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그런 표정 짓지 않으셔도 됩니다. CIA는 작가님에게 우호적인 입장이니까요.”
CIA 이야기를 들은 내 표정이 심각해 보였을까?
지앙웨이가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해 온다.
“그들은 저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죠?”
“모르는 게 이상할 겁니다. 그들의 눈은 전 세계에 퍼져있으니까요. 심지어 자동차 업계에서 갑의 위치에 있고, 현재 존재하는 투자회사 중 제일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고 있는 JH 인베스트먼트를 생각하면 더더욱 말입니다.”
“그들이 지앙웨이에게 뭐라고 말하던가요.”
“무조건 호감을 얻어내라. 어떻게든 우리의 편으로 끌어들이라는 말을 전해 들었죠.”
“…….”
지앙웨이의 말을 듣고 얻은 정보를 최대한 빠르게 정리해 나갔다.
일단 가장 중요한 단어인 우리의 편.
저 말을 간단하게 생각하면 지앙웨이는 CIA와 같은 편이라는 거다.
즉, 지앙웨이가 속한 상하이파는 이전부터 미국과 긴밀한 관계였다는 걸 유추 할 수 있었다.
“조건 없는 호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저에게 원하는 건 뭐가 있죠?”
“물론 조건 없는 호의는 없겠죠. 만약 작가님이 평범한 사람이라면 말이죠. 하지만 작가님은 JH 그룹의 주인입니다. 이미 전 세계적인 그룹으로 들어선 마당에도 계속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그런 그룹의 주인이란 말입니다. 그것만으로 다 한 겁니다.”
“원하는 게 없단 말입니까?”
“지금 당장은 그 어떠한 요구도 없습니다. 단지 호의를 베풂으로써 저희에게 호감을 느꼈으면 좋겠네요.”
확실히 의무는 없는 걸 잘 알겠다.
하지만 한 가지 궁금증이 풀리지 않는다.
이번의 만남을 통해 나는 지앙웨이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사실을 지앙웨이도 모르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왜 이 사실을 나에게 알리는 걸까.
굳이 말하지 않고, 꽌시를 맺으면 충분히 중간역할에서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이 사실을 저한테 말하는 이유가 뭐죠? 지앙웨이 씨 입장에서는 말하지 않는 게 더 큰 이득일 텐데요?”
“그것도 간단합니다. 저는 꽌시를 맺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숨기는 걸 극도로 싫어합니다. 더군다나 제 동심을 깨워준 작가님이라면 말이죠.”
“…….”
“작가님 말대로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중간에서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당장은 말이죠. 나중에 가서 이 사실이 알려지면 작가님이 저에게 신뢰를 건넬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쉽지 않았을 텐데 신뢰를 보여주셔서 고맙군요.”
처음이다.
사업을 하면서 누군가를 신뢰하고 싶다는 게.
전생에서는 지앙웨이 같은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지앙웨이가 가볍게 말했지만, 절대 가벼운 주제가 아니었다.
CIA와 연결돼있다는 사실이 지금의 주석에게 전달되는 순간, 사형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그런 약점을 처음 본 나에게 말해 준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지앙웨이한테 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냔 말이다.
‘그렇다면 나도 그에 맞는 행동을 해야지.’
전생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이번 생을 살면서 한 가지 깨달은 사실.
사업을 통해 만난 인연도 신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거다.
“지앙웨이 씨가 먼저 보여 준 신뢰가 있으니, 저도 거짓 없이 말씀드리겠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아시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한국의 대현 그룹과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둘 중 하나는 사라질 그런 전쟁 말이죠.”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시죠.”
부탁이라는 말을 듣고, 표정 변화가 없는 지앙웨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거대한 인물이었나 보다.
보통 부탁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담감이 있는데, 지앙웨이의 표정을 보면 그 어떠한 부탁도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대현 그룹을 중국에 투자할 수 있도록 끌어들이고 싶습니다.”
“… 이유를 들어보고 싶군요.”
“여기서부터는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이번에 미국에서 대통령이 된 인물과 중국이 오랜 시간부터 꿈꿔 온 중국몽. 그 두 가지를 생각하면 머지않은 시간에 무역전쟁으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미국의 현 대통령이 주장하는 무역 안보론을 생각하면 더더욱 말이죠.”
“… 그리고요?”
“그렇게 되면 중간재 역할을 하는 한국은 당연히 내수에 집중해야 될 시기가 올 겁니다. 그 시기가 되기 전에 대현 그룹을 중국으로 끌어들이고 싶고요.”
가식 하나 없이 담백한 내 의견을 들은 지앙웨이가 생각에 빠진다.
이내 감탄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는 말을 이었다.
“솔직히 놀랐습니다. 방금 말을 듣고, 왜 미국에서 작가님을 원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방금 말은 간단히 요약하셨겠지만, 그 안에 많은 정보를 조사해 그걸 바탕으로 이뤄낸 결론이겠죠.”
“맞습니다.”
“그걸 당사 국가가 아닌, 그것도 개인이 유추하고 실행으로 옮기는 거에 대해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실제로 미국 쪽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현 중국 주석에 대한 견제가 들어갈 거라고 말했거든요.”
“… 미리 알고 계셨군요.”
“진심으로 놀랐습니다. 이런 식견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지앙웨이는 미국과 중국 두 나라의 정보를 알고 있어서일까?
이미 1년 뒤에 있을 무역전쟁에 대해 알고 있었나 보다.
“혹시 대현 그룹을 중국의 투자로 유도할 수 있겠습니까? 될 수 있으면 베이징파벌의 인원을 이용해서 말이죠.”
“허……. 이거 일거양득을 얻으려고 하셨나 보군요. 그렇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JH 자동차는 저희 상하이파를 이용해 중국에 투자하는 겁니다. 그걸 들은 베이징파벌은 한국의 대현 자동차에 접근하도록 유도하고요.”
“무역전쟁이 일어나면…….”
“그건 상관없을 겁니다. 이미 미국과 이야기를 마친 상태입니다. 지금 중국의 주석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죠. 그걸 견제하기 위해 저희 파벌을 돕기로 했습니다. 아마 JH 자동차는 이번 무역전쟁에서 피해를 보지 않을 겁니다.”
머릿속이 급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지앙웨이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우리 그룹이 중국에 투자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대현 자동차 역시 가만히 있지 못 할 거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에서 먼저 손을 내밀면 그 손을 잡을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그렇다가 무역전쟁이 터지면…….’
아마 그 시기가 다가오면 공장이 다 완성되기도 전 일 거다.
거기서 원자재 값이 폭발적으로 올라가는 순간, 대현 그룹의 적자는 눈덩이처럼 걷잡을 수 없이 거대해질 거다.
‘혹시 모를 일에 보험을 걸어둔다.’
만약 중국에 투자를 진행하는 순간, 혹시 모를 보험까지 걸어 놓을 생각이다.
대부분 자금을 전달할 때, 한 번에 주는 일은 없다고 봐야 됐다.
하지만 나는 미래를 알고 있기에 계약하는 순간, 곧바로 자금을 전달한다.
그렇게 되면 뒤에 있을 무역전쟁에 손해를 입어도, 해당 업체가 피해를 보지 우리 그룹은 그 어떠한 피해도 없을 거다.
끽 해봐야 미리 자금을 전달한 거에 대한 시간적 비용만이 손해였다.
‘이참에 다른 것도 미리 계약해야겠군.’
안 그래도 슬슬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다.
나중에 있을 펜데믹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을 생각해서 원자재와 천연가스를 미리 계약 해놓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죠. JH 자동차도 중국에 투자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오! 그게 정말입니까? 솔직히 제안하긴 했지만, 흔쾌히 허락하실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
“이렇게까지 도와주신다는 데, 믿어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대현 그룹은 제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끌어들이도록 하죠.”
“믿고 있겠습니다.”
내가 본 지앙웨이라면 걱정이 없을 것 같다.
뭐…….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대현 그룹을 없애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남아있으니, 아쉽다는 느낌만 있을 것 같다.
“그럼, 일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만하고 좀 취하기로 할까요?”
“좋습니다.”
더 이상의 일 이야기는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인지는 몰라도 지앙웨이가 술을 마시자고 권유했다.
나 역시 이 이상의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았기에 술잔을 들어 올렸고, 그 후로도 몇 시간을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 * *
다음 날.
“윽……. 아직도 속이 안 풀리네…….”
“괜찮으십니까, 회장님. 어제 너무 과음하셨습니다.”
“오랜만에 괜찮은 사람을 만났더니 좀 과음했나 봅니다.”
“확실히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더군요. 제가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데도 그렇게 느꼈을 정도면…….”
지앙웨이와의 만남이 있고, 귀국하는 지금.
어제 먹은 술을 생각하자 속이 쓰려왔다.
‘몇 병을 마신 거지…….’
마지막 빈 병을 세보니 족히 열 병은 넘은 것 같았다.
거의 한 사람당 다섯 병은 마셨다는 얘기.
단 한 번도 제대로 취해본 적이 없는 나지만, 어제는 까딱하면 정신을 잃을 뻔했다.
“회장님, 일을 어떻게 진행하실 건지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일단은 컨셉카를 발표하는 날, 저희 JH 그룹의 성과를 알리겠다면서 기자 회견을 잡도록 하죠.”
“안 그래도 요즘 JH 그룹의 여론이 안 좋아지려고 했는데, 시기가 괜찮은 것 같습니다.”
“당분간은 여론이 왔다 갔다 할 겁니다. 어떨 때는 찬양을……. 또 어떨 때는 원망을 하면서 말이죠.”
물론 뒤바뀌는 여론 사이사이에서 JH 그룹은 이득만을 챙겨갈 거다.
“시기를 언제로 잡으면 되겠습니까.”
“어디 보자……. 이렇게 된 거 빠르게 진행하도록 하죠. 삼 일 뒤에 기자 회견을 잡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다른 사장님들에게도 소식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장님들도 고생 많았을 건데, 슬슬 마무리해야죠. 언제까지 고작 대통령 비서실장 따위가 날뛰는 걸 지켜볼 수도 없고 말이죠.”
“참 웃깁니다. 이전까지는 재계의 눈치를 보던 사람이 정권 한 번 가져갔다고, 그렇게 날뛰다니…….”
대통령 비서실장의 행태를 보고 나 혼자만 화난 게 아니었다.
JH 그룹의 각 사장님.
그리고 옆에 있는 비서실장님까지.
모두가 그 더러운 행태를 보고 분노해 왔었다.
그렇다고 능력이 없어서 응징을 참아왔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그 시기를 기다려왔을 뿐.
‘그 시기가 다가왔다.’
이제 그 시기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고작 대현 그룹에 빌붙어 오만방자한 행태를 해왔던 그를 응징하는 시기가 말이다.
앞으로 귀국까지 남은 시간은 단 두 시간.
두 시간 뒤에 각 사장들을 만나, 성과를 다시 한번 모을 생각이다.
그렇게 모인 성과를 이용해 삼 일 뒤, 컨셉카의 발표와 동시에 기자 회견을 열 계획이다.
“대현 그룹은 언제 마무리하실 생각입니까.”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생각하고 있을 때.
궁금증을 참지 못한 비서실장님이 질문했다.
솔직히 마음먹으면 대현 그룹을 없애는 것 따위 아무것도 아니었다.
대현 그룹이 주력으로 미는 자동차 회사도 이제 JH 자동차가 앞서 나가기 시작할 거고, 그와 동시에 JH 인베스트먼트를 이용해 공매도한다면 재기 불능 상태로 만들 수 있을 거다.
‘천천히 말려 죽여야지.’
하지만 그런 최후는 너무 관대한 응징이었다.
그렇게 쉬운 방법으로 복수할 거면 시작조차 안 했다.
천천히…….
그들이 후회할 수 있도록 시간을 들여 짓밟아 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