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140화 (140/175)

140화

내가 겪은 미래의 한국은 암울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지금부터 서서히 대두될 저출산.

당연하게도 줄어가는 인구수.

새로운 세대들이 부양해야 될 윗세대.

그로 인해 박살 난 연금.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기가 힘들었다.

그럼에도 정치인들은 특정 세대들을 위한 정치를 이어갔다.

당연한 거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해 행동하니까.

하지만 대통령만은 달라야 했다.

특정 지지율이 높은 세대를 의식할 게 아니라 한국만을 생각했어야 됐다.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을까?

자신의 임기 동안 연금을 손댄 대통령은 없었고, 쌓이고 쌓인 문제점들은 한 번에 폭발해 종국에는 0.5의 출산율까지 내려가고 말았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걸 막기 위해서라도 눈앞에 있는 대통령이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아무리 내가 발 벗고 뛰어다녀도 나 혼자 하기엔 벅찬 일들이 많았다.

가령, 곧 있으면 발발할 코로나.

과연 우리 그룹이 대비한다고 해서 피해가 없을 수 있을까?

단언컨대, 막대한 피해가 반복될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하지만 정권이 우리와 함께한다면?

정권에서도 코로나의 위험성을 알리고, 처음부터 강한 규제를 들고 온다면?

적어도, 전생에 겪었던 코로나 시대보다는 비교적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을 거다.

전생의 한국을 생각하며 긴장된 마음으로 대통령을 바라보고 있을 때.

드디어 대통령이 결정을 내린 듯 입을 열었다.

“저는 후대에 부끄럽지 않은 대통령이 되고 싶습니다.”

“… 그 말은.”

“당장 사람들이 탄핵을 외치고, 레임덕에 걸린다고 해도 이 마음은 변치 않을 겁니다.”

“…….”

대통령의 입에서 원하는 대답이 나오자, 긴장된 마음이 풀린다.

사실, 앞에 있는 대통령은 후대에 좋은 인식을 남기진 않았었다.

물론, 여러 가지 상황이 겹쳤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아갈 방향은 존재했었다.

단지, 도전을 안 했을 뿐.

도전하기가 쉽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다.

미래를 모르는 상황에서 괜히 도전했다가 어떤 책임을 지라는 말인가.

하지만 이번엔 도전할 수 있게 도울 생각이다.

미래를 알고 있는 내가 나서서 도와준다면 충분히 힘든 상황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솔직히 거부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지금 내린 결론이 얼마나 힘든지도 잘 알고 있고요.”

“맞습니다. 솔직한 말로는 도망가고 싶더군요. 하지만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인식하니 부끄러워졌습니다. 제가 생각해야 될 건, 대한민국의 발전이죠. 그걸 위해 힘쓰라는데 도망가고 싶다라……. 대통령으로서 실격이나 마찬가지더군요.”

“한 국민으로서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앞으로 많이 도와주십쇼.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 볼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계획했던 몇 가지를 조금은 수정해도 될 것 같다.

원래라면 이번 정권 다음에는 야당이 정권을 갖도록 하려고 했다.

원래라면 말이다.

대통령이 마음을 돌린 지금은 조금 더 생각해 봐야 될 것 같다.

대통령은 빈말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눈빛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떤 각오를 다진 건지.

그 어느 때보다 대통령이 멋있어 보였다.

“우선 아까도 말했듯, 가장 처음 해야 될 건 탈원전 정책의 철수입니다.”

“그런가요?”

“물론 힘드실 겁니다. 공약을 전면에서 철회하는 거니까요. 그래도 해야 됩니다. 탈원전은 시기상조입니다.”

“뒷받침되는 근거가 있을까요? 저도 시기상조라는 건 잘 압니다. 하지만 선진국 반열에 오르면서 환경 규제를 맞추기 위해선 어쩔 수 없습니다.”

고민된다.

올리아의 존재를 말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

올리아의 가치는 쉽사리 매길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JH 중공업과 올리아의 발명품이 합쳐지는 순간.

말 그대로 전 세계와 협상을 할 수 있는 무기가 되는 거다.

순식간에 나라의 위상이 달라진단 말이다.

이 사실을 대통령이 알게 되고, 주변인들이 알게 됐을 때, 들어낼 이빨이 신경 쓰였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대통령님,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노 레코드이며 엠바고입니다.”

“… 절대 비밀로 하겠습니다.”

“저희 그룹에서 한 인재를 스카우트했습니다. 그 인재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는 환경 쪽과 에너지 쪽. 감히 짐작하건대, 머지않은 시기에 원전으로 인해 생기는 환경오염을 중화할 물질이 발명될 겁니다.”

“…….”

“이 물건의 파급력을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한국이 자랑하는 원전 산업과 환경을 해결할 수 있는 물질. 과연 두 가지가 합쳐졌을 때, 저희 한국을 함부로 대하는 나라가 있을까요?”

경제적으로 따졌을 때, 핵무기를 갖고 있는 것과도 같았다.

우리 한국을 무시해?

그럼, 우리는 올리아가 만든 발명품 수출 안 할게.

이렇게 되는 순간, 상대 나라는 뜻을 굽힐 수밖에 없다는 거다.

더군다나 환경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전력의 수요가 증가하는 미래라면 더더욱 말이다.

방금 말한 얘기의 파급력을 상상해서일까?

진지하던 대통령의 표정이 더할 나위 없이 굳어간다.

“이건 미쳤군요…….”

“적어도 끌려다니진 않을 겁니다.”

“어쩐지……. 그래서 원전을 고집하고, 그런 조건을 내걸었던 거군요.”

“뭐, 그게 아니더라도 탈원전은 너무 시기상조라 판단했습니다. 한국에서 사용하는 전력과 친환경에너지로 메꿀 수 있는 전력을 계산해봤을 때, 답이 없더라고요.”

“… 그건 해 봐야…….”

“아니요. 한국은 불가능합니다. 국토도 작고, 변수로 작용할 게 너무 많거든요. 그리고 요즘은 전기차로 넘어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전력의 사용이 더 하면 더 했지, 줄어들진 않을 거란 얘깁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속이 후련해졌다.

아무리 JH 그룹에서 올리아를 보호하고 있다고 하지만 국가가 나서는 게 더욱 확실했다.

차라리, 대통령에게 말해서 국가적으로 보호하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다.

“미국이 올리아의 존재를 눈치채는 날이 많이 남지 않았을 겁니다. 그들은 저에게 시선을 두고 있거든요.”

“… 이 자리가 끝난 즉시, 장관들을 긴급 소집해야겠군요. 이건 어떤 일보다 중요한 안건 같습니다.”

“제가 이걸 밝혔다는 건, 앞으로 대통령님을 믿어보겠다는 얘기에요. 부디,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최고를 바라진 않는다.

대신 최선을 다해 줬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결과는 자연스레 따라올 거라 믿고 있으니까.

“그리고 연금도 손봐야 될 겁니다. 이쪽은 제가 어떻게 조언해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죠…….”

“아마, 대통령들도 필요성을 느꼈겠지만, 굳이 긁어 부스럼이라 생각해서 손대지 않았겠죠. 이제는 폭탄 돌리기를 멈춰야 될 땝니다.”

“이것 또한 장관들을 모아 얘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이 이후에도 대통령에게 많은 일거리를 넘겨줬다.

저출산 문제에 대한 심각성과 세대별, 그리고 남녀 갈등에 관한 얘기 역시 말이다.

얘기가 이어질수록 보통 일이 아니란 걸 깨달았는지, 대통령의 얼굴이 굳어져 갔다.

다행인 건, 그 와중에도 눈빛만큼은 흔들림이 없다는 거다.

“이거, 생각 이상으로 손 봐야 될 게 많은 것 같군요.”

“그만큼, 대한민국은 병들어 있었습니다. 단지, 외면해 왔을 뿐.”

“어느 정도는 알았지만, 회장님에게 직접 들으니, 가슴에 와 닿습니다.”

“한 번 최고의 대통령으로 남아보시죠. 저 역시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대통령 혼자 도전하려 했다면 답이 없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혼자가 아니었다.

재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JH 그룹.

그리고 대통령이 속한 여당.

물론 여당이 순수하게 도와주진 않겠지만, 시늉은 할 거라고 생각한다.

한 마디로 대한민국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정, 재계가 나선다는 거다.

‘여기에 연예계도 참여해야지…….’

오래전부터 정치인들이 자주 써왔던 방법.

뭔가 논란이 일어날 것 같으면 연예계의 열애설을 터뜨린 거다.

이걸 이용하면 정책을 변화시키는 데 큰 반발은 막을 수 있을 거다.

“앞으로 바뀔 대한민국을 기대합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목숨 하나 걸어보겠습니다. 저도 더 이상 주변국에 눈치 보는 것도 싫고, 아닌 건 아니라고 강하게 말해야겠습니다.”

“선조들이 피땀 흘려 지킨 땅인데 자멸할 순 없지 않겠습니까.”

“제 말이 그겁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회장님이 무섭게 느껴졌는데, 이제는 든든하기까지 하군요.”

대통령도 알고 있을 거다.

앞으로 갈 길이 얼마나 험난할지.

그걸 애써 떨쳐내기라도 하려는 듯 장난삼아 얘기해온다.

그런 대통령에게 안심할 수 있도록 응원을 한 나는 다시 JH 그룹으로 복귀했다.

그리고는 조금 더 보안에 강화했다.

대통령에게 올리아의 말이 들어간 순간, 이제 올리아의 정체는 모두가 아는 거라고 봐도 무방했다.

애초에 과하게 대비해서 나쁠 건 없었으니, 이참에 대통령 급의 경호를 부탁했다.

“비서실장님, 앞으로 정부에서 도움을 청하는 게 많을 겁니다. 최대한 편의를 봐주도록 하세요.”

“… 이야기가 잘 풀리셨나 봅니다.”

“원래라면 선을 그으려고 했는데, 대통령이 정신을 차린 것 같더라고요.”

“혹시 어떤 대화를 나누셨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룹에 복귀한 내가 정부에 대한 말을 건네자, 비서실장님이 궁금하기라도 했는지 질문해 왔다.

어차피, 비서실장님도 알아야 되는 내용이었기에 대통령과 나눴던 얘기를 풀어서 설명해줬다.

“… 이거 완전 의외군요. 앞길이 가시밭길보다 더 험난할 텐데.”

“그러니까 저희라도 도와야죠.”

“… 솔직히 대통령도 대단하지만, 회장님이 더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요?”

“대통령의 원래 목적이 뭡니까. 나라를 위해 힘쓰는 게 그들의 역할입니다. 반면에 기업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이윤을 추구하는 게 기업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위해 힘 써주시려는 건 참 본받아야 될 것 같습니다.”

모르겠다.

애초에 그룹을 만들 때부터 대현 그룹에 대한 복수를 주로 삼아서 그런가 보다.

이미, 대현 그룹에 대한 복수는 끝난 거나 마찬가지인 상태.

그래서인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나 보다.

“어쨌든, 그렇게 됐습니다. 올리아의 경호에 더욱 신경 써주시고, 정부의 도움이 필요한 게 있다면 저한테 말씀해 주시죠.”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떻게 준비는 다 돼갑니까?”

“저희가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한 것 같습니다. 최대한 무역전쟁으로 인해 피해받지 않도록 조치해놨고, JH 인베스트먼트는 풋옵션을 걸어 놓은 상태입니다.”

이제 미, 중 무역전쟁은 얼추 끝난 것 같았다.

그렇다면 한 걸음 더 앞서 나가 다음 준비도 천천히 시작해야겠다.

“미, 중 무역전쟁은 이 정도로 멈추기로 하죠.”

“네, 회장님.”

“저희는 다음 준비를 할 겁니다.”

“다음이라면…….”

다음이라는 말에 궁금해 하는 비서실장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코로나에 대한 설명을 해줬다.

너무 정확하게 말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기에 환경문제를 말하면서 앞으로 바이러스는 계속 진화할 거라는 식으로 말했다.

“바이오산업에 많은 투자를 해야겠군요…….”

“새로 만들 시간은 없습니다. 투자와 함께, 기본적인 마스크나 의료 용품도 부족하지 않게, 공장을 인수해서 24시간 돌리도록 하세요.”

“예, 회장님.”

이제는 나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일까? 비서실장님이 별다른 의문을 드러내지 않고, 곧장 대답했다.

‘코로나가 진행되고, 그 뒤에 있을 전쟁만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면 얼추 큰 사건들은 마무리된 것 같다.

그 이후에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만, 급한 건 처리한 셈.

그때는 나를 기다려준 서아에게 고백해도 될 것 같다.

결혼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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