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126화 (126/175)

126화

‘많이 피곤했나 보네.’

나의 위로에 눈물을 흘리던 서아.

이내 좀 휴식을 취하라는 내 설득에 넘어갔고, 연습실 한편에서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제발, 내일 있을 데뷔가 잘 됐으면 좋겠다.

승호 말대로라면 성공적인 데뷔가 될 수 있다지만, 그것도 미래의 일이지 않은가.

그 누구도 결과를 모른단 말이다.

더군다나 지금 사람들은 서아에 대한 선입견이 가득했다.

웬만큼 잘해서는 선입견을 부수기 어렵다는 거다.

‘이쁘다…….’

잠들어 있는 서아를 바라보니 가슴이 두근거려왔다.

분명 야윈 얼굴임에도 그 모습이 문득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꿈을 위해서 달린 결과물이다 보니 그렇게 느껴졌나 보다.

스으윽―

“좋냐?”

서아의 얼굴을 보며 넋을 놓고 있을 때.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들은 건지, 조심스럽게 승호가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좋지. 근데 한 편으로 걱정되네. 이렇게 고생했는데, 보답받지 못할까 봐.”

“걱정하지 마라. 분명 잘 될 테니까. 하루만 더 버텨봐.”

“그래야지.”

“서아 씨 자는 모습 보니까, 완전히 기절한 것 같은데, 어쩌냐?”

“오늘은 여기서 같이 있으려고. 혹시 담요랑 베개 같은 거 있으면 가져다 주라.”

“기다려 봐, 비서한테 부탁해서 가져다 주라 할게.”

승호 말 대로 서아는 그간의 피로 때문인지, 기절한 듯이 잠에 들어 있었다.

이런 서아를 깨워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도록 옆에 있어 줄 생각이었다.

“승호야. 솔직히 무섭다. 서아가 실망할까 봐.”

“하긴……. 이 정도로 고생했는데, 반응이 안 좋으면 크게 실망하겠네. 더군다나 사람들 선입견이 장난 아니니까.”

“그리고 이런 말 하기 뭐 하지만, 네 원망도 든다. 왜 그런 마케팅을 생각한 건지. 충분히 데뷔를 앞당길 수 있었는데.”

“… 그러냐?”

나와 열애설이 뜨기 전에 데뷔했다면 이 정도로 많은 질타를 받진 않았을 거다.

이런 상황을 일부러 유도한 승호한테도 괜스레 원망이 들었었다.

그 마음을 승호에게 전하니 굳는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입가에 웃음기를 머금었다.

“너 서아 씨 노래 제대로 안 들어봤구나?”

“… 조금은 들어봤지. 근데 서아가 마무리된 거는 안 들려주더라고.”

“그러니까, 그런 걱정을 하는 거다.”

“믿어도 되는 거지?”

“믿으라면 좀 믿어라, 짜샤. 내가 서아 씨를 괜히 욕먹게 하겠냐. 다 결과를 믿으니까, 했던 거지.”

그랬으면 좋겠다.

제발, 사람들이 이때까지 서아에게 욕한 걸, 조금은 반성했으면 좋겠다.

“내일 되면 평가가 바뀔 거다.”

“평가?”

“지금 여론 보니까, 서아 씨가 뭐 너랑 사귀어서 데뷔한다……. 이런 여론이 많더라고?”

“그치……?”

“내일이면 너 정도 되니까, 서아 씨를 만날 수 있다는 여론으로 바뀔 거야.”

“… 그렇다면 꿈만 같겠네.”

승호가 말 한대로 여론이 바뀐다면 꿈만 같을 것 같다.

내 작품이 전 세계적으로 흥행을 불어온 것처럼, 서아의 노래도 전국으로 퍼져나갔으면 좋겠다.

욕심일 수도 있지만, 서아의 목소리라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승호가 말 한대로 이뤄지겠네.’

쉽지 않다는 걸 알지만, 승호의 자신만만한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마냥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럼 나는 갈 테니까, 서아 씨 잘 부탁한다. 곧 있으면 비서가 이불이랑 베개 가져다줄 거야.”

“고맙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잡음 나가지 않게, 그것도 부탁하고.”

“이미 조치를 취한 상태니까, 걱정하지 말고. 얌마, 이래 봬도 엔터 상무야. 곧 있으면 사장 되는 사람이고.”

“혹시나 해서 말해 봤다.”

대화가 끝나자, 승호가 손을 흔들며 밖으로 향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승호 비서로 보이는 분이 베개와 이불을 가져다줬고, 서아가 편히 잘 수 있도록 이부자리를 만들어줬다.

‘제발…….’

잠자리를 바꿀 때까지, 한 번도 깨어나지 않은 서아를 바라보며 기도했다.

제발, 서아의 노력이 보상받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 * *

다음 날.

“잘 할 수 있을 거에요, 서아 씨. 그동안 노력 많이 했잖아요.”

“후……. 잘해야죠. 어제는 감사해요. 덕분에 일주일 동안 피곤했던 몸이 말끔히 풀린 느낌이에요.”

“많이 피곤했나 봐요. 글쎄, 코까지 골면서 자더라니까요?”

“진짜요!!? 그럴 리가 없는데……. 이때까지 단 한 번도 코를 골면서 잔적이 없단 말이에요.”

“그런가요? 어쩐지 코를 한 번도 안 골더라.”

“이 씨…….”

방송에 들어가기 직전.

서아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가벼운 농담을 건넸다.

그래도 약간이나마 통했는지, 이전보다 긴장한 모습이 덜 해 보였다.

“제환 씨도 꼭 들어야 돼요. 이번에 들려주려고 이때까지 제대로 된 곡 안 들려줬단 말이에요.”

“물론이죠. 안 그래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스읍……. 그렇게 하니까, 살짝 부담되는 것 같기도 하고.”

“화이팅 해요, 서아 씨. 나중에 가서 오늘이 아쉬운 날이 아닌, 후련한 날로 기억남을 수 있도록 말이에요.”

“… 작가라 그런지, 말은 진짜 잘하시네요. 제환 씨가 그렇게 응원해주시니까 한번 잘해볼게요.”

이제 슬슬 나는 돌아가 봐야겠다.

괜히 방송하는 곳까지 따라가서 팔불출처럼 행동한다면, 그 모습이 대중들에게 좋아 보이진 않을 거다.

방송국에 있는 사람들 역시 좋게 보지 않을 거고.

“저는 슬슬 가 보도록 할게요.”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제환 씨. 꼭 잘해서 제환 씨가 듣던 이상한 말들 쏙 들어가게 해줄게요.”

“네, 화이팅입니다!”

차에서 내린 서아가 주먹을 불끈 쥐며 잘해보겠다는 말을 건네고, 곧장 방송국 안으로 들어갔다.

아마, 뒤돌아보지 않고 곧바로 향한 건 마음을 굳게 다지기 위함이었던 게 분명했다.

마지막에 본 서아의 얼굴.

그 어느 때보다 비장해 보였다.

“회장님, 어떻게 댁으로 안내해드리면 되겠습니까?”

“여기서 기다렸다가 방송을 보는 게 나을 것 같군요.”

서아를 보내고 나니 비서실장님이 목적지를 물어왔다.

서아가 방송을 타기 한 시간 전.

어딜 가기에도 애매한 시간이고, 방송을 마친 서아를 꼭 안아주고 싶었기에 이 자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분명 아가씨라면 잘할 겁니다. 나이에 맞지 않게, 책임감도 강하신 분이니…….”

“그러면 좋겠네요.”

“방송 이후로 선을 넘는 악플을 단 사람들에게는 곧바로 고소장을 날리기로 하겠습니다.”

“그래야죠, 경고를 날렸는데도 우습게 본다면, 그건 우리의 잘못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습게 보이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행동하죠. 공인이라고 도를 넘는 욕을 먹어도 되는 건 아니니까요.”

나 역시 공인에 가까운 사람.

언제나 비판까지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 비판마저 피하기만 한다면 그 사람은 발전하기 어려울 테니.

‘비난은 안 되지.’

하지만 비판이 비난이 돼서는 안 됐다.

만약 경고 이후에 비난이 계속된다면, 그건 나의 잘못이다.

제대로 경고를 건네지 못한, 내 탓이니까.

“1분 전 입니다, 회장님.”

떨리는 마음으로 서아의 방송을 기다리고 있을 때.

1분 전이라는 말이 들려왔다.

이전이었다면 그저 방송만 봤을 테지만, 지금은 궁금했다.

과연 사람들의 반응이 어떻게 변할 지 말이다.

하나의 태블릿으로는 방송을 틀어놓고, 또 하나의 태블릿은 사람들의 댓글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사이트에 들어갔다.

‘시작했다.’

방송이 시작됐다.

승호가 이전에 말했듯, 곧바로 서아가 나오는 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각종 연예인이 나와 서아의 노래를 듣고, 평가하는 플롯으로 방송이 진행됐다.

- ㅋㅋㅋㅋㅋ 이게 재벌인가? 신인 가수한테 원로 가수들이 경악하고 있네. 이게 맞음? 대한민국이 JH 공화국이 된 것 같네?

- 이건 좀 실망이네. 저 사람들은 뭐가 아쉬워서 저렇게 띄워주냐? JH 그룹이 협박한 거 아닌가?

- 하……. 그래도 박제환 작가라서 응원했는데, 이건 선을 넘었네요. GL 엔터도 일 처리가 이상하네요. 적당히 마케팅해야지,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마케팅을 하니까 욕을 먹는 겁니다.

- 이야……. 깡다구 봐라? 이걸 어떻게 감당하려고, 저런 사람들을 앉혀 놓고 주작을 하냐. 혹시나 하고 방송 기다렸는데, 어이 털리네.

묵음으로 처리된 서아의 노래를 듣고, 원로 가수들이 감탄사와 함께 극찬하면서 방송이 이어졌다.

그걸 본 사람들은 심하면 욕과 함께 서아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 찼다.

동시에 JH 그룹과 GL 엔터 역시 욕을 먹기 시작했다.

‘저게 진짜 반응이란 말이지…….’

나는 알고 있었다.

저 가수들이 내뱉은 감탄사가 진짜라고.

그리고 대중들도 곧 있으면 알게 될 거다.

서아의 노래는 충분히 저런 감탄사를 받기에 충분하다고.

이내, 몇 명의 가수들의 감탄사가 끝나고 서아가 방송에 등장했다.

- 반갑습니다. 신인 가수 김서아라고 합니다.

서아가 방송에 나와 인사를 건네자, 도를 넘은 댓글들이 계속해서 달렸다.

- 이야……. 어쩜 저렇게 뻔뻔하냐. 이거 방송도 립싱크로 진행되는 거 아니냐? 라이브로 진행하기엔 앞에서 기대치를 너무 올려놨는데?

- 근데, 이쁘긴 진짜 이쁘네. 저러니까 박제환 작가가 홀랑 넘어간 거구나.

- 님들 기어 중립 박으셈. 실시간으로 진행한다는 건, 그에 맞는 자신감도 있다는 거임.

- 자신감인지, 기만인지는 보면 알겠지.

서아의 인사를 시작으로 자신을 소개하고는 노래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저는 박제환 회장과 연인 사이입니다. 이걸 안 좋게 보는 시선도 많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선이 두려워서 숨기고 싶진 않습니다.

- 제가 이 말을 한 이유는 제가 부를 두 곡이 제환 씨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한 곡은 제가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 다가와 준 제환 씨를 생각하면서 만든 노래입니다.

- 나머지 한 곡은 제환 씨의 세 번째 작품인 「절대음감」을 보고, 저도 그 주인공처럼 고난과 역경에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쳐 싸워나가겠다는 의지를 갖고 만든 동양풍의 노래입니다.

서아의 말이 이어질수록 여러 반응의 댓글이 올라왔다.

- 뭐임? 자기가 작곡 작사했다는 거지? 이거 완전 모 아니면 도인데? 물론 도일 확률이 높고.

- 근데, 목소리는 진짜 이쁘네. 동양풍 노래 진짜 좋아하는데, 그래도 기대는 해 본다.

- 말 더럽게 많네. 빨리 부르기나 하지. 하여간 방송국 놈들 시간 끄는 건 알아줘야 된다니까.

제발, 이 부정적인 반응들이 서아의 노래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서아의 노래가 저들의 편견을 깨뜨렸으면 좋겠다.

- 그럼 노래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노래는 ‘햇빛’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제 서아의 노래가 시작되려나 보다.

노래의 제목을 알린 서아가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숙이더니, 마이크를 잡았다.

동시에 서아의 분위기가 변했다.

‘예쁘다…….’

아니……. 멋있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마이크를 잡은 서아는 그 어느 때보다 당당하고 멋있는 모습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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