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145화 (145/175)

145화

* * *

“미치겠네……. 아직도 연락이 온 게 없는 건가?”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후……. 시간이 거의 다 돼가는데…….”

집무실에서 인터넷 기사를 찾아본 대통령.

그는 미칠 것 같았다.

분명, 미국의 재무장관이 말 한 이틀이란 시간은 지났다.

더 이상 침묵을 고수하긴 어렵다는 말이다.

지금 국내에서만 여론이 안 좋은 게 아니었다.

국내는 기본으로 깔고 가고, 해외에서도 비난이 이뤄지고 있었다.

그들은 관련 정보를 줄 수 있냐는 부탁을 해왔고, 우리는 어떠한 대답도 내놓지 않고 있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한 마디로 침묵으로 버틸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왔단 얘기.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대통령은 핸드폰을 들어 이전에 받았던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 전화 받았습니다.

통화음이 몇 번 울리고,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영어.

재무장관의 목소리였다.

“그때 약속하신 이틀이 지났습니다. 더 이상 기다리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각국에서도 압박이 들어오고 있거든요.”

- 오우……. 이거 참 죄송하게 됐군요. 그렇지 않아도 연락드리려고 했는데…….

“이 이상은 버티지 못합니다. 오랫동안 함께해온 우방국이었기에 다른 나라보다 배려해줬지만, 더는 배려차원에서는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 물론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님과 같이 있습니다. 한번 통화해 보겠습니까?

재무장관이 미국의 대통령을 바꿔준다는 말에 잠시 당황했지만, 정세환은 굳이 부담스러워해야 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방금 말했듯, 미국에게 먼저 말하고 기회를 준 건 일종의 배려였다.

이 기술을 가지고 다른 나라와 딜을 하면 어떻게 될까.

미국도 적잖은 부담을 가질 거다.

그걸로 인해, 척을 질 수 있지만, 그렇다고 미국에서 이 기술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자신감을 가진 정세환은 바꿔주라는 말을 건네며 당당한 태도로 미국의 대통령을 마주했다.

“오래간만입니다. 그때 취임하고 나서 전화 통화 이후 이렇게 통화하는 건 처음인 것 같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렇게 좋은 주제를 가지고, 통화를 나눌 수 있어 참 다행입니다.

“아까 재무장관에게 말했듯, 더 이상 침묵을 고수할 순 없습니다. 다른 국가에도 해당 정보를 넘겨야 되거든요.”

-허허, 당연히 그래야죠. 저희가 뭐라고 그걸 막겠습니까. 이틀이라는 시간을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조금의 대화를 나눠주실 수 있습니까?

미국에서 해당 정보를 가지고, 결단을 내려서일까?

분위기를 보아하니 협상하려나 보다.

어차피, 이틀이란 시간을 기다린 만큼, 잠시 정도는 괜찮았기에 흔쾌히 알겠다는 답변을 건넸다.

-지금부터는 오프 더 레코드라 생각하고 말하겠습니다.

“… 그러시죠.”

-솔직히 이번 보고서를 받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한국을 인정해오고, 가능성을 크게 평가했다지만, 이번 일은 그 이상의 결과물이었거든요.

“그렇습니까?”

-그걸 저희만 생각하는 게 아닐 겁니다. 이번 결과물. 모르긴 몰라도, 주변국에서 심한 압박을 가해 올 겁니다.

정세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세상에 드러낸 이유.

그만큼, JH 그룹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 때만 하더라도 많은 압박과 시행착오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 이면에 미국의 도움을 받았단 건 알고 있었지만, 이번 일도 JH 그룹 회장이 적재적소로 타국을 이용할 거라 생각했다.

- 그래서 한 가지 제안하고 싶습니다.

꿀꺽―

드디어 올 것이 왔나 보다.

자신이 이 제안을 들어도 되는 권한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졌다.

- 저희 미국에게 10퍼센트 지분을 넘겨주시죠.

“…….”

아직까지 판단하긴 일렀다.

10퍼센트라는 지분으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부터 판단을 내려야겠다.

“그걸로 저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 록히드 마틴의 지분 10퍼센트. 그리고 미국의 절대적인 지지. 사드 비용 면제. 전쟁이 일어난다면 최우선으로 한국의 편을 들어드리겠습니다.

“…….”

- 그리고 록히드 마틴의 지분 10퍼센트의 의결권을 드리겠지만, 저희는 의결권을 갖지 않겠습니다. 물론 JH 그룹이 이전 방식처럼 상장하지 않는다면 이것도 의미 없겠지만, 최우선으로 JH 그룹의 의견을 따르도록 하죠.

“문서로 작성할 수 있는 겁니까?”

- 물론입니다. 단, 세상에 드러나서는 안 되지만요.

정세환은 조건을 듣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기껏해야 JH 배터리처럼 다른 나라로부터의 압박을 막아주고, 약간의 돈을 쥐여주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 들려온 조건.

하나하나가 경제적인 가치와 군사적 가치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조건이었다.

일단 록히드 마틴의 지분 10퍼센트.

이 정도면 미국에서 수출 규제하는 전투기들도 수입할 수 있는 조건이 생길 거다.

그것뿐만 아니라, 한 참 시끄러운 사드.

사드 비용을 아예 없앤다고 하면 잡음을 줄일 수가 있었다.

어차피 미국과 손잡기로 마음먹으면 사드가 아니더라도 중국과 러시아와는 척질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원전산업을 밀고 가려는 지금은 러시아와의 관계 유지가 힘들다고 봐야 된다.

‘미쳤군…….’

그다음에 의결권.

미국은 JH 중공업의 지분을 원할 뿐, 그 어떠한 개입도 안 하겠다는 얘기다.

한 마디로 다른 나라에 지분을 넘기든, 어떤 경영을 펼치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얘기.

자세한 건 박제환 회장과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지만, 대한민국 처지에선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문제는 박제환 회장에게 너무 많은 권력이 쏠린다는 건데…….’

여기서 참고해야 될 점…….

저 제안들이 한국을 향한 게 아니라, JH 그룹한테 향한다는 거다.

록히드 마틴의 지분도 마찬가지.

대한민국 정부의 것이 아니라 JH 그룹의 것이라는 거다.

그렇게 되면 한 사람한테 너무 많은 권력이 쏠리게 된다.

‘그럼에도 받아야지…….’

그런데도 거절할 수 없다.

일단 한국의 국민이 저런 힘을 가진다는 거니까.

“미국이 원하고자 하는 바는 잘 알겠습니다. 제가 박제환 회장과 연락을 나눈 다음 결정지어도 되겠습니까?”

- 편하게 생각하십쇼. 어차피, 결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건, 대통령님이 피해를 보는 거지, 저희 미국은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습니다. 단, 긍정적인 답변을 바랄 뿐이죠.

“조금 이따가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 제 전용 핸드폰으로 연락해주시죠.

미국의 대통령도 이번 일에 사활을 걸었는지, 곧바로 개인 핸드폰 번호를 건네줬다.

번호를 기억한 정세환은 곧바로 전화를 끊고, 박제환 회장에게 연락할 준비 했다.

‘… 근데 뭐라고 말하지?’

막상 전화하려고 하니까 어떻게 말 해야 되나 두려워졌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인 자신이 이 사이에 끼기 위해선 정부도 얻는 게 있어야 됐다.

한 마디로, 미국이 박제환 회장에게 제안했던 것처럼 대한민국도 무언갈 줘야 된다는 얘기.

전화를 걸기 전.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져 왔다.

‘중간에서 이게 뭔 고생이냐…….’

어쨌든 언젠가 해야 할 말이었기에 애써 괜찮을 거라고 자위하며 박제환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지이잉―

미국이 어떻게 반응해올지 궁금함을 느끼던 박제환.

핸드폰에 걸려 온 전화를 보고 미소를 띠었다.

드디어, 대통령이 미국에서 연락받았나 보다.

“전화 받았습니다.”

- 접니다.

“혹시 미국에서 연락이 온 겁니까?”

- … 맞습니다.

역시 예상이 맞았나 보다.

과연 미국은 어떤 조건을 걸어왔을까.

- 사실, 미국에서 한 가지 제안을 걸어왔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시죠. 어차피 미국 측이 한 제안일 테니, 대통령님과 별개로 생각하겠습니다.”

- 미국에서 제시한 건, 록히드 마틴의 지분 10퍼센트, 사드 비용 면제, 절대적인 지지였습니다.

“흠……. 전부 다 우리 그룹을 위한 제시 보다는 한국을 위한 제시군요.”

물론, 안 좋은 제안이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내용들 하나하나가 우리 그룹이 저 권한을 갖는 것보다 한국이 갖기에 좋은 권한이었다.

- 맞습니다. 그 대가로 바라는 건 JH 중공업 지분 10퍼센트. 대신 의결권이 없는 지분으로 받겠다 합니다.

대통령의 말을 들은 나는 손익을 계산했다.

일단, 계산에 앞서 무조건적으로 JH 그룹만 생각해서는 안 됐다.

어디까지나 한국이란 나라가 강해지길 바라면서 대통령의 희생을 바랐다.

그만큼, 우리 그룹도 양보할 건 양보해야 됐다.

‘그렇다고 손해를 봐선 안 되겠지만.’

탁― 탁―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손익 계산을 이어갔다.

일단, 10퍼센트라는 지분.

의결권이 없는 만큼, 큰 의미가 있는 게 아니다.

미국에서도 최소한의 보험을 걸어둔 거다.

자신들이 JH 그룹을 돕는 것은 JH 중공업에 지분이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겸사겸사 그와 같은 이유로 다른 나라가 JH 중공업을 보고, 압박해오는 걸 막기 위해서 한 행동이다.

그로 인해, 양보받은 것.

대한민국을 강하게 만들 수 있는 조건들이다.

대한민국의 원전 산업이 다른 나라 입김으로 흔들리지 않게 말이다.

요약해보자면…….

자신들이 가질 수 없을 거라 판단되어, 우방국인 한국을 강하게 만든다.

동시에 자신들이 다른 나라로부터 개입할 명분도 챙기면서 우리 그룹의 환심을 얻는다.

이틀 간의 시간 동안 많은 얘기가 오갔을 거라고 예측할 수 있었다.

“한 번 미국에 이렇게 제안해 보시겠습니까? 지금 말해온 제안들 한국 정부가 갖는 걸로 하는 건 어떠냐고 말이죠.”

- … 그게 무슨…….

“대통령님이 생각해도 저 조건들이 JH 그룹에게 이득이라 생각하십니까? 저는 JH 그룹보다는 한국에 필요한 조건이라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사드 비용 면제. 이게 저희 그룹을 겨냥한 조건일 리 없지 않습니까.”

- 정, 정말 그렇게 말 해봐도 되겠습니까?

내 말을 들은 대통령이 믿지 못하겠다는 반문을 해왔다.

하기야, 사기업의 업적으로 한국을 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데 어떻게 안 좋아할 수가 있겠나.

하지만 우리 그룹도 손해만 볼 수 없었다.

“대신 그에 상응하는 조건들을 대한민국에서 보장해주셔야겠습니다.”

- …….

“설마, 이걸 저희 그룹의 이득이라고만 생각하진 않겠죠? 대한민국 정부가 록히드 마틴의 지분을 돈이 있다고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을 거라 믿습니다.”

- 그건 맞지만…….

“그리고 정부에게도 5퍼센트의 지분을 넘겨드리도록 하죠. 이 지분은 대통령님이 국정을 움직이는 데 명분으로 작용할 겁니다.”

정부에게 5퍼센트의 지분을 넘기는 이유.

대통령에게 명분을 챙겨준 셈이다.

아무런 대가 없이 대통령이 미국과 JH 그룹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

앞서 경험한 바 있듯이 정치권에서 압박이 들어올 거다.

사기업을 위해 대통령이 움직이고 있다고.

정경유착을 들먹이면서 말이다.

그런 여론을 사전에 막음은 물론, 원전 산업을 이어가면서 정부의 도움을 받을 때, 비교적 쉽게 받을 수 있도록 실리를 챙긴 거다.

“물론 JH 중공업의 지분 15퍼센트에 걸맞은 가치를 대한민국 정부에서 챙겨줘야 될 겁니다. 한 번 장관들끼리 모여서 이야기해 보신 다음 결정되면 알려주시죠.”

- … 조금 이따가 연락드리겠습니다. 이거 고래 사이에 껴서 새우 등이 터지고 있군요.

“그런 말씀 마시죠. 대통령님이 어떻게 새우입니까.”

- 그런데 왜 이렇게 새우로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새우가 맞았다.

그리고 위로의 말을 보내고 싶다.

앞으로는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와 협상에서도 새우 위치에 있을 확률이 다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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