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 * *
대통령과 약속을 잡고 난 후 이틀.
그동안 많은 고민을 해 왔었다.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이용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그렇게 나온 결론.
중국 투자 건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거론을 하지 않기로 했다.
대통령이야 어떻게 넘어갈 수 있겠지만, 대현 그룹에서는 이 사실을 안다면 이상하게 여길 게 분명했다.
굳이 의심의 여지를 줄 필요가 없었기에 신중히 행동하기로 했다.
“이거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군요.”
“반갑습니다. JH 그룹 회장 박제환입니다.”
“반가워요. 대통령 정세환이라고 합니다.”
시간에 맞춰 약속된 장소로 향하자 나를 반기는 대통령이 보였다.
확실히 표정을 보니 알겠다.
나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일단 식사부터 하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나 역시 궁금한 게 많았지만, 식사가 먼저라고 생각했기에 밥부터 먹고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그렇게 먹게 된 식사.
이전에 만났던 비서실장과 많은 차이가 있었다.
밥을 먹을 때도 물을 따라주는 등 세세한 배려가 돋보였고, 식사를 끝마치는 시간까지 비슷했다.
이 사이에 얼마나 많은 배려가 있었는지 보통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을 거다.
“어떻게 식사는 좀 괜찮았습니까?”
“만족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그거참 다행이군요.”
“많은 배려 감사드립니다. 이곳에 들어올 때, 경호원으로 보이는 분이 제 옷을 검사하지 않더군요.”
“설마 JH 그룹 회장 되는 사람이 이상한 생각이라도 하겠습니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행동을 하지 않았을 뿐 입니다.”
받은 배려에 대한 고마운 인사를 건네자 손을 저으며 별거 아니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그러고서는 먹고 있던 음식들을 치웠고, 곧바로 차가 들어왔다.
“스읍…….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뭐……. 편하게 말씀하도록 하시죠.”
“제가 듣기로는 저희 비서실장과 다툼이 있었다고…….”
“그건 잘 모르겠군요. 일방적인 시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툼은 서로의 실수가 있을 때 다툼이란 표현을 쓰더군요.”
“이거 제가 말실수했습니다. 저희 비서실장이 실례를 범했다고 들었습니다.”
의도적으로 양쪽의 실수로 넘어가려고 했던 건지 실수인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고개를 숙일 필요는 없었기에 잘못된 정보를 정정하고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일단 한 가지는 말씀드리고 시작해야 될 것 같군요. 저는 대현 그룹과 공존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한국이 아니라 지구 어디에서도 둘 중 하나는 사라져야 된다 생각하고 있고요.”
“… 그거 위험한 생각이군요.”
“대통령님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저희가 가만히 있었는데, 시비를 걸어온 건 그쪽이란 걸. 더군다나 제 가족 중 한 명이 대현 그룹 자제에게 학교 폭력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걸 보고 참을 정도로 저는 착하지 않고요.”
“하지만 상처만 남은 싸움이 될 겁니다. 어쩌면 JH 그룹이 사라질 수도 있어요.”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확실히 현시점의 JH 그룹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 까지는 대현 그룹에 밀려 보이는 게 사실인가 보다.
‘일반적인 관점에서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지금 JH 인베스트먼트에서 투자하고 있는 회사들이 어떤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그것들을 제외하고도 지금 가치만으로도 충분히 경쟁할 수 있는 위치라는 걸.
“그렇다고 해도 이어 갈 생각입니다.”
“… 그렇게 되면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습니다. 대현 그룹이 사라진다면 관련된 일자리가…….”
“이거 이상하군요. 그 정도는 JH 그룹에서 일자리 창출을 충분히 하고 있을 텐데요? 그렇다면 저희는 미국 쪽에 본사를 둘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에서 계속 연락이 오더군요. 혜택을 줄 테니, 넘어오라고. 이런 상황에서 제가 한국에 남아있을 이유가 있을까요?”
“… 제 뜻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확실히 JH 그룹에서 파생되는 일자리가 많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사라지는 일자리를 생각하면 쉽게 볼 만한 문제가 아닙니다.”
솔직히 방금의 대화는 압박에 가까웠다.
나 역시 대현 그룹이 사라진다면 그로 인해 생겨나는 피해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말 한 이유.
다음 말을 좀 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대통령님이 걱정하시는 바는 잘 알겠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죠. 대현 그룹은 저희 JH 그룹이 인수하겠습니다. 일자리를 전혀 손대지 않는 조건으로요.”
“…….”
“단, 지금 있는 정씨 일가와 그들과 관련된 사람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사라져야겠지만요.”
“…….”
“설마 이것도 안 되신다고 하시는 건 아니겠죠? 만약 그러시다면 저는 미국으로 가서 대현 그룹과 전쟁하기로 결정하겠습니다.”
마지막 경고를 들은 대통령이 생각에 잠겼다.
아마 저울질하고 있을 거다.
과연 JH 그룹이 그 정도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어느 쪽이 이득인지.
그렇게 몇 분 정도가 흐르고, 생각을 마친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솔직히 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JH 그룹이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대현 그룹을 온전히 인수할 수 있을지. 그리고 다른 기득권들의 견제를 피해 갈 수 있을 지 말입니다.”
“그렇다면 거절의 의사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그런 뜻이 아닙니다. 만약 다른 그룹이 이런 말을 해왔다면 모른다는 답변이 아닌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내놨을 겁니다. 저도 생각을 마치고 나서 흠칫했습니다. 이 말에 실현 가능성이 있다는 것에 말이죠.”
“대통령님의 결론을 듣고 싶군요.”
“저는 지켜만 보고 싶습니다. 괜히 제가 끼어들었다가 양쪽에서 곤란해질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누구의 편도 안 들겠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대통령까지 합세한다면 솔직한 말로 지금 시기에는 약간 버거운 싸움이 됐을 거다.
물론 1년 정도만 흘러도 내 쪽으로 우세를 가져올 수 있겠지만.
굳이 싸우지 않겠다는 사람을 적으로 돌릴 이유는 없기에 대통령과의 관계는 지금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저 역시 중립을 취하도록 하죠. 이번 일로 대통령님에게는 어떠한 감정도 품지 않겠습니다. 비서실장이 어떻게 나온다고 해도 말이죠. 대신! 절대 이 싸움에 끼어들지 마십쇼.”
“… 대신 저도 한 가지 약속받아야겠습니다. 솔직히 회장님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영향력이 작지 않습니다. 이번 정권에서만큼은 정치적 중립을 취해주시죠.”
“확답을 드리지 못하겠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겠습니다.”
“… 비서실장이 하는 짓이 있으니, 그 정도 대답으로 만족해야겠군요.”
지금 시기에는 딱히 정치적으로 영향을 끼칠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확답을 줄 순 없었다.
이번 정권 마지막에 가서는 분위기에 맞춰 정권을 유지하든 바꾸든 정해야 됐기 때문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서로의 의견을 대충 확인한 지금.
대통령이 생각에 빠진 듯한 표정을 짓는다.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 될 것 같군요.”
“편하게 말씀하시죠.”
“나중에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아 미리 말해야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말 한 중립은 한쪽 편을 들지 않겠다는 겁니다. 혹여나 정권에 도움이 되거나 대현 그룹이 정권의 도움이 필요할 시 혜택을 줄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은 이해해주셔야 됩니다.”
“뭐……. 그거는 어쩔 수 없는 거죠.”
“반대로 JH 그룹에서도 도움이 필요할 땐, 정부에서 돕기로 하겠습니다.”
오히려 좋았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한 말을 오해하기라도 해서 대현 그룹이 중국으로 진출할 때, 정부가 돕지 않는다고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에 맞게 대통령의 말이 들려왔다.
“그럼 일어날까요?”
“나라를 운영하느라 바쁘신데, 괜한 싸움에 휩쓸리게 했군요.”
“아이고, 아닙니다. 저희 비서실장으로 인해 시작된 싸움인데, 회장님이 미안해하실 필요는 없겠죠. 단지 제 의견이 아니란 것만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럼 나중에 뵙는 걸로 하죠.”
오늘의 만남으로 서로의 의중을 파악한 우리는 웃는 얼굴로 악수했다.
어떻게 보면 화기애애한 마무리로 볼 수 있지만, 두 명 다 속으로 갖고 있는 생각은 다를 거다.
일단 나부터가 달랐다.
만약 대통령이 쓸모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정치적으로 끝내버릴 생각을 하고 있다.
이 생각은 나만 갖고 있는 게 아닐 거다.
비록 지금은 웃는 얼굴로 이야기는 나눴지만, 대통령 역시 내가 쓸모가 없다는 걸 깨달은 순간, 오히려 대현 그룹에 붙어 JH 그룹을 나눠가질 게 뻔했다.
단지, 지금은 서로가 확신이 없을 뿐이었다.
‘자……. 그럼 슬슬 시작해 볼까?’
이제 대통령의 의중도 확인했겠다, 더 이상 변수가 없을 것 같으니 속도 좀 올려도 될 것 같다.
대현 그룹과 비서실장을 밑바닥으로 끌어 내리는 일을.
* * *
‘작업에 들어간 건가?’
대통령과 만남을 가지고 3일이 흐른 지금.
비서실장과 대현 그룹이 움직였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일단 인터넷 기사들.
JH 그룹에 관하여 올라오는 기사들 대부분이 악의적으로 그룹의 명성을 깎아내리고 있었다.
제일 처음 보이는 건 JH 자동차였다.
아직까지 그 어떠한 자동차와 그것과 관련된 발표가 없다는 점을 걸고넘어진다.
동시에 호남지역에 짓고 있는 공장들이 법을 지키지 않은 채,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기사가 있었다.
‘그다음은 JH 배터리인가…?’
JH 자동차 다음의 JH 배터리에 관한 기사.
JH 그룹 회장의 개인적 욕심 때문에 나라 경제를 망치고 있다는 기사가 있었다.
다른 자동차 회사와는 협업하면서 대현 자동차에게는 국내 시장의 경쟁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협업을 금지하고 있다는 기사였다.
마냥 거짓으로 이루어진 기사가 아니어서 일까?
사람들의 반응이 점점 대현 그룹 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재밌네.’
분명 JH 그룹에 악의적으로 점철된 기사임에도 잘 못 됐다는 생각은커녕 재밌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도대체 뒷수습은 어떻게 하려고 저런 기사를 내는 걸까?
4일 뒤에 있을 지앙웨이와의 만남.
그때 동시에 터칠 생각이다.
우리 JH 그룹이 건재하고 있음을.
그 기사를 본 사람들은 이전에 기사 따위는 머릿속에 지운 채, 모두가 관련주를 사기 위해 달려들 게 분명했다.
그렇게 모두가 JH 그룹을 원하고 있을 때.
대현 그룹의 중국 투자 소식과 함께 JH 그룹에 대한 악재를 기사화한다.
악재는 현 정권의 비서실장과 대현 그룹으로 비롯한 악재.
과연 이 소식을 들은 국민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오랜만에 대현 그룹을 손봐준다는 생각에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회장님, 곧 있으면 출국할 시간입니다.”
“한국에 남아있는 사람에게 잘 말해 주세요. 곧 있으면 반격의 시간이 다가온다고.”
우리 그룹이 빌린 전세기로 나를 안내하는 비서실장님.
반격의 시간이 다가온다는 내 말을 듣고, 미소를 띤다.
“그 시간이 다가오면 재밌는 일이 생기겠군요.”
“저희한테만 재밌겠지만요.”
비서실장님 말대로 재밌는 일이 생길 거다.
대현 그룹과 비서실장에게는 악몽과 같은 일들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