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118화 (118/175)

118화

* * *

그 시각.

“왔나?”

대통령님의 불음을 받고, 집무실로 향한 이현배 비서실장.

어제부터 1분 1초가 지옥 같았다.

지옥도 이것보단 고통스럽진 않을 것 같았다.

“… 죄송합니다, 대통령님.”

“나한테 죄송할 게 뭐 있나. 국민들한테 사과해야지.”

“… 제가 책임지고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자네 지금 뭘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닌가? 뭔가 말하는 투가 자네가 다 뒤집어쓰고 책임진다는 것 같군.”

“그동안 대통령님 밑에서 충분히 고생했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만 도와주십쇼. 여당을 이용해서 한 번만 도와주시면 절대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지금 내가 감옥에 가지 않고 살 수 있는 법.

이것밖에 없었다.

무조건 사과를 구하고, 도움을 바라는 것 말이다.

절대적으로 조사가 들어오는 걸 막아야 됐다.

그러기 위해선 대통령님이 여당을 움직여줘야 됐고.

현 상태에서는 비서실장 자리 따위는 문제가 안 됐다.

징역을 살지만 않아도 감사하다고 절을 해야 될 판이다.

“그래서 내가 뭐라 했나. 상대를 잘 보고 덤비라고 하지 않았나.”

“제가 경솔했습니다. 대현 그룹의 꾀에 넘어가는 바람에…….”

“애초에 구린 일을 할 거였으면 최대한 냄새가 안 나게 포장해야 될 거 아닌가. 자네가 온 힘을 다해 덤벼도 모자랄 상대에게 안하무인으로 덤벼드니 통할 일이 있나.”

“…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럼! 할 말이 없어야지! 자네는 모를 게야. 지금 자네 때문에 어떤 상황이 됐는지. 정권을 잡고, 아무런 시도조차 못 하고 무능한 대통령으로 낙인이 찍혔네. 아니, 무능한 게 다행일 정도로 역적이 돼 있더군.”

“…….”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대통령님 말대로 지금 상황이 보통이 아니었다.

보통 이런 일에는 화살이 날아왔다.

당사자가 책임지고 다 받아낼 수 있는 그런 화살 말이다.

하지만 지금 대중들의 여론.

고작 화살 따위가 아니었다.

주변을 초토화 시키는 핵폭탄 정도가 아닐까 싶었다.

그럼에도 빌어야 됐다.

어쨌거나 지금 대통령님 힘이라면 징역까지는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가 책임지고 제 탓으로 돌리겠습니다.”

“그럴 거 없네. 이미 각 부서의 수장들을 만나 의견을 맞추고 오는 길이니.”

“그게 무슨…….”

“다들 자네를 버리기로 했어. 아마 본보기로 더 한 처벌을 받게 될 거야.”

“대통령님!”

“감히 어디라고 언성을 높이나! 마음 같아선 자네 가족들까지 다 감옥에 처박고 싶은 거 이 정도로 그친 걸 고맙다고 생각하게!”

“… 제가 가만히 있을 줄 아십니까?”

이젠 탈출구가 사라졌다.

각 부서의 수장들과 이야기를 맞췄다면, 이미 결론이 나온 거나 다름없었다.

안 그래도 나를 감옥에 처넣으라며 국민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푸른 지붕에서 마저 나를 포기했다면 답이 없었다.

억울하다.

고작 이렇게 감옥살이하려고 평생을 공부해왔던 게 아니다.

이 정도로 끝내려고, 더러운 일을 하며 악착같이 버틴 게 아니란 말이다.

내 꿈인 대통령까지 가지 않아도 좋았다.

적어도…….

적어도 감옥살이는 피해야 됐다.

평생을 치열하게 살았고, 아직 권력의 맛도 느끼기 전에 옥살이가 웬 말이란 말인가.

억울해서도 혼자 안 죽는다.

이때까지 대통령님을 보필하면서 했던 더러운 일들.

절대 꺼내선 안 될 기록들이지만, 이제는 선을 좀 넘어야겠다.

“자네 생각이 다 보이는군. 해 볼 테면 하도록 하게. 대신 자네 가족들이랑 호적에 올라가지 않은 자식들도 대한민국에서 편히 살지 못할 게야.”

“그걸 어떻게…….”

“내가 모를지 알았나? 배우랑 잠을 자고, 아이를 낳았단 걸? 아주 이쁘게 자라고 있더구만. 못된 아빠는 될지언정, 나쁜 아빠는 피해야 되지 않겠나.”

털썩―

‘X발…….’

온몸에 힘이 풀렸다.

평생을 공부하고, 한 번도 쉰 적 없이 치열하게 살았던 결과물이 징역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가 잘 못 된 걸까.

대현 그룹의 전화를 받았을 때?

그 자리에서 받았던 사과 박스에 관심을 가졌을 때?

그것도 아니면…….

나에게 대들었던 JH 그룹 회장을 가소롭게 생각했을 때?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더 이상 살아갈 힘이 안 난다는 거다.

“… 아무런 말 없이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 가족들만큼은 봐주십쇼…….”

“옳은 선택을 했네. 나라고 자네 가족을 건드리고 싶은 줄 아나? 지금 자네 때문에 피해 본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야.”

“… 책임지겠습니다.”

“감옥에서 잘 생각하도록 하게.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건지.”

* * *

다음 날.

“제환이 네가 이번에 출범하는 정부를 고개 숙이도록 만들었구나.”

“저도 일이 이렇게 흘러갈 줄은 몰랐습니다.”

할아버지의 초대를 받고 본가로 향한 박제환.

진짜로 몰랐다.

반응이 이렇게 뜨거울 줄은.

이번 일이 있으면서 국민들은 큰 분노를 일으켰다.

이전까지 피해자 위치를 고수한 게 도움이 됐을까?

사람들은 우리 그룹을 피해자로 생각했고, 정부를 가해자 위치에 올려놨다.

덕분에 역대 지지율로 출범한 이번 정권은 한순간에 신뢰를 잃게 됐고, 곧바로 우리 그룹과 국민들에게 사과를 건넸다.

‘용서를 구하는 거겠지.’

이번에 대통령 비서실장이 받을 재판.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이번 일뿐만 아니라, 이전에 저질렀던 비리까지 모두 재판받기로 결정 났다고 한다.

물론 이것만으로 국민들의 분노가 풀린 건 아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

아마 정부는 이전처럼 함부로 행동하기 어려울 거다.

어떤 일을 하려고 하면 국민들과 내 눈치를 살펴야 됐다.

의도치 않게, 좋은 상황으로 흘러간다.

‘탈원전을 억제한다.’

만약 정부가 무소불위의 힘을 갖췄다면 JH 중공업도 쉽지 않았을 거다.

원전에 있어 전문적인 지식을 갖던 사람들도 정부 압박으로 인해, 해외로 향할 수 있었다.

이제는 그렇게 못 할 거다.

나에게 잘못 한 것도 있고, 내 발언을 생각해서라도 나만은 탈원전을 피해 갈 수 있을 거다.

“그래서 사과는 받았느냐?”

“일부러 전화를 피했습니다.”

“… 잔인하구나. 아니지. 그놈들의 업보나 다름없지. 감히 우리 손자를 건드려?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행동이지.”

“대신 벌을 받고 있잖아요. 그렇다고 우리 그룹이 피해 본 것도 없고.”

“피해 본 게 왜 없느냐. 여기저기서 훼방을 놓던 건 피해가 아니고 무엇이란 게야.”

“보통 모기가 문다고 피해를 입었다 하진 않죠. 단지, 귀찮았을 뿐.”

“… 그 정도 손해를 입고도 귀찮다고 할 수 있는 건 제환이 네밖에 없을 게야.”

비서실장이 대현 그룹과 손잡고 작정해서 우리 그룹을 건드렸을 때.

기껏해야 몇백억 정도의 손해밖에 없었다.

그 정도야 JH 인베스트먼트가 돈을 굴리면 금방 벌 수 있는 돈 이었다.

돈이 돈을 가져온다.

요즘만큼 이 말에 실감을 느낀 적이 없는 것 같다.

돈이 생각 이상으로 쌓이니 무슨 일을 하든 수익으로 연결됐다.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의미부여 한다고 했던가?

그 말대로다.

별 생각 없이 한 행동들이 사람들의 의미부여로 인해 이득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한국 내에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순식간에 성장할 수 있었다.

“이제는 뭐 할 생각이냐. 사람들이 그룹 일로 화낸 것도 있지만 제환이 네 작품이 혹여나 휴재할까 봐 더욱 화냈던 것 같던데, 집필해야 되지 않겠느냐?”

“… 할아버지도 걱정이 많으셨나 보군요.”

“그게 무슨 소리냐. 이 할아비는 단지 대중들의 마음을 대변했을 뿐인 게야.”

“… 안 그래도 집필을 이어가려고 했습니다. 곧 있으면 비축분도 다 떨어질 것 같고요.”

“뭬야!? 그렇다면 지금 한가하게 잡담을 나누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느냐!”

“… 저 방금 일을 마무리 지었는데요?”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곧 비축분이 떨어진다는 게 중요한 거지.”

“…….”

어이가 없다.

일을 처리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잡담할 시간도 없다 하다니…….

그렇다고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할아버지도 이제는 사업가 박제환 보다 작가 박제환을 더 반기는 것 같아서.

“그리고 다음 달에 무슨 행사가 있는지 기억하고 있느냐?”

“… 당연하죠.”

“크흠……. 무슨 일이 있어도 그날은 참여해야 된다.”

할아버지가 말한 다음 달 행사.

할아버지의 칠순 잔치가 있는 날이었다.

“환갑 때는 조용히 식구끼리 하더니, 웬일로 크게 여시려고 하는 겁니까.”

“… 에잉 쯧쯧. 그렇게 눈치가 없느냐? 남들 다 하는 손주 자랑 좀 하겠다는데, 그걸 꼭 내 입으로 말 해야 돼?”

“어쩐지 많은 회장님들이 참석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이유였나 보군요.”

그렇지 않아도 의문이었다.

웬만해선 조용히 넘어가시는 할아버지가 어쩐 일로 주변 회장님들을 부른 건지.

심지어 예전에는 쳐다도 보지 않던 재계 순위 10위 권 안 회장님들에게도 초대장을 보낸 걸로 알고 있다.

우리 할아버지.

평생의 숙원을 이루시고 나니, 이제는 손주 자랑도 해 보고 싶나 보다.

“다른 회장님들은 참석하신대요?”

“당연하지! 우리 손자가 참석하는 자린데, 불러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와야지.”

“… 할아버지가 주인공인 날인데요?”

“재벌들이 언제 그런 걸 신경 썼다고……. 그 자리에 누가 제일 잘나가냐가 주인공을 결정하지 않았느냐.”

“스읍……. 손자로서 할아버지의 날인데, 좀 불편하네요. 조금만 있다가 바로 빠져야 되는 게 아닌지…….”

“고얀 놈. 아주 할아비를 놀리는 데 취미를 들였나. 잔말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키도록 해.”

요즘 들어 할아버지를 놀리는 게 왜 이리 재밌는지 모르겠다.

한 번에 장난으로 하루를 묶여있게 생겼지만, 애초에 온종일 자리를 빛내려고 했기에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웃기는……. 그건 그렇고 제환이 너는 여자 만나야 되지 않겠느냐? 이 할아비가 한 번 자리를 만들어 봐? 그렇지 않아도, 저기 성 회장이 자리 좀 만들어보자 하던데…….”

“괜찮습니다. 마음에 드는 여자도 있고요.”

“그게 정말이야!!? 우리 제환이의 마음을 뺏어간 여자가 있다고!?”

“…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이에요?”

“그럼! 이 할아비가 늙어 죽기 전에 증손자를 본다는 데, 어떻게 안 놀라겠느냐.”

“너무 멀리 가신 거 아닙니까?”

나도 모르게 말을 잘 못 꺼냈나 보다.

그냥 얼버무리고 넘어갔어야 됐는데, 나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아직 서아와 제대로 된 관계도 아니었는데, 너무 섣불렀나 보다.

“크흠……. 이 할아비가 손자에게 소원이 하나 있구나.”

“예, 할아버지. 무슨 일이 있어도 칠순 잔치는 참여해야지요. 그럼 나중에 뵙는 걸로 하고…….”

“이 할아비가 굳이 직접 나서야 속이 후련하겠느냐?”

“… 하……. 아직 관심만 가진 여자입니다.”

“우리 손자가 어때서!! 당연히 연인이 돼야지. 이 할아비는 학벌 같은 것도 안 보고 집안도 안 본다. 그냥 소소하게 서울대 정도 나왔고, 재계 순위 100위 안에만 들면…….”

“일반인입니다.”

“…”

관심 있는 여자가 있다는 걸 듣고, 신나서 말을 이어가던 할아버지.

일반인일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지, 표정이 굳으셨다.

“원래 여자는 어른이 봐야 되는 법. 무조건 데려오너라. 제환이 네가 일만 했기에 여자를 보는 눈이 이상할 수도 있어. 이 할아비는 다 떠나서 예의를 아는 사람인지만 확인해 보마.”

“할아버지…….”

“이 이상은 양보할 수 없다. 만약 이것도 싫다고 하면 이 할아비도 꽤나 서운할 것 같구나.”

“… 한 번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노력하겠다고 대답한 지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도대체 서아에게 뭐라 말하고, 할아버지 칠순 잔치에 초대하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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