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 * *
그 시각 KJ 그룹의 김제앙 상무.
쾅―
‘젠장…….’
이게 다 그년과 만나고 나서부터 잘 못 됐다.
처음 그년을 봤을 때.
연습생치고 반반하게 생겼길래, 술자리에 초대했다.
웬만한 연예인들도 제발 가고 싶다며 애원하는 게 나와의 술자리다.
당연히, 가수를 꿈꾸는 그 년한테도 나쁜 제안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거절할 거라곤 생각조차 못 했고.
그러다가 들은 거절.
무조건 승낙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들은 거절이어서일까?
그 어떤 거절보다 자존심 상했었다.
‘아니지…….’
어쩌면 이상형에 가까운 얼굴이었기에 아쉬운 마음이 컸을 수도 있겠다.
그래…….
거기까지 괜찮았다.
기분 나쁜 선에서 끝냈어야 했다.
하필, 이상형에 가까운 그녀여서 그런지, 계속해서 얼굴이 아른거렸고, 주변을 이용해 한 번 더 제안을 건넸다.
상황도 거절할 수 없도록 만들어냈고.
‘거기서 한 번 더 거절당했지…….’
그때부터는 이상형이고 뭐고, 자존심 싸움이었다.
그년이 내 술자리 초대를 거절하고 계속해서 연예계를 꿈꾸는 건, KJ 그룹 김제앙 상무의 영향력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었다.
이상형에 가까운 그 얼굴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 영향력을 위해서 블랙리스트에 올렸고, 당연하게도 그녀는 가수에 대한 꿈을 접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아쉬웠지만.’
아쉬웠지만, 영향력을 지켰다는 거에 만족했다.
솔직히 그년 얼굴이 계속해서 아른거렸지만, 제대로 접근했다면 다를 거라고 애써 자위하면서 시간을 보냈었다.
그러다 우연히 들은 소식.
그년이 GL 엔터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GL 엔터에 연락했고, 자신들이 무슨 상관이냐는 대답을 들었다.
‘처음에는 미친 줄 알았는데…….’
그때는 그들이 미친 줄만 알았다.
우리 그룹이 어떤 그룹인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연예인도 허리를 굽히는 게 KJ 그룹이다.
아무리 GL 엔터가 뒤따라오고 있다고 하지만, 엄연히 2위 그룹이었고, 굳이 그런 년 하나 때문에 척질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때 들려온 불길한 소식.
글쎄 그녀가 박제환 회장과 연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이다.
아닐 거라며 부정도 했고, 말도 안 되는 소식이라며 비웃기도 했었다.
‘그때라도 돌렸어야 돼…….’
소문이 사실이기라도 했을까?
거짓말같이 GL 엔터가 급부상하더니, 종국에는 압도적인 격차로 1위에 올라섰다.
심지어 중국으로 향하기 위해선 GL 엔터를 거쳐야 된다고 하니, 사실상 격차가 더 벌어지게 된 거나 다름없었다.
그때라도 가서 사과해야 됐다.
‘부정하고 싶은 소문이 사실이 됐다.’
동성 그룹 회장님의 칠순 잔치.
그때 올라 온 기사를 보고 기절할 뻔했다.
기껏해야 자신처럼 스폰을 맺은 줄 알았다.
실제로 나 역시 몇 명의 여자와 스폰 관계를 맺고 있었고.
‘X발, 연인 사이가 말이 되냐고…….’
다른 누구도 아니고 박제환 회장이다.
단, 3년이란 시간 만에 대한민국 최고에 올라선 박제환 회장이란 말이다.
그런 남자가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그런 년을 만난단 말인가.
똑똑―
- 상무님!! 지금 큰일 났습니다!!
알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방금 기사를 봤었다.
인터넷에는 나로 추정되는 사람이 마약을 하고, 그년에게 성추행했다는 기사가 실려있었다.
밖에 있는 직원 말대로 큰일이 맞았다.
그럼에도 어떻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상대가 누구인가…….
자신의 할아버지마저 한 수 접고 넘어가야 되는 박제환 회장이다.
그런 사람한테 어떻게 항의할 수 있냐는 말이다.
쾅―
“아, 아버지…….”
“기사를 봤을 거라고 생각한다.”
“…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방금 GL 엔터에서 연락이 왔다.”
“…….”
꿀꺽―
겁이 났다.
지금 아버지에게서 들려오는 말 한마디에 내 미래가 결정됐다.
그렇다고 누굴 탓할 수도 없었다.
재벌의 삶은 이런 거니까.
실적을 냈을 땐, 누구보다 높게 올라가고, 손해를 가져올 땐, 그 누구보다 빠르게 추락한다.
나라고 이와 같은 전제에서 피해 갈 순 없었다.
“네가 건드린 아이가 박제환 회장하고 미래가 약속된 아이라고 하는구나. 이미 집안끼리 인사도 맞췄다고 한다.”
“…….”
최악이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아버지에게 확답을 들으니 이보다 더욱 최악일 순 없었다.
“힘들겠지만, 옥살이 좀 해야 될 것 같구나.”
“… 갔다 오면 복귀할 순 있는 겁니까?”
“… 힘들 것 같구나.”
“… 정녕 방법이 없는 겁니까? 혹시 할아버지가 나서신다면…….”
“회장님도 만나고 오는 길이다. 회장님이 너를 많이 아끼신 만큼, 직접 전하기 힘들 것 같다 해서 내가 온 거다.”
“… 책임지겠습니다.”
할아버지까지 현재 상황을 알고 있는 거라면 답이 없었다.
차라리, 그룹에 피해가 가기 전에 들어가는 게 나았다.
그래야…….
들어가고 나서 밥이라도 빌어먹고 살 수 있을 테니까.
‘물론 재벌가의 삶을 살지는 못 하겠지만…….’
그래도 밑바닥 인생을 살 순 없지 않은가.
그냥 깔끔하게 책임지고, 감옥에 들어가는 게 맞는 것 같다.
“다녀오면 굶고 다니진 않게 해주마. 약속하마.”
“감사합니다, 아버지. 그리고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뭐 있느냐. 운이 안 좋았던 거지.”
“모든 건 결과가 정해주지 않습니까.”
그래…….
나 혼자만 감옥에 들어가면 모든 게 해결된다.
어쩌면, 큰 사고를 친 거치고는 깔끔하게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 들어가기 전에 그 아이를 만나 사과해야 될 거다…….”
“… 아버지……. 저 KJ 그룹의 혈육입니다. 아무리 사고를 쳤다 하더라도 재벌가란 말입니다.”
“어쩔 수 없지 않느냐. 네가 말한 KJ 그룹이 사라지는 것 보다는…….”
“정녕……. 그 방법밖에는 없습니까?”
“그 아이도 JH 그룹의 일가라고 생각하면 좀 괜찮을 게다…….”
아버지도 말도 안 되는 발언이란 걸 알고 있을 거다.
굳이, 따지자면 내 자존심을 챙겨주기 위해 뱉은 말.
이 상황에 더욱 짜증이 나는 건, 저렇게라도 생각하고 싶다는 거다.
‘그래……. 내려놓자…….’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다.
혹시나 반성하는 태도로 사과를 건네면 넘어가지 않을까 하고.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이곳에 있어봤자 상황만 더욱 악화됐기에, 미안해하는 아버지를 뒤로하고,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 * *
다음 날.
“어떻게 할래요, 서아 씨.”
“음……. 그러니까, 그 사람이 저한테 사과를 건네고 싶다는 거죠?”
서아와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박제환.
어제 연락이 온 김제앙 자식의 소식을 전하자, 서아 씨가 고민하는 게 보였다.
“그 사람은 진짜로 반성해서 그런 걸까요?”
“… 그건 잘 모릅니다.”
“아마도, 제환 씨가 아니었다면 사과하지도 않았겠죠?”
“솔직히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그럼 안 받을래요.”
“알겠습니다.”
서아는 피해자.
가해자의 사과를 받으라고 강요할 수 없다.
더욱이 사과를 안 받는 게 어떻게 보면 그 자식의 자존심을 더 깎아내리는 처사일 거다.
“그나저나 서아 씨 하루 만에 대스타가 됐네요…….”
“… 놀리지 마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놀리는 것만은 아니다.
단, 하루.
하루라는 시간 동안 말 그대로 서아는 대스타가 됐다.
그동안 사람들이 의심하고 비난했던 게 미안했을까?
한 명이 장문으로 사과의 말을 건넸다.
그간 자신의 행동을 밝히고, 그거에 대한 반성문을 작성해 댓글에 올렸다.
그걸 본 다른 사람들도 한둘씩 따라 하기 시작했고, 이례적으로 데뷔와 동시에 대국민 사과를 받은 가수가 돼 있었다.
“가족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당연히 잘했다고 하죠. 이제는 좀 떳떳하게 가족들을 챙길 수 있겠네요.”
“제가 도와줄 거라도…….”
“에이……. 그게 무슨 소용이에요. 일부러 제환 씨의 재력을 빌려서 도와준다는 말들을 까봐 더욱 독하게 준비했는걸요?”
역시 서아답다.
충분히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일임에도 자신의 신념을 위해 정면으로 부딪치는 여자.
서아라면 가수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성공했을 것 같았다.
“사실, 저희 할아버지가 두 번째 곡을 엄청나게 좋아하더라고요.”
“할아버님이요? 다행이다……. 할아버님이 아무래도 「절대음감」의 팬이어서 더욱 좋아하셨나 보네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왜요? 뭐라고 하셨어요?”
“그……. 손주며느리 자랑 좀 하신다고, 사인 좀 부탁하신다고 하네요…….”
할아버지의 말을 전하자, 조금은 황당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우리 할아버지는 사인 모으기가 취미이신가 보다.
내 사인도 그렇게 가져가시더니 이제는 서아의 사인까지 챙기다니…….
뭔가 흐뭇한 거 같으면서도 이 사실을 전하기가 낯부끄러운 것 같았다.
“뭔가 뿌듯하네요. 진짜 어제부터 천국에 있는 것 같아요. 나를 두고 모두가 욕하더니, 이제는 모두가 사과를 건네며 응원해요.”
“그야 서아 씨의 노래가 통한 거겠죠?”
“저는 달라진 게 없는데, 주변이 변한 것 같아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서아는 지금 상황이 신기한가 보다.
하긴, 처음 겪는 사람이라면 얼떨떨하는 게 당연했다.
원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두 가지 반응이 대다수였다.
자신을 욕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변한 태도에 경멸을 느끼거나, 달라진 환경에 좋아하는 사람들.
다행히도 서아는 후자에 가까웠나 보다.
“앞으로는 바쁘겠네요.”
“어쩔 수 없죠. 이제 막 데뷔했으니까. 제가 꼭 성공해서 우리 제환 씨한테 부끄럽지 않은 가수가 될 거예요.”
“그런 말 말아요. 지금도 너무 유명해져서 불안한걸요.”
“그랬다면, 성공이네요.”
서아의 데뷔가 그야말로 대성공한 게 기쁘면서도 한 편으로 아쉬웠다.
안 그래도 자주 만나지 못한 서아를 성공적인 데뷔로 인해 더욱더 만나기 힘들어질 것 같다.
‘그동안 자리를 잡는다.’
그렇다면 그 시간 동안 나 역시 자리를 잡아야겠다.
서아와 결혼을 얘기할 수 있도록 그런 상황으로 말이다.
‘안 그래도 다가올 기회들 때문에 시간이 부족했는데…….’
솔직히 서아를 보고 싶었지만, 나 역시 시간이 부족했다.
일단, 지금 쓰고 있는 작품.
조만간 완결을 향하지만, 아직까지는 3권 분량 정도를 더 적어야 됐다.
그리고 다가오는 미, 중 무역 전쟁.
이것 역시 각 회사들의 지도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야 됐다.
‘그리고 코로나…….’
이 부분에 대해선 많은 고민을 했었다.
다가오는 코로나를 내가 막아설 수 있는 지 말이다.
그렇게 나온 결론.
코로나는 자연재해와도 같았다.
자연재해는 인간이 막을 수 없기에 자연재해라고 불린다.
‘막기보다는 피해를 최소화한다.’
막기보다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총력을 가해야 됐다.
사실, 코로나에 대해선 초반에 대처만 잘한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까지는 완전히 책임지지 못 하지만, 한국 정도는 가볍게 넘길 수 있을 거다.
‘성인군자가 아니다.’
무엇보다 전 세계를 책임질 정도로 성인군자가 아니었다.
가족들이 있고, 서아가 있는 한국.
한국까지는 어떻게 희생해서 막는다고 하지만, 전 세계를 책임지고 싶지 않았다.
‘한 번 경각심은 있어야 돼.’
코로나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에겐 어쩔 수 없지만, 한 번은 경각심을 가져야 됐다.
자연을 훼손하면 인간들에게 어떤 악영향으로 다가오는지.
그로 인해 대가를 크게 치르겠지만, 거기까지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당분간은 바쁘겠네…….’
이걸 다 준비하면 당분간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것 같았다.
그동안 서아를 보기 힘들게 분명한 만큼, 오늘만큼은 서아 옆에 있으면서 하루 종일 붙어있어야겠다.
“어머, 제환 씨, 갑자기 왜 이렇게 달라붙어요.”
“좋아서 그렇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