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131화 (131/175)

131화

비서실장님에게 내 의견을 전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번호를 확인하니, 그때 명함을 보고 저장한 이정후 부회장의 번호.

무슨 이야기를 건넬지 궁금했기에,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전화 받았습니다.”

- 반갑습니다, 회장님. 저 이정후 부회장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비서실장한테 전달받았습니다. 어쩐 일로 전화를 다 주셨습니까.”

- 그야 매사가 바쁜 회장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고자 전화를 드렸습니다.

“…….”

아무리 생각해도 방금 만난 삼송 물산 사장보다 이 남자의 능력이 훨씬 좋았다.

분명, 자신의 목적이 있어서 전화를 건 게 틀림없다.

시기도 자신의 동생과 만남을 가지고 난 후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입장을 도움을 주는 쪽으로 인식을 심는다.

‘이러니, 그 남자가 자신만만한 거겠지.’

저런 능력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으니, 알아낼 수가 있나.

방금 만난 삼송 물산의 사장이 왜 자신있어하는 건지 이해 갔다.

- 조금 전에 제 동생과 대화를 나눈 걸로 알고 있습니다.

“…….”

- 아, 오해는 하지 마십쇼. 회장님을 살펴본 게 아니라, 동생의 행적을 살펴보다 알게 된 사실입니다.

“편하게 말씀하시죠.”

- 일단 사과부터 드리겠습니다. 아무리 남보다 못한 동생이라고 하지만, 혈육 아니겠습니까. 그런 동생이 회장님을 귀찮게 한 점, 그리고 나쁜 마음을 먹고 허튼짓을 하려 했던 점을 사과드립니다.

“허튼짓이라면…….”

허튼짓이라…….

살짝 헷갈린다.

진짜로 삼송 물산 사장이 허튼짓을 하려 한 건지, 그게 아니라 자신의 동생을 견제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건지.

이 부분은 좀 더 듣고 판단을 내려야겠다.

‘끌려다니는 건 질색이다.’

끌려다니는 건 전생의 경험으로 족했다.

이번 생에는 남의 얘기를 듣고,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직접 파악하고 결정을 내리기로 마음먹었다.

- 글쎄 이놈 자식이 자존심이라도 상했는지, JH 그룹과 경쟁할 생각을 하고 있더군요.

“역시나…….”

- … 반응을 보니, 회장님도 대충은 눈치채고 계셨나 보군요.

“사실, 방금 대화를 나누면서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대화 내용을 생각하면 철저히 을의 입장에 서야 되는 것이 분명한데, 제가 느끼기로는 뭔가 아쉬운 게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거든요.”

- … 쯧……. 이거 민망합니다. 그놈을 보고 저희 삼송을 평가내리지 않으셨으면 좋겠군요.

그럴 생각이다.

괜히 그런 사람을 보고, 삼송을 얕잡아 보다간, 지금 이 남자에게 언제 따라잡힐지 몰랐다.

- 저희가 1년 전에 동성 그룹 회장님 생신 때, 대화를 나눈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 그때 듣고 판단 한 바로는 JH 그룹이 대현 그룹의 숨통을 일부러 끊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더욱더 희망을 가지며 몸부림치다, 고통스럽게 죽이려고 하는 것처럼 말이죠.

“비슷합니다.”

- 그래서 약간의 재미를 드리고자, 이 상황을 조금 이용했는데, 들어보시겠습니까?

궁금했다.

동시에 기대감이 들었다.

앞에 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분명 대현 그룹과 관련 있는 얘기가 나올 거다.

“궁금하군요.”

- 제 동생은 모르겠지만, 삼송 물산에 있는 임원은 대부분이 제 라인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이용해 교묘하게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어차피 JH 그룹 과는 경쟁을 해야 하니 고개를 숙이기보단 대현 그룹과 손잡고, JH 그룹과 대항하는 방향으로요.

“그래서…….”

- 오늘 기세등등한 것도 이와 같은 이유겠지요. 아마, 자신이 회장이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을 겁니다. 실제로 저한테 연락이 온 주주들을 생각하면 경영권을 가져갔다고 착각할 만한 상황이고요.

한 마디로…….

동생이 회장 자리에 앉을 수 있을 거란 착각을 불러일으켰고, 방향을 우리 그룹과 경쟁 쪽으로 잡았다.

덤으로 경쟁 구도에 있는 대현 그룹을 이용할 수 있게 상황도 유도하고…….

그렇게 자신이 회장 자리에 앉을 거라 확신하고, 대주주들을 불러 모아 회장 자리에 대한 야기를 꺼낸다.

자신의 자리가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을 때, 대주주들이 부회장의 손을 들어주면 어떻게 될까?

분명 삼송 물산 사장도 피해를 보겠지만, 그에 맞춰 행동하던 대현 그룹도 피해를 볼 거란 건 확실했다.

‘나도 삼송 그룹 부회장의 진면목을 모르고 있었다.’

JH 그룹이 정보수집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붓고 있단 걸 생각하면 대현 그룹도 모르고 넘어갈 확률이 높았다.

‘재밌겠는데?’

만족스러웠다.

삼송 물산 사장도 치워버리고, 그와 같이 대현 그룹에게 한 번 더 괴로움을 선사할 수 있는 이 상황이.

“좋은데요?”

- 다행이군요. 사실, 대주주들을 설득할 수 있는 가장 큰 방법이 JH 그룹 회장님의 환심을 살 수 있는 사람일 겁니다. 이제는 회장 자리에 앉을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드는군요.

“… 이 상황도 이용한 거 군요.”

- 그만큼 확신이 있었습니다. 제가 회장님의 마음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치밀하다.

결과는 같을지언정, 나에게 말해 오는 과정들의 선후관계가 달랐다.

원래라면 나의 환심을 사고, 대주주들을 설득해 회장 자리에 앉는 게 일반적인 순서였다.

‘그 과정에서 순서를 바꿨다.’

대주주들이 자신의 편에 있다는 말을 미리 건네며, 나의 환심을 샀다.

그렇다고 기분이 나쁘냐?

전혀 아니다.

오히려 재밌기까지 했다.

“뭐……. 선후관계야 어떻게 됐건, 마음에 드는군요. 만약 대주주들이 확신을 갖지 못한다면 저를 이용하셔도 상관없습니다. 대신, 확실하게 일을 진행했으면 좋겠군요.”

-만족스러울 겁니다. 돌아가신 회장님도 제 일 처리 하나만큼은 자신보다 뛰어났다고, 인정했거든요. 물론……. 너무 치밀하게 세우는 나머지 속도가 느리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그 단점이 지금은 상관이 없을 거고요.

“이번 일이 끝나면 정식으로 삼송 그룹과 힘을 합치기로 하죠.”

- … 그게 정말이십니까?

“그룹을 성장시키는데, 옆을 맡길 수 있는 그룹 하나 정도는 있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런 사람이 필요했을지 모르겠다.

나와 관련된 사람이 아니면서 영향력을 고루 갖춘 사람.

더군다나 나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랑 척질 이유가 전혀 없다.’

이유가 없는 걸 떠나서 될 수 있으면 곁에 둬야 됐다.

그래야, 옆에서 지켜보면서 딴마음을 먹어도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처음 내 목표와는 다르게,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갖추길 바라는 상황.

굳이, 국내에 귀찮은 일까지 도맡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삼송 그룹 정도면 대현 그룹의 영향력도 뭉갤 수 있고.’

완벽했다.

그런 사람을 얻음으로써 내가 지불해야 될 것.

내가 다 쓸어 담고 있는 와중에 옆에 흐르는 부산물 정도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삼송 그룹에게는 크나큰 선물인 건 분명했다.

‘다가올 코로나도 준비해야 되고 말이지.’

이 모든 걸 감안하니, 오히려 삼송 그룹 부회장에게 먼저 다가갔어야 했나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앞으로는 MOU 따위가 아닌 정식으로 계약을 맺겠군요.”

- … 절대 실망시켜 드리지 않죠. 저희가 JH 그룹이 나오기 전, 왜 삼송 공화국이라고 불렸는지……. 똑똑히 보여드리겠습니다.

“기대하겠습니다.”

- 우선 이번 일을 끝내고 더 이야기 나누는 걸로 하겠습니다. 회장 자리에 앉을 때, 자리를 빛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이죠. 다음에 웃는 얼굴로 뵙겠습니다.”

나중을 기약하며 전화를 끊은 나는 오랜만에 즐거운 일이 생겼다고 느꼈다.

근, 1년간.

솔직히 심심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글이야 진작 끝낸 지 오래고. 그렇다고 새로운 작품에 들어가기엔 다가오는 사건들이 너무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이벤트를 가져와 주니 어떻게 즐겁지 아니할 수 있단 말인가.

“즐거워 보이십니다, 회장님.”

“그럼요……. 집 지킬 사람을 구했거든요. 앞으로는 귀찮은 일을 굳이 제가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 삼송 그룹을 그렇게 표현할 수 있는 건 회장님밖에 없을 겁니다.”

“좀 그런가요?”

“… 그런데 전혀 위화감이 없습니다.”

“비서실장님도 얘기 들었을 겁니다. 저희도 이렇게 된 거 조심히 지원 사격하도록 하죠. 삼성 그룹의 대주주로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도록 하세요. 주식도 조심스럽게 수집하도록 하죠.”

“그럼,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어디까지나 삼송 그룹 부회장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 주식 매수.

절대 악영향을 끼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혹시 모를 안전장치는 필요하니까…….’

그렇다고 아무런 의도 없이 돕는 건 아니었다.

언제나 인간은 위치에 따라 생각도 달라졌다.

부회장도 회장 자리에 앉았다고, 태도나 생각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안전장치로만 갖고 있으려는 거다.

‘제발 안전장치로 남아있으면 좋겠군…….’

부디…….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고, 나를 만족시켰으면 좋겠다.

그렇게만 되면 확실히 보상해 줄 생각이다.

‘글로벌 그룹이 두 개가 되면 좋은 거니까.’

다가올 미래.

이제는 바쁠 것 같다는 두려움보다 재밌을 것 같은 기대감이 가득했다.

* * *

대현 그룹 회장실.

“그러니까……. 삼송 물산 그 아이한테서 연락이 왔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회장님.”

비서에게서 보고받고 있는 정주홍 회장.

이제는 헷갈렸다.

자신이 어린 유년 시절부터 땅바닥을 구르며 키워온 그룹이었지만, JH 그룹과 엮일 때마다 모든 게 예상처럼 흘러간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말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

예전이었다면 두 번 생각도 안 하고, 삼송 물산 그 아이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거다.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고, 대한민국을 담당하는 두 개의 그룹이 손을 잡는 거다.

이걸 그 누가 막느냐는 말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하냐는 거지…….’

이상하게도 불안해 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불안해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도 진정이 안 된다.

‘늙은 건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지금 대현 그룹.

자신이 이끌던 그 찬란했던 그룹이 아니었다.

JH 자동차가 대한민국에 인프라를 확보하기 전.

딱, 그때까지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그런 그룹으로 바뀌었다.

‘늙어서 겁이 많아졌나 보군…….’

이런 상황에서 더 잃을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어차피 언젠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그룹.

굳이 겁낼 이유조차 없단 말이다.

이게 다 늙어서 그런 게 분명했다.

“마지막은 자식들의 손에 맡기는 게 낫겠군…….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이제 끝났어.”

“회장님…….”

“방금과 같은 제안을 자식들한테 했으면 두렵다고 느꼈겠나? 아니지……. 분명 어떻게든 상황을 이용하고 JH 그룹에게 들이박을 생각 하고 있었을 게야.”

“…….”

“나는 자네 말을 듣고 두려웠네. 솔직히 삼송 그룹과 손을 잡아도 JH 그룹을 이길 수 있는지, 막연하기만 하네. 그래선 안 돼.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사라질 대현 그룹이야……. 이미 겁을 먹은 내가 대현 그룹의 미래를 정할 순 없어.”

그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마지막이나마 자식들을 믿어보고 싶었다.

어차피 가만히 있다간 사라질 대현 그룹.

그 끝은 자식들에게 맡기기로 결정했다.

“얘들한테 정하라고 전하게. 마지막이나마 자신들이 결정지어야지……. 그래야 대현 그룹이 망해도 덜 아쉬울 게야.”

“…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회장님.”

“쯧……. 오늘따라 기분이 이상하군.”

늙은이의 괜한 걱정인지…….

그게 아니라면 오랫동안 살아온 삶이 건네는 신호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결정이 퍽 기분 나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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