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115화 (115/175)

115화

“그나저나 참 안타깝군…….”

악수를 푼 정 회장이 이어서 말을 걸어왔다.

“뭐가 안타까운 건지…….”

“자네가 어리석은 길을 골랐다고 들었네.”

“…….”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어느 정도 탐색하고, 본색을 드러낼 줄 알았다.

아니,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오늘 있을 컨셉카 발표를 보고 나서 대현 자동차의 입장을 결정할 줄 알았다.

‘어지간히 얕잡아 보였나 보군.’

위기감까지는 아니어도 경각심은 가질지 알았건만, 어지간히 얕잡아 보였나 보다.

“참 안타깝습니다. 회장님도 그간 고생을 많이 하셨는지, 길을 헷갈리신 모양입니다. 제가 느끼는 바로는 현명한 길 같습니다만.”

“… 그거는 좀 더 지켜봐야 알지 않겠나.”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뭘 더 지켜봐야 되는 건지.”

이때까지 자신을 대하던 재벌 3세와는 다르게 느껴졌을까?

내 말에 언짢아하는 모습이 보였다.

‘똑같은 게 이상하지.’

내 입장에서는 다른 재벌 3세와 동일선상에 두는 것부터가 짜증이 났다.

무언가에 도전할 수 있다는 거부터가 어느 정도 집안에 도움을 받았다고 할 수 있지만, 재벌이 되기까지는 나 스스로 힘이 컸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런 나를 고작 집안에 힘으로 빌붙어 사는 자들과 동일선상에 두다니.

어떻게 기분이 좋을 수 있겠는가.

“자네는 어려서 모르겠지만, 나는 누구의 도움 없이 두 손으로 지금의 대현 그룹을 만들었네. 그동안 더러운 꼴, 못 볼 꼴 다 보면서 끝끝내 지금의 대현 그룹을 이뤄냈단 말일세. 그 기간이 족히 수십 년은 될 게야.”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 동안 자네같이 덤벼오는 이가 없는 줄 아는가? 대표적으로 기어 자동차를 생각할 수 있겠군. 그 기어 자동차가 끝내 어떻게 됐는지, 잘 판단 해 보게. 그게 자네 그룹이라고 다르지 않아.”

“확실히 많은 고생을 하신 건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후배 입장으로써 최대한 배려해드려야겠군요. 이제는 대현 그룹에 신경을 안 쓰실 수 있게, 편한 여생을 즐기도록 만들어드리겠습니다.”

“… 자동차 산업이 그리 쉬워 보이는 겐가? 수십 년을 쏟아부어도 대현 자동차 뒤꽁무니도 못 따라오는 그룹이 수두룩했어. 그런 분야에 단, 2년으로 앞서 나가겠다고? 그 정도는 자신감이 아닌 자만이라고 하네.”

회장님 입장도 이해가 간다.

자신이 수십 년을 고생해서 이뤄낸 걸, 단 2년 만에 앞서 나간다고 하니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하지만 방금의 대화를 통해 잘 알겠다.

우리 회장님도 늙었다는 것을.

언제나 모든 분야에서 변화의 바람은 급작스럽게 불어왔다.

그걸 인정하지 못하고, 외면하고 있으니 확실하게 편한 여생을 즐기도록 만들어줘야겠다.

“이 이상은 대화가 아닌 결과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조금 있을 발표회까지도 자리를 빛 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 알겠네. 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고 있겠네.”

“감사합니다. 그럼.”

그래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다.

정 회장님이 보통 사람이 아니란 걸.

다른 사람이었으면 충분히 이빨을 드러낼 법도 한 데, 끝까지 평정심을 유지한다.

어째서 저런 사람 밑에 그런 자식들이 나온 줄은 모르겠지만, 정 회장님은 충분히 인정할 만한 사람인 것 같았다.

‘두 시간 뒤인가?’

정 회장님을 보내고, 시간을 확인하니 두 시간 정도가 남았다.

그렇다고 한가하게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곳에 모인 이들.

한 명 한 명이 신문에 나올 법한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티슬라의 회장도 와 있으니 말 다 한 셈이었다.

여기 모인 그 누구도 섭섭함을 느끼게 해선 안 됐기에, 남은 시간 동안 바쁘게 움직이면서 인사를 나눴다.

‘완전히 친해졌나 보군…….’

티슬라 회장과 인사를 나눌 때.

그 옆에 딱 달라붙어 있는 형찬 씨를 생각하자 기분이 묘해졌다.

분명 나만을 바라보던 사람인데…….

뭐……. 어쨌든 긍정적인 변화였기에 잡생각을 떨쳐내고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 한 명 한 명과 인사를 나누며 다가오는 컨셉카 발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 * *

찰칵찰칵―

웅성웅성―

‘미쳤네…….’

컨셉카 발표를 위해 기자들 앞에 선 지금.

미쳤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야말로 광기라고 표현해도 손색이 없는 현장.

마치 아이돌 콘서트에 온 팬들과도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회장님! abx 기자 김용진이라고 합니다! JH 그룹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말이…….”

“야! 밀치지 마!! 너만 기자야!”

“회장님!! 최근에 중국으로 갔다는 소식…….”

“JH 그룹이 법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안 되겠다.

이 상태면 진행 불가다.

분명 다른 소식도 전할 마음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오늘의 메인은 컨셉카.

컨셉카를 제외하고도 이런저런 질문들이 들려왔다.

더군다나 체계적이지 않은 질문들.

이런 상태면 그 어떠한 대답도 건넬 수 없다.

“다들 정숙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저에게 발언권을 얻지 않은 기자분이 질문을 하거나, 소란을 일으킨다면 퇴장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현장을 정숙 시키고자 강경하게 나가니 순식간에 기자 회견장이 조용해졌다.

그와 동시에 경호원들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이전까지 막무가내로 행동했던 기자들에게 화가 잔뜩 났나 보다.

“우선 이 자리에 여러분이 모인 가장 큰 이유는 저희 JH 자동차의 컨셉카 발표를 위해서입니다. 다른 소식들은 그 후에 질의응답을 이어가기로 하겠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

기자들에게 여러 번의 소식을 순차적으로 발표해, 여러 번의 충격을 주기로 결정했다.

한 번에 이 소식을 모두 전했다가는 어느 한 소식이 파묻힐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차근차근 발표하는 거다.

처음에는 가장 가벼운 충격.

그다음에는 더한 충격.

마지막에는 충격 그 이상을 말이다.

“저희 JH 자동차가 어째서 컨셉카를 자체적으로 발표하는지 궁금하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간단합니다. 그만큼 자신이 있거든요. 저희가 준비한 모델은 총 세 가지. 대형 세단과 중형 세단, 그리고 SUV 차량을 준비했습니다.”

시간을 들여 하나씩 정보를 풀어내자, 현장에서 타자를 치는 소리로 가득 찼다.

몇몇은 조용한 목소리로 동료들과 통화를 하는 장면도 보였다.

‘이제부턴 충격을 줘야겠군.’

슬슬 이곳에 모인 기자들에게도 선물을 줘야겠다.

선물 중 가장 첫 번째로 줄 충격.

시간을 끌지 않은 컨셉카의 노출이다.

“이 검은 천을 드러내면, 곧바로 컨셉카를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3초 뒤, 이 천막을 벗겨내기로 하죠.”

3초라는 시간을 부여하자, 직원들이 차량 옆으로 향하고 내 입만을 기다렸다.

직원들 뿐만이 아니었다.

기자들도 모두 카메라를 들고는 내 입에 시선을 집중했다.

“3… 2… 1…….”

촤르륵―

찰칵찰칵―

“…….”

“…….”

“… 미쳤네…….”

시간이 지나 천막을 들어내자 순식간에 조용해진 현장.

몇 초 지나지 않아 누군가의 셔터음 소리를 시작으로 다시금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전의 소란스러움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고성이 오가며 더욱 시끄러워졌다.

“아니, 지금 그럴 때가 아니라고! 미쳤다니까!?”

“제원이 무슨 상관이야! 이미 디자인으로 끝났어! 아주 미쳤다고!”

“대현 자동차? 비교할 걸 비교해! 이건 국산에서 나올만한 차가 아니야!”

컨셉카를 확인하고 놀란 기자들이 전화기를 통해 동료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기자들의 표정을 기쁜 마음으로 구경하던 나는 시선을 돌려 정 회장님의 표정을 바라봤다.

‘통했나 보네.’

웃는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던 정 회장님.

순식간에 표정이 심각해진 게 느껴졌다.

아마 느끼고 있나 보다.

우리 JH 자동차가 어떤 짓을 저지른 건지.

“회장님! 컨셉카와 양산형 차는 얼마나 차이가 납니까!”

모두가 소식을 전하고 바쁘게 타자를 두드리고 있을 때.

누군가에게서 질문이 들려왔다.

그것도 내가 가장 자신 있는 질문이 말이다.

“장담합니다. 지금 보고 있는 모습과 거의 흡사한 채로 출시할 생각입니다. 가격도 1억을 넘지 않은 선에서 말이죠.”

“…….”

지금 현장에서 여러 번의 기적이 일어난다.

진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타오르던 반응들이 다시금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지며 또다시 시끄러워지기를 반복한다.

그만큼, 기자들이 받는 충격은 큰가 보다.

“간단한 정보는 여기까지. 중요한 정보들은 여기 김형찬 연구소장이 말할 겁니다.”

컨셉카를 확인하고, 무언가 굶주린 사람처럼 질문해 오는 기자들.

자동차의 정확한 성능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오늘의 또 다른 주인공인 형찬 씨도 주목받아야 됐기에 발언 기회를 넘겨줬다.

‘잘하네.’

이런 상황을 처음 겪은 형찬 씨가 긴장할 줄 알았건만, 오히려 평소보다 차분하게 자동차의 성능을 말했다.

그렇게 성능을 읊기 몇 분 째.

그동안 기자들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해갔다.

저들도 느끼고 있는 거다.

지금 발표한 자동차들이 우리가 제시한 1억을 충분히 넘고도 남은 차라는 걸.

아니, 기자들만 느끼고 있는 게 아닐 거다.

아까보다 더욱 심각해진 정 회장님의 표정.

정 회장님 역시 지금 상황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상황인지 깨닫고 있나 보다.

“지금 보인 차들은 시내 주행으로 총 1천km 이동할 수 있는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습니다. 충전 시간도 한 시간 이내에 완충할 수 있을 정도로 긴 시간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기자들에게 충격을 선사하고 있을 때.

형찬 씨의 이어지는 말에 기자들은 또 한 번 경악했다.

지금 형찬 씨가 발표한 배터리.

이전에 발표했던 배터리보다 큰 발전을 한 결과물이다.

이전에도 시대를 앞서 나간다고 평가받던 배터리에서 한 번 더 발전하니, 얼마나 놀랍겠는가.

더군다나 용량만 늘린 것뿐만 아니라 충전 시간도 획기적으로 줄였다.

기자들이 저런 표정을 짓는 게 충분히 이해 갔다.

‘정 회장님의 표정도 말이지.’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 형찬 씨가 하는 설명이 끝났다.

발언이 끝난 형찬 씨에게 다가가 다시금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그러고는 마이크를 입에다 가져다 대고, 기자들에게 재밌는 기삿거리를 선사했다.

“방금 말 한 배터리, 이번에도 대현 자동차는 얻을 수 없을 겁니다.”

찰칵찰칵―

웅성웅성―

“자, 그럼 컨셉카 발표는 끝났으니 이어서 또 다른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이때까지 JH 그룹은 허상이라는 말이 많았죠.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그동안 JH 그룹 산하의 회사들이 어떤 실적을 올렸었는지 말입니다.”

현장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던 기자들이 내 말을 듣고, 또 한 번 정숙을 유지하고 귀를 기울인다.

역시 재밌다.

내 한 마디 한 마디에 바뀌는 이 현장이 말이다.

‘정 회장님 표정도 말이지.’

계속해서 끓어오르는 현장 분위기와 동시에 반대로 점점 굳어가는 정 회장님.

아까 정 회장님께 건넸던 약속을 지키기 위한 내 다짐을 전해야겠다.

우리 JH 그룹이 정 회장님의 편안한 여생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 지 말이다.

“우선 JH 인베스트먼트부터 발표하도록 하죠. 아주 소문이 무성했습니다. 월가와 여의도에서 시기 질투도 많이 받았죠. 종국에는 거품이 빠지고 있단 말들도 많았고 말이죠.”

JH 인베스트먼트 역시 기자들이 좋아하는 소식이어서일까?

사람들의 표정에서 흥미진진함이 느껴졌다.

자, 그럼 듣고 판단해 봐라.

당신들이 거품이라고 평가하던 JH 인베스트먼트가 어떤 성과를 내고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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