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 * *
버스킹을 구경하기 위해 자리에 앉은 박제환.
‘다행이네…….’
다행히도 오늘은 완벽하게 가려서일까?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동시에 한 가지의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서아는 내 정체를 알고 있을까?
그때 나에게 몰린 시선을 생각하면 알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모를 수도 있겠네…….’
생각해 보니, 지금 시절에 서아는 취미생활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런 만큼 SNS나 텔레비전을 보지 않았기에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때까지 나를 대하는 반응을 보면 모르는 것 같았고.
“저, 그럼 노래 시작할게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서아가 노래할 준비를 마치고는 얼마 안 되는 관객에게 허리를 숙이고는 인사를 건넨다.
짝짝―
“화이팅!!”
내 성격상 한 번도 하지 못할 일을 방금 처음으로 시도해 봤다.
원래라면 조용히 박수만 치려 했지만, 서아의 인사를 받고는 아무런 반응이 없는 사람들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화이팅이라는 말을 건네고 말았다.
그와 함께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잠깐 머물렀지만, 애써 모른 척하며 평범한 관객인 척했다.
“와… 잘 부른다…….”
서아가 노래를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몰리기 시작하는 사람들.
그때와 같이 감탄사도 들려오기 시작한다.
역시 다시 생각해 봐도 서아는 가수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비록 전생에는 성공을 위해, 눈 감는 걸 택했지만 이번만큼은 그 누구보다 응원해 주고 싶었다.
‘그나저나 마지막 곡은 뭐지?’
노래를 시작하고, 시간이 점점 흘러가 곧 마무리되는 분위기가 풍기기 시작한다.
도대체 마지막 곡은 어떤 걸 준비했을까?
나에게 꼭 들어달라고 했으니, 의미가 있는 곡임이 틀림없다.
혹시 서아도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랑 노래를 부르려고 하는 건가?
그것도 아니라면… 데이트 신청 노래?
어떤 노래일지는 모르겠지만, 한껏 기대하며 마지막 곡을 기다렸다.
“우와…….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그럼 이번 곡을 마지막으로 버스킹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 곡은 ‘XXXX’라는 곡이에요.”
“…….”
아마도 내 착각이었나 보다.
서아가 마지막으로 부르기로 한 곡.
사랑이랑은 거리가 먼 신나는 분위기의 노래였다.
“아니, 여러분. 제 말 좀 들어보세요. 글쎄 저번 버스킹 때 관객 한 분이 슬픈 노래를 듣고, 오열하더라니까요? 그래서 이번에는 그분을 위해서 신나는 곡으로 준비했어요. 다들 즐겨주세요.”
마지막 곡 선정 이유를 말하고는 노래를 시작하는 서아.
억울하다.
내가 언제 오열했다는 말인가.
더군다나 그때는 노래를 듣고 흘린 눈물보다는, 오랜만에 그녀와의 기억이 생각나서 흘렀던 눈물이었다.
남자의 눈물을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니, 살짝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건 그거고, 노래는 진짜 좋네…….’
억울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나까지 어깨를 들썩이게 할 정도면 서아의 노래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대충은 짐작할 수 있을 거다.
“와아아아!!”
나뿐만이 아니다.
노래를 듣고 있던 모두가 어깨를 들썩이며, 같이 노래를 즐기고 있는 게 느껴졌다.
이런 분위기, 오랜만이다.
전생에 서아의 버스킹을 구경할 때마다 느꼈던 기분.
반가움 마음이 들었다.
“후……. 힘들다. 자 이걸로 버스킹을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여러분이 말하는 것처럼 앵콜 하고 싶지만, 지금도 시간이 늦었거든요.”
서아가 마지막 곡을 끝내자, 여기 있는 모두가 앵콜을 외쳤다.
하지만 옆에서 대기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서아 역시 많은 노래로 지쳐서인지 약간의 아쉬움을 남기고는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제가 좀 도와드릴게요.”
“어머!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조금 늦어서 눈치 보였는데.”
서둘러 정리하는 서아에게 도와주겠다는 말을 전하자, 거부하지 않고 곧장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아마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 다음 사람들 때문에 눈치가 보였나 보다.
“고마워요. 결국 마지막 곡도 들어주시고, 정리도 도와주셨네요.”
“팬이거든요.”
“크… 오랜만에 듣는 단어네요. 예전에는 팬이라고 한 사람도 많았는데.”
팬이라는 말에 뭔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짓는 서아.
그 속사정을 알고 있는 나는 조금 안타깝다는 생각을 가졌다.
“으차……. 그럼 저는 가보도록 할게요.”
장비를 한쪽에 모은 서아가 가보겠다는 말을 전하며,
짐을 챙기는 게 보였다.
이대로 보내기에는 너무 아쉽다고 생각한 나는 용기를 내서 밥 먹자는 말을 전했다.
“저, 혹시 괜찮으시면 식사를 대접하고 싶은데… 시간만 괜찮으시면 밥이라도 먹고 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음……. 저도 그러고 싶은데 아직 배가 고프질 않네요.”
권유를 듣고, 잠시 멈칫한 서아가 뭔가 생각해 보더니 거절의 말을 전했다.
내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배부르다는 말은 거짓말 같고, 혹여나 돈을 쓰게 될까 그걸 걱정하는 듯하다고 느껴진다.
꼬르륵―
“…….”
“…….”
어떻게 말을 전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내 앞에서 들려오는 소리.
동시에 서아의 얼굴이 빨개지는 게 보였다.
“크흠…….”
“이건…….”
“한 사람의 팬으로서 대접해 드리고 싶습니다.”
“…너무 거절만 하는 것도 실례겠네요. 그럼 김밥나라 같은 데로 가죠.”
“제가 자주 가는 밥집이 있는데, 마음에 드실 겁니다. 거기로 가시죠.”
“음… 뭐 그렇게 하기로 하죠. 그럼 택시 부를까요? 아무래도 장비들이 있어서 걸어가기에는 무리 같은데.”
“그건 제가 해결할 수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짐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곤란해하는 서아에게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말을 전한 뒤, 비서실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비서실장님에게 이동하고 싶다는 말을 전하자, 1분도 지나지 않아서 나타난 자동차.
그 차를 보고 서아의 표정이 약간 굳는 게 느껴졌다.
이 상황에서 뭐라고 해야 될지 명확한 대답을 내리지 못한 나는 평소와 같이 말을 걸며, 비서실장님이 예약해 둔 식당으로 향했다.
* * *
차를 타고 도착한 식당.
아직까지 서아의 표정이 굳어 있는 게 보였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뭐 하시는 분이세요?”
“뭐… 그냥 글 쓰는 사람입니다.”
“글이요?”
글을 쓴다는 말을 전하자, 미묘한 표정으로 변한 서아.
아마 재벌 3세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예상했나 보다.
이해가 가기도 했다. 그만큼 서아가 당한 게 적지 않았으니.
‘그래도 억울하네…….’
재벌이라고 모두 똑같지 않은 건데 혹여나 내 정체를 알고, 나에게도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낼까 봐 조금은 겁이 났다.
“그… 아실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건 「회고록」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네?!”
“알고 계십니까?”
“아니, 그걸 어떻게 몰라요!!”
“하지만 제 이름은 알려드렸었는데…….”
“제가 텔레비전을 잘 안 봐서 얼굴을 몰랐어요……. 어쩐지 뭔가 심상치 않아 보이더라…….”
내 정체를 알고 놀란 서아가 무언갈 생각하는 듯하더니, 다시금 표정이 어두워지는 게 보였다.
“잠시만……. 그렇다면 그쪽도 재벌 3세인가요?”
“맞습니다만……. 혹시 문제가 있습니까?”
이럴 때마다 답답하다.
전생을 경험한 나는 서아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고 있지만, 그걸 드러낼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속 시원하게 내가 해결해 줄 테니, 꿈을 좇으라고 말하고 싶었다.
“아니에요. 밥이나 먹기로 하죠.”
“…….”
재벌이라는 말에 부정하지 않아서일까?
순식간에 미묘했던 분위기가 차가워지는 게 느껴진다.
재벌 3세라는 이미지가 서아 머릿속에 최악으로 각인 된 이유가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여기 얼마 나왔는지 알려주세요. 절반 드릴게요.”
“아닙니다. 제가 사드리겠다고 해서 데려온 건데, 제가 계산해야죠.”
“아니요. 가격 알려주세요.”
“…….”
여기서 더 밀어붙이면, 서아의 자존심이 상하지는 않을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던 나는 우선 가격을 말해 주기로 결정했다.
“백만 원 정도 나왔을 겁니다.”
“네?! 배, 백만 원이요?!”
“…이미 계산을 마쳤으니, 제가 사는 거로 하죠.”
“…나중에 꼭 돌려드릴게요.”
“아닙니다.”
내 정체를 알리고 나서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밥이 어떻게 들어갈지 모르게 식사를 하다 보니, 어느새 서아의 밥이 다 비워진 게 보였다.
“어떻게……. 입맛에는 좀 맞았습니까?”
“뭐… 오십만 원어치 값은 하네요.”
사실 백만 원보다 훨씬 비싼 식사였다.
그걸 곧이곧대로 말하긴 그래서 축소한 게 백만 원이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줄일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그럼 일어날까요?”
“…혹시 저와 자리가 불편합니까?”
“편하진 않죠.”
“…….”
이쯤 되면, 전생에 용기를 내지 못한 거에 대한 벌이 아닌가 싶다.
철벽도 이 정도로 두껍진 않을 거라고 자신할 수 있다.
“사실 노래를 듣고 나서 완전히 팬이 돼버렸습니다.”
“좋네요. 그렇게 팬과 가수로 남는 걸로 하죠. 아! 물론 제가 가수라는 얘기는 아니지만요.”
“도대체 왜 이렇게 차갑게 구는지 알 수는 없겠습니까? 아까는 이 정도로 저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던 것 같은데요.”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감정 조절이 안 됐네요. 사실 이전에 안 좋은 일이 있다 보니……. 그것보다는 이번 만남에 목적이 궁금해요. 거기에 맞춰서 제가 착각했다고 판단이 들면 사과드릴게요.”
다행히 아직 개선의 여지가 있나 보다.
그럼 여기서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정석적인 대답은 팬으로서 식사 한번 하고 싶다가 정답일 거다.
단, 그렇게 하면 관계가 끊어질 수도 있었다.
아까 말했던 대로 팬과 가수의 관계를 넘지 못할 확률이 높았고.
이렇게 된 이상 도박 한번 해봐야겠다.
“혹시 가수 해보실 생각 없습니까? 제가 최대한 도와드리겠습니다.”
“…….”
“그 목소리를 저만 듣는다고 하니, 너무 안타깝더군요. 제 친구가 GL 엔터를 운영하고 있으니, 잘만 말하면…….”
“거기까지 듣는 걸로 하죠. 그걸 빌미로 저와 만남을 가지거나, 어떻게 해보실 생각이면 일찌감치 접는 게 나을 거예요. 이미 한번 겪었던 일이고, 그때와 제 생각은 다르지 않으니. 아니… 오히려 그걸 빌미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혐오스럽군요.”
아무래도 단단히 오해했나 보다.
내가 전생의 그 자식처럼 데뷔를 걸고, 자신을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 거라고 생각하나 보다.
‘아프다…….’
오해인 걸 알지만, 나에게 보내는 시선에 경멸이 담긴 걸 두 눈으로 확인하니 가슴이 너무 아팠다.
관계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이런 끝맺음은 싫었다.
마음이 다급해진 나는 급하게 해명하기 시작했다.
“오해입니다!!”
“무슨 오해를 말한 거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절대 생각하시는 그런 거 아닙니다!! 단지, 제가 위로받던 노래를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듣고, 위로받았으면 하는 생각일 가진 거뿐입니다.”
“…….”
“그리고 노래를 부를 때 서아 씨의 표정을 보고 확신했습니다. 이 사람은 가수가 되면 성공할 거라고. 저도 연예계가 어떤지 잘 알고 있습니다. 장담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빌미로 제안하는 게 아니라고.”
“…….”
내 말에 진심이 담겨 있어서일까?
차갑게 대응하던 아까와는 다르게 조금은 고민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제안은 고마워요. 혹시 제 얘기를 들어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죠.”
“사실…….”
뭔가 마음을 먹은 듯한 서아.
착잡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냐는 질문을 던졌다.
아무래도 그 일을 나에게 털어놓으려고 하나 보다.
어떻게 해야 대화를 그쪽으로 이끌 수 있을지 고민하던 나에게는 반가운 흐름이었기에, 곧바로 자리에 앉아 서아가 말해 오는 얘기를 경청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