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130화 (130/175)

130화

* * *

삼송 전자 본사.

‘오늘이 그 날인가?’

인터넷을 켜, 날짜를 확인하고 있는 이정후 부회장.

오늘이 그 날인가 보다.

머저리 같은 놈이 자신의 주제도 모르고 JH 그룹 회장을 만나기로 한 날이.

‘욕심도 많은 아이라니까.’

만약, 삼송 물산에서 가만히 찌그러져 욕심을 부리지만 않았더라도, 삼송 물산 까지는 건드리지 않으려고 했다.

역시 멍청함과 욕심은 비례하나 보다.

능력도 없는 자식이 이제는 하다 하다 회장 자리까지 노리고 있다니.

“부 회장님, 방금 이정재 사장이 JH 그룹 회장과 자리를 가졌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명을 재촉하는군. 굳이 처리할 이유가 없어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회장 자리가 욕심이 나나 봅니다. 그도 그럴 게 1년이 넘어서도 회장 자리가 공석이다 보니 눈앞에 아른거리지 않겠습니까. 더군다나 부 회장님의 진짜 모습을 모르고 있으니…….”

“뭐……. 이빨을 드러낸 가족에게는 굳이 자비를 베풀 이유가 없겠지.”

이빨만 들이밀지 않고, 자신의 영역이나 지켰으면 굳이 건드리려고 하지도 않았다.

아무리 맛있는 먹잇감이 앞에 있더라도 모른 척하는 게 집 지키는 개의 역할이건만,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나 보다.

“그래서 정재가 내민 조건은 뭐야?”

“그게……. 부 회장님이 내건 조건과 별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쯧……. 그놈이 제정신이야? 그런 조건으로 도대체 JH 회장이 왜 그 녀석 편을 들 거라고 생각하지?”

“삼송 그룹이 자신의 손에 들어온다면 한 번 해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참, 멍청하다.

도대체 JH 그룹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단 말인가.

JH 그룹은 드러낸 무기보다 아직 드러내지 않은 무기가 훨씬 많았다.

드러낸 무기만으로 우리 그룹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데, 그것도 모르고 자신이 우위라고 생각하고 있다니.

‘이래서 갑의 위치만 있던 것들은 문제라니까…….’

태생부터 갑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모르는 거다.

자신이 을의 역할에 서 있을 줄.

분명, 부탁하는 입장으로 찾아가는 거라면 모든 걸 내려놓고 가야 됐다.

그렇다고 해도 JH 그룹 회장이 들어줄까 말까인데, 아직까지 지가 갑의 위치라고 생각하고 찾아가다니.

이러니, 내가 혈육들을 무시하는 거다.

자기들이 한국에서나 최고 위치에 있지, 밖으로 나가면 우리보다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즐비했다.

어린 시절부터 돌아가신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느꼈다.

한국 내의 위치는 아무것도 아니란 걸.

그런 경험이 없는 혈육들은 착각하고 있는 거다.

언제나 자신들이 갑일 거라고.

“이전에 지시했던 건, 잘 처리했어?”

“완벽하게 준비했습니다. 부 회장님이 말씀하신 바람잡이가 분위기를 잡으니까, 순식간에 흐름이 넘어왔고, 당연하게도 의견들은 하나 같이 대현 그룹과 손을 잡고, JH 그룹을 삼키자는 내용이 주였습니다.”

“쯧쯧……. 이러니 멍청하단 거야. 명확히 보이는 해답에서 자신들의 권위를 위해 말도 안 되는 방법을 택하다니. 녹음기는 잘 포장했겠지?”

“부 회장님이 지시하시는 순간, 곧바로 보낼 수 있게 조치해 놨습니다.”

“왜 정재 그 자식은 아직도 눈치채지 못하는 걸까? 삼송 물산에는 그 자식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데.”

“… 외람된 말씀이지만, 저라도 눈치채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보면 세상에 멍청한 사람이 참 많은 것 같다.

당연히 혈육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삼송 그룹의 임원들이 어떤 사람인가.

다들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최고의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겨우겨우 얻어낼 수 있는 자리이다.

그런 사람들도 자신들의 욕심 때문에 미래를 져 버린다.

이 얼마나 멍청하단 말인가.

‘그 와중에 JH 그룹 회장은 말이 안 됐지.’

세상에 중간이 없어도 이리 없을 수가 있단 말인가.

대한민국에서는 능력 있는 경영인이 없다고 느낄 때.

JH 그룹 회장을 보고 처음으로 느꼈다.

세상에는 불합리함이 존재한단 걸.

어떻게 한 분야가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최고의 재능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미래를 보는 능력과 그걸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이득을 창출해내는 과정.

문학이라는 힘을 이용해, 국민들을 움직이는 과정.

여러 개의 사업체를 묶어, 궁극적으로 서로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과정.

뭐 하나 빠질 것 없이 완벽한 인간이다.

‘그런 사람한테 덤비려고 하니까, 문제인 거다.’

분명, 이번에 만남이 지나고 나면 JH 그룹 회장도 깨달을 거다.

삼송 그룹의 회장에 어울리는 자는 나뿐이란 걸.

“정재랑 자리가 끝나면 보고해. 괜히 시간 허비하지 않도록 선물은 드려야지.”

“녹음기를 주실 생각입니까?”

“그래야지 않겠어? 어차피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자식이 어떤 꿍꿍이가 있는지 눈치챌 건데, 이왕이면 시간도 절약해 주고, 호감을 올리는 게 이득이잖아.”

“자리가 끝나는 즉시, 보고 드리겠습니다.”

현 삼송 그룹은 이 정도로 마무리 지으면 될 것 같다.

이제는 미래를 얘기해야 될 차례.

슬슬, 삼송 그룹도 치고 나가야 됐다.

‘JH 그룹을 앞서 나가진 못해도, 뒤꽁무니는 따라가야지 않겠어.’

앞서 나갈 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그러기엔 JH 그룹에 모인 인재들의 수준이 삼송 그룹과 너무나도 차이 나니까.

그래도 뒤꽁무니는 따라가야 됐다.

그래야 뒤에 떨어지는 콩고물이라도 줍고, 같이 성장할 수 있지 않겠나.

“작년에 시킨 거는 어떻게 돼 가고 있어.”

“다행히 높은 해외 의존도를 줄여서 이제는 대부분을 국내에서 수급 할 수 있게 시스템을 바꿔놨습니다.”

“부족해. 그게 끝이 아닐 텐데?”

“해외에서 들어오는 자제들도 계약을 다시 해, 조금은 손해를 보더라도 확실하게 가장 먼저 수급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놨습니다.”

“잘했어. 곧 있으면 국가 간의 무역이 원활하지 못할 날이 올 거야. 그때 가서 준비하면 늦어.”

지금은 신 냉전 시대.

해외에서 들어오는 원자재들을 믿고만 있기엔 부족했다.

일이 터지고 나서 부랴부랴 준비하면 그때는 늦었다.

그래서 1년이란 시간 동안 해외 의존도를 극도로 낮추고, 국내에서 수급할 수 있도록 내실을 다졌다.

“홀로그램 기술은 어떻게 돼가고 있어?”

“머지않은 시간에 개발이 완료될 것 같습니다.”

“그 기술이 JH 그룹 뒤꽁무니라도 쫓을 수 있는 유일한 키니까 확실히 준비해. 해외로 유출되지 않게 보안에 신경 쓰고.”

“그렇지 않아도, 만족스러운 급여를 제시하고, 연구원 한 명 한 명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삼송 그룹의 차세대 기술인 홀로그램.

이거라도 있어야 JH 그룹의 뒤를 쫓을 수 있었다.

홀로그램이란 기술을 완전히 개발하면 JH 자동차와 MOU가 아닌 정식 계약을 할 수 있는 날이 다가올 거다.

그거를 제외하고도 스마트폰 시장에서 유일한 단독주자로 앞서 나갈 수 있는 기술.

어떻게든 보안을 유지해서, 삼송 그룹만의 무기를 만들어야 됐다.

“JH 인베스트먼트 산하에 관련 기술 특허들이 많다고 했던가?”

“맞습니다. 개발이 완료되고 JH 그룹과 협업을 하는 순간, 또다시 폭발적인 성장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참……. JH 그룹도 괴물 같고만. 어떻게 미래핵심 기술들은 하나 같이 JH 인베스트먼트가 대주주로 있는 거야?”

“… 그래도 다행입니다. 해외가 아니라 국내에 있는 그룹이 관련 기술들을 갖고 있어서.”

“그치……. 그래도 비벼볼 만한 언덕은 있는 거니까.”

JH 그룹을 평가할 때, 가장 고평가하는 부분.

삼송 그룹이 미래 핵심기술로 연구할 때마다, 관련 기술들의 특허를 가진 회사 대주주 대부분이 JH 인베스트먼트였다.

이러니, 고개를 숙이고서라도 JH 그룹과 손을 잡고 싶은 거다.

‘최대한 좋은 모습을 남긴다.’

그래도 다행이다.

동생이란 놈이 사리 분별 못 하고, JH 그룹에 덤벼들 생각하는 바람에, JH 그룹 회장에게 좋은 선물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어떻게 대화는 잘 나누셨습니까, 회장님?”

“대화를 나누면서 계속 이상한 생각이 드는군요.”

삼송 물산 사장과 대화를 마치고 나온 박제환.

이상했다.

어째서 저 사람은 고작 저 정도의 조건을 가지고 나를 찾아온 건지.

‘자신의 위치를 모르는 건가……?’

그게 확률이 높은 것 같다.

아마, 삼송 그룹 부회장의 연기에 속아 넘어갔나 보다.

그래서 자신을 택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고 있을 거고.

그렇지 않다면, 오늘 만남에 저런 성의 없는 제안을 가져올 리가 없지 않은가.

“혹시 모르니까, 대비하는 걸로 하죠. 아무래도 좋은 생각만 가지고 나온 것 같진 않았거든요.”

“… 그게 말이 됩니까? 삼송 그룹 부회장도 고개를 숙이는 게 회장님입니다. 그런 회장님께 멍청이도 아니고, 과연 나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할지…….”

“분위기가 이상해 보이더군요. 마치, 오늘의 만남이 좋게 끝나지 않는다고 해도 아쉬워하지 않을 것 같은 태도였습니다.”

“…….”

이 같은 경우.

두 가지의 경우의 수가 존재했다.

이 사람이 심각할 정도로 모자란 머저리던가,

욕심에 눈이 멀어서 한번 들이박을 준비를 하고 있던가.

‘후자일 가능성이 크겠지.’

그래도 이때까지 들은 명성이 있다.

그 정도 사리 분별도 못 할 정도로 머저리는 아니란 얘기

웬만해선 후자의 경우의 수가 확률이 높은 만큼, 대비해서 문제 될 건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삼송 그룹 부회장님의 편에 서실 예정입니까?”

“어떤 경우로 생각해도 그게 나을 것 같군요. 저런 사람이 삼송 그룹을 차지한다면 국내를 믿고 맡길 그룹이 없어요.”

“… 저 사람에게는 오늘의 약속이 오히려 독이 됐군요.”

“아마 모르진 않을 겁니다. 단지, 그 이상의 자신감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고요.”

비서실장님과 삼송 그룹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대화를 나누고 있는 비서실장님의 핸드폰에 전화가 걸려 왔다.

평소라면, 번호만 확인하고 나중에 통화하는 비서실장님이 이상하게도 내 앞에서 전화를 받는다.

‘삼송 그룹 부회장인가…?’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고 있는 비서실장님.

옆에서 얘기를 나눈 걸 보니, 삼송 그룹의 부회장인 것 같았다.

이내, 몇 초간의 대화가 이어지고, 핸드폰을 한쪽으로 치우더니 나에게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회장님, 삼송 그룹 부회장님께서 통화를 하고 싶다는 말을 전합니다.”

“… 이정재 사장은 확실히 승계 구도에서 밀리군요. 자신을 감시하고 있단 걸 전혀 모르고 있다니.”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 핸드폰 번호로 전화하라고 하세요.”

“네, 회장님.”

의견을 묻던 비서실장님에게 승낙의 대답을 건넨 나는 생각했다.

이 승계 싸움은 무조건 삼송 그룹 부회장이 가져갈 거라고.

내가 개입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애초에 싸움이 안 됐다.

지금 삼송 그룹 부회장 태도만 봐도 확연한 차이가 난다.

아까 대화를 나눴던 이정재 사장은 은연중에 자신이 갑이라는 걸 드러냈었다.

반대로, 지금의 부회장.

곧바로 통화를 걸 수 있음에도 비서실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의견을 물어왔다.

‘분명히 나와 같이 있는 걸 알고 있을 건데도 말이지…….’

비즈니스의 기본이라고 불리는 배려.

웬만한 재벌들에게도 없는 배려를 삼송 그룹 부회장은 너무나도 잘 이용할 줄 알았다.

같은 배려라도 하는 사람에 따라 더욱 부가되는 것.

그걸 한 그룹의 부회장이 하니, 어찌 호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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