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92화 (92/175)

92화

* * *

‘3권은 주인공에게 세력을 불어넣어 주자.’

일단 3권의 제일 큰 주제를 정했다.

단신이라고 할 수 있는 주인공에게 세력을 불어넣어 주는 거다.

여기서 독자들에게 더한 흥미를 불어넣어 주기 위해선 기존에 세력을 더해 주는 것보다 미지의 인물들을 추가시켜주는 게 훨씬 재미있을 것 같다.

‘2권의 끝이 장로의 죽음이었으니까…….’

2권을 끝맺은 장로의 죽음.

두 가지를 합치면 될 것 같다.

적대 세력에서 죽은 장로의 몸을 살피다가, 음왕 무공의 흔적을 발견한다.

이를 발견한 정보 세력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정보를 팔기 시작한다.

정보를 산 사람 중 음악을 사랑하고, 음공을 배워 일정 경지에 오른 등장인물들을 추가시키는 거다.

그렇게 두 개의 세력이 주인공에게 다가올 수 있도록 설계한다.

음왕을 추종하는 이들과 장문인을 죽인 장본인을 찾아 나서는 적대 세력.

‘여기서 개연성을 살짝 무시하더라도, 원한을 키운다.’

소설이기에 가능한 일.

주인공과 적대 세력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이들에게 갈등을 부여하는 거다.

당연히 적대 세력의 후계자는 어떻게든 주인공을 처리하려 달려들 테고, 결국 장문인을 죽인 게 주인공이라고 덮어씌울 계획을 세운다.

‘실은 진짜로 주인공이 처리한 거지만…….’

결국 중간에 수작을 써서 증거를 조작한 적대 세력은 주인공이 가해자라고 주장한다.

동시에 억울함을 표현하는 주인공.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음왕의 무공을 더욱 수련하고, 경지를 올리기 위해 발악하는 장면을 넣는 거다.

여기서 사람들은 위기감을 느낄 것이며, 주인공이 성장하는 거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게 된다.

그러다가 주인공이 충분한 성장을 마치기 전, 결국 적대 세력과 마주하는 장면을 만든다.

‘동시에 주인공을 추종하는 세력들도 마주하게 만드는 거지.’

주인공이 위기에 빠졌을 때, 등장하는 음왕의 추종자들.

이 장면을 마지막으로 3권을 끝맺으면, 독자들에게 충분한 재미와 다음 권을 보고 싶은 욕망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 같다.

‘과연 주인공은 어떤 여정을 펼쳐 나갈까…….’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모르겠다.

어떻게 주인공이 성장하고, 그 끝에는 뭐가 있을지.

너무 재밌다.

마치 주인공이 돼서 좋아하는 것을 하며, 역경을 이겨내는 상황이 너무 즐겁게 느껴졌다.

동시에 기대가 된다.

한 사람의 독자가 돼서 주인공이 펼쳐 나갈 여정을 생각하니 기대되기 시작한다.

‘빨리 쓰자.’

3권의 구상을 마친 나는 1분이라도 빠르게 글로 옮겨 적고 싶어졌고, 곧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 집필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도저히 이 장면들을 머릿속에만 놔두기에는 나 스스로도 견디지 못할 것만 같았다.

* * *

GL 엔터테인먼트.

“상무님, 엔터 출판사와 이야기를 마쳤다고 합니다.”

“뭐라고 하던가요?”

“이번에 박제환 작가님의 글이 역대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5개 국어 정도로 번역해서 출간할 생각이라고 합니다.”

“…그 정도라고요?”

“저도 5개 국어까지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작품인 「절대자는 휴식을 원한다」도 5개 국어로 출간했다가, 다른 나라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으니까요.”

자신의 친구 소식을 보고 받고 있는 이승호.

제환이가 동 나이대에서는 따라가기 힘들 정도의 업적을 세운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사업적으로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작가로서는 별개.

충분히 작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나에게 보고를 올리고 있는 비서분도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이 정도의 보고를 했다는 거는 충분히 먹힐 만하다는 결론을 내린 거다.

“그게 그렇게 재밌답니까?”

“저도 세 번째 작품은 읽어보지 못해서 모르겠습니다만… 확실히 전 작품들은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서님도 읽었어요?”

“손흥만 선수가 SNS에 올린 걸 보고 흥미가 동해서 읽어봤는데, 확실히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요?”

갑자기 흥미가 생기기 시작한다.

도대체 얼마나 재밌길래 주변에서 연신 칭찬이 들려올까?

그동안 신혼생활과 회사생활을 병행하느라 바빠서 찾아보지 못했지만, 이참에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항간에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소문이요?”

“아직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아서 보고를 드릴까 말까 고민이 들지만, 거의 확실시되는 정보라 말씀드려도 될 것 같다 판단이 듭니다. 마블의 거장인 라이언 감독이 「절대자는 휴식을 원한다」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라이언 감독이 맞습니까?”

“맞을 겁니다.”

“그거 엄청나네요…….”

“말도 안 되는 거죠. 박제환 작가님이 상무님의 친구분이라서가 아니라, 작가로 봤을 때 저는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전 세계에서 관심을 받는 사람이 대한민국 사람이라니……. 더군다나 사업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지 않습니까.”

나 역시 자랑스러웠다.

가장 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큰 성공을 거둬서.

그것도 한 가지 분야가 아니다.

작가면 작가, 사업가면 사업가. 뭐 하나 빠진 게 없이 역사에서 보기 힘들 성공을 거두고 있다.

어떻게 친구로서 자랑스럽지 않을 수가 있는가.

“한번 진위 여부를 확인해 보도록 하세요. 만약 라이언 감독님의 소문이 사실이라면, 저희는 KJ 그룹과 경쟁에서 좋은 무기를 들고 출전하는 겁니다.”

“이른 시일 내로 확인 절차를 마치겠습니다.”

“그럼 혼자만의 시간 좀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네, 상무님. 그럼.”

드디어 생겼다.

나 혼자만의 시간.

비서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머릿속에 맴돌던 생각.

빨리 제환이의 글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재미있길래, 모두가 그토록 제환이를 칭찬할까?

서둘러서 내 두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뭐부터 보지…….’

지금 읽고 싶은 글.

「절대자는 휴식을 원한다」라는 작품과 「절대음감」이라는 작품 중 고민되기 시작했다.

‘그래. 이번에 받은 걸 읽어보자.’

이번에 엔터 출판사 사장이 보내온 원고.

꼭 한 번 읽어보고 얼마나 대단한 글인지 알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처음에야 내 친구 글이기에 일부러 과하게 포장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진실이 담긴 말이었다고 생각해서 「절대음감」이란 글을 읽기로 결정했다.

‘어디 보자…….’

마음을 결정한 나는 메일에 들어가 원고가 담긴 파일을 찾고는 1화부터 읽어보기 시작했다.

솔직히 파일을 연 지금도 의심스러웠다.

사람들이 과한 반응을 보인 건 아닐까?

아니면, 그들만의 세상이 있는 건가?

평소에 글을 읽지 않던 나조차 재미를 느낄 수 있을지 궁금증이 들었다.

“엥?”

뭐지?

내가 착각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분명 엔터 출판사 사장이 나에게 말을 건넬 때, 이 정도면 책 두 권 분량이라는 말을 전했다.

근데 이게 뭐란 말인가…….

내가 아는 두 권 분량의 기준이 달라진 건가 하는 의심이 든다.

그게 아니면…….

출판사 사장이 거짓말을 한 건가?

그럴 리는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게 진짜 두 권 분량이라는 얘기.

하지만 이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게, 분명 10분 정도 글을 읽은 것 같은데, 왜 벌써 마지막 회차란 말인가.

이상하다고 느낀 나는 곧바로 시간을 확인했다.

“…….”

착각이었다.

10분이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한 시간 하고도 10분이 더 지났나 보다.

동시에 감탄이 든다. 글을 읽는 취미가 전혀 없는 내가 이 정도의 집중력을 가지게 하다니.

‘근데 짜증 나네…….’

감탄과 함께 짜증도 난다.

이 정도면 독자 기만이 아닌가 싶다.

내 장담하건대 이 글을 읽은 사람은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잠에 못 들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당장 내가 그렇지 않은가.

무슨 마지막을 이따위로 끊어서 사람을 괴롭힌단 말인가.

‘절대 내가 화나서가 아니다…….’

지금 핸드폰을 들어 올리는 건, 절대 나를 위한 행동이 아니었다.

다른 독자들은 제환이에게 말을 못 할 테니, 그들을 대변해서 하기 위한 행동.

따끔하게 한마디는 해야 속이 후련할 것 같다.

* * *

지이잉―

3권 집필을 이어가고 있던 박제환.

조금 쉬고 가려고 할 때, 때마침 누군가에게 전화가 걸려 온다.

혹시나 서아의 버스킹 소식인가 하고 급하게 핸드폰을 든 나는 실망을 감출 수가 없었다.

“쯧…….”

절대 승호의 전화가 반갑지 않은 게 아니다.

단지, 서아인가 하는 기대감을 심어준 게 화가 날 뿐.

“전화 받았다.”

- 야!!

윽… 귀야…….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승호의 고함.

도대체 무슨 일이 있어서 저렇게 소리를 치는 걸까?

혹시 출판사와 안 좋은 일이 있나 생각이 든 나는 소리 친 이유를 물었다.

“도대체 왜 전화를 받자마자 소리를 지르는 거냐.”

- 너 이거 뭐야!! 왜 2권이 이렇게 끝나는 거냐고.

“…좀 대화에 흐름이 이상하지 않냐? 정상적으로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 순으로 말 좀 부탁한다.”

- 왜 「절대음감」이 이렇게 끝나냐고. 양심 있으면 주인공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고 끝내야 될 거 아니야!

“어떻게 네가 원고를 구한지 모르겠지만, 반응을 보니 성공적으로 끝맺은 거 같네.”

- …됐고. 다음 내용 있으면 보내줘 봐.

“지금 쓰고 있으니까 좀 참아라. 출판사한테 말해 둘게. 너한테 곧바로 보내주라고.”

- 고맙다…….

“…….”

의아한 마음이 든다.

내가 알기로는 승호가 소설을 읽은 적은 딱히 없던 것 같다.

전생에도 만나서 내가 웹소설을 읽는 걸 이해 못 하던 아이이다.

뭔가 뿌듯한 마음이 들면서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것보다 저 자식, 고맙다는 말이 거슬리네…….’

이때까지 내가 해준 게 얼마나 많은데…….

내가 도움을 줄 때조차 저렇게 진심 어린 고맙다는 말을 건네받지 못했는데, 뭔가 억울한 감정이 들었다.

- 아, 맞다. 다른 용건도 있었지.

“무슨 할 말이라도 있냐?”

- 사실 너한테 동의 좀 구할 일이 있어서.

“편하게 말해라.”

- 그러고 있는 중. 이번에 라이언 감독이 네가 쓴 「절대자는 휴식을 원한다」 작품에 관심이 있는 것 같더라.

“…….”

- 그걸 이용해서 KJ 그룹이랑 경쟁할 때 무기로 쓰려고 하는데. 경쟁하기로 한 게 네 몫도 있으니까 중간에서 이득 좀 취한다?

“라이언 감독님이면…….”

- 엄청난 거장이지. 라이언 감독이 맡은 영화에서 한국인 한 명이라도 캐스팅되면 난리 나는 감독이니까.

“…….”

대화를 나누다 보니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제일 중요한 이야기 아니냐? 왜 본론이 「절대음감」에 관한 얘기 같고, 라이언 감독님 얘기가 부 같냐?”

- 응? 그게 맞아. 제일 중요한 건 3권이었어.

“…….”

- 그니까 빨리 집필이나 해라. 전화 끊는다. 만약 전화 끊었는데 딴짓하다가 걸리면 가만 안 둔다. 너는 사업가가 아니고, 작가임을 상기하도록.

뚝―

역시 혼란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지금 이 사태를 좋아해야 될까 싫어해야 될까?

동시에 한 가지 걱정도 들기 시작한다.

글을 읽지 않던 승호가 저 정도의 반응을 보인다.

그렇다면… 이전 작품부터 계속 따라오던 할아버지는 글을 읽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것도 아니지…….’

그리고 그다음의 문제.

이전부터 무협을 한번 써주면 안 되냐고 부탁해 오던 외할아버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승호와 전화를 끊고 나니 팀장님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기 시작한다.

“마음 같아선 작가님을 가둬두고 집필만 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

뭔가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애써 걱정을 떨쳐내며 다음 이야기를 이어 가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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