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JH 그룹 인사들과의 만남이 지나고, 모두가 한 곳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맞춰 움직였다.
제일 큰 위험을 가지고 투자를 한 건 JH 그룹의 목.
그다음으로는 동성 그룹이 뒤따라오며 작은 위험을 두른 채, 투자를 진행했다.
그 뒤에는 삼송 그룹과 GL 그룹 등, 우리 그룹과 연관된 그룹들이 발걸음을 맞춰 다가올 미, 중 무역전쟁을 준비했다.
우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걸 주변에서 눈치채서일까?
하나둘씩 기사가 올라오면서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며 암시했다.
그렇게 바쁜 시간을 보내며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안정화됐을 때.
이제는 슬슬 그녀와 만나봐야 될 차례가 온 것 같다.
스물다섯 살이란 나이에 말도 안 되는 업적을 이룬 그녀.
‘어쩌면 그녀의 업적이 판타지 소설일지 모르겠어…….’
수많은 과학자와 교수들, 관련 분야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해 보지만 닿지 못한 결과물.
그걸 불과 스물다섯이란 나이에 발명했다.
그것도 투자받은 지 불과 1년 안에 말이다.
1년이란 시간 안에 발명을 완성할 수 있었던 이유.
이미, 그녀 머릿속에는 연구가 막바지까지 이르렀고, 부족한 건 투자금밖에 없었다.
그러니, 투자를 받고 1년 이란 시간 안에 실물을 확인할 수 있던 거다.
“비서실장님, 그때 부탁한 사람의 조사는 어디까지 진행됐습니까.”
“거의 끝마쳤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주변 인적 조사와 그녀가 살아 온 환경, 어쩌면 그녀가 자신을 아는 것보다 저희가 더욱 잘 알 거라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좋군요. 문서를 확인할 수 있을 까요?”
“곧바로 올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을 더는 끌 이유가 없었기에 비서실장님에게 질문했고, 관련 조사를 마친 비서실장님은 잠시 다른 곳으로 향해 보고서를 가져왔다.
아마, 조사를 지시한 지 시간이 흘렀기에 내 말을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비서실장님이 가져온 보고서를 받아든 나는 차근차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어떻게 한국으로 이민을 온 것이며,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주변에는 어떤 인물들이 있는 지 말이다.
그렇게 집중하며 보고서를 읽기 30분.
굳이, 시간을 끌어 나중에 접근할 이유가 하등 없다는 거다.
아니, 어쩌면 지금 접근하는 게 최고의 시기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시간 끌 거 없겠네요. 출발하도록 하죠.”
“저 역시 같은 의견이었습니다. 아마, 지금 접근하면 큰 호감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비서실장님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해서인지, 출발하자는 말을 듣고는 미소를 지으며 동의하는 듯한 의견을 보냈다.
* * *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고 있는 올리아가 핸드폰을 보며 기사를 확인했다.
기사의 주인공은 JH 그룹.
요즘 들어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그룹이었다.
올리아가 JH 그룹 기사를 읽고 있는 이유.
이제는 슬슬 미래를 함께할 그룹을 찾아야 되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머리가 남들과 다르단 걸 일찌감치 깨달을 수 있었다.
남들과 다르단 걸 처음 알게 된 순간.
교육받기 시작한 첫날부터였다.
분명, 간단한 식을 이용하면 그걸 이용해 많은 계산을 할 수 있는데, 또래 애들을 간단한 식마저 공부하기 힘들었다.
이해가 안 갔다.
자신의 손가락 숫자를 세어봐라.
하나, 둘……. 총 열 개.
이것과도 같았다.
더하기, 빼기, 미분, 적분, 모든 공식.
그저 주변 상황에 대입해서 계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 간단한 것을 주변 애들한테 풀어서 설명하니 자신을 천재라며 치켜세우기 시작했다.
그게, 처음으로 남들과 다르단 걸 깨달은 계기였다.
‘투자를 받아야 된다.’
원래는 단순히 공부하는 게 좋았다.
자신이 모르고 있던 사실을 하나씩 밝혀나가고, 그로 인해 주변의 인정을 받는 게 기뻤다.
그렇게 유년 시절을 보내고 있을 때, 들려왔던 소식.
자신의 하나뿐인 오빠가 사망했다는 얘기다.
사인은 러시아군과의 마찰.
군인이었던 오빠는 가끔 위험한 임무에 투입됐는데, 그러다 러시아군과 마찰이 있었나 보다.
그 소식을 들은 올리아는 처음으로 무력감을 느꼈다.
죽은 오빠를 살리기에는 관련 지식이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오빠를 살리는 것뿐만 아니다.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던 오빠가 죽으니, 혼자 남아 계시던 어머니마저 고된 일을 하며 돈을 벌어왔고, 결국 편한 생을 이어가지 못하다 병을 얻으셨다.
올리아가 갖고 있던 지식은 이때조차도 도움 되지 못했다.
그렇게 가족들이 죽고, 그나마 연이 있던 친인척을 찾아온 한국.
이때부터는 지식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공부하다 보면 투자도 받고, 복수도 할 수 있어.’
러시아에게 복수함과 동시에 주변인을 챙길 수 있는 일.
지식을 쌓아 연구를 진행하고, 그걸 바탕으로 투자받아 성공하는 거다.
성공의 방향은 러시아의 국제적 위상을 낮출 수 있는 분야.
그렇게 나온 결과는 에너지 관련 분야였다.
결론을 내린 그 날부터 올리아는 인생을 설계했다.
어떤 그룹에 투자를 받을 것이며 어떻게 연구를 진행할지.
하지만 생각과 다르게 투자를 받는 건 쉽지 않았다.
올리아는 한국에서 일개 학생에 불과했고, 기업 입장에서는 학생에게 투자하기란 요원했다.
‘연구를 마무리 짓고 투자받는다.’
그래서 나온 결론.
투자받고 연구를 시작하는 게 아니라, 연구를 마무리하고 투자를 받는 거다.
결론을 내리고 연구를 진행하기 오랜 시간.
서서히 결과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투자자를 찾아야 됐다.
‘JH 그룹이 가장 적합하다.’
성과에 따라 보상이 확실히 뒤따르며 세계적으로 이름 있는 그룹.
거기다 자신이 살고 있는 한국에 존재하는 그룹.
이 모든 것에 부합한 그룹은 JH 그룹밖에 없었다.
JH 그룹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으로 검색하며 걷고 있던 올리아는 어느새 집에 도착할 수 있었고, 곧바로 비번을 누르며 집으로 들어갔다.
“다녀왔습니다.”
이제는 익숙한 언어로 인사를 건네며 집으로 들어가자, 안에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목소리 사이에 섞여 있는 낯선 목소리.
집에 낯선 사람이 찾아온 적이 드물었기에 누군가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어머, 왔니 올리아?”
궁금증을 가지고, 대화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자신을 거두어준 새어머니와 한 명의 남자가 보였다.
그런데 왜일까.
남자의 모습이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디서 봤더라…….’
한참을 어디서 봤는지 생각하고 있을 때, 문득 핸드폰이 시선에 들어왔다.
핸드폰 안에 비춰있는 남자의 얼굴.
앞에 있는 남자와 똑같은 모습을 갖고 있었다.
“… JH 그룹 회장님…?”
“반갑습니다, JH 그룹 회장 박제환이라고 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남자의 정체를 입 밖으로 내뱉었던 올리아.
그 소리를 들은 남자가 웃는 모습으로 다가오며 손을 내밀었다.
‘뭐, 뭐지……?’
사람이 너무 놀라니까 오히려 차분해진다.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얼굴을 봤다는 놀람 보다는 어째서라는 의문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 * *
‘차분하네…….’
올리아를 처음 본 박제환의 감상.
나이에 비해 차분한 것 같았다.
내 자랑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요즘 들어 누군가가 나를 발견하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올리아의 표정은 차분 그 자체.
더군다나 내 정체를 알고 있음에도 놀란 것 같지는 않았다.
자신의 집에 JH 그룹 회장이 왔다는 사실을 인식했는데, 저런 차분함이라니…….
역시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것 같았다.
“반갑습니다, 올리아.”
“반가워요.”
반갑다는 말과 함께 악수를 건넸다.
“어머, 올리아 왔니? 글쎄, JH 그룹 회장님이 올리아 너를 후원하고 싶다는 거 있잖아?”
“네?”
“그때, 올리아 네가 블로그 운영한다 했잖아. 그걸 보고, 찾아오셨나 봐.”
자신의 새어머니 말을 듣던 올리아는 뭔가 집히는 게 있는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후원이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죠?”
“말 그대로입니다. 올리아의 블로그를 확인하고 가능성을 봤습니다. 올리아가 올렸던 자료는 에너지에 관한 연구. 저희 그룹 역시 차세대 사업을 그쪽으로 생각하고 있거든요.”
“차세대 사업이라면…….”
“원전 산업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탈원전의 흐름. 저희는 시기상조라고 판단합니다. 계속해서 오르고 있는 전기사용량을 원전 없이 자연에너지로 수급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거든요.”
관심이 있나 보네…….
원전과 함께 에너지라는 말을 꺼내니 올리아의 표정에 생기가 돈다.
“회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나 봐요. 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 한국은 환경오염이라는 부정적 결과 하나로 여러 개의 부정적 결과를 가져오려고 해요. 탈원전으로 인해 연계되는 부정적 결과는 더욱 심각한데 말이죠.”
“맞습니다.”
“더군다나 한국의 국토는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좁고 그 안에 많은 인구가 살아가고 있죠. 당장 부동산만 하더라도 땅이 없어서 문제인데, 지금 사용하고 있는 전기를 천연에너지로 감당한다? 사실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거든요. 비용을 떠나서.”
“저희와 생각이 같군요.”
처음 과거로 돌아와 다른 사람을 설득할 때, 꺼냈던 문제점들.
그 문제점들이 올리아의 입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게 문제였다.
누구나 알 수 있는 문제를 정부에서 눈과 귀를 막으니, 그 후에 발생하는 문제가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는 거다.
‘그걸로 인해, 우리 그룹이 성장했지만.’
그래도 안타까운 마음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아차, 제가 좋아하는 분야라서 그런지, 너무 들떴나 봐요.”
“아닙니다, 유익한 대화였거든요.”
“혹시 후원이라는 말은 스카우트인가요, 아니면 제가 연구를 이끌고, 그에 대해 투자를 해주신다는 건가요?”
“모든 것은 올리아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연구를 이끌고 싶다면 포트폴리오를 제출하도록 하시죠. 만약 가능성 있는 연구라면 제한 없는 연구비를 제시하겠습니다. 그게 아니라, 입사를 원하시면 JH 중공업 특채로 뽑도록 하겠습니다.”
내 말을 들은 올리아의 표정이 더할 나위 없이 밝아진다.
나는 거절할 수 없는 먹이를 제시한 거다.
비서실장님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 당시에도 올리아는 투자를 원한다고 적혀있다.
그 부분을 정확하게 짚고 제시하니, 당연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다.
“저 할래요!! 저 잘할 수 있어요. 분명 회장님이 투자하신 것 이상으로 결과를 낼 수 있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역시 아직 어리긴 한가 보다.
협상에 능한 사람이라면 내 제안을 받고, 자신의 몸값을 올리는 데 주력했을 텐데…….
‘퍼즐이 완성됐다.’
긍정의 말을 들은 나는 오랜만에 환희를 느꼈다.
드디어, 과거로 돌아와 함께하고자 했던 인원들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치고 나가며 세계적으로 영향을 챙기는 것.
이 상황에서 어떻게 기뻐하지 아니 할 수 있는가.
“앞으로 잘해 봅시다. 최고의 대우를 해드리죠.”
“잘 부탁드려요, 회장님.”
오랜만에 진심으로 웃음을 지은 나는 곧 올리아에게 또 한 번 악수를 건넸다.
그런 나를 바라본 올리아도 미소를 띠며 손을 맞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