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102화 (102/175)

102화

* * *

‘무슨 일로 부르신 거지…?’

작품을 집필하는 걸 잠시 멈추고 할아버지 집으로 향하는 박제환.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집으로 부른 걸까?

할아버지도 알고 계셨다.

지금 기간은 내가 작품에 집중하는 시기인걸.

작품에 집중하는 시기에는 되도록이면 사업적인 이야기는 피하셨다.

아니, 사업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조차도 배려해주셨는데, 무슨 일로 부른 건지 궁금해졌다.

“크흠……. 왔느냐?”

“예, 할아버지. 무슨 일로 집에 오라고 하신 거죠?”

“예끼, 이놈아. 할아비가 손자 얼굴 좀 보고 싶다는 데 굳이 이유가 있어야겠느냐?”

“… 그건 아니지만…….”

맞다.

할아버지가 손자의 얼굴을 보는 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는가.

그렇지만 이유가 있는 것 같기에 궁금한 거다.

지금도 마찬가지.

누가 보더라도 내 눈치를 보고 있는 게 할 말이 있어 보였다.

“진짜 아무 일 없는 겁니까?”

“… 뭐, 일이라면 평상시에도 있는 거 아니겠느냐.”

확실히 있다.

단지, 말하기 껄끄러울 뿐.

그렇다면 사업적인 것을 말하기 위해 불렀다는 걸 알 수 있다.

‘무슨 사업이 있지…….’

지금 세 번째 작품을 집필하면서 사업적으로 연결할 구석이 넘쳐났다.

하지만 동성 그룹이 가져갈 사업은 별로 없었다.

기존에 업계에 있던 회사들이 가져가면 이득이지만 동성 그룹이 끼기엔 적자만 날 게 뻔했다.

그런 상황에서 할아버지가 눈치를 보고 있으니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그냥 속 시원하게 말해 주시죠. 제가 할아버지랑 하루 이틀 대화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끄응……. 그렇게 티가 났느냐?”

“이 시기에 집으로 부르신 이유가 단순히 얼굴 보고 싶어서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크흠……. 그……. 승호 할아비가 완전히 신났더구나. 제환이 너의 세 번째 작품 때문에 회사 주가가 단숨에 상한가를 쳐서.”

“그만큼 승호도 고생하긴 했습니다.”

빈말이 아니었다.

승호가 연줄을 이어 놓은 중국에서의 고위직.

직접 알아보니 상상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단 걸 알 수 있었다.

영화나 음악, 문화 같은 것들은 그 사람의 입김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심지어 전 세계에서 유행하는 영화더라도 중국에 들어가기 위해선 그 사람의 시선을 거스르면 안 된다고 한다.

그런 사람과 연줄을 이어놓은 걸 보면 승호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물론 그 이상으로 수혜를 봤지만.’

모든 일들의 전제 조건이 내 작품이기 때문에 그 이상의 수혜를 본 건 맞았다.

단지, 어느 정도 노력을 들어갔단 걸 말해 주고 싶을 뿐.

“할아비가 그런 것도 모른 줄 아느냐.”

“GL 그룹 회장님이 자랑하시던가요?”

“…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제환이 네가 잘한 걸 승호가 잘한 것처럼 바꿔서 말하긴 하더구나.”

“그게 다 손자 둔 할아버지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이 회장이 끝이면 모르겠는데 네 놈 외할아비도 그렇게 자랑해오더구나.”

“외할아버지가요?”

그렇지 않아도 외할아버지한테 연락이 왔었다.

이번 작품을 너무 잘 보고 있고, 자신의 동호회에서 자랑하기 위해 사인 몇 장을 해달라고.

할아버지의 말을 들어보니 한 가지 생각이 든다.

혹시 동호회에 있던 사람들이 사업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내 사인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과 꽌시가 이어지고 그걸로 인해 사업이 승승장구한 게 아닌가 한 생각이 말이다.

‘이것밖에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경우밖에 없는 것 같았다.

“강 회장 사업이 중국의 영향이 크지 않더냐. ‘절대음감’이 중국에서 말도 안 되는 인기를 끌면서 덩달아 외할아비라는 타이틀을 이용해서 꽌시를 맺고 있다고 하더구나.”

“뭐……. 이런 식으로 효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꿈에 그리던 재계 서열 한 자릿수로 올라가셨는데.”

“어허!! 그래도 나는 중간에서 고생하지 않았더냐. 이번 탄핵 때 중간에서 너까지 영향이 안 가도록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걸 강 회장과 같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잘 알고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돌아가시는 걸까?

슬슬 본론이 나올 때가 된 것 같다.

“그래서 그런데……. 크흠……. 이번에 이 회장이 나한테 제안하더구나.”

“제안이요…?”

“그……. 디즈니에서 테마파크를 만들 생각이 없냐고 물어봤거든.”

“그걸 왜 할아버지한테 제안하신 거죠?”

이해가 안 간다.

테마파크를 만드는 데 왜 할아버지에게 제안하냐는 거다.

아니지…….

그전에 이해가 안 가는 것.

그걸 왜 디즈니가 아닌 이 회장님이 제안했을까?

“스읍! 섭섭하게 왜 그러느냐. 당연히 제환이 네 할아비인 나한테 제안할 수 있는 거 아니냐.”

“… 그게 아니라 디즈니가 아닌 이 회장님이 어째서 그걸 제안했냐 이겁니다.”

“디즈니가 너 작품 집필하는 데 방해하기 싫어서 그런 것 같더구나.”

“아직 머릿속이 조금 어지러운 것 같습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5분이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려구나. 천천히 생각해 봐. 제환이 네가 신경 쓰이지 않도록 잘해보겠다는 말은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머릿속 정리 좀 해야겠다.

테마파크를 동성 그룹에서 왜 원하는지.

사업적으로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는 건지.

모든 걸 고려해봤을 때, 나한테 영향이 미치는 게 있는지.

* * *

고민하는 박제환을 바라보는 박대호 회장.

‘눈치가 보이는 구만…….’

이번 사업.

제환이한테도 이득이 가는 사업이지만 가장 큰 이득을 다른 곳에서 보게 된다.

만약 제환이가 사업적으로 욕심을 부린다면 JH 그룹에서 먹을 수 있는 사업이었다.

그래서 눈치가 보인다.

어느 정도 양보가 필요했기에.

“혹시 디즈니랑 이야기가 된 거입니까?”

“솔직히 말해서 디즈니의 의견 보단 너의 의견이 중요할 것 같구나. 디즈니 입장은 너의 허락만 있으면 하고 싶다는 입장이야. 단지, 네가 작품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아 선뜻 다가서지 못한 거고.”

“어떻게 된 일인지 대충은 알겠군요. 그렇다면 동성 그룹에서는 어떤 부분을 가져가게 되는 거죠?”

역시 날카롭다.

몇 번의 대화로 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바로 파악한다.

지금 제환이는 알고 있을 거다.

디즈니에서 최대한 잘 보이기 위한 방법을 선택했다는 걸.

즉, 이번 사업에서 자신의 의견이 절대적인 걸 이미 파악했다는 거다.

이럴 때면 무섭다.

한 아이에게 두 가지의 재능이 동시에 있어서.

사업적인 재능과 작가로서의 재능.

두 가지 다 세기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할 정도의 재능이다.

작가로서 재능도 어쩌면 사업적인 부분을 뛰어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건설 쪽을 너에게 양보한다더구나. 그래서 동성 그룹에 맡겨보는 건 어떤가 해서 오늘 자리를 만들었다. 만약 네 의견만 있다면 그에 맞는 이득을 나눌 수 있게 계약해 보마.”

“동선 건설이라…….”

나지막이 동성건설이란 말을 내뱉고 다시금 생각에 빠진 게 보인다.

어떤 생각을 하는 걸까.

억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솔직히 이번 사업은 말 그대로 제환이의 양보가 필요한 사업이다.

그래서인지 더욱 눈치가 보인다.

동시에 미안한 감정도 들었다.

할아비가 도와준 게 없이 맨날 도움만 받지 않는가.

이번에도 마찬가지.

손녀의 소식을 듣고 넷 째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넷째가 아비 된 입장으로서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자신 또한 복수하고 싶었겠지만, 힘이 부족했을 거다.

그 사이에서 오가는 많은 갈등들.

자식들을 키운 아비로서 가슴이 아팠다.

‘동성 그룹에는 더 이상 여력이 없고…….’

넷 째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이 동성 건설이었다.

그래서 지금 제환이 의견이 중요한 거다.

제환이의 허락이 떨어지면 넷째의 힘이 올라가게 될 테니.

“좋은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가 맡아서 진행해 주시죠.”

“… 괜찮겠느냐? 다른 시각으로 보면 너에게 손해가 가는 일이다.”

“아시지 않습니까. 이제 그 정도 사업을 챙길 정도로 간절한 수준이 아닌걸. 그거 말고도 진행할 건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래도…….”

“그리고 할아버지의 말이 아니더라도 저에게 제안이 왔으면 똑같은 결정을 내렸을 겁니다.”

“… 네가 할아비보다 낫구나.”

“그런 말씀 마시죠. 할아버지에게 보고 배운 거니까.”

조금은 반발할 줄 알았다.

제환이 말대로 다른 사업이 많다고 하지만 그 누가 자신의 주머니에 있는 돈이 나가는 걸 안 아까워한단 말인가.

말 그대로 그릇이 커진 거다.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게 여길 정도로.

‘나보다 거대해진 건가…?’

마치 거인을 만났을 때 느껴졌던 분위기가 풍겨왔다.

어떻게 저 나이에 저런 분위기를 풍길 수 있을까?

그런 제환이가 나의 손자로 온 게 감사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각오를 세웠다.

제환이가 힘든 일이 생긴다면 목숨을 바쳐서 지킬 거라고.

그 누가 오더라도 말이다.

설령 내가 감당하지 못할 큰 파도가 밀려와도…….

“고맙구나, 제환아.”

“아닙니다. 작은아버지도 마음고생 심하셨을 텐데, 이번 사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군요.”

“도움이 될 게다. 건설로 얻어지는 수익뿐만 아니라 디즈니와 협업을 했다는 무형적 가치가 올라갈 테니.”

“그리고 혜지 좀 신경 써 주십쇼. 아무리 할아버지가 좋게 말씀하시고 사랑해주신다고 하더라도 그 아이는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안 좋은 일을 겪었으니.”

“노력하도록 하마. 욘석, 언제 이렇게 자라서 할아비를 가르치기까지 한 게야. 벌써 어른이구나.”

어른이다.

몸뿐만 아니라 모든 게.

누군가를 배려하는 것과 깊은 생각들.

그걸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으로 나누는 방식들.

모든 게 어른스러웠다.

“그럼 넷째에게 맡기는 걸로 알도록 하마.”

“그렇게 하세요. 그거 말고도 사업적으로 도움 받고 싶은 거 있으면 편하게 말씀하도록 하세요. 어차피 한국에서의 사업은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

“한국은 저에게 너무 좁거든요.”

멋있다.

손자지만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재계 순위 한 자릿수를 들어가고 싶던 게 저런 모습을 갖고 싶어서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이제 단순히 손주로 여길 게 아니군…….’

알고 있었지만, 오늘 제대로 느꼈다.

이제는 손주로만 생각할 게 아니란 걸.

“그럼 집필 도중에 온 거라,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도록 하려무나.”

집필을 위해 떠나는 제환이의 뒷모습.

왜 이렇게 저 등이 넓어 보이는지 모르겠다.

* * *

일주일 뒤.

한국은 또 한 번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일주일 전에는 내 작품의 런칭으로 한국이 시끄러웠었다.

지금 들려오는 소식들.

나의 작품으로 불타오르던 한국에 또 한 번 휘발유를 들이붓는 거나 다름없었다.

- 한국에서의 천재. 전 세계에 자신의 작품을 각인시키다.

- 콧대 높은 디즈니. 한국의 천재가 무너뜨리다.

- 전 세계가 한 사람에게 시선을 집중한다?

- 사업가? 작가? 구별하지 마라. 두 분야에서의 천재.

인터넷을 확인하니 낯부끄러운 기사들이 실려있다.

하나 같이 나를 찬양하는 수준의 기사들.

한국 특성상 세계적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에게 시선이 집중되기 마련이다.

그와 동시에 많은 불편한 시선들도 몰리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댓글들.

예외가 생긴 듯했다.

‘군대를 좀 늦게 다녀올 걸 그랬군.’

댓글들을 확인한 나는 한 가지 아쉬움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군대에 좀 늦게 갈걸.

물론 장난인 건 알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내용들이 충분히 실현할 수 있게 만들 정도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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