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다행히도 회장님의 마음에 들었나 보군요.”
“…….”
부회장의 말을 듣고, 순간 표정 관리를 못 했을 때.
그 찰나의 순간을 확인하고는 다행이라고 말해 온다.
‘나쁜 건 없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다른 국내 대기업들과는 다르게, JH 그룹은 국내에 한정될 생각이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갖추고, 확실하게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생각이다.
그렇게 계획도 짜져있고.
그런 상황에서 대현 그룹의 인수.
굳이 할 필요가 없는 귀찮은 일이 분명했다.
그만큼, 시간도 소비될 거고.
물론 대현 그룹을 취한다면 JH 그룹이 성장하는 것도 맞았다.
‘문제는 그 시간에 다른 걸 투자하면 더 오른다는 거지.’
한마디로 정의하면 귀찮은 일.
대현 그룹의 인수는 딱 그 정도였다.
그런 부분은 삼송 그룹이 처리해준다고 하니, 꽤나 괜찮은 제안 같았다.
“부회장님께서 하고자 하는 말은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저희 그룹이 해야 될 건 뭐죠?”
“없습니다.”
“…….”
“저는 해외에서 이름값이 올라가고 있는 JH 그룹의 명함이 필요할 뿐입니다. 이번 일을 통해 JH 그룹에서 신경 써야 될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국민들이 피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건 JH 그룹이 상장 그룹이었다면 그렇겠죠. 하지만 JH 그룹은 비상장 그룹 아닙니까. 동시에 국내의 영향력도 저희가 신경 써 드리겠습니다. 요즘에 한 단어가 유행하더군요. 삼송 공화국이라고. 이게 과연 장난으로만 이루어진 단어일까요?”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더군다나 국내에서 부족한 JH 그룹의 영향력.
그 부분까지 신경 써준다고 하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좋습니다. 오늘 일이 끝나면 곧바로 JH 그룹 인사들에게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뭐…. 당장은 서로의 이득이 부족하다지만, 훗날에는 서로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때는 이득만을 바라보고 함께하기로 하죠. 절대 해가 되는 일을 부탁하진 않겠습니다.”
“부회장님을 보니 삼송이 저평가되고 있단 걸 알겠군요. 이거 JH 인베스트먼트에 말해서 주식을 사야 되는 게 아닌지 싶습니다.”
“하하, 그 부분은 조금만 참아주십쇼. 만약 그렇게 되면 주가 관리가 힘들어질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MOU를 맺은 JH 그룹에게도 좋은 일만은 아니겠죠.”
삼송 그룹의 주식을 사겠다는 말에 웃으며 말리는 부회장.
똑똑한 사람이니 알아먹었을 거다.
허튼짓한다면 JH 인베스트먼트를 이용해 공격하겠다는 의미를.
“그리고……. 이건 함께 하기로 한 만큼 제가 주제넘은 발언을 좀 하겠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시죠.”
“우리 JH 그룹 회장님은 미래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미래 말씀입니까? 그거야 겪어 봐야 알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이야기가 마무리될 때쯤.
부회장이 미래에 대한 의견을 물어왔다.
나야 전생을 경험한 만큼, 미래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그걸 부회장에게 곧이곧대로 말할 이유가 없었다.
“뭐……. 회장님도 알아서 판단을 내리시겠죠. 제가 생각하는 미래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지구는 유례없는 평화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화합하면서 성장을 도모하고 있죠.”
“그렇죠?”
“하지만 그 기간이 길지 않을 겁니다. 최근 들어 신냉전 시대에 도래하면서 각국의 지도자들이 눈치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폭풍 전의 고요함과도 같은 시기죠. 그러니 해외에 투자하기보단 국내에 기반을 다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확실히 국제 정세가 심상치 않긴 합니다. 그 점 유의하겠습니다.”
“JH 그룹 정도라면 이미 알고 계셨겠지만, 함께 하기로 한 지금, 살짝 걱정의 말을 건네봤습니다. 부디 나쁘게 듣지 않기를.”
아마. 최근에 발표한 중국의 투자 때문에 말했나 보다.
그래서 기분 나빠하지 말라며 조언을 건넨 거고.
‘놀랍네…….’
이번엔 그 어느 때보다 놀랐다.
실제로 몇 년 뒤에는 각 나라가 화합하기보다는 자국의 이득을 더욱 중요시하며 곧 무역 전쟁과 동시에 실제 전쟁도 일어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막연하게 예측하고 있었지만, 방금 대화를 나눠보니 알 수 있었다.
부회장은 확실히 머지않은 시기에 그런 시대가 다가올 거라 생각하면서 대비하고 있단 걸.
“이거 회장님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더니, 다른 사람들의 눈치가 보이는군요. 그럼 다음에 웃는 얼굴로 뵙겠습니다.”
“… 다음에 뵙겠습니다.”
과거로 돌아오고 나서 이 정도로 충격을 받은 적이 처음이다.
하기야, 저런 사람이니 모든 사람을 속이고 삼송 그룹의 회장 자리에 앉은 거다.
회장 자리에 앉고 나서도 다른 사람들을 속일 수 있던 거고.
‘친해져서 손해 볼 건 없다.’
원래는 그냥 지나치는 인연으로 여기려 했지만, 지금은 마음이 달라졌다.
저 남자와 인연을 맺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국내 정도는 양보한다.’
어차피 내가 원하는 건 전 세계.
저 남자에게는 국내 정도를 양보해도 될 것 같았다.
“거, 무슨 얘기를 나눴길래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게냐.”
“… 그냥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어떻더냐. 이 할아비는 세간의 평가가 저 남자를 잘 못 평가하고 있는 것 같더구나.”
“…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어떻게 보면 불쌍허이. 차라리 다른 재벌가에 태어났더라면 능히 주인이 될 수 있는 아이인데, 그 괴물 같은 삼송 그룹에 태어났으니….”
“…….”
부회장과 얘기를 마치자 다가온 할아버지.
그와 동시에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 궁금증을 드러냈다.
‘할아버지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건가?’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도중.
할아버지도 삼송 그룹 부회장의 진면목을 파악하지 못했단 걸 알 수 있었다.
내 기준으로 봤을 때, 다른 삼송 가 보다 저 사람이 제일 압도적인 재능을 갖고 있었다.
다른 사람을 속이는 연기와 더불어 미래에 대해 예상하고, 그에 맞춰 대비하는 능력.
어쩌면 삼송 그룹은 저 사람에 의해 더욱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다른 사람들은 내가 상대할 테니, 친척들에게 인사나 하고 오거라. 이 정도면 충분히 할 도리는 한 것 같아.”
“그러게요. 이 정도면 우리 할아버지 면은 확실하게 세워 드린 거겠죠?”
“… 고놈 누굴 닮아서 생색을 그렇게도 내는지……. 됐으니까, 어여 가.”
“고생하세요, 할아버지.”
할아버지에게 고생하라는 말을 넘긴 나는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오빠!!”
“혜지 왔어?”
점점 가족들과 가까워지자, 하나 둘 씩 나를 발견했다.
그 사이에 혜지가 있었고, 이전에 일로 더욱 친해진 혜지가 나를 발견하고 달려왔다.
“오빠, 나 진짜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내가 꼭 좋은 대학 가서 나중에 도와줄게.”
“그래, 우리 혜지가 도와주면 엄청 편하겠다.”
과거로 돌아와 혜지의 학교폭력을 막은 것.
제일 잘한 일 중 하나였다.
전생에는 이런 밝은 모습의 혜지를 본 적이 없었다.
내가 가족들 간의 경쟁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 정이 없었던 것도 있지만, 다른 그 누구 앞에 있어도 지금처럼 밝은 모습은 없었다.
“오빠, 근데 새언니 완전 이뻐. 나도 커서 꼭 저렇게 닮고 싶어.”
“그건 힘들 텐데.”
아무리 혜지라지만 잘못된 희망은 확실히 잡아줘야겠다.
어떻게 서아처럼 이뻐질 수 있단 말인가.
“제환 씨,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가씨 정도면 저보다 훨씬 이뻐질 것 같은데.”
“언니!!”
“…….”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때, 둘이 친해지기라도 했나 보다.
내 말을 들은 서아가 옆에서 나타나 혜지를 대변했다.
“형은 부럽네. 벌써 결혼할 사람도 있고. 나는 언제 결혼하려나.”
“정환이 너도 재벌들만 보지 말고, 그냥 마음에 든 사람 있으면 집에 데려와. 안 그러면 나중에 불행할 수도 있어.”
“그런 사람도 없는 게 문제지.”
“잘 찾아봐라. 형도 전생에 연이 있어서 겨우 쟁취한 거니까.”
“… 형이 확실히 작가가 다 됐나 보구나. 이상한 말이나 하고.”
오랜만에 한꺼번에 모인 가족들이 반가워서일까?
기분이 들뜬 나는 정환이가 이해하지 못 할 말을 건네며 웃음을 지었다.
‘전생에는 이런 화목함이 없었던 건 내 잘못이겠지.’
지금 상황이 기쁜 동시에 반성의 마음이 들었다.
분명 전생에서도 지금과 같은 화목함을 챙길 수 있었겠지만, 후계자인 내가 앞 만 보고 달렸기에 이런 상황이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이라도 깨달은 게 다행이라고 느낀 나는 그 후에도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할아버지의 칠순 잔치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 * *
다음 날.
‘어이가 없네…….’
다음 날, 잠에 일어나 인터넷을 확인 한 나는 없이 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분명, 밖에 있는 기자들에게 삼송과 좋은 이야기를 나눴고, 앞으로 발전을 위해 좋은 관계를 긍정적으로 생각할 것이라는 기삿감을 던져줬다.
그런데 왜….
어째서 그런 기사들은 보이지 않은 걸까?
‘승호 노림수는 정확히 먹혔긴 했네.’
인터넷에 떠도는 기사들.
하나 같이 서아에 대한 기사들로 가득해 있었다.
[어젯밤에 나타난 미모의 여인. 모든 여성이 원하는 남자를 가진 여자?]
어제는 동성 그룹의 박대호 회장의 생일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역시 재벌가라고 해야 될까?
칠순 잔치를 기념하여 각종 정, 재계.
심지어는 법조인들까지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그중 가장 빛나는 이를 고르라면 당연하게도 박제환 회장을 고를 거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 박제환 회장과 나란히 참석한 한 여인에게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누가 봐도 여인이란 걸 티 내듯 두 손을 꽉 잡고, 참석한 두 사람.
흔히 재벌들끼리 연애한다는 편견을 깨서일까? 신분이 확실하지 않은 여성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관심이 한 사람에게 쏟아지고 있다.
이상 김미정 기자였습니다.
- 저 여자 누구임? 연예인인 같은데, 저런 얼굴을 본 적이 없네….
- 와…. 박제한 회장의 여자친구면 어떤 기분일까?
- 저 사람 가수 지망생인 듯? 홍대에서 몇 번 본 사람임.
- 구라 ㄴㄴ 그런 사람을 박제환 작가가 왜 만남.
기사를 확인하니 여기저기서 서아의 정체에 대해 추측하는 댓글들이 난무했다.
그중에는 실제로 서아를 본 듯한 사람들의 댓글도 있었고.
지이잉―
“여보세요.”
- 어, 나다. 기사 확인했냐? 아주 서아 씨에 관한 이야기밖에 없던데?
“네가 의도한 거잖아. 이럴 줄 알고, 데뷔를 늦춘 거 아니냐?”
- 맞긴 하지. 근데 이 정도로 뜨거워질 줄은 몰랐다. 어제 삼송이랑 MOU 맺은 거에 관한 기사가 어떻게 하나도 없을 수가 있냐? 아무리 확언을 안 해줬다지만, 경제적으로 큰 기삿거린데.
“그렇게……. 어떻게 할 생각이야.”
- 일단은 우리 엔터랑 관련된 기자들에게 서아 씨에 대한 정보를 알려줘야지. 그러면 엄청난 화재가 따를 거다. 물론 부정적인 반응도 많겠지. 너를 이용해서 언플하는 거라던가, 심하면 스폰이 아니냐는 댓글도 달릴 거다.
다른 건 다 상관없지만, 마지막 말이 거슬렸다.
우리 서아가 어떤 사람인데, 스폰을 한다는 말이냐.
심지어 그걸 거절하다가 꿈을 잃을 뻔한 적도 있는 아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믿을 만한 이야기라는 거지…….’
그렇다고 아니라고 하기엔, 사람들이 좋아하고, 자극적인 주제 거리였다.
“서아 상처받으면 가만 안 둔다.”
- 걱정하지 마라. 이미 인터넷 보지 못하게 조치한 상태고, 절대 확인하지 않겠다고 약속도 받았어. 그리고 그 정도 댓글로 상처받을 만큼, 약한 사람 아니다.
“나를 이용했으면 확실하게 보여줘. 서아가 어떤 사람인지.”
- 그것도 걱정 마라. 너보다 내가 더 확신하고 있으니까.
승호의 확신이 담긴 말을 듣고는 궁금했다.
과연 전생에 꾸지 못한 꿈을 이룬 서아가 얼마나 이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