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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재벌-121화 (121/175)

121화

* * *

달그락 달그락-

서아네 가족과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 박제환.

불편했다.

사람들과 식사 자리를 가지면서 이 정도로 불편했던 적은 없던 것 같다.

‘잘 보여야 돼서 그런 건가?’

아마 그 누구한테보다 잘 보여야 되는 사람들이기에 그런 가 보다.

“어떻게 입맛은 좀 맞으세요? 우리가 정신이 없다 보니 오늘 오기로 한 걸 깜빡했지 뭐예요.”

“진짜 맛있습니다. 어머님이 요리를 잘하신 것 같습니다.”

“어머, 그래요? 역시 사업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말도 기분 좋게 잘하시네.”

“절대 빈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서아네 어머니가 해 준 밥은 꽤나 입맛에 맞았다.

“형, 혹시 좀 이따 사인 부탁드려도 돼요? 제가 진짜 「절대음감」 팬 이거든요. 그거 말고도 「절대자는 휴식을 원한다」도 엄청 재밌게 봤어요.”

“어허! 식사할 때는 밥 먹는 데 집중해야지. 기본적인 예의도 안 지키면 작가님께서 우리 가족을 어떻게 보겠어.”

“그럼 아빠는 싸인 안 받을 거죠?”

“… 그런 얘기는 아니고…….”

“말씀 낮추셔도 됩니다. 식사가 마무리되면 필요하신 만큼 사인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그래 주겠나?”

“물론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긴장감이 사라진다.

긴장감이 사라진 자리에는 안도감이라는 감정이 들어섰다.

‘반겨주시네.’

이곳에 오기 전만 하더라도, 혹여나 나를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반겨준다고 하더라도, 재벌이라는 글자에 묶여 나를 어렵게 대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었고.

하지만 밥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알겠다.

서아네 가족은 나를 반겨주고, 자신들의 구성원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는 걸.

“서아 엄마, 차 좀 갖다줘.”

“뭐라고요?”

“… 부탁할게…….”

“알겠어요.”

식사 자리가 끝나자 아버님이 어머님에게 차를 부탁했다.

그런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을까?

어머님이 눈을 가늘게 뜨며 아버님을 째려보자, 고개를 숙이며 부탁한다는 말을 전했다.

“서아 애비되는 사람이네. 이름은 김승제고.”

“서아와 교제를 시작한 박제환이라고 합니다.”

아버님이 손을 내밀며 이름을 말하자, 나 역시 소개를 하며 건넨 손을 힘차게 맞잡았다.

“씩씩하니 좋군. 혹시 우리 서아하고는 어떻게 알게 된 사인가?”

“제가 서아 노래를 듣고 반해서 여러 번의 구애를 했습니다.”

“흠……. 자네 보는 눈이 참 좋구만. 역시 사업하는 사람이라 안목이 대단해.”

“칭찬의 말씀 감사합니다.”

아버님이 서아와 교제를 하게 되는 과정이 전반적으로 궁금했나 보다.

질문을 받은 나는 서아와 만남을 시작으로 이때까지 어떻게 관계가 지속됐고, 언제 연인 관계가 됐는지, 무슨 방법으로 고백했는지에 대해서 풀어서 설명해드렸다.

“역시 작가를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이야기를 전함에 있어 완벽해.”

“감사합니다.”

“이런 분위기에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연애를 인정하기 앞서 걱정스러운 마음이 크네.”

“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 건지…….”

“자네 나이 때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앞서서 연애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사랑만으로는 관계가 지속될 수 없어. 서로의 집안이 맞지 않다면 더더욱 힘들 거고.”

“…….”

“자네가 서아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비 되는 사람으로서 나중에 상처로 돌아오지 않을까, 그게 걱정되는군.”

어떻게 보면 서아가 이전에 했던 걱정과도 같았다.

서아뿐만 아니라, 서아네 가족들도 경제적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 걱정됐나 보다.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아버님으로서는 걱정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단언할 수 있습니다. 저는 서아를 사랑하고, 시간이 지나도 이 마음이 변치 않을 겁니다. 경제적 차이에서 오는 갈등? 그런 갈등들은 사랑보다 돈을 위에 두는 사람에게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자네는 돈 보다 사랑인가?”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 할 수 있겠군요. 저희 가족들에게도 이미 말해놓은 상태입니다. 아버님이 걱정하는 그런 일들은 없을 거라고 자신 할 수 있습니다.”

“인제 막 연애 했는데, 내가 괜한 말을 한 게 아닌가 싶네. 아비 된 입장으로써 어쩔 수 없는 걱정이니 이해해 주게.”

“물론입니다. 이렇게 솔직한 마음을 말씀해 주셔서 오히려 감사합니다.”

이 말은 나한테도 하는 다짐과도 같았다.

전생에 한 번 했던 실수.

절대로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나도 조금은 진지해질 수밖에 없겠어.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많이 없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약속하지. 절대 자네 배경에 업혀서 잘살아 보겠다고 생각하지 않겠네.”

“…….”

“그런 사람이 많더군. 사위 하나 잘 물어서 팔자를 고쳐보자고. 하지만 그런 걱정은 말게. 내 살아생전 남한테 기댄 적도 없고, 서아의 남자친구한테 그런 도움을 받을 정도로 서아한테 잘했다고 생각하지도 않네.”

“저는 괜찮습니다.”

“자네는 괜찮을지 몰라도, 이건 내 자존심과도 같은 일이야. 사람이 분수에 맞게 살아야지, 괜히 욕심을 부리다간 탈이나. 그렇게 되면 자네도……. 우리 가족들한테도 안 좋을 걸세.”

“…….”

뭐라고 쉽사리 답 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아버님이 말해오는 목소리에서 진심이 담겨있으니까.

그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며 긍정의 표시를 건넸다.

“대신 책이 나오면 사인해서 우리 좀 챙겨주게. 그 정도 자랑은 해도 되잖나.”

“아빠!! 내 것도!!”

“꼭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머, 사위! 내 것도 하나 챙겨주면 고맙겠네.”

“네, 장모님.”

“호호, 장모님이란 말이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네. 자 이것 좀 마시면서 있어.”

아버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어머님이 옆으로 다가와 차를 내려주셨다.

참, 서로 잘 맞는 가족들 같았다.

아버님이 진지한 얘기할 때는 다들 가장의 역할은 존중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아버님이 분위기를 풀어내자, 다 같이 합세해서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걱정할 필요 없겠네.’

이런 가족들이라면 할아버지도 흔쾌히 허락하실 거다.

애초에 할아버지가 걱정한 건, 방금 아버님이 말 한 그런 상황이다.

우리 집안을 바라보고, 어떻게든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사람들.

그걸 아버님이 직접 말함으로써 원천 봉쇄 하는데, 어떻게 할아버지가 반대할 수 있겠냔 말이다.

“그러고 보니까, 누가 GL 엔터도 형이 도와준 거야?”

“… 맞아.”

“이야……. 은인이네.”

“그렇지 않아. 만약 서아 노래 실력이 부족했다면 형도 추천해주지 못했을 거야. 하지만 내가 아는 서아 노래 실력은 대한민국 제일이거든. 그래서 운 좋게 도와줄 수 있던 거지.”

“하긴……. 누나가 노래 하나는 기똥차게 잘했지.”

“그……. 사위……? 혹시 오늘 술 한잔하겠나?”

“아빠는!! 연애한 지 인제 일주일 됐는데, 사위라니.”

“뭐 어때. 어차피 서아 너도 시댁 어른들 다 찾아뵙는다며. 그게 간단한 연인 사이에 할 수 있는 거니? 어느 정도 미래를 생각하니까 하는 거지.”

“맞습니다, 장인어른. 오늘 한잔하시죠.”

한잔하자는 말과 동시에 어딘가로 향하는 아버님.

인삼으로 보이는 담금주를 여러 개 가지고 와서 내 앞에 놓으셨다.

“견딜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견딜 수 있겠냐고 물으셨다.

그에 맞서 자신 있게 말했다.

그렇다고.

중국에서도 증명했듯이 술로는 어디 가서 지지 않는 사람이다.

“아빠!! 제환 씨도 그래요!! 지금 시간이 몇 신데 벌써부터 술을 드시려고 그래요!!”

“서아야, 기다려 보거라. 이건 장인 대 사위가 아닌 남자 대 남자로서의 술자리니.”

“맞아요, 서아 씨. 지금은 말려도 늦었어요.”

“아이고 이 화상아. 어쩐 지 사위랑 이야기 나눌 때부터 눈이 술 쪽으로 향하더라. 서아야 포기해라. 너네 아빠 한 번 자리 잡으면 그 누가 말려도 말을 안 들으니까.”

“후……. 진짜……. 제환 씨 힘들 것 같으면 좀 만 마셔요. 우리 아빠 진짜 말술이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서아 씨. 저도 어디 가서 먼저 취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가 사위? 그거 마침 잘 됐군. 나 역시 술을 마시면서 먼저 취해 본 적이 없는데.”

아버님 말씀대로 이제는 사위 대 장인어른이 아닌, 남자 대 남자로서 승부해야겠다.

남자는 나이를 먹어도 한 번씩 애 같은 경우가 있다.

가장 유명한 경우는 바로 술 부심.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술을 잘 마시는 사람끼리 만나면 눈빛이 마주치며 스파크가 튀었다.

‘지금처럼 말이지…….’

전생을 통틀어서 처음 본 서아네 가족.

최대한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보여줘야겠다.

내가 이때까지 얼마나 많은 주당들을 꺾어 왔는지.

“시작하시죠, 장인어른.”

“알겠네, 사위.”

“나는 안주나 만들어줄게.”

“형!! 저 사인은 해 주시고 드세요!!”

짠―

* * *

한 달 뒤.

서아와 연인이 되고 나서 한 달이란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서아와의 데이트도 열심히 하고, 그 사이에 작품 집필도 소홀하지 않게 열심히 노력했다.

그렇게 지나간 한 달.

벌써 할아버지의 칠순 잔치의 날이 다가왔다.

‘예전이었다면 가족들이랑 갔겠지만…….’

예전이었다면 집안 잔치에 가족들과 함께 참석했을 거다.

하지만 오늘은 그때와의 차이점이 존재했다.

나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점.

“너무 긴장하지 마요, 서아 씨.”

“어떻게 그래요……. 얘기 들어보니까, 오늘 막 삼송 회장도 오고, 대기업 자제들도 많이 온다면서요. 더군다나 제일가는 호텔에서 하는 연회인데…….”

“확실히 일반 칠순 잔치보다 규모가 크긴 해요. 할아버지가 워낙 여기저기 초대장을 뿌렸거든요.”

“그러니까요……. 안 그래도 처음 뵙는 자리인데, 어떻게 긴장을 안 해요.”

아쉽다.

일주일 뒤면 서아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을 텐데.

“서아 씨 데뷔가 일주일만 빨랐어도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그러니까요……. 솔직히 부끄러워요. 지금은 백수나 다름없으니까. 도대체 소속사는 왜 일주일 뒤로 미룬 거야…….”

“그러게요.”

서아의 불만에 맞장구를 쳐 줬지만, 승호가 일주일 뒤로 미룬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오늘 서아와 함께 칠순 잔치에 참석하는 순간, 여러 기자들이 바쁘게 움직여 기사를 작성할 게 틀림없다.

기사의 타이틀 제목은 JH 그룹 회장의 연인.

승호는 그걸 노린 게 분명했다.

‘그만큼 자신 있다는 거고.’

이런 마케팅도 서아의 앨범에 자신이 없었다면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불러왔을 거다.

하지만 서아의 앨범.

충분히 이런 마케팅을 이용해도 될 정도로 높은 퀄리티를 보장하고 있었다.

“회장님, 시간이 됐습니다.”

“출발해요, 서아 씨.”

긴장감에 떨고 있는 서아를 안아주고 있을 때.

어느새 시간이 다 됐는지, 비서실장님이 다가와 차 문을 열어줬다.

‘많이 떨리는가 보네.’

칠순 잔치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지금.

서아의 떨림이 내 손을 통해 온전히 느껴졌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봤지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응원의 말밖에 없는 것 같다.

“걱정하지 말아요, 서아 씨. 분명 할아버지도 좋아해 주실 거에요.”

“그럴까요……?”

“그럼요. 제가 할아버지한테 단단히 말했거든요. 만약 서아 씨에게 이상한 소리 해서 잘 못 되기라도 하면 평생 혼자서 살겠다고.”

“…….”

응원의 말이 통하기라도 했을까?

나를 바라보는 서아 씨의 눈빛이 이상하게 변하면서, 손의 떨림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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