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 * *
“자네 요즘 뭐 하고 다니나?”
“… 무슨 말씀이신지.”
언제나와 같이 대통령님을 모시고 있는 비서실장 이현배.
대통령님의 물음이 뜬금없는 것 같다.
갑자기 요즘 뭐 하고 다니냐니…….
자신이 하는 게 뭐가 있단 말인가.
각 그룹의 주요 인사를 만나, 대통령님의 뜻을 전하고 다니지 않는가.
이걸 모를 리가 없는 대통령님이 왜 저런 질문을 해 오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최근 들어 대현 그룹이랑 자주 어울린다는 말이 들려오더군.”
“…….”
어째서 저런 질문을 해 왔는지 알 수 있었다.
굳이 대통령님에게까지 보고해야 되나, 라는 생각에 독자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JH 그룹의 견제.
그걸 두고 이야기하시나 보다.
“사실, 이전에 대통령님이 만남을 청했을 때, JH 그룹이 거절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괘씸하기도 하고, 대현 그룹과 화해하는 게 대한민국 경제를 살리는 길인 것 같아 자그마한 경고를 건네고 있었습니다.”
“그걸 왜 자네가 하냐 이 말일세.”
“… 그게 무슨…….”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네. 자네에게 너무 과분한 자리를 넘긴 게 아닌가 하는 생각.”
“…….”
이해가 안 간다.
분명 이번 일을 진행하면서 칭찬을 들을 줄 알았다.
실제로 개인적인 욕심도 있었지만, 일이 마무리됐을 때 대통령님이 얻는 이득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반응이 들려오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나라고 그 아이에게 불만이 없는 것 같나? 계속해서 대화를 청하는 데 거절하는 그 아이에게 어떻게 정을 주겠나.”
“그래서 제가…….”
“근데! 왜 가만히 있겠냐 이 말이야!!”
“…….”
“자네에게 맞지 않은 자리에 앉아서 머리가 굳은 게야!? 상대를 봐가면서 까불어야 될 거 아니야!”
“… 납득이 안 갑니다. 그 아이가 도대체 뭐라고…….”
대통령님의 호통에 화가 나기보다는 황당하기만 했다.
도대체 그 아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말을 한단 말인가.
고작해야 재벌가 중의 한 명일 뿐이다.
그것도 역사가 있는 재벌이 아닌 졸부에 가까운 재벌 말이다.
심지어 경험도 부족한 나이에 사회생활도 못 하는 그런 아이였다.
그런 아이의 버릇을 고쳐주는 건데 왜 이런 소리를 들어야 되는지 이해가 안 갔다.
“대현 그룹 회장은 멍청해서 가만히 있는 줄 아나? 어떻게 못 하니까, 가만히 있는 거 아니야!!”
“…….”
“이런 머저리 같은 놈을 비서실장으로 두고 있다니…….”
“말씀이 심하십니다.”
“자네가 저지른 일이 어떤 짓인지 안다면 그런 말도 못 할 거네.”
슬슬 짜증이 난다.
아무리 대통령님이라 해도 저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됐다.
이 행동들이 나만을 위한 행동이었나?
다 같이 잘 되자고 하는 행동이었건만, 고작 그 아이 하나 때문에 이런 소리를 들어야 왜 들어야 되는지도 모르겠다.
“하나만 고르게.”
“뭘 말씀이십니까.”
“당장 가서 사과를 하고 없던 일로 돌리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정부의 의지가 아닌 자네 독자적인 행동이라고 말하거나.”
“… 이해가 안 갑니다. 대통령님은 지금 21세기 대통령 중에 가장 큰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건방진 아이 하나쯤은 아무것도 아니란 말입니다.”
“쯧쯧……. 그럼 독자적인 행동인 걸로 하지. 나는 따로 연락을 주도록 하겠네.”
“… 마음대로 하십쇼. 단, 저는 끝까지 갈 겁니다.”
“자네도 마음대로 하게.”
대통령님이 뜻을 같이하지 않겠다는 말을 해왔지만 상관없었다.
애초에 그 꼬맹이를 상대하는 데 대통령님의 도움 따위 필요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내 몫이 늘어나게 됐군.’
대통령님의 거부 의사로 인해 내 몫이 늘어나게 됐다.
이렇게 생각하니 지금의 상황이 더욱 좋아진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자네 표정을 보아하니 내 말은 한 귀로 흘렸나 보군. 아주 욕심이 가득 차 있어.”
“사람은 욕심으로 성장합니다. 이때까지 욕심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오지 못했을 거고요.”
“과한 욕심은 독이 되지.”
“과한 욕심이라면 말이죠.”
“… 그만 나가보게. 오늘은 일찍 들어가도록 해.”
“배려 감사합니다.”
“배려로 보였나? 하긴 배려는 맞겠군. 자네가 옆에 있을 때, 그 아이에게 전화를 거는 건 보기 싫을 테니.”
“그럼 물러나겠습니다.”
물러나겠다는 내 말에 대답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대통령님과 같은 길을 걸으려 했지만, 아무래도 독자적인 길을 만들어야겠다.
다행이라고 해야 될 진 모르겠지만, 대현 그룹과의 연이 이어진 셈.
오히려 지금의 대통령님보다 성공의 줄이 더 굵어 보였다.
‘다시 한번 확인해야겠어.’
더 이상 대통령님의 신임을 얻지 못 할 거라고 판단한 나는 곧바로 청와대에서 나와 전화기를 들었다.
- 무슨 일이십니까.
“대통령님이 그 꼬맹이를 압박하는 거에 반대를 했어.”
- … 비서실장님이 옆에서 잘 말씀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이미 돌리기에는 늦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독자적으로라도 대현 그룹과 함께 하기로 했네.”
-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그래도 공장 부지에 대한 압박은 그대로 들어가는 겁니까?
“그래야지. 말 그대로 대통령님은 이 싸움에 낄 생각이 없어. 그 누구의 편도 아니라는 거지.”
- 그건 다행이군요.
쯧…….
벌써부터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 상황으로 인해, 괜한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급해지는 기분이다.
“대현 그룹은 먼저 발 빼는 건 아니겠지?”
-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저희는 JH 그룹과 함께 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네. 그렇다면 왜 JH 그룹을 처리하지 않았던 거고, 어째서 나에게 화해를 하는 걸 도와주라 했나.”
- … 싸움을 통해 얻는 것 보다 아무 피해 없이 흡수하는 게 이득이라 생각한 거뿐입니다.
“확실하겠지?”
- 저희 대현 그룹입니다. 어디 길가에 널부러진 그런 그룹이 아니란 말입니다.
“크흠……. 이건 사과하지. 괜히 걱정돼서 그렇네.”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대통령님의 생각이 틀린 거란 말이다.
천하의 대현 그룹이다.
대한민국을 세상에 알리는 데 일조한 대현 그룹이 고작 2년이라는 역사도 없는 그룹보다 뒤처질 리가 없지 않은가.
대통령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솔직히 약간의 걱정이 있었다.
내가 아는 대통령님은 이렇게 조심스러운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아래라고 생각한 그룹에게는 가차 없는 사람이란 말이다.
그런 대통령님이 JH 그룹을 압박하는 것도 아닌 겁먹은 모습을 보였을 때,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JH 그룹이 내가 생각하는 그 이상인가 하는 걱정 말이다.
방금의 통화로 알겠다.
‘대통령님이 겁먹은 거다.’
갑작스레 높아진 자리에 사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결과로 보여줘야겠다.
당신이 걱정한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 * *
‘그렇게 말해도 못 알아먹은 건가?’
진동이 울리고 있는 핸드폰을 바라보던 박제환.
황당한 마음이 들었다.
분명 서로가 한 명은 피를 봐야 하는 싸움을 시작했다.
즉, 이렇게 대통령에게서 전화가 걸려 올 일이 없단 말이다.
어떤 낯짝으로 전화를 걸었는지 궁금해서라도 전화를 받아야겠다.
“전화 받았습니다.”
- 문자 말고, 직접적으로 전화를 한 건 처음이군요.
“혹시 제가 했던 경고가 그 정도로 가볍게 느껴졌습니까?”
- … 이거 오해가 있었나 보군요. 혹시 만나서 대화를 좀 나눠도 되겠습니까?
…….
이해가 안 간다.
분명 저번만 해도 나에게 이빨을 들이밀던 청와대에서 왜 이렇게 저 자세로 나오는 걸까.
혹시 내가 준비하고 있는 반격을 눈치챈 건가 하는 의심이 든다.
하지만 이것마저도 이상했다.
이전에 청와대의 입장이었다면 반격을 눈치채더라도 허리를 숙일 리가 없었다.
‘뭐지…….’
혹시 다른 나라에서 개입한 건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곧 만남을 가지도록 한 지앙웨이.
그 사람이라면 충분히 청와대에 입김을 넣을 수 있었다.
심지어 친중을 생각하고 있는 현 정권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역시 이건가…?’
머릿속에서 없었던 상황이라 오랜만에 당황스러운 감정을 느낀다.
“무슨 오해를 말씀하시는지 모르겠군요. 보통 오해라고 함은 서로 간의 정보에 오차가 있음을 뜻하는 거 아닙니까? 오해라고 하기엔 벌써 움직이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 개인적인 단독 행동입니다.
“무슨 소리죠…?”
- 저는 이 싸움에 관여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 대화가 필요할 것 같군요. 언제쯤 시간이 괜찮으십니까.”
- 시간을 확인하고 문자로 보내드리도록 하죠.
“그럼 그때 뵙는 걸로 하죠.”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나는 약속을 잡기로 결정했다.
방금의 전화로 내가 가지고 있던 정보에서 부조화가 일어났다.
지금 상태로 전화를 해 봤자 냉정한 판단은 힘들다고 봐야 됐다.
그럴 바엔 생각을 정리하고, 지금 상황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는 게 나았다.
‘대통령은 나와의 싸움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
바보가 아니라면 방금의 통화로 알 수 있을 거다.
대통령은 나와의 싸움을 반기지 않는다는 걸.
그렇다면 비서실장의 단독 행동이란 얘기.
씨익―
‘좋은데…?’
전화를 끊고, 현 상황을 정리하니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지금 상황.
충분히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좋은 상황이었다.
‘대통령을 대현 그룹 편으로 만든다.’
지금까지 계획을 세우면서 일말의 불안함을 품고 있었다.
비서실장 정도야 일주일도 안 돼 처리할 자신이 있었지만, 대현 그룹이 애매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바뀐 대통령의 입장.
이걸 이용하면 충분히 대현 그룹도 끌어내릴 수 있을 것 같다.
‘대통령에게 대현 그룹의 투자를 돕도록 한다.’
대통령의 입장은 나에게 우호적인 것 같았다.
정확한 상황은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확실했다.
이 상황을 이용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무엇일까.
대현 그룹을 중국으로 초대하는데, 대통령이 도움을 주는 거다.
한 마디로 대통령과 이야기해서 대현 그룹의 편으로 남아주라고 부탁하는 거다.
‘일말의 불안감마저 사라진다.’
만약 내가 생각하는 대로 상황이 진행된다면 일말의 불안감도 사라지게 된다.
슬슬 준비해야 될 것 같았다.
대현 그룹의 마무리를.
‘그 다음은 대현 그룹이 보는 앞에서 세계 최고의 그룹이 된다.’
가장 큰 목표이자, 곧 이뤄야 될 목표다.
과거로 돌아오고 나서부터 생각한 나의 목표.
결코 대현 그룹 따위가 아니었다.
고작 대현 그룹을 망가뜨리는 게 목표였다면 진작에 이루고도 남았을 거다.
대현 그룹은 가벼운 발판 삼아 세계 최고의 그룹이 되는 것.
슬슬 대현 그룹을 마무리 지을 때가 다가왔나 보다.
‘그렇게 왜 까불어서 시기를 앞당기냐.’
이해가 가질 않았다.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마무리를 지어줄 텐데, 그 틈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의 목을 내민다.
나와 대현 그룹이 그냥 아는 사이도 아니고, 전생의 인연이 있는 만큼 친절히 목을 내려쳐 줘야겠다.
몽둥이 따위가 아닌 날카롭게 벼린 칼로 말이다.
지이잉―
대현 그룹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던 중.
문자가 왔다.
방금 통화했던 대통령의 문자.
문자를 확인하니 이틀 뒤로 만나자는 내용이 보였다.
‘이틀 뒤면 딱 좋은데…?’
시기마저 좋았다.
안 그래도 일주일 뒤에 지앙웨이와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