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111화 (111/175)

111화

* * *

“확실히 중국의 권력은 말이 한국과 차원이 다르군요.”

“… 저도 놀랐습니다. 아무리 고위직이라고 해도 이 정도라니…….”

나흘 동안 중국을 돌아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

내가 만나려고 하는 사람의 권력이 말도 안 된다는 거다.

지앙웨이가 붙여준 사람과 같이 다니니 어딜 가든 해당 종업원이 뛰쳐나와 우리를 반긴 게 대부분이었다.

어딜 가나 마찬가지였다.

호텔을 가든, 골프장을 가든, 관광으로 유명한 곳을 가도 말이다.

“선물은 잘 준비했습니까?”

“회장님이 말씀하신 시계 모델과 회장님이 집필하신 「절대음감」 한정판을 준비했습니다.”

“잘 준비했군요. 그 사람이 제 작품의 팬이라고 하니 좋은 이미지를 심어 줄 수 있을 겁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저는 회장님이 더 대단하시다고 생각합니다. 혹여나 중국 내에서의 권력을 보고, 고개를 숙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피식―

비서실장님은 지앙웨이의 권력을 본 내가 위축됐다고 느꼈나 보다.

실제로 영향력을 보고 놀란 건 맞지만, 위축된 건 아니었다.

그저 충분히 이용할 만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기분이 좋을 뿐.

‘한국에서 재산이 제일 많은 내가 위축될 리가…….’

공식적으로는 안 밝혀졌지만, 비공식적으로는 한국 내의 개인 중 재산이 가장 많은 게 나였다.

당장 JH 그룹이 가지고 있는 회사를 상장만 한다면 공식적으로도 재산 1위가 될 수 있을 거다.

그런 내가 고작 중국 내의 권력 가지고 위축 될 리가 없지 않은가.

“제가 위축돼 보였습니까?”

“… 그것보다는 영향력을 보고 많이 놀라신 것 같아서 혹여나 말씀드렸습니다.”

“하하, 재밌네요. 제가 중국의 주석도 아니고, 고작 고위직을 보고 위축될 리가 없지 않습니까. 당장 대한민국 대통령을 만나고도 할 말 안 할 말 다 한 사람입니다.”

“주제 넘은 걱정이었군요.”

“아닙니다. 저를 위해 한 말이란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란 걸 말씀드리는 거고요.”

선물을 준비하는 것과 만남을 기다리는 것.

어디까지나 호의로 인한 행동이었다.

비서실장님은 내 나이를 생각하고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말했나 보다.

“그럼 슬슬 가 볼까요? 지앙웨이가 저를 기다리고 있겠군요.”

“제가 지앙웨이가 있는 곳으로 안내를 부탁하겠습니다.”

지앙웨이와의 만남의 시간이 다가왔다는 걸 확인한 나는 비서실장님에게 통역을 부탁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중국어도 공부하는 건데, 전생에서는 중국과 인연이 없어 중국어를 공부하지 않은 게 아쉬웠다.

그래도 비서실장님이 중국어를 할 수 있었기에, 아쉬움을 접어두고 지앙웨이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안내해 주시는 분을 따라 이동하니 거대한 저택이 보인다.

한국에 있는 본가보다도 훨씬 커다란 저택.

더군다나 상주하고 있는 사람들을 확인하니 이 사람의 권력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회장님, 안내하는 사람이 이 안으로 들어가면 지앙웨이가 있다고 합니다.”

“들어가죠.”

현관 앞까지 데려다주던 사람은 여기까지인가 보다.

끼이익―

문을 열고 들어가니 다시 한번 저택의 규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치 호텔의 연회장을 연상시키는 규모.

어째서 승호가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는지 조금을 알 수 있었다.

“하하, 반갑습니다. 중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안으로 들어가자 푸근해 보이는 남성이 약간은 어색한 한국어로 말을 걸어왔다.

“반갑습니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하군요. 그나저나 지앙웨이 씨가 한국어를 할 수 있을 지는 몰랐습니다.”

“저는 아시아의 문화를 존중하는 사람입니다. 웬만한 아시아 국가 언어는 다 할 수 있다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그거 다행이군요.”

“아차, 이럴 게 아니지. 안으로 들어오시죠.”

반갑게 나를 맞이해주던 지앙웨이가 충분한 인사를 나눴다고 생각했는지, 거대한 식탁이 있는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 오늘 한 명은 죽을 수도 있겠군.’

거대한 식탁 위에 올려져 있는 술.

딱 봐도 도수가 높아 보이는 술이었다.

더군다나 중국의 꽌시는 술로서 이어지는 법.

애매하게 마셨다가는 꽌시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기에, 저기 있는 술을 다 마셔야 되는 건 분명했다.

“회장님……. 괜찮겠습니까…?”

식탁을 확인한 비서실장님도 걱정이 됐는지, 조용한 말로 나에게 물어왔다.

그러고 보니, 비서실장님에게 내 주량을 말해 주지 않았나 보다.

“참고로 이때까지 술을 마시면서 취해 본 적은 없습니다.”

“… 도대체 부족한 게 뭡니까.”

전생을 통틀어서 단 한 번도 취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 앞에 있는 술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마셔본 적도 많았고.

내가 걱정하는 건 지앙웨이가 괜히 나의 템포에 맞추다가 취하지 않을까였다.

“제가 오늘 작가님을 대접해 주기 위해, 고생 좀 했습니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자, 그럼 앉아서 천천히 먹기로 할까요? 얘기를 들어보니 오늘 한 끼도 안 드셨다고 하더군요.”

“지앙웨이씨에게 초대를 받았는데, 어떻게 미리 식사하겠습니까.”

“그렇게 말해 주니 감사하군요.”

서로 체면치레해주던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식기구를 들어 식사했다.

식사하는 동안에 의미 없는 대화가 오갔다.

요즘 중국 정세는 어떤지.

한국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에 대한 대화.

슬슬 식사가 마무리되고, 술자리까지 이어졌다.

「절대음감」의 팬이란 말이 과장이 아니었을까?

술을 마시자마자,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크……. 제가 이 술을 마시면서 작가님과 작품 이야기를 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중국에서야 제 영향력이 크다고 하지만, 해외에서는 관련 분야가 아닌 이상 저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거든요.”

“어떻게 보면 저도 관련 분야의 사람 아니겠습니까. 더군다나 제 작품을 좋아하시는 분인데, 호감이 생기는 건 당연한 것 같습니다.”

“말씀만이라도 감사하군요. 아무리 중국에서만 있는 저라도 알고 있습니다. 회장님이 얼마나 큰 재산을 갖고 있고, 국제적으로 거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단 걸요. 저만큼 문화의 힘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이거 과분한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제가 소소하지만, 선물 하나 갖고 왔습니다.”

“오! 그게 정말입니까!? 작가님의 선물이라니 기대되는군요!”

술을 마시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지금이 선물을 주기 가장 최적의 타이밍이라고 생각한 내가 선물에 대한 운을 띄웠다.

그 말을 옆에서 듣던 비서실장님이 몸을 움직여 준비한 선물을 가져왔다.

“이건 파텍필립 시계입니다.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괜찮은 선물이라 생각해서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이건 「절대음감」의 단행본으로, 지금까지 나온 4권까지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물론 100개만 특별하게 출간한 한정판입니다.”

“… 이럴 수가. 제가 감히 이걸 받아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하군요.”

“아니요……. 작가님은 모를 겁니다. 중국 내에서 무협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더군다나 역대급 반응을 몰고 있는 작가님 작품이라면……. 하……. 이건 돈 주고도 못 구할 겁니다.”

비서실장님이 가져온 선물들을 확인한 지앙웨이가 감격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아무리 내 작품이지만, 살짝 어이가 없었다.

끌어안은 책 옆에 있던 시계.

못 해도 1억은 넘는 가격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런 시계는 쳐다보지도 않고, 책을 끌어안고 있으니 어떻게 황당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람 자체가 마음에 드네.’

원래는 필요에 의해 도움을 주고받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만나서 확인한 지앙웨이.

생각보다 사람이 순진해 보이고, 호감이 생겼다.

물론 내 작품을 좋아해 주는 게 눈에 보여서 더 그런 거일 수도 있지만, 이전에 가지고 있던 선입견이 깨져나갔다.

“이 보답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작가님 사인만 받아도 오늘의 자리가 만족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한정판까지 다 받고…….”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번에 제 작품이 중국 내에서 정식 출간할 수 있던 게 지앙웨이 씨 덕분이란 말이 있었습니다. 그 부분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다른 소설이었다면 검열에서 탈락했을 겁니다. 중국은 생각보다 자유에 대한 내용을 철저히 검열하거든요. 하지만 그 이상으로 재밌었습니다. 마치 무협을 처음 접한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거든요.”

“제 친구에게도 특혜를 줬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뭐……. 특혜보다는 어차피 누군가 가져야 할 권리를 준 것뿐이죠. 저에게는 누가 가지고 있든 상관없는 권리거든요.”

지앙웨이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말했지만, 절대 아니었다.

승호가 받은 권리.

한국에서 중국으로 향하는 창작 매체들을 추천할 수 있는 권리였다.

중국에서의 엔터 사업은 천문학적인 수입원.

당연하게도 한국 내에 GL 엔터의 입지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져 있었다.

“이야……. 이렇게 술을 잘 마시는 사람 오랜만입니다. 중국의 인사들도 이 정도로 마시는 사람이 없었는데…….”

“제가 어디 가서 술 못 마신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서로 웃는 얼굴로 이야기를 진행한 지, 네 시간가량이 지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옆에 쌓이던 빈 병은 어느새 술이 담겨 있는 병의 숫자를 넘어섰다.

“이 이상 마시면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할 것 같네요. 저는 작가님과 술을 더 마시고 싶습니다. 더 취하기 전에 만남을 요청한 이유를 들어봐도 될까요?”

술을 마시며 혀가 꼬이기 시작한 지앙웨이.

이 이상은 온전한 정신으로 대화할 수 없음을 직감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뭐라고 전해야 하지…….’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뭐라고 말해야 지앙웨이의 도움을 받아 대현 그룹의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그것도 지앙웨이의 반대편에 있는 베이징파의 인사를 이용해서 말이다.

원래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는 지앙웨이가 대현 그룹에 투자할 수 있도록 유도하려 했었다.

하지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지앙웨이를 버리는 카드로 사용하기보단 앞으로 관계를 이어 나가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말하기 곤란한가 보군요. 그럼 저부터 솔직하게 말해도 되겠습니까?”

“…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작가님을 만나기 전에 저와 중요한 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과 만남을 가졌습니다.”

“…….”

“제가 먼저 만남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그쪽에서 제가 작가님을 만난다고 하니 연락이 오더군요. 저는 연락을 받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잘 연락도 하지 않던 사람이 작가님과 만난다고 하니 하루가 멀다 하고 연락하더군요.”

“그 사람이 누구죠…?”

“미국 중앙정보국 국장의 그림자라고 불리는 요원, 샘 헤임입니다.”

“……!”

지앙웨이의 입에서 나온 미국 중앙정보국이란 단어.

한국에서 흔히 CIA라고 불리는 단체였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CIA에서 나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동시에 이제는 JH 자동차 사장이 된 이민호 전 비서실장님의 말이 떠올랐다.

미국의 높은 사람이 나와의 만남을 원하고 있다는 그 소식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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