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 * *
집무를 수행하고 있는 한국의 대통령.
그는 요즘 JH 그룹 행보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JH 그룹이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단 걸 아는데, 하필이면 악조건을 대비하고 있단 거다.
다른 그룹도 아니고, JH 그룹인 만큼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었다.
이대로 지켜만 보기엔 민생이 안 좋을 건 분명했고, 그렇다고 개입하기엔 JH 그룹 회장의 성격이 만만치 않았다.
‘어떻게 해야 되나…….’
요즘 들어 두통을 느끼고 있는 가장 큰 이유였다.
그렇다고 대비하고 있는 게 현실적인가?
그렇기엔 두 나라가 공개적으로 견제한다는 건데, 가능성은 있지만 실현율은 낮다고 판단된다.
또 마냥 무시할 순 없는 게, 가능성은 낮았지만, 확률이 존재한다는 거다.
이러니까 미칠 것 같다는 거다.
물 밑으로 움직이면 모르겠지만, JH 그룹은 너무 대놓고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었다.
도저히 방법을 못 찾아 한숨을 쉬고 있을 때.
밖에서 접견을 요청하는 새롭게 바뀐 비서실장의 소리가 들려왔다.
대통령 역시 혼자서는 해결 못 할 거란 걸 깨닫고, 의견을 물으려 했기에 곧바로 들어오라는 말을 건넸다.
“자네 얼굴이 이렇게 반가운 적은 처음이군.”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자네도 알다시피 요즘 JH 그룹의 행보가 심상치 않아. 국민들이 이걸 보고 불안함을 느끼고 있어. 아니……. 국민뿐만 아니라 기업들도 몸을 사리고 있지.”
“…….”
“이게 지속되면 경제성장률이 주춤할 거고, 이건 곧 나의 지지율로 연결되지. 하지만 이걸 좋게 해결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새로 임명된 비서실장은 철저히 능력 위주로 올라 온 인물.
그렇기에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한 대통령은 전보다 나아진 얼굴로 질문했다.
“… 사실 대통령님을 찾아뵌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역시 자네군. 먼저 말하지 않았음에도 미리 생각해주고…….”
“그게 아니라…….”
대화를 이어가던 대통령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비서실장의 표정이 도움을 주로 온 사람이 아닌, 자신에게 새로운 고민거리를 주러 온 사람과도 같은 표정을 짓기 때문이다.
‘설마…….’
말도 안 된다.
여기서 어떻게 더 골칫거리가 생긴단 말인가.
자신만의 착각이라고 생각한 대통령은 찝찝한 마음이 들었고, 곧바로 질문했다.
“자네 표정이 밝지 않은 것 같은데,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건가? 곤란한 일이 있다면 속 시원하게 말해도 되네.”
“배려 감사드립니다. 그렇지 않아도 어떻게 말씀드려야 되나 고민했습니다.”
“…….”
“사실 같은 이유로 러시아 총리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요즘 JH 그룹이 미국과 잦은 만남을 갖고 있는 걸로 보이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며 대답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
X발…….
그동안 살아오면서 열 번은 했을까 한 욕을 속으로 내뱉은 대통령.
그는 억울했다.
아니, 똥은 JH 그룹이 쌓는데, 왜 피해는 자신이 보냔 말이다.
여기까지도 괜찮았다.
분명, 해결책이 되어야 할 비서실장이 어째서 더 큰 문제를 가져오냔 말이다.
이러다 제 명에 못 살 것 같다.
도저히 답이 안 보인다.
“하……. 결국 JH 그룹 회장과 만나 보는 수밖에 없다는 말인가?”
“저 역시 어떻게든 해결책을 내야 될 것 같습니다. 러시아가 갖고 있는 불만은 이것 하나뿐만이 아닙니다. 그들과 약속한 탈원전 역시 걸고 넘어서고 있습니다.”
“아니, 분명 넘어가기로 했잖아. 이미, 어떤 조건을 걸었는지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걸고넘어지는 이유가 뭐야?”
“불만을 제시하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면 국제 관계고 뭐고, 들이박고 싶었다.
한국이 이 정도로 만만한 나라란 말인가?
무슨 기업 하나가 이득을 위해 움직이는 것 같고, 한 나라의 수장인 자신에게 불만을 드러내냔 말이다.
“하……. 문제 해결을 위해선 어쩔 수 없이 JH 그룹 회장을 만나야겠군.”
“… 그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어이가 없다.
불과 1년이란 시간에 이렇게 바뀌어버릴 줄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년이다.
오히려 1년 전에는 어떻게든 자신이 먼저 만나자는 요청을 하며 대화를 나누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봐라.
만남을 가져야 된다는 상황에 두통이 느껴진다.
이렇게까지 된 원인은 JH 그룹의 성장이다.
1년 만에 국제적인 그룹으로 성장하니 이건 뭐 딴지를 걸 수도 없었다.
더군다나 국민들에게 이미지가 좋지 않은 그룹도 아니었다.
당장 회장만 하더라도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작가였으며 JH 그룹은 그 흔한 절세조차 하지 않으며 꼬박꼬박 세금 납부를 해 왔었다.
그리고 이제는 국민 가수가 된 박제환 회장의 여자 친구.
이러니, 어떻게 자리를 갖고, 제재를 걸 수 있단 말인가.
만약, 정부가 나서서 JH 그룹에게 제재를 건다면 그날부로 겨우 유지하고 있던 지지율마저 땅끝으로 추락할 게 분명했다.
‘어찌 됐건, 만나긴 해야지…….’
자신의 마음이 어떻든 만나야 되는 건 분명한 만큼, 대통령은 체념한 채, JH 그룹 비서실장에게 연락할 준비 했다.
* * *
“서아 씨, 요즘 너무 바쁜 거 아니에요?”
오랜만에 만나는 서아에게 아쉬운 소리를 건네는 박제환.
그도 그럴 게 분명 데뷔한 지, 1년이나 지났는데도 오히려 처음보다 더욱 바쁘고, 만나기가 힘들었다.
꿈에 도전하는 건 좋았지만, 이 정도로 얼굴을 보기가 힘드니 나도 모르게 아쉬운 소리가 튀어나왔다.
“에이, 누가 준 기회인데 열심히 해야죠.”
“… 너무 열심히 하니까 그러죠. 조금 쉬면서 해도 될 텐데.”
“인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잖아요. 최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받을 때, 열심히 하고 싶어요.”
“…….”
1년 내내 쉬는 날 없이 열심히 뛰어다니는 서아 씨를 보고 말리고 싶었다.
인간이 어떻게 일만 하면서 살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럼에도 서아의 얼굴을 보면 말릴 수가 없었다.
1년 전보다 바쁜 요즘이 더욱 밝아 보였기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어렵사리 직업으로 연결시켜서 그런지, 더욱 가수라는 직업에 보람을 느끼고, 행복해하는 것 같았다.
안다…….
알고 있는데, 자주 만나지 못 하기 때문에 서아한테 아쉬운 소리 좀 해본 거다.
“그리고 저보다 제환 씨가 더 바쁜 거 아니에요? 요즘 JH 그룹에 대해서 말이 많던데요?”
“괜찮습니다. 보이는 것과 다르게 제가 하는 건 많지 않거든요. 그저, 방향을 지시하고, 사업과 관련된 중요한 사람을 만나면서 그룹의 미래를 책임지는 게 제 역할일 뿐입니다.”
“… 보통 사람은 그게 제일 힘들 텐데요…….”
“저는 그게 제일 쉽거든요.”
당연히 미래를 모르는 사람이 책임져야 된다면 가장 어려운 일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미래에 대해 알고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 어떤 일이 발생하고, 어떤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지 말이다.
그러니, 남들이 보는 거와 다르게 내가 하는 일은 누워서 떡 먹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나저나 제환 씨는 이번에 나온 예고편 보셨어요?”
“「절대자는 휴식을 원한다」 말이죠?”
“네, 맞아요.”
“그럼요. 제 작품인데 확인해야죠.”
“진짜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어요. 말 들어보니까, 시사회에서 극찬을 들었다고 하던대…….”
마블과 계약한 「절대자는 휴식을 원한다」 작품이 곧 있으면 상영을 앞두고 있었다.
영화에 투자한 사람들이 대부분 나와 호의적인 사람이어서일까?
넘치는 투자금과 별다른 간섭이 없어서인지, 빠른 속도로 영화를 만들 수 있었고, 서아 말대로 시사회에서 극찬받을 수 있었다.
‘재밌긴 했었지…….’
서아의 말을 들으니, 시사회에서 봤던 영화가 떠오른다.
내 머릿속에 존재하던 상황들이 영화에 온전히 옮겨질 수 있었고, 그날 나는 가슴 속에 간직해두었던 등장인물을 실제로 만난 듯한 기분이 들어 설렘을 느꼈다.
그리고 확신이 들었다.
나뿐만 아니라 독자들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낄 거라고.
“나중에 정식 개봉하면 저랑 같이 보러 갈까요?”
“좋아요!! 하……. 근데 시간이 맞아야 될 텐데…….”
“뭐 어때요. 시간이 남은 제가 맞추면 되죠.”
“그래도…….”
내가 자신의 스케쥴에 맞춘다는 게 미안해서일까?
서아가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그걸 본 나는 서아에게 위로가 되는 말을 건넸다.
“저 진짜 한가한 사람입니다. 지금도 보세요. 아무런 연락도 없잖아요.”
“그거야, 제환 씨가 미리…….”
지이잉―
“…….”
“…….”
내가 한가하단 걸 몸소 보여주기 위해 핸드폰을 식탁 위에 펼쳤을 때.
타이밍 절묘하게 비서실장님의 전화가 걸려 왔다.
‘무슨 일이지…….’
동시에 간절히 바랐다.
그저, 별거 아닌 일로 전화가 왔길 바라면서.
“별거 아닐 겁니다. 분명,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허락이 필요한 게 있기 때문에 연락이 온 거일 겁니다.”
“… 그럴까요?”
이대로 비서실장님의 전화를 다음으로 넘기면 상황이 이상해질 것 같아, 별일 없다는 듯 서아의 앞에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예, 회장님. 말씀드릴 게 있어 연락드렸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시죠.”
힐끗―
제발…….
핸드폰 소리가 서아의 귀까지 들리고 있다.
- 대통령이 회장님과 만남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일단, 최근 회장님이 너무 바쁘셔서 제 선에서 커트하긴 했는데, 이른 시일 내에 만나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
비서실장님의 목소리를 서아가 들어서일까?
옆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서아의 표정이 이상해진다.
어떻게 잘 넘겨볼까 하다가 체념한 나는 그냥 있는 그대로 얘기했다.
“이번 주는 시간이 없으니까, 다음 주로 잡아주세요.”
- 예, 회장님.
뚝―
전화를 끊은 나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서아를 바라봤다.
“하하……. 이게 평상시에 이렇지 않은데, 오늘 이상하게 일이 생겼네요?”
“괜찮아요. 굳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제환 씨가 바쁘단 걸. 그사이에 절 만나고 싶은 것도 잘 알고요.”
“그게 아니라…….”
“저도 앞으로 노력해볼게요. 제가 이기적이었던 것 같아요. 저보다 훨씬 바쁜 제환 씨도 저를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데, 저만 바쁘다고 마냥 배려를 바랐던 것 같네요.”
“…….”
이래서 내가 서아에게 반했던 거다.
이런 말을 해 오는 서아의 표정이 굳어있었다면 일부러 돌려 말하는 게 아닌지 고민했을 거다.
하지만 말해오는 서아의 표정이 미안함으로 가득하였다.
한마디로 지금 해 오는 말이 전부 다 진심이라는 얘기.
원래도 이뻤던 서아가 오늘따라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그럼, 앞으로 일은 천천히 하는 겁니다?”
“그래요. 솔직히 주변에서 많이 말렸었거든요. GL 엔터 사장님도 그렇고, 매니저도 그랬고……. 제가 좀 무리했나 봐요. 사람이 주변도 둘러봐야 되는데.”
“이해합니다. 그만큼 서아 씨가 가수라는 직업을 좋아했던 거고요.”
문득, 전생의 마지막이 기억난다.
몸이 야위었고,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았을 때.
그런 상태에서도 글을 쓰며 밤낮을 지새웠던 그때를.
그리고 서아의 마음이 더욱 이해 갔다.
나 역시 그때는 몸이 힘들었지만, 전생을 살았던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글에도 집중하고 싶네…….’
그때를 떠올리니 다시금 집필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역시, 나는 천생이 작가였나 보다.
아직은 할 일이 많아서 집필하지는 못하지만, 조금씩 작품 구상도 해야겠다 생각하며 서아와 남은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