평생을 가도 이루기 힘들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할아버지 말처럼 인생의 마지막에서 후회할 것 같지 않았다.
목표를 위해 걸어온 발자국이 남아있을 거고, 그 발자국은 곧 내가 이루지 못한 목표를 후대의 인물이 따라갈 수 있는 이정표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할아버지는 제가 이루고자 하는 바를 못 이룰 사람이라 생각합니까?”
“… 제환이 네가 어떤 아이인지는 잘 알지만…….”
“이때까지 할아버지가 본 모습. 저는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
“지금까지 달릴 준비를 하고 있던 거지, 달리지도 않았단 얘기입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거?
물론, 많은 것을 해 왔고, 엄청난 업적을 세운 것도 맞았다.
그렇다고 만족하고 있냐?
그런 것도 아닌 게, 방금 말했듯 이때까지 해왔던 행적들은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올리아가 발명할 물질.
그걸로 챙길 수 있는 국제 사회의 입지.
그 모든 과정에서 얻어지는 수익들.
욕심을 줄여 인재들에게 재투자하는 과정들.
이 모든 것들이 미래의 나에게 힘이 돼 줄 거다.
‘미래의 지식도 말이지…….’
아니, 어쩌면 미래의 지식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이미, 많은 것이 전생과 달랐고, 더 이상 같은 과거가 반복되기도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내 생각에서 반복될 과거는 딱 두 가지가 있었다.
미, 중 무역전쟁은 준비를 마쳤으니 젖혀두고, 코로나와 러시아 우크라이나의 전쟁.
이 두 가지는 무조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미 과거부터 이어져 온 인과가 맞물리고 있다.’
두 가지는 내가 돌아온 과거 보다 훨씬 이전부터 이어져 온 인과.
어떤 방식이든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 2년. 2년 안에 모든 준비를 마칠 생각입니다.”
“2년이란 시간으로 정한 이유가 따로 있는 게냐?”
“그때는 자신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JH 그룹만으로 이겨낼 자신이. 그리고 2년이면 서아도 많이 기다렸잖아요.”
“그 말은…….”
“결혼해야죠. 언제까지 서아에게 기다려주라 할 순 없으니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2년이면 충분할 것 같다.
그때부터는 미래가 달라진다 한들 내가 조정 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장 한, 일 무역전쟁만 봐도 그렇다.
과거에는 일어났던 일이지만, 현재는 JH 그룹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그런 상황.
앞으로는 그런 상황을 조정할 수 있을 정도로 JH 그룹을 키워낼 생각이다.
그 과정. 2년이면 길고도 충분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