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96화 (96/175)

96화

* * *

공항에 앉아 기삿거리를 찾고 있던 기자.

‘3시간 정도 남았나?’

3시간 뒤면 자신이 맡기로 한 연예인이 들어오는 시간.

기자는 억울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자신이 원하는 인물이라면, 이 정도로 억울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회사가 소속사에게 의뢰라도 받았는지 오늘은 이쪽으로 향하라는 지시를 건넸다.

인기가 많은 연예인이라면 울며 겨자 먹기로 기다리기라도 하겠지만, 비인기 연예인을 띄우기 위해 자신이 희생된다고 생각하니, 억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 사람은 누구지?’

그러는 와중에 한 사람이 보인다.

외국인으로 보이는 한 노인과 옆에서 보조하고 있는 한 명의 비서.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낼 광경이었지만, 뭔가 특별한 사람일 것 같다는 이상한 직감이 들기 시작했다.

나도 왜 이런지는 모르겠다. 그냥 평범한 외국인일 확률이 높지만, 이상하게 자꾸 시선이 가고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계속해서 외국인에게 향하는 시선.

만약 나만 시선이 끌린다면 이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진 않았을 것 같다.

‘다른 사람들도 신경 쓰는 것 같단 말이지…….’

내가 예민한 건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도 외국인을 향해 힐끔거리는 게 느껴졌다.

기억이 안 나는 인물에 무시할까도 생각했지만, 어차피 시간도 많이 남았다고 생각해 외국인이 있는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나도 심심하긴 했나 보다.

외국인이 있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가니 둘의 대화까지 신경이 쓰였다.

무슨 대화를 나누려나 궁금증이 든 나는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디렉터?’

대화를 듣고 있는데, 한 단어가 뇌리에 꽂히는 기분이 들었다.

디렉터.

감독을 뜻하는 단어다.

‘감독이면…….’

“……!!”

감독이란 단어를 듣자, 외국인의 정체가 머릿속을 스쳐 갔다.

전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영화감독이며, 마블을 대표하는 인물.

라이언 감독이 틀림없어 보였다.

특종이라고 생각한 나는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고, 빠르게 옆으로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혹시 라이언 감독 아닌가요?”

어설픈 영어로 라이언 감독이 아니냐는 질문을 하자, 외국인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그러고는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긍정의 대답이 들려온다.

“맞아요. 누구시죠?”

“…….”

긍정의 대답이 들려오자, 그 자리에서 굳을 수밖에 없었다.

설마 하는 생각이 진실로 다가오는 순간.

심지어 주변에 어떠한 기자도 보이지 않았다.

한마디로 몰래 입국했다는 얘기.

만약 이야기가 잘 돼서 단독 기사를 쓰는 순간, 회사 내에서 입지는 물론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거다.

어쩐지 오늘 꿈에서 용이 나왔다 싶더니, 라이언 감독을 만나려고 그런 꿈을 꿨나 보다.

“반가워요. 저는 한국의 김혁재 기자입니다. 괜찮으시면 몇 가지 질문 좀 해도 될까요?”

“음… 평소라면 거절했겠지만, 이곳은 미스터 팍의 나라니 몇 가지 답변은 기분 좋게 해줄 수 있을 것 같군요.”

“……!!”

미쳤다. 불과 한 번의 대화밖에 나누지 않았건만, 첫 마디부터 특종의 냄새가 난다.

라이언이 말하는 팍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사람인 거는 누구라도 유추할 수 있을 거다.

더욱이 한국에 들어온 이유가 방금 말했던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일 확률이 높았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혹시 팍이라는 이름을 가진 주인이 누군지 질문했다.

“괜찮다면, 라이언이 말하는 팍이 누군지 알 수 있을까요?”

“오브콜스, 당연하죠. 제 마음을 빼앗아 간 위대한 작가, 제환 팍을 만나고 싶어서 왔습니다.”

“…….”

라이언의 대답을 들은 나는 알 수 있었다.

꿈에서 나온 용이 보통용이 아니었다는 걸.

이 정도면 1년 내내 우려먹을 수 있는 성과임이 틀림없었다.

* * *

집필을 이어 가고 있는 박제환.

전생을 통틀어 요즘 시기처럼 행복한 일상이 지속된 적은 없던 것 같다.

세 번째 작품을 집필하는 동안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대박이 날 것 같다는 소식들.

이번에 GL 엔터와 이어주면서 다시금 인연이 시작된 서아.

일에 집중하지 않고, 글에만 온전히 투자할 수 있는 일상.

이 모든 게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지이잉―

“전화 받았습니다.”

- 작가님! 저 이철민 팀장입니다!!

이번엔 또 어떤 좋은 소식을 들고 왔길래, 팀장님의 목소리가 들떠 있을까?

“무슨 일 있으십니까?”

- …혹시 제가 처음 연락하는 걸까요?

처음 연락했냐고 반문하는 팀장님.

무슨 얘긴가 궁금증이 든 나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

무슨 일이 있던 걸까?

평소에 몇 배에 달하는 부재중이 핸드폰에 찍혀 있었다.

확실히 뭔 일이 있었긴 했나 보다.

“그동안 작품을 집필하느라 핸드폰을 못 봤네요. 부재중은 많이 찍혀 있습니다.”

- 처음 전화라 영광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작가님 소식에 무관심한 거에 감탄을 해야 될지……. 지금 완전 난리도 아닙니다.

“난리요?”

- 마블의 라이언 감독 아십니까?

“…잘은 모르지만,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마블을 대표하는 감독 아닙니까.”

도대체 라이언 감독 이야기를 왜 꺼내는 걸까?

머릿속에서 혹시나 하는 생각이 스쳐 갔다.

- 라이언 감독이 작가님의 첫 작품을 영화화하고 싶다는 인터뷰를 해서 지금 난리도 아닙니다.

“…GL 엔터는 뭐라고 하던가요?”

- 긍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하던데요? 작가님이랑 이야기된 거 아니었어요?

“잠시만요.”

조금은 당황스러운 소식에 얼떨떨한 나는 아까 핸드폰을 살펴볼 때 보였던 승호의 문자를 살펴봤다.

[얀마!! 왜 전화를 안 받냐!! 난 분명 연락했다. 선 행동 후 보고할 테니까, 원망하지 마라.]

처음에는 전화 좀 받으라는 말을 시작으로 마지막에는 통보가 남겨져 있는 게 보인다.

확실히 문자를 확인하니 알 것 같다.

지금은 보통 상황이 아니라는 걸.

“상황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습니까?”

- 와… 지금 말도 아닙니다. 라이언 감독이 인터뷰에서 한 말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작가님을 두 유 노 클럽에 추가시키겠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작가님을 메인에 두자고 하던데요?

“두 유 노 클럽이요? 도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 그 요상한 이름을 가진 클럽에 제가 메인이 되는 겁니까?”

- 아, 작가님은 모르시겠구나. 두 유 노 클럽은 국위선양한 사람에게 주는 명예스러운 호칭이죠. 라이언 감독에게 인터뷰하던 기자가 한국 배우들을 캐스팅할 의향이 있냐고 물었는데 대답이 아주 가관이었습니다.

“도대체 뭐라 했길래 그런 반응을…….”

- 모든 건 그의 뜻대로.

“설마…….”

설마 저 한마디를 대답으로 했다는 건가?

그렇다면 핸드폰에 찍혀 있는 부재중들이 이해가 간다. 동시에 그 감독이라는 사람은 정상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는 한마디다.

나를 언제 봤다고 내 뜻대로 한다는 말인가.

거기까진 괜찮다. 그걸 왜 공개적인 발언으로 하냐 이거다.

- 확실히 GL 엔터가 대단한가 봅니다. 작가님과 계약하자마자 라이언 감독과 이야기가 오가다니…….

아니다…….

아무리 GL 그룹이라 해도 한국에서 조금 알아주는 정도지, 마블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미는 처지다.

- 그리고 일 처리도 대단한 것 같아요. 지금 작가님 소식으로 화제가 됐을 때, 세 번째 작품도 진행하자고 하더라고요. 이걸 다 의도한 거겠죠?

“…….”

이것 또한 아니다.

단순히 얻어걸린 거에 불과했다.

‘하……. 한동안은 바쁘겠군.’

소식을 들은 나는 한 가지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앞으로 서아와 만날 시간이 줄어들 거라고.

라이언 감독 소식과 함께 세 번째 작품에 대한 소식이 퍼지는 순간, 작품에 집중해야 되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만큼, 서아와 만날 시간이 줄어든다고 생각하니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소식은 이게 다겠죠?”

혹시나 또 다른 소식이라도 있을까 봐 팀장님에게 질문을 던졌다.

- 소식은 이게 끝인데,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걸까?

무슨 말을 하기 위해 목소리를 가라앉히는 걸까?

팀장님의 목소리를 들으니, 내가 실수한 게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혹시 제가 실수한 게 있는 겁니까?”

- 저한테는 다시는 일어나면 안 될 실수나 마찬가지죠…….

“…무슨 일 때문에 그러죠?”

확실히 실수하긴 했나 보다.

말을 전하는 팀장님의 목소리에서 서운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 도대체 왜 다음 원고를 보내주시지 않는 겁니까!! 분명 3권 이후로 충분히 글을 쓰셨을 거 아닙니까!!

“…….”

실수다…….

최근 들어 집필을 끝내고 나면, 서아와 문자를 나눌 생각에 들뜨다 보니까 원고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근데…….’

한 가지 궁금증이 든다.

그게 팀장님이 울먹이며 말할 정도로 큰 실수였나?

“…제가 죄송합니다.”

- 진짜 다음 화는 궁금해 죽겠고, 작가님이 바쁠까 봐 연락은 못 하겠고. 얼마나 힘든 생활을 보냈는지 작가님은 알지 못할 겁니다.

큰 실수였나 보다.

울먹이며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말해 오는 팀장님에게 다음부터 꼭 보내주겠노라 약속하며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 * *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는 이승호 상무.

“약속은 제대로 잡았습니까?”

“예, 상무님. 이틀 뒤, 고려호텔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습니다. 중요한 건 박제환 작가님과 연락이 닿아야 할 텐데…….”

“걱정하지 마세요. 어젯밤에 통화를 마쳤으니까요. 안 되면 그 자식 집에 쳐들어가서 끌고 올 테니, 일정대로 진행해 주세요.”

라이언 감독이 한국에 입국하고 지난 하루.

그사이에 한국은 제환이에 대한 기사가 인터넷을 점령했다.

이놈의 자식은 잠잠해질 만하면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계속해서 핵폭탄급의 충격을 선사한다.

“기사는 냈습니까?”

“어제 기사를 냈습니다. 박제환 작가와 전속 계약을 맺은 과정과 어떤 식의 계약인지 기자들에게 전달했습니다.”

“반응은요?”

“…지금 상황이 너무 급하게 돌아가서 확실한 반응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단지… 반응들이 심상치 않은 건 확신할 수 있겠더군요.”

“하……. 이참에 KJ 그룹과의 경쟁에서 앞서 나가면 좋을 텐데…….”

이 부분은 내가 엔터 쪽을 경영하기로 결정되면서 세운 목표였다.

이왕 엔터 쪽을 맡기로 한 거, 업계에서 1위를 해보고 싶었다.

그 발판을 제환이가 만들어 준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한번 같이 확인해 보겠습니까? 그래도 주가가 올랐을 것 같은데.”

“…상무님만 괜찮으시다면, 같이 확인해 보겠습니다.”

분명 주가가 올랐을 거라는 건 당연한 사실.

이 기쁜 상황을 공유하고 싶다고 생각한 나는 비서님과 같이 주가를 살펴봤다.

“…….”

“…….”

비비적비비적―

“…….”

“…….”

뭐지?

내가 눈이 이상한 건가 하는 착각이 든다.

“비서님……. 제가 눈이 이상한 겁니까?”

“상무님……. 저희가 KJ 그룹과의 경쟁을 위한 회의를 많이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결론이 나온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박제환 작가님만 꽉 잡으면 될 것 같네요.”

끄덕끄덕―

언제나 결론이 나오지 않았던 회의.

지금 내 눈으로 결론을 확인한 것 같다.

당황스러워하는 내 눈에 보이는 + 30퍼센트.

즉, 상한가를 친 GL 엔터의 주가.

그렇게 발악해도 오르지 않던 주가가 제환이와 계약하자마자 상한가를 치고 있다.

더군다나 여론을 확인하니, 당분간은 상한가가 지속될 것 같았다.

한마디로… KJ 그룹과의 경쟁에서 제일 중요한 건, 그 어떠한 일보다 제환이와의 관계였다는 얘기다.

“이번에 그 계약했다는 아이 있지 않습니까…….”

“예, 상무님…….”

“확실히 챙기세요.”

“…저도 그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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