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 * *
‘어떻게 연락을 보내야 하지?’
그녀의 버스킹이 끝나고 작업실에 돌아온 나는 손에 쥐어진 그녀의 번호를 바라보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뭐라고 연락을 시작해야 할까?
잘 들어갔냐고?
아니면… 힘든 일 있을 텐데 내가 도와줄 수 있다고?
‘이건 전형적인 사기꾼인데…….’
생각을 이어 가다 보니, 사기꾼 같은 멘트까지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유일하다시피 못한다고 말할 수 있는 분야가 생각났다.
내가 가장 쓴소리를 많이 들었고, 도저히 독기로도 불가능한 분야.
바로 연애라는 분야다.
전생과 이번 생을 통틀어 연애라고 할 수 있는 건 그녀와의 만남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것도 내가 이끈 게 아닌, 그녀가 이끌었기에 가능했던 부분.
다시금 미지의 세계로 들어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떨리고 머릿속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그래……. 집에 잘 들어갔냐고만 보내자…….’
이게 맞다.
잘 들어갔냐고 물으면 뒤에 이어지는 말도 돌아올 게 분명했다.
가장 간단한 생각인데, 이제야 깨달은 내가 한심해 보였다.
결정을 내린 나는 핸드폰을 들고, 떨리는 속으로 문자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잘 들어가셨나요?]
스읍…….
이건 너무 밋밋한 것 같다.
[잘 들어가셨나요?^^ 힘들어도 화이팅! ^^]
십 분 동안 고민을 이어 가다 보니, 그럴듯한 문자가 완성됐다.
완성된 문장을 보고 만족스러운 감정을 느낀 나는 그대로 전송 버튼을 눌렀다.
이제 답장을 기다렸다가 그에 맞춰서 다시 문자를 보내면 될 것 같다.
‘오늘은 얘기를 나누다 잠들자…….’
애초에 집필은 내일부터 하기로 결정한 상태.
더 이상 할 게 없는 만큼,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즐거운 상상을 하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
…
“…….”
뭔가 이상했다.
처음 문자를 보내고 30분 정도가 흐른 상태.
답장이 와야 하는데 왜 오지 않는 걸까?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나는 한 가지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그녀의 집은 홍대에서 30분 이상 걸리는 먼 거리.
더군다나 그녀의 재정 상태는 택시를 탈 정도로 여유롭지 않았다.
충분히 이해가 간 나는 핸드폰을 진동으로 변경시킨 채, 작품 구상을 이어 가기로 결정했다.
“…….”
스읍…….
이상하다.
작품 구상이 머릿속에서 폭죽마냥 계속해서 터져야 하는데 도저히 한 가지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어째서 그녀는 답장을 보내지 않은 걸까?
지금 시간이면 충분히 답장을 보낼 때가 된 것 같은데…….
지이잉―
‘왔다!!’
직감적으로 답장이 왔음을 깨달은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핸드폰을 켜고는 문자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
그런 나의 눈앞에 보이는 문자.
[누구?]
“…….”
그러고 보니, 그녀가 나에게 번호를 줬을 뿐, 나의 번호는 그녀가 모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분명 실망스러운 감정을 느꼈지만, 재빨리 정신을 차린 나는 내가 누구인지 밝히고서는 대화를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누군지 모르는구나…….’
문자를 나누면서 느끼는 건데, 그녀는 나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는 거다.
박제환이라는 사람이 아니라, 작가 박제환조차 전혀 모르는 것 같다.
하기야 내가 연예인도 아니고,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모를 수도 있을 것 같다.
더군다나 지금은 다른 곳에 시선을 두기 힘든 상태.
충분히 이해가 갔다.
‘오히려 이득이다.’
현재 시기에 그녀는 재벌이라는 족속들에게 혐오를 느끼고 있을 테다.
차라리 내가 재벌이라는 걸 모르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
근데 왜 이렇게 서운한 감정이 드는지 모르겠다.
[다음에 버스킹하면 그때 연락드릴게요. ^^]
분명 이어지지 않은 문자가 한몫했으리라고 확실할 수 있었다.
* * *
다음 날.
컴퓨터 앞에 앉은 나는 어제와 다른 느낌으로 떨리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오랜만이다.
글을 쓰기 전에 이런 설레는 감정.
어제 이른 시간에 잠들어서인지, 그게 아니라면 그녀와 새로운 인연을 시작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작품을 집필하기 전 마음이 한없이 가볍게 느껴졌다.
‘1화의 서사부터 시작하자.’
작품의 소개를 알리는 회차.
주인공이 어떤 전개를 헤쳐나갈 것이며, 어떤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하나의 소개장이다.
이름이 알려진 나는 조금 텐션이 늦어도 상관은 없지만, 중국에는 처음 도전장을 내미는 나였기에 1화부터 독자들에게 폭풍을 선사하기로 결정했다.
작품의 전개와 매력적인 주인공.
그 안에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
모든 걸 1화에 집어넣어, 다음 내용을 보지 않고선 잠자리도 못 들게 만들 요령이었다.
타닥타닥―
이때까지 한 글자도 써지지 않았던 게 억울해서일까?
1화를 집필하고 있는 지금, 단 1분도 쉬지 않고 타자 소리가 들렸다.
이 말인즉슨, 한 번의 호흡으로 1화 집필을 마쳤다는 얘기.
혹시나 빠르게 쓴 글 때문에 못 담아낸 게 있나 확인하기 시작했다.
‘재밌다…….’
1화를 확인한 지금, 내가 쓴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뒷 내용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중소 문파에서 역대급 재능을 가진 주인공.
그걸 보고 모든 지원을 하기 시작한 문파.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기 위해, 주인공의 할아버지인 문주에게 지원하지 않아도 된다고 의견을 전하는 주인공.
그걸 들은 문주가 격노해, 홧김에 자신이 먹인 영약을 구해 오라고 지시를 내린 상태.
‘영약이 있다고 소문이 무성한 산에서 길을 잃은 주인공.’
거기에서 기연을 발견하는 장면으로 1화를 끝맺음하니, 작품을 집필한 나도 재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담긴 내용이 3화 정도의 분량을 압축해서 재미를 극대화시킨 만큼,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기연은 음왕의 무공으로 설정하자.’
여기서 기연은 작품의 세계관에서 최강자로 여겨지는 검왕과 창왕 등.
왕의 칭호를 가진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음왕의 무공으로 기연을 설정했다.
더해서 주인공만이 가진 특수성.
‘절대음감’이라는 특전을 추가시켰다.
‘1권은 주인공이 기연을 얻고 성장시키는 과정으로 집필한다.’
사람들은 주인공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무력적으로 성장하는 데 즐거움을 느낄 거다.
여기서 한 가지 기대감을 추가시킬 예정이다.
성장한 주인공이 힘을 발휘할 때 최고의 대리 만족을 줄 수 있는 부분.
바로 주인공의 할아버지가 문주로 있는 중소 문파에 위기감을 부여하는 거다.
‘독자들은 강해진 주인공이 문제를 해결하면서 가족들에게 인정받을 걸 상상하며 1권을 읽겠지.’
이렇게 설정하면 중소 문파가 겪는 어려움은 독자들에게 고구마로 다가가는 게 아닌, 주인공이 해결할 거라는 기대감으로 다가가게 된다.
더해서 수련하는 동안, 독자들이 지루하게 느끼지 않도록 위기감도 부여할 수 있었다.
‘즐겁다…….’
주인공을 내 상황과 견주어서 서사를 부여해서일까?
작품을 집필하는데 즐겁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마치 내가 주인공이 돼서, 현실에서도 위로받던 음악으로 성장을 하며 가족들에게 인정받는다.
그 과정을 집필하는 지금, 내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가질 않는다.
‘벌써 밤인가?’
오랜만에 즐거운 마음으로 집필해서일까?
어느새 잠잘 시간이 다가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꼬르륵―
‘너무 집중했나 보네…….’
시간이 오래 지났다는 걸 인식하자마자 들려오는 꼬르륵 소리.
역시 어떤 일을 하는 것보다 작품을 집필할 때가 가장 즐겁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은 나는 가벼운 식사와 함께 잠자리로 향할 수 있었다.
* * *
“형님, 집에 언제 들어가시게요? 벌써 새벽 한 시인데.”
“모르겠다. 그동안 박제환 작가님이 성장하는 걸 지켜봐서인가? 오랜만에 글에 대한 욕구가 나 자신조차 제어할 수 없게 만드네.”
“와… 형님도 그랬어요? 저만 그런 줄 알고,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는데.”
“우리도 작가이긴 한가 보다.”
언제 들어갈 거냐고 말을 걸어오는 막내 작가에게 자신의 상태를 말하는 노경호 작가.
이런 적이 오랜만인 것 같다.
대여점 시절 무협을 읽고, 더 이상 읽을 게 없어 스스로 집필하기로 결정한 날.
아마 그때도 이런 감정을 느끼면서 글을 썼던 것 같다.
단순히 글을 쓰며 한 달에 100만 원만 벌어도 좋을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글을 쓰면서 그 정도로 행복했던 적이 드물었던 것 같다.
‘지금은 한 달에 몇천만 원인데…….’
수익은 비교가 안 되게 많아졌다.
그에 비례해서 작품에 대한 애정은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아마 쓰고 싶은 글과 팔리는 글이 달라서 그런가 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을 쓰는 것.
직장을 다니면서 얻는 수익보다 훨씬 높은 수익을 보장해 준다.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는 것.
자칫 유료화도 들어가기 힘들 정도의 성적이 될 수도 있다.
어쨌거나 전업 작가의 길을 들어서기로 결정한 만큼, 내가 좋아하는 글은 잠시 접어두고 사람들에게 맞춰 글을 써왔다.
그렇게 점차 사라지는 작가로서의 행복.
오랜만이다.
글을 쓰고 싶어서 미칠 것 같은 이 감정이.
‘박제환 작가님을 보면 누구나 느낄 거다.’
방금 막내 작가가 한 말처럼 나만 느끼는 게 아닐 거다.
작가님을 가르쳐주면서 중간중간 들려오는 작가님의 생각.
한 번도 생각지도 못한 전개.
그것들을 내 글에도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모른다.
매일 클리셰라고 불리는 전개를 이어가다, 오랜만에 신선한 전개를 접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너 먼저 집에 갈래?”
“에이… 저 오늘 여기서 자려고 물어본 거예요. 혹시 저 기다리는 거면 먼저 가라고 말씀드리려고 했거든요.”
“나도 오늘은 작품에 미쳐보고 싶다.”
“크… 우리 이런 것도 오랜만이네요. 예전에 처음 모여서 작품을 시작하고, 작가라는 꿈을 꿨을 때. 그때 그랬던 것 같은데.”
“이게 작가로서 낭만 아니겠냐…….”
오랜만에 막내 작가와 이런 얘기를 나누니까 즐거운 감정이 든다.
“그건 그렇고, 박제환 작가님은 집필 잘하고 계시겠죠?”
“…야, 누가 누굴 걱정하냐. 너 그 괴물 못 봤냐? 솔직히 작가님 앞이라 뭐라고 못 했지만, 처음으로 질투가 날 뻔했다니까?”
“…형님도요? 저도 무슨 10일 만에 제가 가진 노하우 다 가져가는 거 보고, 피가 끓더라니까요? 거기서 끝나면 뭐라고 안 한다. 무슨 당연하다는 듯이 짓는 그 표정. 와… 진짜 작가님이 회장만 아니었어도 꿀밤 먹였다.”
“쯧쯧. 아직 그래서 네가 멀었다고 하는 거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형님.”
방금 대화를 통해 느낀 점.
역시 막내 작가는 아직 멀었다.
무협을 쓰는 작가라면, 자신 또한 무인이 되는 경험을 해봐야 되지 않겠는가.
“나는 작가님 글에 집중할 때, 자연스럽게 부르는 척하면서 힘 좀 세게 줬다.”
“…….”
“얼마나 집중했는지, 나의 권모술수를 눈치채지도 못하더라니까?”
“와… 형님……. 오늘 한 수 배우고 갑니다.”
오늘도 무협 작가로서 막내 작가에게 자그마한 가르침을 내린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저희 일주일 뒤에 작가님 사무실 가 볼래요? 그때쯤이면 5화 정도는 썼지 않을까요?”
일주일 뒤면 5화 정도는 썼지 않겠냐는 막내.
저 말에는 곧바로 부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노하우를 가르쳐주고 마지막에 본 작가님의 표정.
내가 일주일 만에 20화를 집필했을 때의 표정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나보다 집중력이 더 좋으신 분이니…….’
“5화? 최소 한 권은 썼다고 장담할 수 있다.”
“예?! 한 권이요?!”
“무조건이야.”
“형님…….”
내 말을 듣고 비장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막내.
“일주일 뒤. 저는 무조건 작가님의 원고를 확인하러 갈 겁니다.”
오랜만에 마음이 통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 역시다.”
나 역시 작가님이 쓴 글을 확인해 보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았다.