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 * *
한 투자회사의 옥상.
두 남자가 담배를 피우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김 대리, 이번에 기자 회견 봤어?”
“JH 그룹 말이죠? 당연한 거 아니에요? 저 그거 때문에 상한가를 몇 번이나 맞고 있는데요.”
“이야……. 역시 우리 회사 에이스야. 그 돈으로 뭐 하려고.”
김 대리라고 불리는 사람이 상한가를 맞은 게 부러운 듯, 질문을 던진 남자가 등을 두드리며 질문을 던졌다.
“이번에 JH 자동차에서 나온 자동차 사려고요. 지금 숨 참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와……. 그 차 완전 멋지던데? 지금 타고 있는 차가 독일 3사 아니었나?”
“그렇긴 한데, 지금 차보다 JH 자동차가 더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상한가도 맞았겠다 질러야죠.”
“나도 이제 막 들어가긴 했는데, 갑자기 떨어지진 않겠지? 악재가 나온다거나.”
“에이……. 선배님도 아시다시피 지금 그 어떤 악재도 JH 그룹 상승세 못 막습니다.”
불안하다면 핸드폰을 만지던 남성.
이내 이것저것 찾아보더니, 순식간에 눈이 커졌다.
“이거 뭐야…….”
“왜 그러세요, 선배님.”
“이거 봐봐. 지금 JH 그룹 회사들 다 멈췄다는데? 심지어 책을 출간하고 있는 출판사까지도 멈췄데…….”
“… 말이 씨가 됐네요……. 아니, 이 상황에 악재가 될 수 있나?”
“… 근데 이상하다? 분명 이런 소식이 들려오면 하한가 쳐야 되는 거 아니냐?”
“당연하죠? 악재가 있는데, 영향이 없는 게 이상하죠.”
“… 영향이 없는 것 같은데?”
영향이 없다는 말을 듣고, 핸드폰을 확인하는 김 대리.
핸드폰을 확인하고, 감탄사를 내뱉는다.
“이야……. 이제 JH 그룹은 언터쳐블인데요? 무슨 기사마다 댓글에 대현 그룹에 돈 먹었냐는 말밖에 없네요.”
“이거 한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 아니냐? 이 정도 악재면 당일은 하한가 치는 게 국룰인데.”
“그건 그렇고, 정부가 미친 거 아니에요? 막말로 지금 JH 그룹에 도움을 준 것도 아닌데, 오히려 더러운 짓거리나 하고 있고…….”
“미친 거지. 누군지 모르겠지만, 책임은 져야 될걸? 딱 보니까 자기 목숨 걸고, 덤빈 것 같은데 이 상태면 목숨은 내놔야지.”
다년간의 경험으로 이 뒤에 누군가가 있다는 걸 깨달은 두 사람은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상식적으로 지금 같은 시기에 JH 그룹을 건든다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선배님, 이거 한번 봐보실래요? 일이 재밌게 돌아가는데요?”
“봐보자. 이게 뭐야……. JH 그룹 회장의 입장 표명?”
“아무래도 지금 들려오는 악재에 대해 말하려나 봐요. 근데 진짜 개념이 없네요. JH 그룹이면 투명하기로 유명하고, 건드릴 게 없는 걸로 소문이 났는데…….”
“에이, 몰라. 그냥 구경이나 하자. 우리 같은 돈쟁이들은 돈만 벌면 되지.”
“그럼, JH 그룹 관련 주를 더 끌어 모으면 되겠네요.”
“그렇지. 내려가자.”
마침내, 결론을 내린 듯한 두 명.
내려가자는 말과 함께 태우던 담배를 끄고, 사무실로 복귀했다.
* * *
“이건 좀 의외네요.”
비서실장님에게 보고 받는 박제환.
의외라는 생각을 접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JH 그룹의 실적이 좋다고 하지만, 대통령 비서실장이 덤빈다면 한 번쯤은 하한가를 칠 거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를 봐라.
언론과 함께, 정치적으로 압박을 해 옴에도 불구하고, JH 그룹 관련주는 연신 상한가를 치고 있다.
오히려 소식을 보고, 관련주를 살 수 있게 좀 팔아달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
이 상황은 전혀 생각조차 못 했었다.
“그만큼 대중들의 시선에는 저희 그룹이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기자 회견 이후로 유명한 투자회사나 각 나라 지도층에서 투자를 할 수 있냐는 제안도 들려오고 있고요.”
“하긴, 1년도 안 돼서 그 정도의 수익률을 올린 사람이 없을 테니……. 재성 씨도 고생 많았겠네요.”
“그만큼 보상이 있지 않습니까. 재성 씨는 이제 개인 재산이 대한민국 내 열 손가락 안에 들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자……. 그럼 이 겁도 없는 비서실장은 곧 처리해야겠네요.”
생각 이상으로 대통령 비서실장과의 싸움이 시시하게 끝났다.
아니, 비단 대통령 비서실장뿐만이 아니었다.
대현 그룹도 마찬가지.
대현 그룹은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1년이란 시간을 걸고 목숨을 연명시켰다.
‘물론 내가 살려준 거지만.’
이것도 내가 살려줬기에 가능한 기간이었다.
대현 그룹은 좀 더 절망을 맛봤으면 좋겠다.
나를 따라 해 중국으로 투자한 대현 그룹.
분명 1년 뒤에는 더 큰 절망을 맛볼 수 있을 거다.
“어떤 식으로 입장 표명 하면 되겠습니까.”
“음……. 이렇게 하죠. 대통령 비서실장이 단독으로 움직여 JH 그룹 회장을 만나러 왔다. 그러고는 대현 자동차에게 관련 기술을 넘기라고 협박했다. 이 두 가지를 부풀려서 입장 표명하는 겁니다.”
“… 그 사람 정치 인생은 끝났군요,”
“무슨 소립니까. 아예 인생이 끝날 겁니다. 콩밥도 먹고, 정신 좀 차려야죠.”
단순히 정치 인생만 끝낼 생각이 없었다.
겁도 없이 이빨을 들이밀고, 작품에 집중하고 있는 날 건드린 죗값.
정치 인생을 걸기엔 무게추가 너무 기울었지 않은가.
“몇 가지만 더 추가하기로 하죠. 저희 JH 그룹은 깔끔한 운영과 절세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합리함을 겪고, 대한민국을 떠나려고 고민했었다. 그리고 작가로서 절필도 고민할 정도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전해 주세요.”
“… 그렇게 되면 정부 역시 책임을 피하지 못할 겁니다.”
“뭐, 어때요. 제가 정부를 먼저 건드린 것도 아니고, 말이야 중립적 위치라지만, 다른 사람들은 대통령 비서실장만을 바라보고 도와줬겠습니까? 다 대통령이 뒤에 있다 생각하고 도와준 거 아닙니까. 이 정도는 해야 정신을 차리죠.”
“하필, 회장님을 건드려서…….”
“아닙니다, 제가 아니라 제 주변을 건드렸기 때문에 화난 겁니다. 한국을 떠나지 않은 이유는 동성 그룹이 한국에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여주세요. 그동안 고생했는데, 이 정도 보답은 해드려야지요.”
이번 일은 이 정도로 마무리 지으면 될 것 같다.
비서실장님 말대로 방금 했던 대화로 입장 표명을 하면 대통령 또한 욕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저 대화에서 거짓은 단 하나도 없었다.
단지, 모두가 외면해왔고, 말하기 껄끄러운 주제인 것뿐.
그렇다고 나 역시 피해 가고 싶지 않았다.
불합리함은 불합리하다고 밝히고 떳떳하게 말 하고 싶었다.
솔직히 억울한 점도 많았다.
대한민국의 대기업들은 기업들이 운영이 잘한 것도 있지만, 이면에는 정부의 도움이 필연적으로 존재했었다.
반대로 JH 그룹을 봐라.
단 한 번도 정부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심지어 다른 그룹들은 절세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쓰고 있음에도 우리 그룹은 그 흔한 절세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도움을 받았냐?
도움은커녕 견제만 받고 커 왔었다.
그러니, 이 정도의 발언은 충분히 해도 될 것 같다.
“시간이 곧 다가오네요. 작성해서 기자들에게 넘기도록 하세요.”
“네, 회장님.”
입장 표명을 위해 밖으로 향하는 비서실장님.
왠지 모르겠지만, 그 모습이 즐거워 보였다.
* * *
입장 표명 다음 날.
인터넷에서 우리 그룹이 내놓은 입장 표명이 순식간에 확산됐다.
이 정도면 안 본 사람을 더 찾기 힘들 정도였다.
‘이건 예상 외인데?’
어제와 마찬가지로 예상을 벗어나는 일이 발생했다.
우리 그룹의 입장 표명을 보고, 우리와 같이 분노한 그룹들이 있었다.
GL 엔터와 화이트 플랫폼의 모기업.
더해서 티슬라, 더 나아가서는 중국과 미국까지 말이다.
‘작품이 큰 도움이 됐군.’
그룹도 그룹이지만, 작품에 대한 기사를 보고 분노한 사람들이 많았다.
라이언 감독이 하마터면 한국의 신성을 잃을 뻔했다는 글을 SNS에 올렸고, 순식간에 그 글은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안 그래도 전 세계적으로 시선을 받고 있던 상황에서 한 번 더 전 세계의 안 좋은 시선이 몰리니 한국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 진짜 우리나라 이렇게 쪽팔린 적 처음이다. JH 그룹이 절세를 했냐, 그것도 아니면 혜택을 바랐냐. 그냥 가만히 있는 데도 이딴 취급을 받았다고? 당장 연봉도 대기업 중에 가장 많이 주는 그룹이?
- 와……. 나는 진짜 이거 글 읽고, 독재정권 시기로 돌아간 줄 알았네. 어려운 시기에 박제환 작가님이 나서서 힘을 합쳐 불을 밝혔는데, 정권이 바뀌자마자 이런 일이 생김? 내가 살고 있는 게 대한민국이 맞긴 한 거냐?
- 나는 오늘부터 대현 자동차 불매하기로 했다. 그리고 정권은 하루빨리 입장 표명 내라. 만약 JH 그룹의 입장 표명이 사실이고, 반성의 기미가 없다면 대한민국은 또 한 번 촛불을 들 거라고 장담한다.
- 해외 나와서 박제환 작가님 혜택 엄청 많이 봄. 동양인이라고 차별하는 시선이 있었는데, 박제환 작가님 작품이 유행하면서 오히려 K 문화에 관심 갖고, 더 잘해줌. 근데 정작 한국에서는 그따위로 행동한다고? 진짜 쪽팔려서 얼굴을 들 수가 없네.
- 진짜 그룹도 그룹이지만, 절필할 뻔했다는 사실에 분노가 끓어오른다.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일본의 창작물을 뛰어넘으려고 하는데, 이딴 식으로 찬물을 부어? 진짜 쪽팔린다, 쪽팔려.
‘… 그동안 그래도 잘 살아 온 건가?’
입장 표명 아래 달린 댓글들을 확인하며 드는 생각.
그래도 이번 생은 열심히 살아왔나 보다.
저번 생에는 이런 반응이 전혀 없었다.
동성 그룹이 대현 그룹에게 공격을 받을 때.
국민들에게 호소도 해 보고, 정부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돌아온 반응은 그야말로 냉랭했다.
하지만 그때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룹을 살리기 위해, 소비자와 직원들의 기분 따위 고려하지 않았으니까.
세금도 마찬가지.
법을 피해서 최대한의 세금을 아끼기 위해 노력했었다.
저번 생이야 냉랭한 반응이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이번에 들려오는 반응을 보니 뿌듯한 감정이 들었다.
“정부는 어떻게 하고 있답니까.”
“지금 푸른 지붕에서 난리 났다고 합니다.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입장 표명을 해 올 것 같습니다.”
“당분간은 연락받지 마세요. 적어도 하루 정도는 고생해야죠. 이때까지 우리가 겪은 게 있으니.”
“아마, 함부로 대하지 못 할 겁니다. 지금 저희 그룹이 해외로 나간다고 하면 그 어느 나라도 두 팔 벌려 반길 테니까요.”
비서실장님의 말이 맞았다.
우리 그룹은 비상장 그룹.
한 마디로 눈치를 볼 사람이 존재하지 않다는 거다.
기껏해야 JH 배터리의 지분율을 미국과 티슬라가 갖고 있었다.
‘미국으로 가는 것도 방법이니까.’
실제로 미국에서 각종 세율을 조정해준다는 말로 이민을 제안해오기까지 했었다.
그런 만큼 이번에는 자신 있게 행동해도 될 것 같다.
그리고 당당하게 말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 우리 그룹을 너무 무시해왔다고.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 그룹은 더욱 거대해졌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