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 쓰는 재벌-90화 (90/175)

90화

* * *

“와……. 작가님이랑 이렇게 만나는 것도 오랜만이네요.”

승호와 얘기를 마치고, 다음 날 약속 잡은 팀장님.

오랜만에 만나서인지 반갑게 느껴졌다.

“저… 혹시 기대해도 되는 겁니까, 작가님?”

“어떤…….”

“노경호 작가님한테 다 들었습니다. 완전 초필살기를 준비하고 있다고.”

“작가님 입이 좀 가볍네요.”

“그만큼 제가 괴롭히긴 했습니다. 저 진짜 작가님 작품 간절하다고요.”

다음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팀장님.

이런 팀장님이 싫지 않았다.

작가라는 사람이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는 독자를 만났는데 어떻게 싫어할 수가 있는가.

사실 오늘 팀장님과의 만남도 세 번째 작품에 관한 얘기를 나누기 위해 약속을 잡은 거다.

‘앞으로는 달라진 사항이 있으니까.’

어제 승호와의 만남 이후로 달라진 점.

더 이상 일정을 조율하는 데 있어 출판사와 직접적으로 얘기를 나누기 곤란하다는 거다.

GL 엔터가 중간에 껴서 일정을 조율하고, 어떻게 하면 작가에게 더한 이득으로 가져올 수 있을지 최대한 출판사를 괴롭힐 거다.

그전에 팀장님에게 물어보고 싶다.

혹시 욕심이 있냐고.

만약 그렇다는 대답이 들어온다면, 출판사를 옮길 생각도 하고 있다.

애초에 내가 현 출판사에 몸담고 있는 건, 앞에 있는 팀장님과의 인연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내 작품이 외적인 도움이 필요한 시기는 지났기에, 팀장님에 의중을 듣고 싶었다.

“팀장님은 욕심을 가지고 계십니까?”

“욕심이요? 엄청 많죠!! 작가님 작품을 하루빨리 보고 싶다는 욕심.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하는 욕심. 저 보기보다 욕심 많은 남자입니다.”

없다.

이 사람은 성공에 대한 욕심은 없는 것 같다.

방금 말한 욕심은 단순히 욕구에 가까운 대답이었다.

“그런 거 말고, 성공에 대한 욕심 같은 거요.”

“음……. 그건 잘 생각 안 해봤네요. 사실 지금만 하더라도 예전보다 훨씬 많은 급여와 인정을 받고 있어서, 딱히 욕심이 난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팀장님이 급여를 많이 받는 이유.

바로 나라는 작가와 유일한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이걸 잘 알고 있는 팀장님은 욕심을 부려 볼 만했다.

나를 데리고 나가 출판사를 차린다면, 나를 보고 온 작가들도 많이 구할 수 있을 거고.

그렇게 되면 많이 받고 있다는 지금보다 수입적인 면에서 훨씬 뛰어날 거다.

그런 경우의 욕심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에게 잘못 말해 관계가 끊길까 봐 말을 안 한 건지, 애초에 그런 생각 자체를 안 한 건지 궁금해졌다.

“팀장님이 따로 나가 출판사를 차리면 더욱 큰 성공을 맛볼 수 있을 텐데요?”

“에이……. 저는 그런 거에 대한 욕심은 없습니다. 지금만 하더라도 부족하지 않은 급여에, 더욱이 작가님의 작품을 먼저 확인할 수 있잖아요.”

“…….”

“만약 작가님 말대로 제가 나가서 출판사를 차리면, 제가 해야 되는 일이 바뀌겠죠. 더 이상 작가님들 개개인한테 신경 쓰기도 어려울 거고. 저는 그런 것보다 지금이 좋아요.”

팀장님의 대답을 들은 나는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팀장님답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팀장님과의 연결고리가 이어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그동안 욕심부릴 수 있는 상황에서 내 작품을 제일 우선으로 생각했으니까.

“저한테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뭐부터 듣고 싶으세요?”

“음……. 저는 개인적으로 좋은 소식을 먼저 듣고 싶군요. 제가 가장 기다리는 대답일 것 같아서요.”

“그럼 좋은 소식 먼저 알려드릴게요. 차기작 1권을 완성했어요.”

“오!!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작가님 입으로 들으니 더욱 기분이 좋네요.”

차기작 1권을 완성했다는 말을 듣고 바뀌는 팀장님의 표정.

그 어떤 말보다 지금 말을 듣고, 제일 즐거운 표정을 짓는 걸 보면 확실히 나의 작품을 좋아해 준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다음 나쁜 소식은 뭐죠?”

“이제는 팀장님과 업무적인 이야기는 나누지 못할 거예요.”

“그게 무슨……. 혹시 출판사를 옮기려고 하는 겁니까……?”

이전의 대화가 있어서일까?

팀장님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지며 지레짐작하기 시작한다.

“그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이죠……?”

“제가 소속사를 구하게 돼서 업무적인 건 GL 엔터를 통해서 이야기를 나눠야 될 거예요. 사실 이전까지 출판사에서 하던 역할은 업무 외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거 오히려 좋은 소식 아닙니까?”

“출판사는 영향력이 줄어들 텐데요?”

“대신 저는 작가님의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 그만큼 작가님의 이득도 커질 거고요.”

이 사람. 욕심의 방향이 한쪽만을 바라보고 있다.

바로 양질의 작품.

굳이 욕심이 없는 사람에게 바람 넣을 일도, 그렇다고 흔들릴 만한 얘기를 건넬 필요가 없었기에 작품 이야기로 넘어갔다.

“일단 가장 큰 변화는 저와 팀장님은 이제 사적인 관계로 변했다는 겁니다. 업무적인 부분 말고 제 작품에 관한 이야기가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편하게 연락해 주세요.”

“저는 더 편하겠네요.”

“그럴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팀장님이 출판사에서 가지고 있는 위치는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여전히 제가 지금 출판사와 계약을 맺는 건 팀장님이 가장 큰 이유니까요.”

“감사합니다, 작가님. 제가 출판사 업계에 일하면서 가장 큰 행운은 작가님일 거예요.”

“별거 아닙니다.”

“근데… 그것보다는 혹시 작품 좀 보여주면 안 되겠습니까? 그… 고맙긴 한데, 그것보다 작품을 너무 보고 싶어서…….”

“…….”

아까부터 안절부절못하는 게, 나에 대한 고마움이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이 틀렸다.

팀장님이 안절부절못하던 건, 고마움이 아니라 내 차기작을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나 보다.

이전에 이야기들은 소귀에 경 읽기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며 「절대음감」 1권이 들어 있는 USB를 꺼내 팀장님에게 전달했다.

“호… 이게 그 전설의 「절대음감」이란 작품이 담긴 USB인가요?”

USB를 건네받고, 황홀한 표정을 짓는 팀장님.

마치 미국인들이 미국의 파워볼에 당첨된다면 저런 표정을 지을 것 같았다.

“저… 죄송한데 지금 당장 확인 좀 해봐도 될까요? 출판사 가서 확인하려 했는데, 그러면 직원들 때문에 집중도 안 될 것 같고…….”

“뭐… 편하실 대로 하시죠. 이럴 줄 알고 저도 노트북 가져왔습니다.”

“크… 역시 작가님. 그럼 집중 좀 하겠습니다.”

팀장님과 만나기 전에 충분히 예상했다.

파일을 건네받은 팀장님이 그 자리에서 확인할 거라고.

분명 시간이 좀 걸릴 거라고 생각한 나는 그 시간에 집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팀장님이 작품을 보고 싶어 하는 것만큼, 나 역시 내 머릿속에서 뛰어다니고 있는 등장인물들을 한시 빨리 작품으로 옮기고 싶었었다.

‘집중하기 시작했네.’

팀장님이 노트북을 펼쳐 집중하기 시작한 걸 확인한 나는, 나 역시 노트북을 꺼내 집필을 이어 가기 시작했다.

* * *

작품을 읽기 시작한 이철민 팀장.

‘후… 미치는 줄 알았네.’

솔직히 작가님과의 이전 대화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게 여기 오기 전부터 작가님의 차기작에 대한 생각밖에 없었지 않은가.

중간에 출판사를 차려 볼 생각 없냐고 물었을 때, 그때 잠시 집중할 수 있었지만 그 이후에도 계속 작품을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이게 다 노경호 작가님 때문이야…….’

작가님의 작품을 확인했다고 온 연락.

얼마나 칭찬하면서 놀리던지…….

마음 같아선 당장 작가님 작업실 앞에 찾아가 한 번만 보여주면 안 되냐고 사정할 뻔했다.

그런 마음을 초인적인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는데 작가님의 대화가 삼천포로 빠지는 게 아닌가…….

지금이나마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급한 마음으로 파일을 열기 시작했다.

“후…….”

떨린다.

이건 기쁨의 떨림.

그동안 기다려왔던 결과물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니.

마음이 달아오른 나는 1화부터 차근차근 읽어보기 시작했다.

일단 글의 주제.

노경호 작가님에게 들었듯 무협이라는 주제를 쓴 듯했다.

내용은…….

“…….”

뭐지?

분명 글을 읽다가 슬슬 내용을 파악하려고 했는데, 뒤에 내용이 이어지질 않는다.

이럴 리가 없는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마음이 급해진 나는 노트북을 이리저리 만져보기 시작했다.

“…….”

‘진짜 다 읽은 거라고?’

말이 안 된다. 분명 체감상 5화 정도나 읽었던 것 같은데…….

이런 적은 처음이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생각한 나는 필히 문제가 있을 거라 판단을 내렸고, 다시금 1화부터 글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오… 이게 떡밥이었군…….’

서사는…….

“……?”

뭐지…?

또 한 번 확인하는데 뒤에 내용이 없다.

이쯤 되면 인정해야 되나 보다.

내가 본 것들이 1권의 전부였다고.

첫 번째야 이해가 안 되지만, 그나마 납득할 수 있다.

분명 재밌었기에 짧게 느껴질 수 있을 테니…….

그러면 두 번째라도 분석이 돼야 하는 거 아닌가?

어째서 벌써 끝난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미쳤네…….”

1권을 다 봤다고 인정한 나는 작품에 대한 생각을 이어 가기 시작했다.

일단 재미.

이건 뭐 말할 것도 없다.

작품을 읽는 내내, 내 입가에서 웃음기가 사라지지를 않았다.

웃음기뿐만이 아니다.

때로는 웃음을 짓고 있던 표정이 슬픔으로 물들기도 했으며, 어떨 때는 비장한 표정으로 변하는 게 느껴졌다.

작품을 읽고 있던 나를 누군가 바라보고 있었다면, 미친놈으로 볼 게 분명했다.

‘그리고 서사…….’

이 작품은 서사가 진미다.

각 캐릭터당 가지고 있는 서사 하나하나가 어우러져, 장면마다 독자들에게 감정 이입을 요구한다.

자칫 잘못하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장면들도, 서사가 어우러져 있으니 한 장면 장면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거다.

그리고 주인공의 특수성.

주인공이 좋아하는 것과 그걸 열심히 할수록 오르는 무력.

끝났다.

이 작품은 호불호도 없다.

아니, 불호를 느끼는 사람도 끝까지는 읽어볼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아니지…….’

지금은 이 부가적인 정보들이 중요한 게 아니다.

제일 중요한 건 다음 내용이 뭐냐는 거다.

“작가님, 혹시 지금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게 이번 작품에 대한 집필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네?”

“저 지금 진지합니다. 빨리 대답해 주세요.”

“그렇긴 한데…….”

“혹시 몇 화 정도를 쓰고 계시죠?”

“어디 보자……. 한 40화 정도는 되는 거 같군요.”

됐다!!

작가님에게 실례일 수 있지만, 지금 당장 다급함을 풀 답안지가 저기 있다.

평소라면 하지 않을 행동이었지만, 이건 작가님이 초래한 거나 다름없다.

1권을 저렇게 마무리 지으면, 당연히 뒤 내용이 궁금한 게 정상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지금 내 앞에서 다음 내용을 집필하고 있다는 건, 1,000년을 굶주린 호랑이 앞에서 소고기를 썰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작가님!! 죄송한 말씀 하나 올려도 되겠습니까?!”

“…도대체 어떤 말을 하려고 그렇게 비장한 표정을 짓는 겁니까…….”

“지금 쓰고 있는 부분까지 꼭! 보고 싶습니다!! 저에게 은혜를!!”

“뭐… 그 정도야 괜찮을 것 같네요. 마침 45화까지 마무리 지었으니,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

“대신!! 또 다 보시고 나서, 지금 쓰고 있는 부분 달라고 하면 안 됩니다.”

“…….”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래도 당장의 행복을 위해선 대답해야 했다.

“네…….”

“그럼 보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작가님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 나는 메일을 계속해서 새로고침하기 시작했다.

“…작가님? 아직 안 왔는데요?”

“…1분도 안 지났습니다.”

“후…….”

나도 모르게 급했나 보다.

띠링!

‘왔다!!’

다음 내용이 메일로 도착한 걸 확인한 나는 곧바로 파일을 열고, 다시 한번 작품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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