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127화 (127/175)

127화

“야, 곧 시작한다.”

“진짜? 어디, 어디?”

실용음악과를 다니는 소녀는 곧 시작되는 노래에 친구를 불렀다.

그동안 친구와 같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이렇게 꿈을 꾸는 게 무슨 의미인가 하고서 말이다.

지금 화면 속에 있는 여자.

우리가 목표로 하며 꿈꾸고 있는 자리에 단순히 박제화 작가의 연인이라는 이유로 서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궁금했다.

과연 저 여인이 마땅히 누릴 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솔직히, 그냥 잘했으면 좋겠다……. 못 해서 짜증 난 것 보다 차라리 실력이 좋아서 납득이라도 했으면 좋겠네.”

“그러니까. 안 그러면 억울하잖아. 누구는 죽어라 아르바이트하면서 꿈꾸고 있는데, 단순히 남자를 잘 만나서 가수가 되는 게.”

그렇게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화면 속 여자가 심호흡하고, 전주가 흘러나왔다.

몇 초간의 전주고 흐르고.

여자가 입을 열며, 노래를 부른다.

“…….”

“…….”

놀랐다…….

물론 하이라이트 부분이 나오지 않았기에, 속단하긴 일렀다.

그렇다고 해도 첫음절에서 평범하지 않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와……. 목소리 진짜 이쁘다.”

“…….”

목소리뿐만이 아니었다.

더 들어봐야 알겠지만, 음정 박자……. 더 해서 성대를 움직이는 것까지.

가성과 진성을 왔다 갔다 하는 실력.

고음에 들어섬에도 흔들리지 않는 탄탄함.

그 모든 게 기존 가수들과 비교해도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더 뛰어난지도 모르겠다.

“노래 들으니까, 괜히 연애하고 싶네.”

“나만 느끼는 거 아니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건네져 오는 전달력.

노래를 듣고 있을 뿐인데, 마치 첫사랑을 앞두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 근데 진짜 억울하겠는데? 아니, 이 정도 실력이면 왜 그동안 가수를 안 한 거야? 충분히 데뷔하고도 남았을 것 같은데…….”

“야……. 우리 한탄할 때가 아니라, 더 열심히 할 때였네……. 저런 실력을 갖춘 사람도 데뷔에 앞서서 피나는 노력을 하는데, 우리가 뭐라고 남 탓만 하고 있냐…….”

“저건 반칙 아니냐…? 적당히 잘해야지…….”

“다음 노래가 동양풍 노래라 했나?”

“와……. 그건 얼마나 잘 부르려나.”

첫 번째 곡을 듣고 나자, 두 번째 곡이 더욱 궁금해졌다.

일단, 첫 번째 곡으로 실력에 대한 의심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의심이 사라진 자리에는 기대감이 맴돌았다.

과연, 저 사람이 부르는 동양풍의 노래가 얼마나 좋을 지 말이다.

“부른다. 조용해 봐.”

“…….”

두 번째 노래가 시작하자, 우리 둘은 희미한 숨소리조차 내지 않기 위해 호흡을 멈추고는 노래에 집중했다.

“…….”

“…….”

집중한 채 들은 두 번째 노래.

이건 뭐라고 평가를 내릴 수가 없을 것 같다.

평가를 내리기엔 두 번째 노래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나질 않는다.

말 그대로 평가가 아닌, 감상을 했다.

“야, 이거 미쳤는데…?”

“원로 가수들 반응이 진짜인 것 같아……. 제대로 모르는 내가 들어도 이 정도인데, 많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여운이 남을 것 같은데.”

“사람들은 뭐라고 하고 있냐?”

“기다려 봐.”

노래를 듣던 친구가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나 보다.

나 역시 궁금했던 만큼, 곧바로 인터넷에 들어가 댓글들을 확인했다.

- … 그동안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처음 노래를 듣고 설렘을 느꼈고, 두 번째 노래를 듣고 희망과 여기까지 올라오기 위해 고생했던 게 느껴져 처절함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 죄송합니다. 제가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봤습니다. 노래를 듣고, 제 삶을 돌아보게 되고 반성하게 됐습니다.

- 박제환 작가님은 부럽네요. 저런 고운 목소리를 가진 분에게 평생 노래를 들을 수 있을 테니.

- 님들 나만 느낌? 두 번째 곡은 「절대음감」이 영화로 만들어지면 OST로 써도 괜찮을 것 같은데.

댓글들은 확인하니, 알 수 있었다.

반성하고 있는 게 우리 둘만이 아니었다고.

“야, 이러지 말고 빨리 연습하자. 우리도 열심히 해서 꼭 저분처럼 멋있는 가수가 되자고.”

“오늘부터 저분은 나의 롤모델이다. 가수가 되면 꼭 마주 보고 사과할 거다.”

“나도 만난다면 곧바로 사과부터 한다.”

노래로 말하는 걸 꿈꾸는 사람이, 그 사람의 환경만 보고 욕을 했다.

이 얼마나 죄스러운 일이란 말인가.

이 감정을 자신 혼자만 느낀 게 아닌지, 친구도 꼭 마주 보고 사과를 건네고 싶다 한다.

‘나중에 만나면 고개를 숙여서 사과하자.’

가수를 꿈꾸는 사람은 알 수 있을 거다.

화면 속에 있던 여인이 저 자리에 서기까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지.

그걸 멋대로 판단한 나는 나중에 만나 꼭 사과하기로 결심했다.

* * *

“와……. 아가씨 노래는 언제 들어도 감탄만 나옵니다. 진짜 아내와 처음 만났을 때, 그때로 돌아간 기분입니다.”

태블릿으로 방송을 보고 있던 박제환.

앞에서 비서실장님의 감탄사가 들려왔다.

‘예전 생각이 나네…….’

나 역시 비서실장님의 의견에 동의했다.

서아의 첫 번째 노래.

전생에 서아와 만나고 데이트했을 때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두 번째 노래.

「절대음감」 작품을 집필할 때의 기억을 상기시킨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

모든 걸 다 떠나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서아의 모습이 너무나도 즐거워 보였다.

“회장님, 대중들이 다들 아가씨에게 사과의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오해한 거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야죠. 이때까지는 지켜봤지만, 이 이후부터는 악플다는 사람들에게 가차 없을 겁니다. 서아는 실력으로 증명했으니까요.”

“근데, 진짜 멋있네요……. 어린 나이에 억울할 법도 한데, 그걸 정면으로 부딪치다니……. 어째서 회장님이 서아 아가씨를 보고 그렇게 흐뭇한 미소를 짓는지 이해 갑니다.”

“… 비서실장님은 이해하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가정도 있는데…….”

“에이……. 그저 팬심입니다. 팬심.”

팬심이란 걸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

비단, 비서실장님 반응만을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니다.

인터넷에 달린 댓글들은 살펴보면 모두가 서아를 원하고 있었다.

자신을 가져달라는 사람도 많았고, 인제 와서 보니 나보다 서아가 아깝다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비서실장님, 승호한테 연락해서 확실하게 공표하도록 하세요. 서아는 저랑 연인 사이라고.”

“… 회장님도 이런 면이 있군요……. 하기야, 서아 아가씨 정도면…….”

“절대, 그 누구도 불순한 마음을 가져선 안 됩니다. 만약, 광고를 빌미로 이상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곧바로 조치를 취하세요. 그 회사는……. 아니 그 그룹은 평생 저희와 척을 져야 될 겁니다.”

“… 미치지 않은 이상 서아 아가씨에게 불순한 접근을 하는 사람은 없겠군요.”

“그런 미친 놈들이 세상에 많으니까, 각별히 조심해주시죠.”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서아에게 접근하지 않을 거다.

이미, 나와 연인 사이라는 게 온 세상에 알려진 상태니까.

하지만 세상은 평범한 사람만 있는 게 아니었다.

한 명씩 나사가 잘 못 끼워진 사람도 많았다.

괜히 연예인들을 스토킹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겠는가.

서아라고 그중 한 명이 안 될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나저나 슬슬 시작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이때까지 서아를 힘든 게 했던 사람한테 돌려줄 때가 왔네요.”

비서실장님 말대로 이제는 돌려줘도 될 것 같다.

이전에 서아의 꿈을 빼앗아 가고 짓밟았던 그에게 복수를.

‘승호랑 맞춰야지.’

이 부분은 내가 섣불리 건드리기 애매한 만큼, 승호와 입을 맞춰야 했기에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 어, 서아 씨 완전 멋있던데? 너 조심해야겠더라. 벌써부터 광고를 원하는 회사들이 많아.

“그 회사들 중 불순한 의도가 있는 곳은 각오하라 해라. 너도 확실하게 말해. 간단한 사이가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라고.”

- 알고 있다, 인마. 어떤 간 큰 회사가 불순한 의도를 갖겠냐.

“그건 그렇고, 슬슬 시작해도 될 것 같은데?”

- 서아 씨가 꿈을 잃을 뻔했던 이유에 대해서 말이지?

이전에 말했던 바가 있어서일까?

본론을 말하지 않았음에도 승호가 곧바로 눈치챘다.

“우리 그룹도 슬슬 시작하려고 한다. 타이틀은 ‘한국을 빛낼 가수가 더러운 재벌의 수작 때문에 꿈을 잃을 뻔했다.’ 이게 괜찮을 것 같네.”

- 분명 기사를 작성하면 KJ 그룹에서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거야.

“이미, 법적 자문을 구한 상태고. KJ 그룹도 망하고 싶지 않다면 고소를 취소할 거다.”

- 하기야……. 원인은 그쪽에 있으니까……. 대현 그룹도 겨우 숨만 붙어 있는데, 미치지 않고서야 고소하진 않겠지. 김제앙 그 자식은 경영에서 완전히 밀리겠네.

부족했다.

승호가 말 한대로 경영에서 제외될 확률이 높았다.

그 정도로는 서아가 이때까지 겪었던 마음고생에 절반도 보상받지 못할 거다.

“부족해. 그 쪽한테 확실히 정해. 2등으로라도 살아남고 싶으면 확실하게 처리하라고. 김제앙 그 자식 약도하고 있잖아.”

- 그러고 보니까, 이전에 정민우 그 자식이랑 같이 약했던 사람 중에 한 명이네. 그룹을 지키고 싶으면 조용히라도 감옥에 들어가라 해야지. 언론에 다 뿌리면 KJ 그룹도 위험하겠다.

“아직까지 그룹은 죄가 없으니까. 이제 시작하자.”

- 그래. 나중에 서아 씨랑 밥 한번 같이 먹자.

나중에 밥을 먹자는 말로 전화를 마무리 한 나는 곧바로 비서실장님에게 말했다.

“방금 들으셨을 겁니다. 저희가 할 거는 서아가 어째서 꿈을 잃었었는지……. 그 부분을 부각시켜서 언론에 뿌리도록 하세요.”

“안 그래도 통화하실 때, 문자 보낸 상태입니다. 회장님의 허락만 있으시다면 곧바로 움직일 준비가 돼 있습니다.”

“좋네요. 움직이도록 하세요.”

김제앙에 대한 처리는 이 정도면 될 것 같다.

이 이후부터는 그룹의 법조인과 승호 쪽에서 해결할 거다.

이제 내가 해야 될 건 무엇이 남아있을까.

바로 꿈에 한 발을 걸치기 시작한 서아에게 축하하는 일만 남았다.

지이잉―

서아가 언제 끝나나 기다리고 있을 때.

때마침 서아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 제환 씨! 어때요?! 제 노래 제대로 들으셨어요?

“물론입니다. 어디세요, 축하하는 의미로 제가 밥 사겠습니다.”

- 괜찮겠어요? 저 이제 막 방송국에서 나오고 있는데.

서아는 내가 집으로 향했을 거라 생각했는지, 괜찮겠냐는 말을 전해왔다.

‘저기 있네.’

방송국을 나왔다는 서아의 말을 듣고, 창밖을 바라보니 서아의 모습이 보였다.

그걸 확인한 나는 곧바로 차에서 내렸고, 손을 흔들며 말했다.

“물론이죠.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서아 씨가 꿈을 향한 출발선에 섰을 때. 그 순간에 옆에 서 있고 싶었거든요.”

- 제환 씨…….

“축하드립니다. 꿈을 향한 출발선에 서신걸. 언제나 힘들 때, 옆을 돌아 봐주세요. 그 자리에는 언제나 제가 서 있을 테니까요.”

- … 멋있는 말인데, 뭔가 오글거리네요.

“… 그렇습니까?”

전화를 통해 떨떠름한 반응을 하던 서아가 이내 전화를 끊고, 내 쪽으로 달려왔다.

폴짝―

꽈악―

그러고는 오랜만에 만난 연인처럼 내 품을 향해 뛰어들고는 꽉 안아주었다.

“고마워요, 제환 씨……. 저 진짜 행복한 여자인 것 같아요.”

동시에 얼굴을 내 품에 묻으며 말했다.

“저도 감사합니다. 저도 진짜 행복한 남자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 역시 서아의 말에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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