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139화 (139/175)

139화

곧 있을 대통령과의 약속이 신경 쓰인 나는 일을 진행하면서 이유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 들어온 정보에 따르면 우리 그룹이 미, 중 무역을 준비하는 게 신경 쓰였나 보다.

이유는 알고 있다.

어째서 신경을 쓰고 있고, 만남을 청한 건지.

그렇다고 뜻을 굽힐 수는 없었다.

어쨌거나 미래에 일어날 현실.

마냥, 무섭다고 피하는 것보다 대통령도 정보를 알고, 같이 대응하는 쪽이 나았다.

한국에서 미리 안다 해도 수익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어차피 우리가 겨냥하는 건 전 세계.

고작, 한국이 대처한다 해서 우리 그룹이 피해 볼 일은 없다는 거다.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 나는 그룹의 인사들을 만나 내 뜻을 전했다.

우리는 한국에서 돈을 벌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건 전 세계에 돌아다니는 돈.

작은 것을 보다가 큰 걸 잃지 않기로 했다.

‘다행히도 다들 따라와 주기로 했고…….’

만약, 그룹 인원들이 욕심을 부리면 나 역시 어쩔 수 없었다.

정부를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 그룹 사람들과 의견을 함께하는 게 맞으니까.

하지만 그룹 사람들은 언제나처럼 내 의견을 전적으로 따라주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서도 그룹 인사들에게 고마운 마음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국을 좀 더 강하게 만들고 싶다는 거다.

어쨌거나 그룹 인원들은 한국인.

이런저런 인연들을 따라가다 보면 일반인들도 얽혀있다는 거다.

이대로 흘러가다간 국민들이 힘들 거란 걸 뻔히 알고 있는데, 우리 그룹만 챙기는 건 임원들에게 미안한 일인 것 같았다.

‘그러니까, 확실히 정하자.’

나름대로 내 마음의 결단이었다.

우리 그룹의 성장만을 생각할 거냐, 아니면 한국을 강하게 만들 거냐.

그 끝에 나온 결론은 한국이 아니더라도 주별 사람들 모두가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만들자는 거다.

뭐…….

돌고 돌아서 결국은 한국을 강하게 만들자는 거지만.

어쨌든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 나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눈 깜짝할 새에 대통령과의 약속 당일이 다가왔다.

이렇게 생각하니, 서아 말대로 내가 더 바쁜 게 아닌가 싶었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미리 와 있는 대통령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다가가자, 대통령 역시 내 쪽으로 다가왔고,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한 우리는 조용히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로 향했다.

한쪽에 마련된 장소로 향하자, 자그마한 방으로 돼 있는 곳이 보였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자그마한 식탁이 보인다.

‘괜찮네.’

밥을 먹지 않아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괜찮은 것 같았다.

그렇게 자리에 앉아 간단한 얘기를 나누고 있자, 종업원이 차를 가져다줬다.

후룹―

살짝 맛을 보니, 심신이 편안해지는 기분이다.

역시 대통령 정도 되면 이런 장소를 잘 알고 있나 보다.

“차는 입맛에 맞습니까?”

“고급스러운 맛이 납니다. 심신이 편안해지는군요.”

“맞습니다. 이 차의 효능이 업무로 지친 심신에 건강을 가져다줍니다.”

나를 따라 차를 마시는 대통령.

이내, 진지한 대화로 넘어가려는 듯 곤란한 주제를 꺼낸다.

“하하, 제가 요즘 회장님 얘기를 얼마나 많이 듣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까? 여러 준비를 하다 보니 그게 대통령님의 귀까지 들어가나 봅니다.”

“JH 그룹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릅니다. 전 세계적으로 외화벌이도 해주고, 내수는 다른 기업에게 양보하니, 말 그대로 애국 기업이 아닐까 싶습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돼가더군요.”

차를 한 번 더 마시며 눈치를 살피는 대통령.

“허나… 조금 걱정이 됩니다. 요즘 들어서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합니다. 이런 자랑스러운 JH 그룹이 악재를 대비한다고, 어떻게 되는 거 아니냐면서 말입니다.”

“어쩔 수 없는 흐름 같습니다. 실제로 악재를 대비하고 있고요.”

“… 악재를 말씀이십니까?”

“대통령님도 짐작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내가 순순히 인정하자, 대통령의 표정이 진지해진다.

“회장님은 진짜로 미, 중 무역이 이번 년도에 일어나실 거라 보고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하지만 명분이 부족합니다.”

“언제는 명분 따라 움직였습니까? 뭔가 하고자 하는 확신만 있다면 명분을 만들면 되는 겁니다. 미국은 충분히 그럴 힘이 있는 국가이고요.”

미국뿐만이 아니다.

힘이 있는 자들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리해서라도 성장하는 경쟁자를 제거해왔었다.

명분이야 만들면 되는 거다.

오죽하면 기분이 나빴다는 것도 명분이 되는 세상이 아닌가.

“이거 국민들을 안심시킬 때가 아니었군요…….”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안심시킬 때가 아닌 대비해야 될 때입니다.”

“이 정보를 저한테 알려 준 이유가 뭡니까? 물론 저한테도 관련 보고가 올라와 있긴 합니다만, 회장님처럼 확신 갖진 않았습니다. 이걸 이용하면 충분히 돈을 벌 수 있었을 텐데요?”

“어느 정도로요? 고작 수 조 아닙니까?”

“… 수 조면 다른 기업들이 몇 년을 투자해야…….”

“저한테는 고작입니다. 그리고 국내가 아니라 전 세계를 겨냥하면 훨씬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거고요.”

대통령 말대로 이걸 알리지 않았다면 국내에서도 조 단위의 돈을 벌 수 있을 거다.

물론, 각 은행을 돌아다니며 보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야겠지만, 충분히 가능한 수익이란 말이다.

그럼에도 경고하는 이유.

내 말을 믿어주는 대통령과는 다르게 다른 사람들은 의심할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우리 그룹이 움직이는 걸 유추하면 우리가 무엇을 대비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거다.

하지만 한국 기업 중 우리 그룹처럼 대비하는 그룹이 없었다.

그들은 혹시나 하는 생각을 갖고 있는 거다.

방금, 대통령님처럼 혹시나 미국이 진짜로 행동으로 옮길까 하는 의심 말이다.

“믿어달라고는 안 하겠습니다. 굳이 강요할 이유도 없고요. 대신 방해만 하지 마십쇼.”

“… 사실 러시아에서도 연락이 왔습니다.”

“러시아에서요?”

“회장님이 러시아가 원하는 방향과 정반대의 행동을 하고 있으니, 중재해 달라고 하더군요.”

이건 예상하고 있었지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이른 시기였기 때문이다.

확실히 국가적으로 나서니 정보를 파악하는 속도가 차원이 달랐다.

아마, CIA 요원과 이야기를 나눈 게 그들의 귀에 들어갔나 보다.

동시에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과연, 내 앞에 있는 대통령은 관련 소식을 못 들은 걸까?

이걸 어떻게 떠봐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대통령 입에서 내 의문을 풀어주는 답변이 들려왔다.

“회장님께서 솔직한 마음으로 말해 주시니 저도 다 터놓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사실 국정원에서 보고받았습니다. 미국 요원이 회장님에게 접근했다고.”

“…….”

“아마, 국적에 대한 얘기가 나왔겠죠. 하지만 국정원에서 분석한 바로는 이중 국적을 제안했을 거라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내가 너무 한국을 무시하고 있던 건가?

솔직히 놀랐다.

대통령이 이 이야기를 알고 있을 줄은.

“한국이 JH 그룹에게 큰 도움을 드리지 못한 만큼, 뭐라고 말할 명분이 없단 걸 잘 알고 있고, 그것만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이야기를 너무 길게 돌았군요. 사실, 저도 러시아에게서 연락받고, 참 분했습니다. 엄연히 한 국가의 수장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부탁을 해 오다니요.”

“…….”

“저를 무시했다는 거에 분노한 게 아닙니다. 한국이란 나라를 얼마나 우습게 봤냐는 거에서 기인한 분노였습니다.”

확실히 러시아에서 연락해 온 방법은 잘 못 됐다.

아무리 현 정권이 친러시아의 형태를 띠고 있고, 여러 기업이 러시아에 진출해 있다고 하지만 엄연히 한 국가의 수장.

정식으로 만남을 청하거나, 공문으로 진행했어야 된단 말이다.

“말씀하시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군요.”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도와주십쇼.”

“…….”

“솔직히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한국의 국력을 올리기 위해 한 기업에 도움을 받아야 되는 이 현실이. 하지만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해 본 결과, JH 그룹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겁니다.”

“도움이라…….”

어떻게 보면 나와 의견이 같았다.

나 역시 한국이 이리저리 끼어서 눈치 보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이중 국적을 갖는다 해도 근본은 한국이란 얘기다.

“제 대답에 앞서 대통령님께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군요.”

“편하게 물어보시죠.”

“대통령님은 지금 부탁을 하는 게 대통령님으로서 부탁입니까, 아니면 정치인으로서 하는 부탁입니까.”

“…….”

지금 대답이 중요하다.

대통령님이 앞서 말한 대로 온전히 한국을 위해 도와달라고 한다면 충분히 그럴 의향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닌 정치적 쇼를 위해 하는 행동이라면 가차 없이 거절할 생각이다.

“이거 허를 찌르는 질문이군요.”

“솔직하게 답변해 주십쇼. 그에 맞춰서 저도 결정을 내릴 테니. 빈말을 하실 거면 미리 말하겠습니다. 의미 없다고.”

“이전까지는 정치인이었습니다.”

“…….”

“단, 러시아의 연락을 받고, 여러 보고를 받으면서 느꼈던 감정과 지금 하는 부탁들. 한 치의 거짓 없이 나라만을 위해 일하는 대통령으로서 부탁입니다.”

대답하는 대통령의 눈빛에서 진실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발걸음을 맞추는 사람 중 대통령도 포함시켜도 될 것 같다.

“대통령님의 지지율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어쩌면 탄핵을 외칠 수도 있고요. 하지만 한 가지는 약속합니다. 저와 발걸음을 맞춘다면 먼 훗날 최고의 대통령으로 남도록 해주죠.”

“… 이왕 이렇게 된 거, 저도 역사책에 성군으로 기록되고 싶군요.”

앞으로 대통령이 겪어야 될 가시밭길을 경고했음에도 눈빛이 흔들리지 않는다.

지금은 가감 없이 말해도 될 것 같다.

미래에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얼마나 병들고, 힘들어지는지.

그리고 그걸 위해서 무엇을 해야 되는 지.

“탈원전은 철수하도록 하세요.”

“…….”

“그것뿐만이 아니라, 연금도 손대야 합니다.”

“…….”

“아니, 대한민국의 전체적인 시스템을 바꿔야 됩니다. 40·50대의 지지율이 무섭다고, 대통령이 해야 될 의무를 뒤로 미뤄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미래 대한민국의 큰 문제로 여겨지는 출산율과 후대를 위한 정책들.

그리고 부동산까지.

이걸 해결하기 위해선 대통령이 지지율을 신경 써서는 안 됐다.

지지율이 높은 특정 세대들을 위한 정책을 펼칠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대한민국만을 위한 정책을 펼쳐야 된다는 거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결정이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말이 좋아 대한민국을 위해서지, 당장 방금 뱉은 말들을 위해 대통령이 움직이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이때까지 지지했던 이들조차도 등을 돌릴 수 있었다.

심하면 탄핵을 외칠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병든 대한민국을 치료하기 위해선 강한 백신으로 치료해야 된다.

당분간은 힘들 수 있지만, 미래를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거다.

“이 정도도 부족할 수 있습니다. 아예, 전반적인 시스템은 뜯어고쳐야 되죠. 앞으로 대통령님은 레임덕에 걸릴 수도 있고, 심하면 탄핵을 외치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 가시밭길을 걸으시겠습니까?”

“…….”

“만약, 걷는다고 하시면 최대한의 도움을 드리도록 하죠. 저희 그룹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물론 거절하신다 해서 실망할 생각은 없습니다. 어떤 대통령이더라도 쉽지 않은 결정이니까요.”

“…….”

계속되는 내 말에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는 대통령.

이해한다.

그만큼, 자신의 정치 인생을 걸어야 되는 대답이니까.

그렇게 대통령이 고민하고, 몇 분가량이 흘렀다.

그리고는 대통령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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