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 * *
일주일 뒤.
“5분 남았습니다, 상무님.”
처음으로 공식적인 자리 앞에 서는 이승호 상무.
긴장된다.
아무리 재벌가라고 하더라도 기자들 앞에 서는 게 흔한 일은 아니었다.
더욱이 사고를 치는 게 아닌, 회사 업무로 인해 기자들 앞에 서는 건 적어도 30대는 돼야 가능한 일이었다.
‘기자들이 한둘도 아니고.’
더군다나 오늘 모인 기자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최소 백 명.
그것도 인원 제한을 뒀기에 백 명이다.
제환이와 전속 계약을 맺고,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됐을 때 하는 기자 회견이었기에 대한민국의 시선이 집중되는 기자 회견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아니……. 어쩌면 여러 나라인지도 모르겠다.
미국, 중궁, 일본 등.
물론 대한민국만큼 폭발적인 관심은 아닐 거다.
단, 이번 작품이 해외로 나가는 순간 폭발적인 관심으로 변할 거라고 확신했다.
“상무님, 시간 됐습니다.”
시간이 됐다는 말이 들려온다.
심호흡하고 걸음을 옮겼다.
찰칵― 찰칵―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셔터음.
그리고 쏟아지는 소음들.
눈을 비치는 불빛들.
모든 게 낯설었다.
이런 환경에 노출되는 연예인들에게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만큼 현장을 장악하는 데 어려울 것 같았다.
“반갑습니다. GL 엔터테인먼트의 상무 이승호라고 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여기 모인 이유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라이언 감독과의 계약에 대한 소식을 듣기 위해 여기로 모인 거겠죠. 여기에 한 가지 소식을 더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찰칵― 찰칵―
“그게 무슨 소린가요!! 혹시 다른 소식이 더 있다는 건가요!!”
“어떤 소식이죠? 박제환 작가님에 대한 소식인가요?!”
“!$!#%.”
한 가지 소식이 더 있다는 말을 전하자 여기저기서 질문이 쏟아진다.
그만큼 제환이에 대한 소식이 궁금하단 증거였다.
“질문은 제 말이 끝난 다음에 받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여러분들이 궁금해하던 라이언 감독과의 계약. 영화화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배급에 관한 것은 전부 다 저희 엔터와 협의하에 이루어지기로 했고요.”
찰칵― 찰칵―
타닥― 타닥―
“그리고 또 다른 소식. 박제환 작가의 다음 작품이 한 달 뒤 런칭 될 예정입니다.”
“……!!”
소란스러웠던 현장이 잠깐 정적이 찾아왔다.
그만큼 지금 소식이 저들에겐 충격적이란 얘기였다.
하기야, 단순히 계약에 대한 진위 여부를 확인하러 온 자들에게 새로운 작품에 대한 기삿거리를 제공했으니 지금의 혼란도 이해가 됐다.
그렇게 1분 정도가 흘렀을까?
이전에 정적이 거짓이라고 생각될 만큼 순식간에 현장이 시끄러워졌다.
이전에 소란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됐다.
여기저기서 핸드폰을 들고, 통화를 하며 소리를 지른다.
누군가는 노트북을 급하게 두드린 게 보인다.
또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진짜냐는 질문을 던진다.
“특종이야! 아 좀!! 지금 이승호 상무 입에서 나온 얘기니까 일단 기사를 쓰라고!!”
“진위 여부가 문제야?! 기자 회견장에서 나온 이야기라니까?!”
“이승호 상무님!! 혹시 다음 작품은 어떤 주제입니까!!”
“다음 작품에 런칭은 어떤 과정으로 진행하실 겁니까!!”
정신이 없다.
이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음에도 혼란스러웠다.
최대한 마음을 다스리며 침착하게 질문에 답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기자 회견을 진행할지 모를 만큼, 혼란스러운 시간이 지나갔다.
“상무님 고생하셨습니다.”
기자 회견을 끝내고, 뒤에 있는 장소로 이동하니 날 기다리던 비서님이 손수건을 내민다.
“혹시 저 실수한 거 없습니까?”
그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이었다.
처음으로 기자 회견장에 섰다.
그만큼 성공적으로 끝내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았다.
“완벽했습니다.”
내 질문에 엄지를 들어 올리며 대답하는 비서님.
다행이다. 그래도 성공적으로 기자 회견을 마무리 지었나 보다.
“제환이 자식도 한동안 고생하겠네요.”
“그럴 겁니다.”
의견을 전달하는 나에게도 이 정도의 관심이다.
그 장본인인 제환이는 어느 정도일까?
속으로 명복을 빌어줬다.
* * *
오랜만에 본가로 향한 박제환.
“형, 요즘 인기 장난 아니던데?”
“…안 그래도 핸드폰 꺼놨다. 계속해서 연락이 오니까 만지지도 못하겠더라.”
“우리 형님, 드디어 해리포터 작가만큼의 인기에 도달했군요.”
“…….”
역시 형제인가 보다.
남들이라면 호들갑 떨 문제를 정환이는 재밋거리로 삼는다.
이래서 본가에 온 거다.
편하게 일상을 보낼 수 있으니까.
지금은 세 번째 작품을 집필하는 시기.
괜히 여기저기 엮여서 피곤해지는 것보다 이런 일상이 더 반가웠다.
“아들!! 집 좀 자주 오지그래? 아주 독립했다고 집을 들어올 생각을 안 해!”
“앞으로 자주 오도록 할게요.”
“그건 그렇고, 요즘 만나는 여자 없어? 없으면 엄마가 소개해 줄까? 저기 재벌 3세 중에…….”
“만나는 사람은 없는데, 호감이 가는 여자는 있으니까 괜찮아요.”
계속해서 어머니의 말을 들었다가는 대한민국에 잘나가는 여자 이름이 다 나올 것 같아 미리 말을 해버렸다.
물론 아직 서아와의 관계가 제대로 이어진 건 아니었다. 그래도 이번 생에는 서아에게 최선을 다해 보고 싶었기에 미리 어머니에게 말한 거다.
“만나는 사람 있다고?! 누군데? 엄마가 아는 사람이니? 어떤 그룹의 자젠데?”
“…일반 사람이에요. 어머니는 모를 거고요.”
“…일반인이라고? 부모님은 뭐 하시는데?”
“식당에서 일할 거예요.”
“식당? 어디 호텔에서 일하는데?”
“…그냥 일반 식당요.”
“…….”
일반 식당이라는 말에 눈동자가 흔들리는 어머니.
아마 상상조차 못 했을 거다.
내가 일반인을 만날 거라곤.
그래서인지 식당이라는 말에 호텔에 들어가 있는 레스토랑을 생각했나 보다.
“…아들이 좋아하는 건 확실하지?”
“네, 괜히 다른 재벌들하고 엮여 봤자 좋은 소리 못 들을 거예요. 이해관계도 복잡해지고. 저는 제가 좋아하는 여자 만나고 싶습니다.”
“어휴……. 우리 아들을 누가 말리겠니. 그 고집대로 해서 성공한 건데 엄마가 뭐라 해. 그래, 우리 아들이 만나고 싶은 여자 만나도록 해. 대신 나중에 엄마한테 소개시켜 줘야 된다.”
“당연하죠.”
내가 글을 쓴다며 고집하고 집을 나가서 성공해서인지, 되도록이면 내 말을 따라주려고 하는 게 느껴졌다.
저번 생에는 왜 이런 용기조차 못 냈는지, 뭔가 씁쓸한 감정이 들었다.
“그건 그렇고. 아들, 가기 전에 사인 좀 몇 장 해두고 가.”
“왜요? 어머니 친구분이 필요하대요?”
“아들 글이 아무리 인기 있어도, 그 콧대 높은 사모님이 읽기라도 하겠니. 오랜만에 제환이 외할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더라고. 사인 좀 해달라고.”
“외할아버지요?”
“그래. 엄마도 오랜만에 효도 좀 하자. 제환이 너도 알다시피 외할아버지가 그 이상한 무협? 그거 광팬이잖아. 그걸로 동호회가 있는데, 제환이 네가 무협 쓴다니까 미리 자랑한다고 하더라고.”
“…열 장 정도 쓰고 가도록 할게요.”
어머니 말대로 외할아버지는 무협 광팬이셨다.
이건 전생에서도 마찬가지.
전생에 웹소설을 좋아하던 나와 무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최근에 무협 좀 써달라고 계속 연락이 왔는데, 마침 무협을 쓴다니까 기뻐하시는 것 같았다.
작가로서 외할아버지에게 효도하는 것 같아 뿌듯해진 나는 사인을 여러 장 해주겠다는 말을 전했다.
“형, 이번 작품은 어떻게 진행하기로 했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해야지.”
어머니와 대화를 지켜보던 정환이가 진행을 어떻게 할 건지 궁금했나 보다.
“동시다발적?”
“응. 종이책, 전자책, 연재. 다 동시에 진행할 거야. 번역도 동시에 진행할 거고.”
“…바쁘게 움직여야겠네.”
“내가 아니라 GL 엔터랑 출판사가 바쁘게 움직여야지.”
“승호 형 고생하겠다.”
“그만큼 이득을 봤으니까, 고생 좀 해야지.”
“하긴… 이번에 상한가 두 번 맞을 정도면 고생 좀 해야겠네.”
그게 끝이 아니었다.
GL 엔터의 주가 상승은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남은 소식들.
충분히 한 번 더 상한가를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런칭하는 플랫폼을 고르는 데 많은 이해득실이 오갔다.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용자가 몰릴 거라는 건 당연한 사실.
선독점을 가져가는 플랫폼은 더욱 많은 신규 이용자를 구할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인지 각 플랫폼에서 많은 조건을 내걸어 왔다.
그중에 가장 좋은 조건… 아니, 가장 좋은 게 아니라 가장 좋은 모기업을 둔 플랫폼인 화이트 플랫폼과 계약하기로 했다.
화이트 플랫폼이 내건 조건은 자신의 모기업인 화이트와 GL 그룹이 MOU를 맺어 여러 부가 가치를 올리겠다는 거다.
한마디로 나라는 작가를 브랜드로 만든다는 것.
편하게는 마블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마블에서 만드는 히어로들은 만화책뿐만 아니라, 영화, 피규어 등 많은 부가 가치를 만들어낸다.
이번 작품을 통해 첫 작과 동시에 부가 가치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말을 전해 왔고, 나 역시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긍정의 대답을 보냈다.
당연히 이 소식이 알려지는 순간, 화이트와 GL 그룹은 주가가 상승할 게 틀림없었다.
‘그러니 좀 고생해야지…….’
그만큼 승호가 바쁘게 움직여야겠지만, 그 이상의 이득을 안겨 줬으니 마음을 편하게 먹었다.
‘한 달 정도 남았나?’
내 작품이 대중들에게 공개되는 시기는 한 달가량이 남았다.
그동안 바쁘게 움직여야 된다.
이번 계약으로 한 가지 더 이득을 본 게 있다.
바로 두 번째 작품의 드라마.
화이트와 MOU를 맺음으로써 드라마의 노출이 올라갈 수 있을 거다.
이번에 계약으로 할아버지와 관련 있는 사람들이 모두가 이득을 보는 거다.
오랜만에 효도했다고 생각한 나는 한 달 뒤가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에게 내 작품이 공개되는 그 날.
일단은 두 권 분량을 노출하기로 했다.
연재는 2권부터 시작이다.
연재가 3권까지 도달하면 동시에 전자책과 종이책이 발매된다.
이런 형식으로 쭉 이어 가기로 했다.
“아들, 외할아버지한테 사인받았다고 하니까, 자신 있냐고 물어보네. 이번에 동호회 사람들한테 큰소리를 쳤다 하더라고.”
“걱정하지 마세요. 그 어떤 작품보다 자신이 있으니까.”
* * *
새 작품이 발표되기 일주일 전.
어떻게 진행할 건지에 대한 발표를 하고 나니,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반응이 들려온다.
동시에 각 관련 그룹들은 주가가 상승했다.
원래라면 주가가 상승하면서 회사 또한 관심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 작품이 모든 관심을 가져가서일까?
사람들은 주식에 관한 이야기보다 내 작품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하… 일주일이나 남았네……. 이럴 거면 미리 말하지라도 말든가.]
[업계 사람입니다. 장담합니다.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일 거라고. 그리고 지금 기다린 거 아무것도 아닙니다. 책을 보는 순간, 그 이상의 인내심이 필요할 거예요.]
[두 번째 작에서 의심은 끝났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좀 빨리 출간해 주세요. 책은 열 권 이상 사줄 테니까, 제발 글만 써 달라고요, 작가님.]
[저는 앞으로 GL 그룹에 불매합니다. 만약 작가님이 작품 집필에 집중한다는 공식적인 발표가 있다면, 그때부터 GL 그룹만을 이용할 겁니다.]
두 번째 작품에는 부정적인 의견도 많이 있었다.
그런 의심들을 정면으로 없애버려서인지, 이번 작품은 의심보다 기대로만 가득 찼다.
더군다나 이 댓글들은 한국에서만 달린 게 아니다.
일본, 중국, 미국.
세 나라에서도 내 작품에 대한 댓글들이 달려 있었다.
‘물론 모두가 좋은 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
중국에서는 잡품을 기다린다는 댓글들도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무협을 가볍게 본다는 말이 많았다.
‘이번에도 부숴주마.’
이번에도 의심을 정면으로 부실 거라고 생각하니, 중국에서의 반응이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