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93화 (93/175)

93화

* * *

지이잉―

‘후… 참자…….’

그동안 많이도 속았다.

계속해서 울려오는 진동.

분명 서아에게서 온 문자가 아닌 게 확실했다.

이번에도 속아 넘어가기에는 그동안 당한 게 너무나도 많았다.

‘3권이나 마무리 짓자.’

구상을 하고 나서 시작해서일까?

3권을 집필하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곧 마무리 지을 수 있었기에 집필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

분명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을 쓰고 있는데, 왜 이리도 집중이 되지 않는 걸까?

그래…….

마지막 한 번.

딱 한 번만 더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실눈을 뜬 채 어렵사리 확인한 핸드폰.

그 안에는 그토록 기다려왔던 서아의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요즘 들어 완전 바보가 된 기분이다.

서아 연락이 아닐 때는 그렇게 빨리 확인해 놓고, 진짜 서아의 연락이 오니 무시할 게 뭐란 말인가.

‘얼마나 지났지?’

얼추 계산해 보니, 문자가 온 지 5분가량에서 10분가량이 흐른 것 같다.

즉, 서아가 문자를 보내고 나의 답장을 기다리고 있는 게 10분이 다 돼 간다는 얘기.

서둘러 답장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서아에게서 온 ‘내일 버스킹해요’에 알맞은 답을 찾아 나가기 시작했다.

분명 내일 버스킹한다는 말을 건넨 걸 보면, 서아도 내가 생각났다는 거다.

저 일곱 글자에 담겨 있는 의미.

작가인 나로서는 알고 있다.

얼마나 많은 의미가 함축돼 있는 건지.

어떤 답장을 보낼까 고심하던 나는 무난한 답장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내일 꼭 찾아가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는 걸로. ^^]

됐다.

충분히 젊은이들이 쓸 만한 문자에다가, 나 역시 많은 의미를 함축해서 보냈다.

문자 안에 있는 ‘꼭’이라는 한 글자.

내일 어떤 자연재해가 일어나더라도 무조건 가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리고 웃음 표시.

문자를 받고 즐거워하고 있는 나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전달한 거다.

‘뭐라고 답장 올까?’

내 문자를 보고, 서아가 어떤 답장을 보낼지 궁금해진 나는 작품 집필을 잠시 멈추고는 핸드폰만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

왜 안 오지?

문자를 보내고 난 지 30분.

어째서 와야 될 서아의 문제가 깜깜무소식일까?

가슴이 아프지만 인정해야겠다…….

서아는 문자를 보내놓고 샤워를 하는 게 틀림없다고.

곧 있으면 답장이 올 거라고 생각한 나는 계속해서 핸드폰을 바라보며 서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쯧… 확인하지 못했나 보군.’

문자를 보낸 지 한 시간이 지난 지금은 알 것 같다.

서아는 샤워를 하러 간 게 아니라, 문자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걸.

여기서 문자를 더 보내볼까 고민하던 나는 그건 너무 부담을 주는 것 같다고 느껴서 다음 고민으로 넘어갔다.

‘내일 어떻게 데이트 신청해야 하지?’

이제는 못 참겠다.

그녀와 데이트하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데이트가 꼭 사심만 담긴 건 아니다.

어찌 됐든 GL 엔터와 이어 주려면,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 봐야 했다.

이 방면에서는 아는 게 없는 나는 고민을 하다, 핸드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 전화 받았습니다.

“그… 비서실장님? 혹시 질문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 …편하게 말씀하십쇼, 회장님.

“아내분과 첫 만남 때 어떻게 데이트 신청하셨습니까?”

- 아내가 먼저 해서 잘…….

“…….”

-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혹시 여성분과 데이트하시는 겁니까?

“뭐… 데이트라기보다는 그냥 할 얘기도 있고 해서…….”

- 크흠……. 무슨 말인지 잘 알겠습니다. 가볍게 식사 권유하는 건 어떻습니까?

가볍게 식사 권유해 보라는 비서실장님의 제안.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마침 서아가 버스킹을 끝낼 때쯤이면, 공복 상태일 게 뻔했다. 그런 상황까지 다 예상해서 제안해 준 비서실장님에게 감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대단하군요…….”

- 하하… 별거 아닙니다.

“그럼 내일 연인들이 가기 좋은 곳으로 예약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 물론입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비서실장님에게 잘 부탁한다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은 나는 내일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이번 생에 처음으로 하는 데이트.

내일 있을 데이트를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리는 게 느껴졌다.

* * *

회장님과의 전화를 끊은 김수현 비서실장.

“다들 집중. 방금 내 통화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대충 짐작하고 있을 거다.”

“그렇다면…….”

“그래……. 내일은 우리 회장님의 청춘사업이 있는 날. 무슨 일이 있어도 최고의 데이트를 계획해야 되지.”

“역시 그런 거였군요…….”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하는 팀원들.

다들 느끼고 있을 거다. 내일 있는 회장님의 데이트가 얼마나 중요한 사건인지.

최근 들어 미비하던 우리들의 활약을 다시 한번 회장님께 어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실장님, 제가 아는 기가 막힌 분위기의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전화해서 전부 비워두도록 하겠습니다.”

“그걸로 부족해.”

“영화관도 다 비워두도록 하겠습니다.”

“그것도 부족해.”

“…….”

“회장님이 어떤 분이신지 다들 다시 한번 생각해 봐. 불과 1년이란 시간 만에 스스로의 힘으로 재벌의 반열에 들어선 분이다. 이 정도로 만족하실까?”

저 정도는 재벌이라면 누구나 하는 데이트다.

우리 회장님은 흔한 재벌이 아니었다.

무려 대작가이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재벌가를 세운 분.

더욱 특별한 하루를 만들어 드려야 했다.

“제가 경호원들과 아르바이트생들을 섭외해서 최고의 데이트를 짜 보도록 하겠습니다. 동선부터 시작해서 혹여나 있을 쇼핑까지. 뭐 하나 부족한 거 없이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믿어도 되겠어?”

“물론입니다. 믿어주십시오. 비록 여자 친구를 사귀어본 적은 없지만, 그 누구보다 자신 있습니다.”

“…너는 빠지고, 남은 팀원들이 최선을 다해서 회장님을 모신다.”

“실장님!!”

“자, 다들 움직여.”

다행이다. 마지막이나마 불안 요소를 제거할 수 있어서. 확신을 가진 표정으로 말해 오길래,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다.

“후…….”

내일 있을 회장님의 청춘사업.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겠노라 다짐하며 팀원들과 합류해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 * *

다음 날.

드디어 당일이다.

그녀와 처음으로 데이트하기로 한 날.

물론 서아의 의견을 들어보지 않았지만, 내 머릿속에는 데이트에 대한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역시 작가는 기분에 따라 글도 잘 써지는 건가?’

어제 좋은 소식을 받아서일까? 마무리돼 가던 3권에 더한 힘을 박차서 완벽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오늘 데이트하는 데 거리낄 게 없다는 얘기.

아침부터 산뜻한 출발을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뭐야…….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아침부터 늦장을 부리다 보니, 어느새 서아가 버스킹하기 6시간 전이나 돼 버렸다.

단, 1분이라도 늦어서는 안 됐기에 마음이 급해진 나는 서둘러 채비를 하였다.

“후……. 나쁘지 않다.”

준비를 마친 후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

내 입으로 말하기 뭐 하지만 나쁘지 않아 보였다.

평소에도 외모에 대한 칭찬을 많이 받아 왔기에 자신감을 가지고 밖으로 향했다.

‘저긴가?’

집에서 가볍게 챙기기는 했지만 이걸로는 부족했다.

그걸 나 혼자만 생각한 게 아니었을까?

비서실장님이 메이크업 샵을 예약했다고 말했었다.

비서실장님이 모는 차를 타고 가니, 고급스러운 매장이 보였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두 시에 예약하신 박제환 회원님 맞으시죠? 여기 앉으시면 됩니다.”

확실히 비서실장님이 좋은 곳으로 예약했나 보다.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시선들이 느껴지는 걸 보아, 나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인 것 같은데 그 누구도 흔한 사인조차 요구하지 않는다.

매장의 분위기를 확인하고, 안심된 나는 메이크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자! 완성됐습니다.”

“…….”

완성됐다는 말과 함께 눈을 떴다.

그와 동시에 거울을 보니, 이전에 봤던 사람과 다른 남자가 거울 안에 서 있었다.

이 정도면 더욱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한다.

충분히 서아에게 외모적으로 부끄럽지 않겠다고.

“감사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아니, 뭐. 은혜라고 할 것까지야……. 혹시 그러면 사진 한 장 부탁드려도 될까요? 작가님 사진을 매장에 걸어 놓으면 영광일 것 같네요.”

“물론이죠.”

평소라면 거부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 요구.

기분이 좋아진 나는 흔쾌히 허락하고는 사진을 찍어주고 밖으로 나왔다.

“회장님. 앞으로 약 두 시간가량이 남았습니다.”

“남은 일정은요?”

“없습니다.”

“다행이군요. 두 시간밖에 남지 않았는데 일정이 있었다면 큰일 날 뻔했어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늘 한 치의 오차도 없을 정도로 준비했으니.”

“믿고 있겠습니다.”

이곳에서 홍대까지의 거리는 약 한 시간.

이것저것 계산하면 한 시간 반 정도 가량 걸릴 것 같다.

서아가 버스킹을 준비하는 데 약 삼십 분이 걸린다는 걸 생각하면, 확실히 만족스러운 스케쥴이라고 생각했다.

“어서 출발하죠. 1분 1초가 중요합니다.”

“예, 회장님. 모시겠습니다.”

1초라도 늦으면 서아가 고생할 걸 예상한 나는 서둘러 차에 올라탔고, 곧바로 서아가 버스킹하던 자리로 급하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 * *

홍대에 도착한 서아.

‘오늘도 오려나?’

첫 버스킹 때 만났던 특이한 남자.

내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어설프게 번호를 요구하던 남자.

그 남자가 오늘도 올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왔으면 좋겠다…….’

동시에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노래하는 가수에게 제일 중요한 건 무엇일까?

목소리? 감정?

제일 근본적인 건, 노래를 들어주고 공감하는 관객이라고 생각한다.

남자로서가 아닌, 한 사람의 관객으로 오늘도 와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문자도 보낸 상태이다.

‘온다고 했으니까…….’

분명 문자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온다는 답장이 왔었다.

그 남자를 위해서 평소와 다른 분위기의 노래도 준비한 상태.

그런 만큼, 꼭 자리에 앉아 내가 준비한 노래를 들어줬으면 좋겠다.

‘그때는 울었으니까, 오늘은 웃었으면 좋겠네…….’

얼마나 힘든 일상을 보내고 있었을까?

나 역시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려본 적도 많다.

그만큼 잘 알고 있다. 노래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 정도면 일상에 많이 지쳐 있을 거라고.

오늘은 밝은 노래로 그 남자가 웃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버스킹할 준비하기 시작했다.

“으차.”

후… 무겁다…….

그래도 버스킹을 진행하기 위해선 이 무거운 장비를 옮겨야 했기에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마음을 다잡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으차!! 어디로 옮기면 되겠습니까?”

“…….”

속으로 셋을 세고는 장비를 옮기려고 할 때, 뒤에서 장비로 향하는 남성의 손.

그 남자다.

내 노래를 듣고, 공감을 해준 사람.

“저기로 옮겨주세요!!”

어떻게 된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움을 마다할 상황이 아니었기에 버스킹하는 장소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다행이네요. 늦지 않게 와서.”

“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요?”

“…….”

아직 버스킹을 시작하기 30분 전.

남자가 시간을 착각한 건가 하고 생각이 든 나는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리고 무거운 장비를 들고 있는 남자를 돕기 시작했다.

“고마워요!!”

“아… 별거 아닙니다.”

“오늘 마지막 곡까지 꼭 들어주세요!! 제가 들려드리고 싶은 노래 준비했으니까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이상도 가능합니다.”

“네?”

“아, 아닙니다.”

무슨 소린가 하는 마음에 반문하자, 당황해하는 남성.

뭔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나는 버스킹할 시간이 다가왔기에, 마이크가 설치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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