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나와 나눈 대화들이 거짓이 아니었을까?
청와대로 복귀한 대통령은 각 장관들을 불러 모아 회의했다고 한다.
일단 미, 중 무역전쟁.
그저 지켜만 보는 게 아닌, 기정사실인 듯 대응하기로 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정부에서 회의로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기업들에게도 대비하라는 메세지를 보냈다.
그 전부터, 우리 그룹을 보고 긴가민가하던 기업들은 정부에서조차 경고하자 다들 몸을 사리기 시작했고, 해외 의존도를 극도로 낮추기 시작했다.
‘좋은 방향이다.’
아주 좋은 방향이었다.
국내 의존도를 높인다는 건, 신냉전 시대에서 피해가 줄어든다는 얘기다.
지금 당장은 수익이 줄어들 수 있다.
이것 또한 예방주사라고 생각한다.
막상, 나중에 가서 대비하려고 한다면 지금보다 차원이 다른 손해를 입게 된다.
이 손해는 기업들뿐만 아니라, 국민에게도 영향이 가고, 전반적인 경제침체를 불러왔다.
대통령이 하는 일들은 피해를 완화시키는 거다.
이걸 보고 호들갑 떤다고 대통령을 욕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람들은 미래보다 현실을 보고 판단하니까.
“대통령이 큰 결단을 내렸나 보더구나.”
“얘기를 나눠 보니까, 괜찮은 것 같더라고요.”
“제환이 네놈이랑 이야기를 나누면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얘를 상대하는 게 아니라 인생을 한 번 살아 본 노인네랑 이야기하는 것 같다랄까?”
“할아버지가 그렇게 느끼셨다니, 기분이 묘하네요. 저보다 훨씬 긴 생을 사신 분인데.”
“지금 늙었다고 놀리는 게야?”
“… 설마요.”
나와 대통령이 만남을 가지고, 대통령의 행동이 바뀐 게 궁금해서일까?
오랜만에 자신의 집으로 오라는 할아버지의 말을 들었다.
나 역시 할아버지 얼굴을 안 본 지 꽤 됐기에 흔쾌히 알겠다는 말을 건넸다.
“그건 그렇고 이제 소설은 안 쓰는 게야? 그 정도면 많이 쉰 거 같은데?”
“무슨 소리세요, 할아버지……. 저 지금 회사 일 때문에 바빠 죽겠는데, 많이 셨다니요.”
“에잉 쯧쯧……. 작가가 집필에 집중해야지, 어째서 사업에 집중하냔 말이다. 그럴 거면 사업만 해.”
“…….”
“그렇다고 진짜로 사업만 하는 건 아니겠지?”
할아버지는 자신이 말하고도 혹여나 그 말이 씨앗이 될까, 눈치를 보며 불안해하셨다.
“2년 정도만 빡세게 일하고, 다시 집필할 거예요. 안 그래도 요즘 다음 작에 대해 고민하고 있거든요.”
“2년이라……. 이 할아비보고 늙어 죽으라는 게냐?”
“어쩔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2년보다 훨씬 오래 사실 거 잘 알고 있으니까, 앓는 소리 하지 마십쇼.”
“손자란 놈이 효도할 줄 모르고……. 그래서 대통령이 저렇게 바뀐 이유가 대한민국을 위해서 일하기로 했다고?”
말을 이어가던 할아버지의 표정이 진지해지면서 물어온다.
“맞습니다. 그래서 도와주기로 했고요.”
“잘했구나. 언젠간 대한민국의 전반적인 시스템을 바꿀 사람이 필요했는데…….”
“할아버지도 느끼고 계셨군요.”
“알다마다. 단지, 외면했을 뿐이다. 내가 감히 뭐라고 대한민국을 바꾸겠느냐. 당장, 동성 그룹만 해도 벅찬데.”
하기야…….
내 전생도 마찬가지였다.
동성 그룹만 지키기도 벅차니, 대한민국이 어떻게 되든 상관을 안 썼던 것 같다.
“그나저나, 대통령도 보통 사람이 아니군. 지금 말 들어보니까, 아예 전반적인 시스템을 뜯어고친다고 하고 있어.”
“그래야죠. 연금이나, 정책들이 너무 한 세대를 겨냥하고 있어요. 이러니까, 지역감정이 생기고, 세대 간에 갈등이 생기는 거죠.”
“정치인 입장에서는 그걸 놓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정치인이 아닌, 대통령이라면 해야 되는 거죠.”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아느냐? 그랬으면 대한민국은 진작에 일본을 넘어섰어.”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기회가 왔을 때, 바꾸려 하는 거고.
“결국은 제환이 네가 준비했던 대로 원전 산업은 다시 일어서게 됐구나.”
“어쩔 수 없습니다. 매년 소비되는 전력을 생각하면 필요악이라고 할 수 있죠.”
“하여간 난 놈은 난 놈이야. 일찌감치 준비하고 있다니……. 이러니, 대현 쪽에서 쪽도 못 쓰고 쫓겨난 게지.”
“그래도 갈 길이 멉니다.”
사실, 말이야 대한민국을 강국으로 만들겠다고 했지만, 대통령 앞에만 가시밭길이 아닌 나 역시 많은 고난이 있을 걸 잘 알고 있다.
“제환이 네 말이 맞다. 갈 길이 멀지. 지금은 대중들이 몰라서 괜찮지만, 조만간 이 사실이 알려지면 어떻게든 깎아내릴 거다.”
“…….”
“정치란 그런 게야. 야당으로선 대통령이 되고, 공약을 정반대로 수행하는 대통령만큼, 좋은 먹잇감이 없으니까.”
“그렇겠죠…….”
“더군다나 지금 하는 말을 들어보니 여당도 대통령 편을 들어줄 것 같진 않구나. 정치인들이 사방에서 공격해올 텐데……. 참 쉽지 않겠구나.”
나도 잘 알고 있다.
당장, 제대로 된 정보를 모르는 대중 입장에선 충분히 화날만했다.
공약을 보고 뽑은 대통령이 1년밖에 안 지났건만, 자신의 공약을 철회한다.
당연히 지지자들이 돌아설 건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이겨내야 됐다.
대중들이 돌아설 거도 다 알고 있었다.
단지, 시기 문제일 뿐.
그래…….
알고 있었는데, 그날이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은 몰랐다.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고,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다.
야당이 그사이에 정보를 알아서일까?
탈원전을 고집하던 대통령이 1년도 지나지 않아, 공약을 철회한다며 언론플레이를 걸어왔다.
대중들은 원전산업의 필요성 보다는 대통령이 공약을 안 지켰다는 데에 시선이 모였다.
당연히, 야당을 지지하던 사람들은 좋다고 물어뜯었고, 여당을 지지하던 사람들도 자신을 배신했단 생각에 많은 불만을 드러냈다.
그래서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되길 바라면서 기자들을 불러 모았다.
찰칵찰칵―
대통령 공약에 대한 얘기가 나올 걸 알고 있어서일까?
많은 기자들이 모여 있었다.
다행인 건, JH 그룹의 기자 회견에선 소란스러운 사람을 쫓아낸단 사실이 널리 퍼져서 정숙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 현 정권이 원전산업에 집중한다는 말을 듣고, 대중들이 일어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찰칵―
타닥타닥―
“어이가 없습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앞장서는 대통령이 단지 공약의 반대로 행동했다고, 지탄받는 이 상황이 말입니다.”
“반대로 묻고 싶습니다. 자신이 잘 못 됐단 걸 알게 된 사람이 인정하지 않고, 계속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그게 아닌 자신의 잘 못을 인정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 어떤 게 맞다고 생각합니까.”
“만약, 전자가 맞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계속 대통령님을 지탄하셔도 됩니다. 단, 후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당장 비판을 멈추고, 지지해야 됩니다. 여당과 야당이 돌아선 마당에 국민들마저 돌아선다면 대통령님은 한국을 위해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내 말이 이어질수록 기자들의 타이핑하는 소리가 커지며, 몇몇은 급히 핸드폰을 들어 밖으로 나간다.
지금 기자 회견이 얼마나 논란이 될 줄은 잘 알고 있다.
어쩌면 정경유착이 아니냐며 비판할 사람도 있을 거고.
이제는 모르겠다.
일일이 그런 시선을 신경 써서 해야 될 일들을 미루고 싶지 않았다.
대통령도 저렇게 용기 내줬는데, 나 역시 할 수 있는 건 해야 되지 않겠나.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대통령님이 하려는 일들은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하는 일들이란 걸.”
“물론, 믿지 못할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주변에서 욕하는 사람들도 많겠죠. 하지만 믿고 지켜봐 주십쇼. 저 역시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대통령님이 하려는 행동이 대한민국의 해로 다가온다. 저부터 앞장서서 촛불을 들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돈 욕심이 있었다면 절세를 했을 겁니다. 제가 정치 욕심이 있었다면 정치인을 했겠죠.”
“제가 바라는 건, 제 주변 사람들이 잘 사는 것. 주변에는 대한민국의 국민들도 포함돼 있습니다.”
어느 정도 내 진심이 닿았으면 좋겠다.
지금 하는 연설은 오랜 기간 준비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의견을 구한 것도 아니다.
온전히, 내가 느끼고 국민들에게 원하는 바를 전달하는 거다.
진실을 전하면 누군가는 알아주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이때까지 저희 JH 그룹은 말이 앞선 적이 없습니다. 지금 JH 중공업은 원전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을 막을 수 있는 물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미 윤곽이 잡힌 상태고, 상용화까지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겁니다.”
올리아가 이전부터 준비해왔던 게 있어서일까?
자본력과 여러 인력이 붙어서 연구를 진행하니, 곧바로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올리아의 발표를 들어보니, 전생에 봤었던 형태 그대로의 물질이 있었다.
그래서 고민했다.
이걸 숨길지, 아니면 들어낼지.
당연히 숨기는 게 훨씬 이득이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그룹의 이득보다 대한민국을 건강하게 만드는 데 집중하고 싶었다.
웅성웅성―
내가 했던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나 보다.
처음엔 조용하던 현장이 몇몇 경악스러운 표정과 함께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 물질은 대한민국을 강하게 만들어줄 겁니다. 제가 이 발표를 지금 하는 이유. 대통령이 원전산업을 지속하는 데 결정한 이유도 이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 뒤로도 대통령을 믿어달란 얘기가 이어졌다.
그게 안 되면 나를 믿어주라며 설득했다.
그렇게 연설이 끝나고, 기자들이 손을 들며 질문해 온다.
“혹시 원전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을 정화한다는 게, 방사능을 정화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까?”
“그렇습니다.”
“… 그 물질이 국가의 지분도 있습니까?”
“아직은 없습니다. 앞으로도 없을 수 있고요. 만약 여, 야당 정치인들이 지금과 같이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평생 국가와 나눌 생각은 없습니다.”
이건 협박이었다.
만약, 지금처럼 계속해서 공격해 온다면 당신 때문에 이 물질을 독식하겠다고.
몇몇 정치인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그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분노를 온전히 감내해야 될 거다.
“오늘의 발언으로 인해, 정경유착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계속해서 지켜봐 주십쇼. 만약 정부에서 저희 그룹에게 특혜를 준다면 한 번 더 여러분이 촛불을 들어주십쇼. 민주주의 힘을 보여 달란 말입니다.”
“이 물질의 파급력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거라 판단됩니다. 그럼에도 지켜낼 자신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어떻게든 지켜낼 겁니다. 어디든 욕심내 보십쇼. 아니, 어느 국가든 욕심을 내 보십쇼. 단언컨대 욕심을 드러내는 순간, 그 국가는 수입할 생각을 접어야 될 겁니다.”
이게 저번부터 말했던 국제적인 영향력이다.
환경에 민감한 요즘.
과연, 이 물질을 수입 안 하고 버틸 수 있는 나라가 있을까?
결코 없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발… 각자 개개인의 이득은 잠시 내려두고, 건강한 한국을 만들기 위해 조금만 참아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만약… JH 그룹이 이 정도의 희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달라진 게 없다면……. 저 역시 한국을 포기하겠습니다.”
협박은 정치인과 다른 나라에만 향한 게 아니었다.
국민에게도 협박과 동시에 부탁할 생각이다.
내가 이렇게 했음에도 달라진 게 없다면…….
그때는 미련 없이 포기할 생각이다.
어쩔 수 없이 JH 그룹은 미국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제발, 국민들이 정상적인 판단으로 다 같이 힘 내줬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를 외세로부터 지켜내며… IMF를 이겨내고, 대통령을 탄핵시켰을 때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