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 * *
서아가 데뷔하기 하루 전.
역시 걱정하던 반응을 피해 갈 순 없었다.
대한민국 네티즌들은 자신들이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 한해서는 웬만한 탐정보다 정체를 잘 밝혀내는 것 같았다.
서아에 관한 기사가 있고,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서아의 정체를 밝혀냈다.
그중 가장 많은 반응.
스폰이 분명하다는 말이 많았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물론 알고 있었다.
이런 반응은 피해 갈 수 없다는 걸.
그렇다고 해도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을 보니 짜증이 났다.
‘서아도 반응을 본 게 분명해…….’
서아는 반응이 있고 나서 되도록 나와의 접촉을 피했었다.
만나더라도 데뷔 후에 만나자는 말을 건네왔다.
아마, 사람들한테 증명하고 싶었나 보다.
나를 이용한 게 아니라는 걸.
‘잠도 제대로 못 잔 것 같던데.’
전화를 통해 들은 서아의 목소리.
마치, 피곤함에 절어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듣고, 곧바로 승호한테 전화해 서아의 상태를 물어봤다.
그러자 기사가 난 이후 밤낮없이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이런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할 수 있단 말인가.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찾아가, 서아의 옆에서 건강을 챙겨주고 싶었다.
지이잉―
서아에 대한 걱정으로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승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요?! 무슨 일로 전화를 한 거야?”
- 무슨 전화를 건 지 몇 초 지나지 않아서 바로 받냐? 서아 씨가 걱정되는 건 알겠지만, 네 건강도 챙겨라. 목소리 들어보니까 너도 잠을 못 잔 것 같은데?
“…….”
승호 말대로 나 역시 잠을 못 이룬 상태다.
잠만 자려고 하면 서아를 향한 부정적 댓글들이 생각났고, 그걸 본 서아가 고생할 걸 생각하니 맘 편히 잠들 수가 없었다.
“이대로 놔둬도 되는 거 맞냐? 댓글들 보니까 도를 넘은 것들도 많이 보이던데?”
- 어쩔 수 없어. 누군가의 앞에 선다는 건 늘 부정적인 반응이 따라오는 거니까. 너도 글을 쓰는 사람이라서 알잖아.
“나야 작품을 드러내고 욕도 먹었지만, 서아는 아무것도 없이 욕을 먹고 있잖아.”
- 서아 씨는 반대로 진행할 거야. 지금이야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가만히 놔두고 있지만, 만약 데뷔하고 나서도 악플을 다는 사람이 있다면 다들 고소할 생각이다.
“고소 진행하면 말해라. 변호사는 JH 그룹에 있는 최고의 인물들로 구성할 테니까.”
- … 무슨 악플 하나로 그런 사람들을 부르냐.
“악플 하나에 서아가 상처받을 거 생각하면 이 정도도 아쉬워.”
만약 서아가 데뷔하고 나서도 근거 없는 비방을 계속한다면, 최고의 변호사들로 구성해 그들을 응징할 거다.
가볍게 눌리는 손가락 하나가 얼마나 큰 대가를 가져오는지.
“그것보다 전화한 이유가 뭐야. 아무 이유 없이 전화한 건 아닐 거 아니야.”
- 그게…….
“뭔데 그래.”
- 스읍……. 네 반응 때문에 말하기 꺼려지긴 하는데, 너 아무래도 GL 엔터 본사로 와야겠다.
“… 무슨 일 있냐?”
- 이대로 가다간 서아 씨 쓰러질 것 같다. 당장 내일 데뷔곡도 불러야 되고 생방송도 잡혀 있는데, 쉴 생각을 안 하고 있어. 저러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야.
“기다려. 당장 갈 테니까.”
- … 괜한 말을 한 건지 모르겠네. 천천히 와라.
역시 안 되겠다.
서아가 최대한 기다려 달라고 말을 했지만, 도저히 안 될 것 같다.
아무리 성공적인 데뷔를 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아도 건강을 해치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꿈인 건 알지만, 그것도 멀쩡해야 이룰 수 있는 거다.
서아의 건강이 걱정된 나는 곧바로 자동차를 몰아, GL 엔터 본사로 몸을 옮겼다.
* * *
GL 엔터 본사.
“야, 진짜 독하지 않냐? 지금 거의 일주일째야.”
“그러게……. 저 여자가 그 사람 맞지?”
연습실 앞을 지나가는 두 명의 연습생.
그들은 연습실 안에서 일주일 동안 노래를 부르고 있는 한 여인을 바라봤다.
“JH 그룹 회장 여자친구? 그런 것 같던데? 근데 이쁘긴 진짜 이쁘네…….”
“노래도 잘하는 것 같던데? 지나가면서 한 번 들었는데, 나는 진심 이름 있는 선배님이 왔는지 알았다니까?”
“근데 그 말 진짜일까?”
“뭐…? 스폰이라는 말?”
이야기를 나누다 갑작스레 조용한 목소리로 묻는 연습생.
인터넷에서 돌고 있는 소문들이 궁금했나 보다.
“솔직히 좀 이상하잖아. 가수도 아니고, 가수 지망생이 갑자기 오디션도 안 보고 GL 엔터에 들어온다? 거기다가 한 번도 차별한 적이 없던 GL 엔터가 저 여자만 엄청나게 몰아주잖아.”
“하긴……. 그거 말고도 이상한 게, 일주일 동안 내가 계속 봤다는 건, 저기에 하루 종일 있다는 거거든? 그 정도면 연애를 안 하는 거 아니야? 네 말대로 스폰이 아니었다면 데이트라도 하겠지.”
“그래도 좀 불쌍하네. 실력이 없어 보이진 않은데, 사람들이 다 스폰이라 하니까.”
“어쩔 수 없지. 막말로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이 한두 명이냐? 그 사람들 사이에서 저렇게 푸쉬받는 것도 박제환 회장님의 입김이 있겠지.”
두 연습생은 이야기를 나누다 인터넷에 떠돌던 소문이 사실인 걸로 결론을 내리기 시작했다.
솔직히 이상하지 않은가.
만약 연애하는 사이였다면 일주일 동안 저렇게 잠도 못 자고 노래만 부르는 걸 지켜만 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더욱이 인터넷에서 저 여자에 대한 욕이 떠도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건, 연예계에 은연중에 존재하는 스폰일 확률이 높았다.
“참, 재주도 좋네……. 그렇지 않냐? 우리도 박제환 회장님 같은 사람 한 명 물면 금방 데뷔하겠지?”
“그러게……. 이쁘긴 하지만 넘사벽 수준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에휴……. 누구는 스폰 하나 잘 물어서 오디션도 안 보고 대형 엔터에 들어와 곧바로 데뷔하고, 누구는 그런 스폰 없어서 몇 년 동안 연습생 생활만 하고 있네.”
“솔직히 생긴 건 우리가 더 낫지 않냐?”
“그니까. 저 여자가 아니라 내가 박제환 작가 눈에 먼저 띄었으면, 나한테 넘어왔겠네.”
노래 부르고 있는 서아를 바라보다가 걱정으로 시작된 대화는 점차 부러움으로……. 종국에는 질투심이 담긴 대화로 이어졌다.
그렇게 둘이 서아를 향한 비방을 하고 있을 때.
낯선 한 명이 그쪽으로 다가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런가요? 저는 아닌 것 같은데. 서아가 없었어도 여러분과 만날 일은 전혀 없을 것 같거든요.”
“누, 누구…….”
“헉!!”
“두 분이 말하던 주제 거리의 당사자입니다. 서아가 미치도록 보고 싶어서 GL 엔터에 들렸는데, 기분 나쁜 대화를 들었군요.”
“죄, 죄송합니다!! 저희는 그저 인터넷에 떠도는 말을…….”
다가온 박제환을 발견하고, 곧바로 고개를 숙이는 두 연습생.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건네고는 도망치듯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많이 야위었다…….’
서아가 걱정되는 마음에 GL 엔터에 도작한 박제환.
연습실 앞에 있던 연습생들의 말을 듣고, 가장 강하게 들었던 생각.
짜증이 난다는 생각보단 걱정이 앞섰다.
연습생들도 GL 엔터에 상주하다시피 사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볼 때마다 연습실에 있었다는 건, 그만큼 서아가 자신의 몸을 혹사했다는 거다.
더 이상 지켜만 볼 수 있는 상황이 지난 것 같았다.
걱정된 나는 곧바로 연습실의 문을 열어 서아에게 다가갔다.
“제, 제환 씨…….”
“서아 씨, 지금 많이 힘들어 보여요. 조금 쉬면서 해요.”
“… 그럴 순 없어요. 당장 내일 방송이 잡혀 있는걸요?”
나를 발견하고 놀란 서아.
그런 서아에게 조금 쉬면서 연습하라고 하니, 그럴 수 없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도대체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뭡니까? 꿈을 위해서? 저도 알아요, 서아 씨가 얼마나 데뷔만을 기다려왔고, 대중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걸 꿈꿔 왔는지. 그래도 건강은 챙기면서 해야되는 거 아닙니까!”
어쩌면 서아의 모습에서 전생의 내가 보였기 때문에 더욱 걱정됐는지 모르겠다.
전생의 나 역시 동성 그룹을 위해서 건강을 포기하고 일에 몰두했다.
‘그 끝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결국엔 대현 그룹의 공격을 무사히 막아낼 수 있지만, 결국 나에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었다.
그런 전생이 너무나도 후회됐기에 더욱 몰아붙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제환 씨 말대로 그토록 기다려왔던 데뷔였기에 열심히 하는 거 맞아요. 저한테는 하늘이 가져다준 기회와도 같거든요.”
“그래도!!”
“하늘이!! 곧, 제환 씨와도 같았어요. 꿈을 잃고 어쩔 수 없는 갈증에 버스킹을 다녔을 때. 그때 제환 씨에게 희망을 얻을 수 있었고, 꿈 같은 기회도 찾을 수 있었죠.”
“…….”
“지금 밖을 나가면 모든 사람이 그런 제환 씨를 욕하고 있어요. 저요? 욕먹어도 괜찮아요. 당연히 욕을 먹을 수 있죠. 제가 뭐라고 사람들이 좋아해 주기만을 바라겠어요.”
나를 바라보며 차분히 읊조리는 서아.
말을 하고 있는 서아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저를 향한 욕 들은 괜찮아요. 근데……. 도저히 제환 씨를 향해 욕하는 건 못 참겠어요. 제환 씨가 돈을 주고 저를 만난다는 둥, 제환 씨의 능력을 이용해서 데뷔시킨다는 둥……. 맞아요. 제환 씨의 도움을 받은 건 부정할 수 없어요.”
“그건 제가 노래를 듣고, 거기에 반해서…….”
“그러니까!! 그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어요. 제환 씨가 저의 외면을 보고 접근한 게 아닌, 제 노래를 듣고 저란 사람을 좋아하기 시작했단 걸, 노래를 통해서 대중들에게도 납득시키고 싶어요.”
“서아 씨…….”
서아는 자신이 욕먹는 것보다 나를 향한 비방들이 더욱더 보기 싫었나 보다.
사실, 인터넷에서 들려오는 댓글들을 마냥 부정할 수는 없었다.
이유가 어쨌든, 실제로 나 덕분에 GL 엔터에 들어올 수 있었고,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서아는 대중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자신의 노래로 충분히 누릴만한 대우였다고.
내가 아니었어도 충분히 가수로서의 주목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단 걸.
“미안해요, 서아 씨. 그래도 이런 방법은 잘 못 됐어요. 지금 서아 씨 얼굴은 누가 봐도 지친 사람의 얼굴이에요. 오늘은 좀 쉬고, 내일 최선을 다하도록 해요.”
“하지만…….”
“제발요.”
나를 바라보고 있는 서아의 얼굴.
전생의 내가 주치의에게 암 말기 진단받고, 거울을 볼 때와도 비슷해 보였다.
서아의 마음은 잘 알고 있지만, 더 이상의 무리는 용납할 수 없었다.
꼬옥―
자신도 그동안 너무 힘들었던 걸까?
나를 바라보는 서아의 얼굴에서 눈물이 흐른다.
그런 서아를 지켜만 볼 수 없는 나는 다가가 꽉 안아줬다.
그리고 말했다.
“남들이 뭐라건 저는 아무 상관 없어요. 그저……. 서아 씨를 처음 봤던 그때처럼 즐겁게 노래를 불러준다면 그걸로 족해요.”
“…….”
“서아 씨가 가수라는 꿈 때문에 잠도 포기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면 슬프지만 말리지는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저를 향한 비난 때문이라면 그러지 말아요. 남들이 저를 욕하는 것보다 그걸 보고 슬퍼하는 서아 씨를 바라보는 게 더욱 가슴 아프니까요.”
“제환 씨…….”
“그리고 내일이면 다른 사람들도 알 수 있을 거에요. 서아 씨는 충분히 인정받을 만한 목소리를 가진 가수라는 걸요.”
다른 사람들도 내일이면 알 수 있을 거다.
서아의 목소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들에게 어떤 위로를 줄 수 있는 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